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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권리는 무엇인가
by 이춘성
2024-04-17
지난 3월 4일, 프랑스 의회는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에 담는 헌법 수정안을 의결하였다. 프랑스 국민의 85퍼센트가 이를 찬성하였고, 우파의 지도자조차도 반대하지 않았다. 낙태권을 명시한 수정 헌법의 전문은 간단하다.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률로 정한다”(프랑스 헌법 34조). 이는 낙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조건을 하위 법률로 정한다고 하지만, 이는 낙태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는 범위에서만 가능한, 명실상부한 낙태권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랑스가 낙태를 권리로 정하게 된 것은 현대인의 권리에 대한 강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 이유는 현대인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보장받고자 하는 극도의 개인주의의 지배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주의의 지배 아래에서 개인의 철저한 파멸이라는 양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서양 사람들에게는 개인의 권리는 일종의 국가와 사회의 폭력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를 보호하는 윤리적 가치로 승화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시작이 아무리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개인주의는 일종의 개인과 개인, 권리와 권리의 투쟁이 되어 버렸다. 그 중간 지대로, 대화와 타협, 보류 등과 같은 어색한 영역과 지루한 시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자신이 손해 볼 것이고, 현대인에게 손해란 자신이 부정당하는 살인(인격 살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렇듯 권리 충돌의 시대를 살고 있다. 대화보다는 권리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영역 표시의 동물적인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이다. 권리는 확대되고 있지만, 권리의 의미와 명예는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프랑스 의회의 낙태권 수정 헌법 통과를 반대한 프랑스 상원 의장인 제라르 라르셰는 프랑스의 헌법이 “사회권의 카탈로그”가 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헌법은 개인의 권리를 전시하고 항목을 선전하는 카탈로그라는 것이다. 이렇듯 권리의 전시장이 되어 버린 현대 사회 속에서 기독교는 어떤 권리를 주장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가 주장하는 권리는 과연 세상에 복음을 변증할 수 있을까? 나는 이십 대 후반에, 바다가 인접한 산골짜기의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인생을 살 것이라곤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도와 독서로 시작하는 하루와 노동이 어우러진 삶은 이상적으로 보였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 되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 주었다.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찾아왔고, 우리의 터전은 하룻밤 사이에 폐허가 되었다. 공동체 사람들은 재난을 피해 도망쳤고, 전기는 끊겼으며, 차길 위에는 어느 산에서 굴러왔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바위가 피난 길을 막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새벽 6시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 삽과 곡괭이를 들고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노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3개월이 지나서야 마당의 흙과 바위를 치우고, 집을 수리했다.그런데 어느 날 저녁, 술에 취한 오토바이를 탄 한 사람이 찾아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돈을 달라고 했다. 그는 마당에서 일을 도와준 고용된 일꾼이었다. 어이가 없었던 것은, 그가 고작 하루치 돈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40만 원도 되지 않는 사례금을 몇 달 동안 받지 못하고 밥만 먹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 소리치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당신은 이렇게 권리만 주장하느냐고 화를 냈다. 나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문득 그때의 일이 20년이 지난 지금 떠올랐다. 그때의 공기와 온도, 분위기가 모두 생각났다. 아마도 그 이유는 지난 주일, 내가 어느 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이 아직도 내 안에 메아리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 갑자기 어떤 목사님이 문자를 보내서, 자신이 코로나에 걸려 주일 설교가 어려우니 주일 1, 2부 설교를 부탁한다고 했다.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으면 나에게까지 연락했을까 하여, 거절하지 않고 수락하고 주일 설교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이 설교는 그 교회 성도들이 아닌 나에게 하는 설교입니다’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설교가 끝난 후에 설교의 내용이 아직도 내 안에 메아리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다.“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11).20년 전 그날 밤의 일이 후회된다. 나는 낮아지려고 그 산속으로 온 것인데, 그곳에서 나는 권리를 주장하면서 내가 당신의 고용자라고 소리 높여 나의 높음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모두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는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렀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내 이름을 포길 할 때만 스스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의 권리를 포기한 이름 없는 자의 정체성을 받은 자들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 이름이 없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빌려 쓰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 이름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여전히 나는 나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권리의 전쟁터에 참전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얻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권리가 그리스도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넓힐 수 있다고 확신하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난 할 말이 없다.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성육신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권리를 포기하고, 누군가의 권리 아래 폭력에 희생당할 때, 그래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보여주신 복음의 역설이다.“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8).
본회퍼에게서 배우는 ‘맹점’의 진실
by Devin Maddox
2024-04-09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년 2월 4일 - 1945년 4월 9일)에릭 메탁사스의 디트리히 본회퍼가 출간되자 일부 본회퍼 전문가들이 이 책을 비판했지만, 디트리히 본회퍼의 이름을 이보다 더 널리 알린 책이 있는지 따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 독자들은 오랫동안 본회퍼의 Discipleship, Life Togeth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을 읽었지만, 메탁사스의 이 대작은 본회퍼를 다시금 알려주는 전례 없는 영향을 끼쳤다.메탁사스의 많은 독자가 자신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본회퍼의 삶에 대한 세부적인 부분들을 알게 되고서는 놀란다.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비길 데 없는 걸작 디트리히 본회퍼가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면서 대중이 접할 수 있었던 본회퍼의 삶에는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많았지만, 메탁사스의 책이 본회퍼 학자나 역사가들이나 알 수 있던 그런 것들을 일반 독자들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메탁사스에게 큰 빚을 졌다. 본회퍼가 걸어간 삶의 여정을 읽어 알게 된 독자들은 본회퍼가 미국에 체류하던 시기, 특히 그가 뉴욕시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때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본회퍼가 할렘(Harlem)에 있는 [미국 흑인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상징이 된] 아비시니안 침례교회(Abyssinian Baptist Church)에서 예배하고 청소년 사역에 참여한 경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흥미를 느낀다. 사람들은 또 본회퍼가 프랭크 피셔(Frank Fisher)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과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눴다는 사실에 감명받는다. 프랭크 피셔는 본회퍼를 하워드 대학교(Howard University, 워싱턴 D.C.)에 데려갔었는데, 그 지역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피셔는 입장을 거부당했다(본회퍼는 그곳에서 식사하는 것을 거절했다). 