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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우상이란 무엇인가?
by John Piper2022-01-22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품까지도 파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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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 목사의 팟캐스트 Ask Pastor John에피소드 1726 “What Is an Idol?”을 녹취한 글입니다.  

2022년을 맞아 팟캐스트 십 년차 첫 번째 에피소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정말 놀랍네요. 저는 우리가 무려 십 년 동안이나 지속할 무언가를 계속 출시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존 파이퍼 목사님, 십 년이 되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습니다. 목사님, 새로운 한 해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우상숭배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그것도 좋은 것입니다. 여기 한 익명의 성도에게서 온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존 파이퍼 목사님. 우상이란 게 과연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은 특히 설교에서 이 용어를 항상 사용하는데요. 그래서 저도 성경을 보겠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는 우상이 사람이 만든 조각상이고, ‘금과 은 또는 동과 철, 아니면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단 5:4)에 절하는 게 우상숭배라고 알고 있는데요. 때로는 우상이 나쁜 것을 막는 부적과 같은 물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황금 종기(golden tumors)나 황금 쥐 모양의 장신구 말이에요. 나는 지금 사무엘상 5:6에서 7:2까지를 말하는 건데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상이 많이 다릅니다. 돈, 섹스, 권력처럼 어떤 마음의 욕망인 것 같거든요.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까? 우상은 과거에는 조각된 어떤 것이었는데, 이제 우상은 마음을 지배하는 어떤 강박관념입니다. 나는 조각상과 마음속 우상(heart-idols)의 관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실 구약의 종양과 쥐 우상을 보면 그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두 가지 형태의 우상숭배와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자, 제가 대답을 제대로 하도록 노력을 해보죠. 일단 정의부터 내립시다. 모든 경우를 잘 다루려면 우상이 무엇인지 성경적인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에게 전심을 다해서 의지하는 게 아니라 어떤 축복이나 도움 또는 인도를 위해 우리가 의지하게 되는 모든 것을 우상이라고 정의해야 합니다. 예, 이게 바로 제가 실제적으로 내리는 우상의 정의입니다. 예를 들어, 주머니에 있는 토끼 발, 벽에 걸려 있는 성자의 사진, 선반에 놓인 신전의 유물, 또는 힌두교나 불교 사원에서 가져온 보다 더 노골적인 이미지 등등은 다 모세가 산에 있는 동안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의 범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우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지 않고 특별한 보호나 축복을 위해 토끼 발이나 유물, 그림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우상 해부


이제 이 질문을 보낸 친구가 지적한 것처럼 성경에서는 우상이라는 단어가 자연에서 나온 실제 대상에 대해 일률적으로 사용되거나 또는 더 흔한 경우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점은 정확합니다. 아내나 땅, 돈이나 수첩을 과도하게 사랑한다고 해서 우상숭배라는 단어를 붙이는 예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서는 어떤 것에 대한 강한 갈망과 욕망보다는 사람이 만든 물건이나 자연에서 온 무엇인가와 관련해서 우상숭배라는 단어를 쓴다고 질문하신 분이 지적한 부분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좀 더 정확하게 살펴볼 때, 이런 모든 사실들 뒤에는 두 번째 계명이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4–5)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오로지 그분만을 의존하고 오로지 그분에게만 모든 경외와 경배를 드리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 질투한다는 말을 쓸 정도로 하나님은 그 점을 중시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상으로 대표되는, 소위 경쟁하는 신들을 향한 숭배를 싫어하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상 신을 상징하는 어떤 조각을 만드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도, 사람이 하나님을 어떤 인공 물체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존경과 경배, 그리고 절대적 의존을 질투하실 정도로까지 원하시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의 일부를 시편 96:5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즉, 우상의 문제점 중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초월적 본성에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하나님에 관한 모든 표현은 결국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오해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반드시 직접적으로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 안에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조각하거나 칠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으며, 선반에 넣거나 카트에 실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아니요! 그럼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초월적이며, 어떤 식으로든 그를 조각하거나 제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위 신이라 불리는 형상이나 자신의 자아를 표현한 형상마저도 그토록 싫어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시편 115:4-8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즉, 형상(images)은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품까지도 파괴합니다. 형상은 인간을 생각 없고(mindless) 힘도 없으며 나아가서 비영적인 육체 덩어리로 만듭니다. 우리도 조각상처럼 됩니다. 우상의 무(nothingness)는 인간까지도 무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형상으로 바꾸기


