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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세대를 위한 복음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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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선일 /  작성일 202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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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pri rianto on Unsplash

4050 세대의 비종교화와 교회에 대한 실망이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대선을 거치며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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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세대, 영적으로 안녕한가?”와 논제가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야기들 


A(40대 남)는 5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설교를 들을 때마다 몇 번 씩 마음에 부대낌을 느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아내가 아이들 양육에 교회만큼 좋은 데가 없다며 권유하는데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를 다녔지만, 담임목사가 기업의 오너 같고 아무나 만날 수 없는 “신적인 존재”처럼 보여 한동안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사를 하면서 옮긴 교회는 다행히 교회의 철학과 목사의 메시지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이따금 공공연하게 정치 집회를 하는 목사들과 그런 목사들을 옹호하는 교인들을 볼 때면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며 신앙생활을 지속해야 할지 갈등을 겪곤 한다. 


모태신앙인 B(50대 여)씨는 평생 열심히 즐겁게 교회생활을 해 왔다. 가족 중에 목회자들도 있어서 교회와 목사들의 세계에도 익숙하다. 그런데 그 역시 언제부터인가 편향된 정치 메시지가 늘어나는 설교 시간이 고역이 되었다. 정치적인 발언이 계속 강단에서 흘러나오자 견디기 힘들어진 B는 10년이나 다닌 교회를 뛰쳐나왔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과 같은 정치적 입장의 설교를 듣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담백하게 성경본문에 충실한 말씀을 듣고 싶었다. 그는 또한 종종 교회에서 경험한 불합리한 일처리나 은혜로 문제를 덮는 방식도 불편했다. 세상에서 상식과 정의의 기준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교회는 여전히 현실과 담쌓고 사는 것 같아 그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C(40대 여)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다.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해서 입시 위주의 교육보다는 지역공동체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생태 교육이나 독서교육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한다. C는 종교적 배경이 전혀 없기 때문에 기독교는 매우 낯설고, 종종 배타적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그러다가 공동체 운동에서 몇몇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리게 됐는데, 그들이 자신과 같은 교육관과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어서 말이 통한다고 느꼈다. 하루는 인근 사찰로 문화유산 탐방을 가보자는 조심스러운 제안에 그들이 흔쾌히 응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TV에서 보던 불상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는 과격한 교인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그 후로 교회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역공동체 운동에 참여하는 목사의 교회에 조심스럽게 출석하기 시작했다. 


중견기업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D(가명 50대 남)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다. 80년대 학번으로 대학 시절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한 까닭에 기독교는 가진 자의 종교라는 인식이 강했다. 어쩌다보니 그리스도인 배우자를 만나긴 했지만 교회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 40대에 이르러 (친구인 필자의 권유도 듣고)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는 필자에게 딸이 교회에서 특송하는 동영상도 보내주며 훈훈한 대화도 나눴다. 그런데 얼마 전 통화에서 D는 이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현장 출석을 못하기도 했고, 성인이 된 자녀들과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는 즐거움도 희석됐다. 더 중요한 점은 신앙생활을 해야 할 뚜렷한 동기를 못 찾겠다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갱년기에 접어들고 후반 인생도 준비해야 하는데 내 인생의 치열한 고민에 무심한 교회는 별로 재미가 없다고 한다. 


위의 사례들이 4050세대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의 경험과 판단이 전부 옳다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교회에 대해 갖는 실망과 불편함이 동일하진 않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정치적 성향도 조금씩 달랐다. 중요한 점은 이들 모두 교회 언저리를 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 언저리 밖으로 떨어져 나갔거나, 혹은 언저리에서 고민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교회 언저리 안으로 들어오는 이도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혹은 느꼈던) 교회에 대한 불편함도 최근 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교회의 배타성과 물질주의, 이기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또한 교회에게 기대하는 바도 약자를 도우며 사회에 모범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늘 제기돼 왔기 때문에 아주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다만, 4050 세대의 비종교화와 교회에 대한 실망이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대선을 거치며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공의 복음


한국 사회의 허리인 4050세대는 생산성과 소비여력뿐 아니라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과 문화적 유연성도 매우 높다. 우리 사회가 절차적으로 민주화되어가는 흐름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공공성의 진보에 민감하다. 또한 경제 성장기를 경험했기에 안정적인 삶을 희구하는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에도 익숙하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에서 필자는 4050세대와 소통하는 ‘공공의 복음’과 ‘일상의 복음’을 구상해 본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하나님 나라 선포는 온 세상을 향한 좋은 소식이다. 그의 몸 된 교회 또한 존재하는 방식이 좋은 소식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전하고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이 우리 사회의 공공적 과제에 좋은 소식이었는가? 