사람들은 본회퍼가 미국 남부 딥 사우스(Deep South) 지역을 방문하고 흑인차별의 실상(Jim Crow)을 그의 두 눈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충격을 받는다.본회퍼의 이러한 경험은 그의 삶에서 인종차별에 분명한 확신을 갖게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그의 이해력이 아직 자라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본회퍼에게도 맹점이 있었다.예를 들어, 디트리히 본회퍼가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공부하는 동안에 그의 형 카를 프리드리히(Karl Friedrich)와 주고받은 다음 편지를 살펴보자.카를-프리드리히 본회퍼에게:남부 주에서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기차 여행에는 분리가 아주 사소한 데까지 퍼져 있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흑인들의 자동차가 대체로 다른 자동차들보다 더 깨끗해 보였습니다. 백인들이 객차 안에 붐빌 때도 흑인 전용 객차 안에는 흑인이 단 한 명만 타고 있기도 해서 나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남부 사람들이 흑인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혐오스럽기만 합니다. 이 점에서 목회자들이라고 다른 사람들보다 나을 건 없습니다. 나는 남부 흑인들의 영가가 아메리카에서 이루어진 가장 위대한 예술적 성취라고 확신합니다. 형제애, 평화 따위를 외치는 구호가 엄청나게 많은 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것들이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DWE 10권, 269)디트리히 본회퍼, 1931년 1월 2일본회퍼의 형 카를 프리드리히는 이렇게 답신했다.디트리히 본회퍼에게:네가 흑인 문제를 이렇게 철저하게 탐구할 기회를 얻었다니 기쁘다. 내가 거기에 있었을 때 나는 그것이 적어도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하버드 임명 취소 통보를 받았을 때 내가 그곳으로 완전히 이주하기를 꺼린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나 자신도 그런 유산을 물려받고 싶지 않았고, 그것을 내 장래의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 문제가 어떻게 바로잡힐 수 있는지 정말로 알 수 없고, 이게 수학에서처럼 실제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것만 같다. 어쨌든 우리의 ‘유대인 문제’는 그것에 비하면 농담에 불과하다. 여전히 이곳에서는 억압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적어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그렇지 않다. (DWE 10권, 276)카를 프리드리히 본회퍼, 1931년 1월 21일돌이켜보면 독일의 상황에서 인종차별과 싸우는 데 직접 헌신하게 될 두 사람이,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되기 불과 2년 전에는 어떻게 진실을 보는 데 맹점이 있었는지 놀랍다. 소위 유대인 문제는 사실이지 농담이 아니었다.그러나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은 농담이 아니었다. 본회퍼 형제는 자기 나라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의 심각성은 과소평가했지만, 미국의 심각한 문제는 분명하게 보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두 나라 상황 모두에서 인종 편견은 끔찍했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우리는 다른 상황에서는 맹점을 쉽게 식별해 내면서도 우리 자신의 맹점은 키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맹점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이게 바로 맹점이라는 적절한 이름이 붙은 이유이다).맹점을 극복하는 방법을 본회퍼에게서 배울 수 있는 세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1. 나에게 맹점이 있다고 가정하라.그가 감옥에서 쓴 글로 보자면 본회퍼는 평균 이상의 자기 인식 수준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중 가장 자기 인식이 강한 사람조차도 맹점을 키운다. 맹점을 극복하는 첫 단계는 이렇게 가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볼 수 없거나 보려고 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있다. 그래야 우리는 회개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2. 외부인을 초대하여 나의 맹점을 진단하라.그리스도인들은 외부 책무성(external accountability)을 원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 이것이 맹점을 극복하는 데 고통스러운 부분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에 (그리고 교리에) 맹점이 있는지 검토해 달라고 청해야 한다.3. 자기 인식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라.마지막으로, 본회퍼와 같은 삶을 이어가려면 자기 인식의 성장에 높은 가치를 두어야 한다. 자기 평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로부터 배움을 통해 우리가 자신과 이웃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함께하는 삶(Life Together)의 복을 누릴 수 있다.출처: Bonhoeffer and Blind Spots번역: 김은홍
성찬식과 우상숭배
by 박혜영
2024-04-08
고난주간 수요일 저녁에 모이는 성찬식(주의 만찬) 참석을 위해 매번 성도들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시간을 내는 일도, 가장 붐비는 퇴근 시간에 모임 시간에 맞추어 안양에 도착하는 일도, 동네를 돌고 돌면서 차 댈 데를 찾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가 수요일 저녁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만큼 성찬식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을 얻고자 하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귀한 것을 얻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살펴보니 제가 성찬식에 대한 글을 다섯 편이나 썼습니다. 여러 번 강조한 셈입니다. 20년 전 분립개척을 시작하면서 성찬식에 대한 저의 질문은 이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리가 가르치는 대로 성찬식이 은혜의 방편(方便)이라면, 신자들은 성찬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적이 있는가? 애조 띤 찬송가를 부르면서 마음이 좀 짠해지는 그런 순간 말고, 진정 믿음이 견고해지고,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용기를 얻고, 관계의 회복이 일어나고, 심지어 몸과 마음에 치유가 일어나는 그런 은혜의 경험이 있는가? 성찬식이 진정 은혜의 방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그렇다면 교회의 성도라면 질문해야 합니다. 성찬식에서 “참된 양식” “참된 음료”를 먹고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린도 교회가 하나의 반면교사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고전 11:20). 좀 더 정확한 번역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함께 모여서 먹은 것은 주의 만찬이 아니니”(ESV). 그들은 주의 만찬이라고 하여 먹었습니다. 그런데 참된 주의 만찬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원하는 신자들끼리 모여 먹고 마신 일에 불과했습니다. 성찬 신학이 빠져 있고, 성찬 신앙이 빠져 있는 주의 만찬은 그냥 음식을 먹고 마신 시간에 불과합니다.고린도 교회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점을 지적합니다. 하나는 우상숭배 문제, 곧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고전 10:21)하는 것인데, 저들은 겸하여 참여했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 내에 분쟁이 있었고, 차별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고전 11:22). 이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성찬식은 은혜의 방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찬의 말씀으로 그 첫 번째 문제,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거나,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하는 문제를 살짝 다루었습니다.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식을 자랑하며 강한 척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참고. 고전 8:1). 그러면서 이방신의 신전에서 열리는 연회나 친목 모임에 참석하여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친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 다음 교회로 모여서는 주의 잔을 마시고 주의 상에서 받아먹었습니다. ‘뭐, 어때!’ 하면서…. 오늘날 교회 신자들 가운데 다른 신전에 가서 절하고 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취직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지 않은 곳에서 월급을 받고, 합당하지 않은 곳에서 먹고 마시면서 그렇게 해야만 만나주는 거래처가 주는 돈으로 먹고산다면, 그 신자의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우상숭배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직접 규명했습니다.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나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 마음과 관심은 어느 것 하나를 중히 여기거나 경히 여기기 마련이지,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소득이 많아지면 생활 규모를 늘리고, 생활 규모를 늘리면 유지하거나 더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소득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더 바쁘게 더 많이 일해야 하고, 그러면서 신앙은 점점 경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 아니겠냐고. 우리가 그런 상승기류에 사로잡혀 있다면, 성찬식이 은혜의 방편이라는 말은 아마 경험하기 힘들 겁니다.