이제 친구의 질문에 답할 순서입니다. 좋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대상이 성경이 우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면, “오늘날의 우상”은 "매우 다릅니다. 마음의 욕망이나 돈, 섹스, 권력, 그런 것들에 대한 욕망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상은 마음의 집착이 아니라 단지 조각상에 불과한 게 아니었던가요?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나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된 것일까요? 내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즉, 우상숭배를 정의할 때 이러한 초점의 변화는 우리가 서구에 살고 있기에 종교 예배에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다른 문화권보다 덜 일반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의문이 생깁니다. 우상숭배에 대한 이러한 성경적 가르침이 사람들이 실제로 절하고 숭배하는 동상을 세우는 일이 덜한 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 관련이 있습니까? 아니면, 전혀 관련이 없습니까?


대답은 ‘관련이 있다’입니다. 하나님을 비하하는 돈, 성, 권력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기 위해 우상숭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성경에 말하는 우상의 본질을 감안할 때, 전혀 잘못된 게 아닙니다. 여기 신약의 몇 가지 지침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토대로 볼 때, 요즘 사람들이 현대적 의미로 우상숭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첫째, 로마서 1:21-23은 복음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이 없지만 자연세계에는 일반계시가 있어서 누구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돌려야 할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저는 이 본문이 우상숭배의 외적 드러남 아래에 있는 문제의 본질을 지적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형상으로 바꿉니다. 바울이 언급한 첫 번째 형상은 사람을 닮은 형상인데, 하나님을 대체하겠다고 위협하는 인간의 으뜸가는 형상이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형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존재이며, 이 사실은 하나님을 높이고자 하는 우리의 사랑에 지속적인 위협이 됩니다. 따라서 이런 교환을 일종의 우상숭배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합니다.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자, 다시 넓은 정의로 돌아갑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대신에 우리가 어떤 축복이나 도움, 인도를 받기 위해 의지하는 모든 것, 그것이 우상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 한 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긍심, 돈, 권력, 성, 가족, 생산성, 또는 다른 어떤 것을 향상시키기 위해 축복을 갈구하고 무엇인가 사랑하고, 의지하며, 또한 신뢰하고 있다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 속에서 내내 지속해 온 똑같은 우상숭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21의 한 구절을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요한의 편지의 맨 마지막 구절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왜 요한은 편지를 그렇게 끝맺습니까? 요한일서 전체를 통틀어 그는 우상을 언급한 적도 없습니다. 아니, 그는 자신의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서도 우상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마지막 문장에 우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떤 것의 조각상을 의미합니다. “우상에게 굴복하지 마십시오. 우상을 멀리하십시오.”


왜 요한은 편지를 이렇게 끝냈을까요? 여기 저의 마무리 제안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2:15-16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사도 요한이 “우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마도 문자 그대로 어떤 물질적인 이미지를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 세상 모든 것까지도 다 우상이라는, 보다 더 일반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문제까지도 고려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부터 멀리하십시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과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시는 모든 것이야말로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사랑할 만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원제: What Is an Idol?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 한 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긍심, 돈, 권력, 성, 가족, 생산성, 또는 다른 어떤 것을 향상시키기 위해 축복을 갈구하고 무엇인가 사랑하고, 의지하며, 또한 신뢰하고 있다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 속에서 내내 지속해 온 똑같은 우상숭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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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hn Piper

존 파이퍼는 desiringGod.org의 창립자이며, Bethlehem College & Seminary의 총장으로 33년 동안 미네소타에 위치한 Bethlehem Baptist Church의 담임목사로 섬겼다. 대표작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라’가 있으며, 최근 저술한 ‘내가 바울을 사랑하는 30가지 이유’​ 외에 5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