한편으로 교회가 우리 사회의 공적 과제들에 전혀 무심하지 않았다는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에서 예배 시간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위한 구제도 강조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회봉사 관련 업무에 종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교회가 공공선에 기여하는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다. 이는 비단 이미지 메이킹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필자의 친구인 50대 남성은 교회가 보여주기 행사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또한 4050은 아니지만 최근에 회심했던 한 20대 남성은 교회의 구제는 그들만의 홍보를 위한 자기만족적 활동으로 보였다고 한다. 선한 의도에서 실천을 한 이들에게는 억울한 소리겠지만,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벤트성으로 보이는 그러한 구제 활동을 보면서, 복음으로부터 비롯되어야 마땅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느껴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의 복음은 중요하지만 교회가 사회봉사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진정한 대안이 될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사회적 봉사 활동은 반사체이기 때문이다. 더욱 근본적인 발광체는 복음으로 인해서 변화된 성품의 공동체일 것이다. 교회가 복음에 기초한 온유와 겸손의 성품을 형성하는 공동체가 되지 못하면 교회의 모든 선한 실천과 노력들도 가려지는 일식 현상이 일어날 뿐이다. 미국의 조사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기독교에 가장 수용적이 되는 경우는 그리스도인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돕는 모습을 볼 때라고 한다(Rick Richardson, You Found Me, IVP, 2019: 185). 이는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교회 안의 습속을 재형성하는 차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속죄가 우리의 성품과 가치를 더욱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복음의 깊은 과제인 것이다.    

  

일상의 복음


그 다음으로 4050세대의 상황에 더욱 실제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일상의 복음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는 4050세대가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집단적 중산층을 형성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이들은 매우 현실적이며, 또 합리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한다. 일과 가정, 인간관계, 그리고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가치들은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교회는 지속적으로 이를 경계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안정적으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의미가 있을지, 배우자 및 자녀들과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고 다른 이들과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맺고 지내야 할지와 같은 일상의 문제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중년의 과제들은 치열한 가치관의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이러한 일상의 문제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어떠한 선택으로 안내하는가? 


종종 ‘오직 복음’이나 ‘본질’을 부르짖는 소리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일상의 구체적인 문제와 복음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만하고 불안하여 공부도 게을리 하는 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복음은 무엇인가? 아이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고, 성경읽기와 기도하기를 강요하면 아이의 삶이 복음적으로 변화가 될까? 이러한 종교적 형식만을 (혹은 경건의 모양만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실속 없는 본질환원주의다. 복음은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관계,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낸다. 먼저 부모는 하나님께 맡기신 양육의 사명을 개인적 욕망이나 무관심으로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자신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부모는 아이의 성향과 은사를 발견해서 사랑과 책임으로 양육하며, 발달 단계에 맞는 적절하고 일관된 훈육도 제공해야 한다. 복음적인 공동체의 조언과 지원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녀양육만이 아니다. 일, 관계, 문화 등에서 복음은 적용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교회는 복음과 복음의 능력을 일상에서 경험하고 공유하는 공동체인가?   


복음은 우리 삶과 연결되어야 들린다. 복음은 유일하지만, 사람들의 실존적 상황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만큼 복음은 풍성하고 깊이 있다. 앞에서 소개한 4050세대의 사람들은 비록 교회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지만 그들의 일상을 위한 복음을 듣고 싶어 한다. 복음이 그들의 실제적 삶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궁금해 한다. 교회 배경이 없던 40대 여성 C는 차를 타고 가다 한 교회 건물에 부착된 현수막의 “해석되어야 해결됩니다”라는 짧은 문구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같은 문구를 무심하게 지나쳤던 필자에 비해서 인생의 의미에 관한 영적 의미를 더욱 진지하게 찾고 있는지 모른다. 복음이 우리의 삶을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그 메시지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4050세대의 사람들은 비록 교회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지만 그들의 일상을 위한 복음을 듣고 싶어 한다. 복음이 그들의 실제적 삶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궁금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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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선일

김선일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거쳐 풀러신학대학원(MDiv, PhD)에서 수학하고 2008년 9월부터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풀러신학대학원 재학 중에는 한인 최초의 캠퍼스 교목으로 일했으며, 한국교회의 청년 선교와 교회 성장을 위해 섬겨왔다. 저서로는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 ‘교회를 위한 전도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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