하나님의 창조 진리를 가려버리는 그 알약
by Peter Gurry
2024-04-04
2016년 여름, 한 과학자 그룹이 새로운 세계 지도책을 출판했다. 그 지도는 새로운 운송 경로에 관한 것도 또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심해 지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전 세계의 빛 공해 지도였다. 끔찍한 소식이었다. 그 지도에 따르면 미국인의 80퍼센트는 인공조명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은하수를 볼 수 없다. 인공조명은 여러 측면에서 축복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이상 은하수를 볼 수 없게 된 우리는 뭔가를 잃어버렸다. 그 지도를 만든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문학, 종교, 철학, 과학은 물론 모든 예술도 하나같이 밤하늘을 보면서 고민하던 인간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제 우주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볼 가능성이 없이 자란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그리스도인에게 문제는 더 심각하다. 다윗이 우주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밤하늘이었다(시 8:3-8).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곳도 하늘이었다(시 19:1). 별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보편성 때문에 오히려 특별하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별을 볼 수 있다(3절; 롬 10:18). 산이나 바다, 동물을 누구나 다 볼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빛 공해가 이런 현실을 바꾼다. 그렇다고 실수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다윗이 들었던 것과 똑같은 메시지를 보내신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우리가 과학기술로 가려버렸다. 우리의 차이를 가려버리는 소음하늘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우리도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일부이다. 그리고 하늘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도 하나님에 관해서 증언한다. 몸은 우리 자신에 대해(잠 19:13-14; 벧전 3:7), 세상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에 관해서(창 1:27; 시 8), 그리고 우리의 구속에 대해서(엡 5:31-32)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결코 성-중립적이지 않다. 그러나 전등이라는 기술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모호하게 만든 것처럼, 인간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인간의 성적 차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주요 기술은 1960년 FDA의 승인을 받은 경구 피임법이다.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경구피임약이 수많은 약 중에서 우리가 단순히 “알약”(the Pill)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약이라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기술은 여성에게 전례 없는 독립의 시대를 열었고, 따라서 출산을 연기하고 교육을 추구하며 정규직 고용을 추구하는 여성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세대의 머릿속에 있던 섹스와 출산 사이의 연관성을 단절시켰다. 경구 피임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무과실 이혼, 동성결혼, 그리고 오늘날의 트랜스젠더 운동의 초석이 놓였다. 더불어서 ‘임산부’ ‘수유’ ‘생리하는 사람’ 등의 용어에도 새로운 뉘앙스가 더해졌다. 피임약이 이를 가능하게 한 이유는 Mary Harrington이 쓴 것처럼 “남녀 간에 가장 줄일 수 없는 차이, 즉 임신 여부라는 차이를 사라지도록 약속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 교육학이며, 피임약은 여성의 출산 능력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출산을 고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관계를 하고 싶은 남성의 욕구에 더 적합한 환경을 만들었다. 이런 역사는 광범위한 피임법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가장 예상치 못한 결과의 하나인 혼외 출산의 극적인 증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George Akerlof와 Janet Yellen은 거의 삼십 년 전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다소 갑작스럽게 낙태와 피임의 증가가 목격되고 있다. 이를 생식 기술의 충격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혼외 출산의 증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낙태와 피임으로 인해 미혼모가 줄어들 거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기가 생겨도 굳이 결혼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2014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무려 40퍼센트가 결혼이라는 보호의 테두리 바깥에서 태어났다. 1960년에는 그 비율이 고작 5퍼센트에 불과했다. 과거에는 남자가 임신시킨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느꼈지만, 그런 의무감은 피임약의 보급과 함께 줄어들었다. 아니, 여자가 피임약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생식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남자가 임신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초기 많은 여성 권리 운동가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남자는 이제 섹스에 대한 책임감에서 점점 더 해방감을 느낀다. 피임이 실패하는 경우, 남자는 조용히 낙태를 설득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여자도 얼마든지 아기 아버지의 동의 없이, 심지어 알리지도 않은 채 낙태가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은 낙태에 반대한다. 따라서 우리는 피임약이 초래하는 다른 효과에도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빛 공해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피임은 성적 차이의 찬란함을 보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을 (때로는 욕망을) 흐리게 한다. 어느 때보다도 남자와 여자의 상호 교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시대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거기에 동의한다. 일에서든, 생활에서든, 교회에서든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여자의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 딸들이 어렸을 때 나도 이런 사고방식의 피해자였다. 나는 가끔 딸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고, 그런 다음 교사, 작가, 의사 등 온갖 멋진 직업을 제시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여자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곧 엄마를 제외한 모든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기를 깨끗하게 하자기술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무기력하거나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건 아니다. 하늘의 경이로움을 보고 감상할 방법이 여전히 있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의 놀라운 차이를 보고 감상할 방법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1. 주의를 기울이자피임이 남자와 여자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한 내 이야기를 듣는 그리스도인은 하나같이 놀란다. 처음에는 피임이라는 게 그토록 심오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못한다. 바로 그 사실, 피임에 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바로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는 피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가르쳐야 한다. 오랫동안 개신교인은 피임이 가톨릭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해 왔다. 순진한 착각이다. 피임약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봐도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술의 하나이다. 우리는 사실상 위험하다고 할 정도로까지 피임의 위력을 무시한다. 피임약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견해(책임감 있게 사용할지, 아니면 아예 쓰지 않을지)가 무엇이든, 이 작은 알약이 가져온 변화를 이해하지 않고서 현재의 문화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우리는 마셜 맥루한이 신기술에 대해 제기한 네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증진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술이 쓸모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기술로 인해서 우리가 찾게 된 것은 무엇인가? 그 기술이 극단적으로 사용될 때 반전되거나 뒤집히는 것은 무엇인가?피임을 포함한 모든 기술의 사용이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반영하고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젊은 여성에게 피임이 필수품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자율성과 자급자족이 그토록 높은 지위로 높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부모가 되는 것이 행복의 길이 아니라 인생의 방해가 된다는 거짓말을 받아들인 젊은이들은 얼마나 되는가? 이 모든 질문은 가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피임약 사용은 내가 가진 어떤 가치를 드러내는가? 인간의 기술이 가려버린 창조의 선함을 고려할 때, 이러한 가치는 어디에서 수정되어야 할까?2. 경외로움으로 다시 바라보자그렇다고 피임약이 임신의 기적이나 출산의 고통스러운 승리를 바꾼 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한 아기는 언제나 그래왔듯 여전히 잠재력으로 가득 찬 눈을 깜빡이며 세상에 나온다. 로맨스 또한 그 깊은 매력을 잃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는 여전히 서로에게 끌리고 또 불꽃을 튀긴다. 매우 다른 두 피조물이 만나서 만들어 내는 매력, 고통, 희극은 여전히 훌륭한 이야깃거리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부활이 필요하다면, 그건 좋은 러브스토리가 주는 마음졸임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진부해졌기 때문이다.성경은 우리에게 창조의 이러한 측면에 경탄하라고 요구한다. 잠언은 이렇게 말한다. “기이한 일이 셋,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넷이 있으니, 곧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와,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와, 바다 위로 배가 지나간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하였던 자취이다.” (잠 30:18-19).젊은 남자가 여자에게 구애하는 방식은 날아다니는 독수리나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움직임만큼이나 경이롭고 설명하기 어렵다. Lindsay Wilson은 “인생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탐험할 수 있는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라고 쓰면서 이 잠언 구절의 역동성을 포착한다. 우리는 인생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우리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기뻐해야 한다. 성적 차이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면 어떨까?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모은 목록이 환원주의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편견 때문이 아니라, 그 차이가 단순한 목록이 포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심오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성적 차이에 이렇게 접근할 때, 우리는 누군가 자신이 “잘못된 몸”으로 태어났다고 말할 때 더 나은 대답을 할 수 있다. 더 나은 이야기현대 문화는 종종 젠더에 대한 서사를 억압의 형태, 버려야 할 부담, 기술(피임 기술은 물론이고 호르몬, 성전환 수술 등)로 극복해야 할 자연의 장애로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훨씬 더 나은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사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게 하셨다는 이야기이다. 결혼이 무엇인가? 서로 대조되는 두 사람의 결합을 통해서 우주의 중심에 있는 구원의 진리를 반영하는 이야기이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고유한 축복과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현대 기술이 우리의 비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그림은 여전히 우리가 보고, 기뻐하고, 또 선포할 수 있도록 남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출처: How the Pill Obscures God’s Truth in Creation
비극의 소비자가 되지 말라
by Caroline Stoltzfus
2024-04-02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쟁, 무차별 총격 사건,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난 연예인, 정치극, 그리고 재판받는 첨단 기술 관련 억만장자들 등등. 오늘날 사회에는 끊임없이 뉴스가 쏟아지고, 그 모든 뉴스를 챙겨봐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보를 얻는다는 건 사회와 연결되었음을 확인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 및 역량을 강조하는 현대 문화의 미덕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물론 탄탄한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한 역사적이고 시사적 사건을 이해하는 건 가치가 있다. 창작자가 정직하게 이야기를 전할 때 정의가 구현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를 대변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뉴스를 통해서 각 세대가 이웃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재능과 자원을 사용하도록 영감을 받는다. 개인과 공동체로서 서로 배우고, 연결하고, 또 성장하는 데에 뉴스는 도움을 준다. 하지만 나쁜 뉴스에 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둠스크롤링(doomscrolling: 뉴스 스크롤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 더불어 쉬지 않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또 속보가 뜰 때마다 오는 알림을 강박적으로 클릭하는 게 과연 그리스도의 왕국을 잘 섬기는 데에 도움이 될까? 우리는 정말로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을 쏟는 걸까? 아니면 비극이 우리의 오락이 되었기 때문일까?참여냐 도피냐?솔직하게 말해서, 쉬지 않고 새로운 소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게 나와 이웃의 고통을 피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비난하는 게 바로 앞 모퉁이에 있는 노숙자를 돕는 거보다 훨씬 쉽다. 리얼 범죄 팟캐스트에 몇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가상 작업의 단조로움에 일시적인 만족감을 주는 아드레날린 해독제이다. 가족과 함께 가치 있는 대화를 나누는 대신 인스타그램 릴(Reel)이 제공하는 정치 드라마의 토끼 굴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마치 내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내 정신 건강과 내 공동체에 초래하는 피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정보 소비 행태는 주로 혼자 이뤄진다. 둠스크롤링은 굳이 육체를 갖춘 인간과 구원의 관계를 맺는 복잡하고 헌신적인 작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애초에 그리스도로 인해서 벗어나게 된 과거의 절망에 다시 빠지고,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그 절망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시청에서 행동으로무력하게 멀리서 지켜보는 대신, 이사야 58:10-11에 귀를 기울이자. 하나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라고 하신다.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우리가 부름 받은 건 단지 배고픈 사람들을 돕자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포스팅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바램을 보며 답답하다며 고개를 흔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을 쏟아부음으로 궁핍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름받았다. 타인의 불행을 보다 보면 종종 두려움과 우울함이 생기지만,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때 주님은 모든 우울함을 밝게 하시고, 계속해서 인도하시며, 나아가서 우리의 소망까지 만족시켜 주신다. 우리가 만족을 찾아야 할 행동은 스크롤링이 아니라 진짜 봉사이다. 하나님이 끊임없는 주시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흐름 이상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이야기로 초대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타인의 필요에 부응할 때 우리에게 정신적이고 영적인 복지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사야서의 이 구절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육체적 필요를 채우며 고통과 싸울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감정적, 영적 어려움을 만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주시고 우리가 기쁨의 증언을 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는 결코 뉴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취약계층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비극은 결코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극은 단지 인간의 죄가 모든 개인과 사회에게 어떤 끔찍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지 주변 고통에 대한 정보를 알라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그 고통 속으로 발을 디디라고 부르신다. 성령의 열매를 고려하라어떻게 해야 주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돕는 방식으로 정보를 접할 수 있을까? 일단 뉴스 소비가 우리 삶에 어떤 열매를 맺는지 생각해야 한다. 게시물을 스크롤하고, 기사를 읽고, 또 팟캐스트를 들을 때 당신 속에 일어나는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라. 거기에 성령의 열매라는 특징이 있는가(갈 5:22-26)?• 이웃 사랑• 상황을 뛰어넘는 기쁨• 당신의 삶과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여부에 달린 평화• 학습 과정에서 필요한 인내심• 행동에서 드러나는 친절• 의롭고 겸손한 마음에서 나오는 선함• 봉사하는 데서 드러나는 신실함• 마음과 몸의 한계를 향한 너그러움•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에 대한 자제력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도리어 두려움, 불안, 죄로 특징지어진 반응이 주로 나타난다면, 당신의 뉴스 소비 습관은 재고되어야 한다. 보니 크리스티안은 Untrustworthy에서 단지 정보를 얻는 것보다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공부하는 자세를 갖는다는 건 지식을 추구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추구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이 모든 걸 다 잘 알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굳이 모든 헤드라인을 다 읽으려고 하지 말고, 적은 수의 기사를 깊이 신중하게 읽으라는 충고이다. TV 뉴스, 앱 알림, 일일 뉴스 요약 이메일의 단식부터 시작하라. 적어도 몇 주 동안 소음을 제거하고 이런 변화가 당신의 관계, 기분 및 불안 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라. 그리고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으라. 일기를 쓰고, 기도하고, 또 이런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며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나눠 보라. 혹시라도 더 개선하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라. 이 모든 과정에서 주님께서 당신의 기도와 돕는 손길과 재정을 어떻게 바치라고 요구하시는지를 고민하라. 그런 다음에 뉴스 피드를 새롭게 구성하라. 당신은 이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새롭게 정보를 소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주제에 대한 온갖 정보를 다 얻는 게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오늘 터지는 뉴스와 관계없이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영원한 구원 스토리의 일부가 되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사역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다. 원제: Tragedy Isn’t for Consumption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파괴되기 전에, 다시 세워야 한다
by 전재훈
2024-04-01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보게 되는 표지판이 ‘아시안 하이웨이’다.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는 아시안 하이웨이 1번 도로이며 6번 도로의 경우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릉-원산-청진으로 북상해 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모스크바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지만 북으로는 철책이 놓여 있어 일본처럼 섬이나 다름없는 형국이다. 자연스레 이 땅의 젊은이들은 세계관이 다른 나라에 견주어 좁은 편이다. 하지만 이 하이웨이가 개통되고 오토바이 타고 유럽을 갈 수 있게 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젊은 친구들이 꿀 수 있는 꿈의 크기가 달라지고 세계관의 스케일이 달라진다. 미국은 50년 동안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달에 깃발 꽂고 사진 한 장 찍은 것이 전부였다. 이것마저도 사기라며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개의치 않고 달 탐사에서 한 발 더 나가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달 탐사 프로젝트가 가져온 결과는 비단 사진 한 장만이 아니다. 달에 가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무수히 많은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고, 그 혜택을 우리가 누리며 살고 있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혔고, 이는 다양한 문화적 확장을 이뤄냈다. 스타워즈의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인식의 한계를 지닌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듣고, 보고, 느끼는 세계는 매우 좁다. 너무 크거나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너무 멀리 있거나 혹은 매우 가까이 있는 것들은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의 귀는 20~2만 헤르츠 사이의 주파수대에서 소리를 듣고, 우리의 시야는 120도를 넘지 못한다. 0.03초 이내의 순간은 전혀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우리의 한계 속에서 규정된 세계였다. 하지만 과학의 도움을 받으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는 매우 넓어진다. 광학 현미경으로 나노 크기의 원자를 보고, 천체 망원경과 우주탐사선으로 도움으로 화성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은 소리는 키워서, 큰 소리는 줄여서 들을 수 있는 기계들도 많다. 야간에는 적외선 탐지기로 어둠 속을 보고, 엑스레이나 MRI로 몸속을 볼 수도 있다. 배 속에 있는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손가락을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분명 더 확장된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 SNS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앞집 아저씨의 근황은 몰라도, 인도에서 선교하는 친구의 근황은 잘 안다.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무한대로 넓어졌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선물도 받았다. 페이스북의 친구들을 파도타기 하면 불과 다섯 번 만에 전 세계인을 다 만날 수 있는 시대다. 번역기는 언어의 한계를, 구글은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준다. 지금까지의 과학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앞으로 수년 내에 펼쳐질 미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지금 상용화를 앞둔 다양한 기술들은 불과 1, 2년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술들이다. 과학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는 삶의 편의성만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다. 분명 사고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고, 세계관의 변화를 이끌게 되며, 가치관의 혼돈도 생겨날 것이다. 과학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는 신학과 철학이 인간의 생각을 주도해 왔지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철학적 사고보다 과학적 사고가 더 환영받는다. 어떤 신이 참 신인가에 대한 논쟁은 신이 있기는 한 것인가의 논쟁으로 바뀌었고, 진부한 싸움은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게 했다. 이제 더 이상 신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생각들은 다시 한번 변화의 기회를 맞고 있다. 화성탐사프로젝트로 빅뱅이론이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원자 단위로 물체를 분리 추출하는 기술은 물체 에너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를 정리하고 데이터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선도하는 기술은 이미 가동 중이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자동차는 양산을 앞두고 있다. 3D 프린터는 가정용으로 만들어 판매되고 있다. 화상캠을 통하여 집에서 교회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며, 미국 출장 가서 한국 집에 있는 보일러를 조작할 수 있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대화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공간과 시간 안에 갇혀 있던 우리의 생각들은 무한의 세계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4차원’이라는 말이 더 이상 바보를 뜻하는 말이 아닌 진보적이며 창조적인 의미로 바뀌고 있다. ‘절대적인 진리’라는 말은 더 이상 설 곳을 잃어가고, 엉뚱한 상상은 인류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가고 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말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쇄술의 발달로 종교의 울타리가 무너졌듯, 다가올 미래는 신학의 파괴를 부채질할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종교적 마인드로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설득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전에 재림이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믿음이라는 명목으로 묶어 두었던 종교적 세계관, 가치관, 인간관, 신관을 모두 재정립해야 한다.
성 주간을 위한 묵상과 기도
by Scotty Smith
2024-03-25
월: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 요한복음 12:27-32 화: 예수께서 우시었다 - 누가복음 19:41-42수: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 마태복음 22:41-42목: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 요한복음 13:1, 34-35금: 다 이루었다 - 누가복음 23:34, 마태복음 27:46, 요한복음 19:30토: 사흘째 되는 날까지는 - 마태복음 27:62-64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 베드로전서 1:3-6
고마워 빈센트, 너의 삶은 찬란했어.
by 필립 정
2024-03-18
대학 시절 젊은 작가 한 분과 티 타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느라 어둑해지는 것을 모를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 그런데 끝 무렵에 그가 한 말이 내 마음에 덜컥 얹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체기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한국의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작가가 되기 힘들 거예요.” 다음 말이 궁금해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내세 지향적이면 삶의 고통이 다 하나님 뜻이라고 믿잖아요. 분노도, 슬픔도, 괴로움도 다 삭여 은혜로 치환해 버리지 않나요? 그래서 점차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는 상상력의 부재가 생겨요. 그럼 어려워져요. 글쓰기가…”이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글쓰기에 치여 사는 목회자가 되었다. 일주일 내내 설교, 성경 공부 원고를 쓰느라 정신없이 살아야 했다. 그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어 내가 글쓰기라는 불치병을 앓는 환자 같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 봤다. 이런 상상력의 빈곤과 부재에서 오는 펜 끝의 머뭇거림을 벗어나려고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그러다 우연히 난 한 화가의 그림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져 그를 상상하기 시작했다.빈센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그림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달리는 기차의 경적 소리, 뭉개 구름의 꿈틀거림, 노란 밀밭의 거친 바람 소리, 새벽녘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빈센트에게 가자고 속삭인다. 그런 그가 그립고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어 두 권의 책을 사고 말았다. Van Gogh The Life (Steven Naifeh, Gregory White Smith)와 The Complete Paintings Van Gogh (Taschen)이다. 냉정과 분노 그리고 열정빈센트의 이야기는 그와 그의 어머니와의 해소되지 못한 관계에서 시작된다. 빈센트는 훗날 그의 어머니를 냉정한 여자라고 단정하였다. 빈센트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던 그녀의 차가움은 어디서 왔을까. 빈센트의 어머니 안나는 유럽의 잔인한 종교 전쟁들, 각지로 퍼진 혁명과 각종 전염병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은 가족의 생존자였다. 게다가 친언니의 간질 병력과 빈센트 사촌들의 정신 병력도 목격하였다. 이 불행은 곧 자기 자녀들에게도 나타났다. 첫아들을 바로 잃고 그 후로 낳은 6형제 중 빈센트를 포함해 4명이 정신질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는 평생 불행이 닥칠 것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처럼 살았다.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안나가 빈센트를 위해 한 최선은 종교적 통제였다. 빈센트가 목사관 (빈센트의 아버지는 개혁 교회의 목사였다) 밖에 나가서 가난하고 거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였고 사소한 일 하나에도 규칙을 정하여 의무화하였다. 그 규칙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자책과 회개의 기도를 하게 하여 용서를 받게 하였다. 이유 없이 평탄한 삶이 불편했는지 자주 빈센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삶이 아무 일 없이 잘되는 것은 신의 가호가 아니야. 그래서 이를 드러내어 기뻐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지나친 염려와 통제로 애정이 결핍된 빈센트에게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자유도 허락되지 않자, 그는 자기감정을 격렬한 분노로 태워버리는 아이가 되어갔다. 어머니 안나의 차가움과 아들의 뜨거운 분노는 서로 섞이지 못한 채 원색의 강렬함으로 남겨지고 말았다.빈센트를 교양 있는 지성인으로 키우고 싶어 하던 안나는 일곱 살의 어린 그를 가톨릭 기숙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예상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집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아이들의 귀를 막아 버리거나 소리를 지르다 퇴학을 당해 버렸다. 빈센트가 열한 살이 되자 빈센트의 부모는 그를 다시 한 개혁 교회의 기숙학교로 보냈다. 이때 빈센트는 자기의 심정을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고 밤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리스도 같았다고 표현하였다. 역시 심하게 담당 교사에게 저항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빈센트의 호기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이 있었다. 그는 자연이 드러내는 색채에 매료되어 버렸다. 그의 그림에 꽃과 풍경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관심 또한 어머니 안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안나는 목사관의 정원에 각종 꽃을 심어 가꾸었고 그 꽃으로 집안을 꾸미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빈센트는 안나에게 배운 정원 가꾸기, 꽃꽂이와 수공예, 실내 장식에 열정을 보였다. 좀처럼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목사관을 벗어나 들로 나가 온갖 풀과 벌레를 관찰하고 기록하여 전문가적 경지에 이르렀다. 주위에서는 빈센트가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가 될 거라고 할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훗날 그가 그림의 모티프를 얻기 위해 계속 따듯한 남부 프랑스를 옮겨 다닌 것도 역시 자연에서 강렬한 빛과 찬란한 색을 찾기 위해서였다. 빈센트는 자연을 보면 행복과 창의력이 샘솟아 먹는 것도 잊는다고 할 정도였다.빈센트는 훗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란색과 푸른색, 붉은색과 초록색의 대비를 통해서 무시무시한 인간의 감정과 정열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거절당하고 돌아올 때마다 느껴지던 안나의 차가운 눈빛, 애정이 결핍된 아이 빈센트의 빈 마음을 따듯하게 채워주던 자연의 빛과 색채들은 훗날 들이 되고 꽃이 되어 작품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었다. 결핍을 채워준 지성과 신앙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그의 열정은 사실 지나친 집착에 가까운 병적인 것이었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좌절과 희망의 끝을 잡고 살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의 열정은 쓰레기처럼 버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온전치 못한 정신을 달래며 10년 동안 900여 점의 작품과 1,000여 점의 스케치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의 지성 때문이었다.그는 독서와 글 쓰기에도 광적인 열정을 보였다. 그가 글을 몰랐을 때부터 빈센트의 어머니는 그를 책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이 시절 그의 어머니가 자주 읽히고 외우게 했던 안데르센의 동화 ’‘The Story of Mother’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책의 내용은 이렇다. 한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죽음으로 잃는다. 그 어머니는 죽음이 데리고 간 아이를 찾으러 먼 길을 떠난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고 두 눈을 빼 주고 검은 머리까지 백발로 바꾸는 희생으로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를 데리고 간 죽음의 신 앞에 선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살려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곧 그녀는 아이 살리기를 포기하고 그 아이의 죽음을 택하고 만다. 죽음의 신이 보여준 아이의 미래가 너무나 비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빈센트를 향한 어머니 안나의 불안한 애착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책으로 어머니는 자기 마음을 보여주고 빈센트 역시 그 텍스트를 이해하여 글과 그림으로 해소해 내는 지적인 작업을 할 소양이 있는 아이로 자라났다.빈센트의 글쓰기를 보면 그의 독서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자기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668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글들은 매우 간결하고 자기만의 창의적 문체로 쓰였다. 이 편지들은 대체로 두세 문장을 넘어서지 않는다. 길게 늘어놔야 할 내용을 새로이 단어를 조합하여 더 이상 가감이 필요 없게 글을 써냈다. 자기 그림에 대한 설명도 간단하다. 자신의 상상력들이 어떻게 색으로 입혀져 붓의 터치로 발현되었는지 시처럼 보여준다. 빠르고 두터운 그의 붓질처럼 그의 편지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것 같다. 이런 그의 글이 담긴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가 한글로 번역되었다고 하니 읽기를 권하고 싶다.그가 지성인이었다는 근거는 분명하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작가가 150여명이나 되고 언급한 책도 300권 정도 된다. 책에서 인용한 문학적 표현은 800여개나 된다. 그는 고전에서 당대의 작가들까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어 나갔다. 러시아, 유럽, 미국 문학가들의 시와 소설 뿐 아니라 철학과 역사 서적도 탐독하였다 . 따라서 시대의 흐름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에밀 졸라, 볼테르, 빅토르 위고, 모파상, 찰스 디킨즈 등의 근대 문학을 통해 절대적 신 중심의 시대가 끝나고 계몽 시대 조차도 저물어 세속화로 가는 역사적 흐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인상파 화가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흐름도 이론적으로 잘 꿰뚫고 있었다. 당시 자연을 그대로 그리거나 자연이 주는 인상만을 표현하던 기교적인 화가들 너머 화폭에 자기의 감정과 정신을 담아 내려 한 것도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현대적 지성 때문이었다. 그의 단순하고 강렬한 색감과 거친 붓질, 그리고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색과 선을 단순화 시킨 것을 보면 이미 야수파, 입체파 화가들의 설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는 현대 화가들의 선배 화가임이 분명하다.그런데 이런 빈센트의 지성보다 더 압도적으로 그를 지배한 것이 있었다. 신앙이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세월을 앞서 갔지만 신앙만큼은 오히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왜 그랬는지 그가 탐독했던 책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가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성경이었다. 특히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노래’ 속 예수의 삶을 심히 동경하여 따라 살려고 노력하였다. 또 르낭의 예수전,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존 번연의 천로역정 같이 지난하고 원시적인 제자도에 관한 책들을 읽어 나갔다. 결국 주를 향한 지나친 헌신이 그를 사로잡아 그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의 눈에 산업혁명 이후 비참하게 살아가는 런던의 도시 근로자들, 시커먼 탄광의 광부들, 가난한 농부들이 어른거려 사치스런 그림 거래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급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의 이런 점을 단지 무모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가 자연에 자기 마음을 불어 넣어 화폭에 담은 상상력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는 역시 약자들의 고통을 자기의 마음에 그려 넣을 줄 아는 공감의 신앙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캔버스에 그려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연민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그의 신앙은 그의 결핍을 채우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밀어주었다.슬픔과 기쁨의 싸움빈센트는 17세 이후 파리와 런던에서 꽤나 잘 나가는 그림 거래 상으로 지냈다. 미술사와 비평에 해박하여 매우 인기있는 상인이었다. 그런 그가 직장에서 쫓겨난 이유는 갑자기 생긴 목회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때부터 간질과 발작, 분노 그 뒤에 찾아오는 참담한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갔다. 빈센트의 미친 듯한 열정은 목회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목회자가 되기에 필요한 라틴어, 그리스어 학습 과정을 견디지 못하여 정식 목회자가 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냥 바로 할 수 있는 벨기에의 탄광 지역에 무급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소원한 대로 헌신적인 목회를 하였다. 자기의 사택을 탄광 근로자들에게 내주고 먹을 것조차 나누어 최소한의 식량으로 살았다. 잠을 줄여가며 그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부족한 수면과 영양 탓에 그의 정신은 더 나빠져 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를 파견했던 선교 단체의 감독관은 빈센트를 보고 도저히 선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품위가 훼손되었다고 보고 그를 그만두게 하였다. 그래도 목회자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빈센트는 몇 번의 시도를 더 해 보지만 온전치 못한 정신을 가진 그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렇게 원하던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난 후 빈센트가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 그리기밖에 없었다.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재능도 있었기 때문에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화가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을 하며 인정받지 못하고 팔리지 않는 그림을 계속 그려가며 동생에 대한 채무감만 쌓이는 긴 세월을 견디기 힘들어하였다. 이 시절에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우울, 고뇌, 무력감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써 그의 심정이 어떤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독서와 목회에 미친 듯한 열정을 보였던 것처럼, 빈센트는 그림에도 온 힘을 다하였다. 정신이 온전할 때 힘을 내어 집중하여 빠르게 그림을 그려 내었다. 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사랑, 확신, 힘, 격렬함, 열정 같은 단어들을 써서 우울감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단호하게 표현 하였다. 이 좌절과 희망, 슬픔과 기쁨의 교차를 빈센트는 격렬한 고뇌, 적극적 우울 같은 상반된 단어들을 조합하여 창의적으로 표현하였다. 마치 파랑과 노랑을 대비시킨 그의 그림같이 슬픔과 기쁨의 양가 감정이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그는 지독한 우울감을 몰아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마치 희망이라는 무기로 좌절을 무찌르는 전사 같았다. 빈센트의 삶의 모토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였다. 그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찾아오는 근심 속에서 의도적으로 기쁘게 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런 반복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에 몰두하였다. 화가 생활 10년간 이틀에 한 점씩 그렸으니, 그가 얼마나 쉼 없이 전쟁하듯이 그림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어두운 색을 쓰는데 찬란하게 빛나고, 그 붓질이 거친데 힘찰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찬란한 패배자이 글을 쓰다 오래전 본 영화 Loving Vincent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랐다. “살아봐, 삶은 어떤 강한 사람도 무너뜨려 버려.” 또 가수 Don Mclean의 노래 ‘Vincent’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이제 난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제정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최근에 한 종합 격투기 선수의 은퇴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그가 이미 패배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 궁금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선수는 종 칠 때까지 몰매를 피할 길이 없다. 그래도 ‘그래, 맘껏 더 때려봐’ 하며 더 투지를 불살라야 비참해지지 않는다. 신앙인은 삶의 고통을 피해 패배에 자신을 쉽게 내어주는 선수가 아니라 맞을수록 삶의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폭력을 쓸 수 없으니 남은 무기는 신앙, 지성, 의지, 열정, 말, 눈빛 같은 맷집밖에 없다. 내가 본 그 격투기 선수는 사실 두 번이나 챔피언에 도전하여 무참하게 꼬꾸라졌다. 심지어 팔이 빠진 상태로 싸우기까지 하였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도 비참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를 감히 누구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했다. 찬란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그의 말년에 더 이상 정신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생 레미 정신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 시절에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끝까지 얼마나 잘 싸웠는지 보여준다. 빈센트는 정신 병원에 갇혀 지내는 동안 밤이면 찾아오는 죽음의 충동을 견디고 눌러 새벽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다. 그러다 슬픔이 걷히고 기쁨이 찾아올 때쯤 병원의 창문 너머 비치는 새벽녘의 그 빛나는 별들을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밤의 좌절과 새벽의 희망의 골은 너무나 깊어 그를 지치게 하여 헤어 나올 수 없게 하였을 것이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빈센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을 스스로 마감하였다. 별까지 걸어가고 싶어 했던 그의 소망대로 말이다.이제 글쓰기에 지친 나를 불러낸 빈센트에게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당신을 큰 실패자라고 부르지. 평생 거절당하고 목회자로도 실패하고 그림 한 점 제대로 팔지 못하고(평생 그림 한 점 판매했다) 끝내 그렇게 갔으니. 그런데 빈센트 그대는 원하던 대로 살았어. 근심하는 자였지만 기쁨으로 이겨내려 하였고 가난한 자였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였고 아무것도 없는 자였으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고 떠났으니 말이야. 그대는 그렇게 살기 위해 다른 것을 다 포기했지. 하나님이 그렇게 살게 다 빼앗아 버리셨다고는 하지 않을게. 그리 살면 얼마나 할 얘기도 많고 그릴 것도 많겠어. 나같이 메마른 사람들은 누구나 그대처럼 살아 보기를 꿈꿀 거야. 정말 고마워 빈센트, 어떻게 살아야 어떤 글이 써지는지 알려줘서. 그러고 보니 그대는 참 찬란하게 살았네.
무엇을 할 것인가
by 양혜원
2024-03-11
항암치료 중이신 어머니가 입맛이 뚝 떨어지시고 그나마 찾으시는 게 햄버거이다. 남들은 몸에 안 좋다고 뭐라 하지만, 아무것도 못 드시는 거보다는 낫지 싶어서 그날 저녁도 퇴근길에 버거 사냥을 나섰다. 어머니가 잘 드시는 브랜드의 가게는 너무 멀리 있어서 어디서 사가나 고민하는데 예전에 버스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들렀던 버거 가게가 생각났다. 큰 기대 없이 시켜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 버거집으로 갔다.하지만 때는 이미 저녁 7시를 넘었고, 학교 건물 안에 있는 식당이라 벌써 파장 분위기였다. 그래도 주방 안쪽에 사람이 있어서, 아직 영업하시냐고 물었더니, 연세가 좀 있어 보이시는 아주머니가 지금 마지막 버거가 딱 두 개가 남았다고 하신다. 사이드로 감자튀김이랑 치킨 너겟은 튀겨줄 수 있다고 해서 간병하시는 아버지 생각해서 함께 주문하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주방의 아주머니는 그 버거집의 주인이셨는데, 몸의 움직임이나 얼굴로 보아서는 연세가 좀 있어 보이셨지만, 머리카락이 검어서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손님은 나 혼자라 너무 조용한 게 오히려 어색해서 소소하게 말을 주고받다가,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었더니, ‘58년 개띠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만으로 올해 예순여섯이 되신다는 이야기다. 색은 까만데 두피가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숱이 적고 가는 머리카락이 그 나이를 말해주는 듯했다. 지난번에 여기 우연히 와서 먹었는데 버거가 맛있어서 또 왔다고 했더니, 자신이 미국에서 햄버거 가게를 오래 했었다 하신다. 미국에서 38년을 살았다는데, 그곳에서 자리를 잘 잡으신 분이 어쩌다가 늦은 나이에 다시 한국에 와서 버거 가게를 시작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탈북자 선교하러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으셨던지, 나더러 교회 다니냐고 물어보셨다. 다닌다고 하자 그때부터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부름으로 한국에 다시 나와서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길게 풀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의 눈길은 정수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분의 검은 머리에 머물렀다. 흰머리 한 가닥 보이지 않게 새까맣게 물들인 그 머리는 마치 ‘뒤로 물러나 숨기’[隱退]를 거부하는 강한 의지처럼 읽혔다. 내일도 햄버거 백 개를 주문받았다며, 감자와 치킨 너겟을 튀기는 틈틈이 재료 준비를 하는 손이 분주했다. 어쩌면 그는 한국으로 다시 나올 때, 텐트메이커로서 제2의 인생을 산다는 생각에 제법 들떴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생들의 선생이라고 불리는 파커 팔머는 곧 벼랑을 넘어갈 인생의 끄트머리(brink)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면서, 죽음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 일을 어떻게 맞이할지에 대해서는 선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지만, 해 뜸과 해 짐 사이를 어떻게 걸어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묻는다. 해가 진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갈 것인가, 거기에 저항하며 갈 것인가, 아니면 협력하며 갈 것인가.여기에서 선택이라는 말이 애매하게 마음에 머문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근대 이래로 우리 문화가 선택은 마치 운명이나 주어진 상황을 거스르는 일에만 적용되는 것처럼 말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선택은 치고 나가는 능동성만큼이나 받아들이는 수용성도 필요로 한다. 버거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근 40년을 살던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며 선교사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치고 나가는 능동성이었지만, 한국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며 선교사 생활을 하는 데에 따라오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상황은 수용하면서 갈 수밖에 없다. 머리는 까맣게 물들여도, 약해지는 관절과 체력은 수용하면서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용감한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해가 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기대 수명이 길어지면서 인생 2막이 아닌 3막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지도 제법 되었다. 심지어 배우자도 두 번은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미덕일 수 있었던 것도 다 수명이 짧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불평이 반복될 때는, 엄마도 진작에 한 번 갈아타실 걸 그랬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웃자고 하는 소리였지만, 완전 흰소리는 아니었다. 나의 박사 과정 지도 교수는 40대에 이혼을 하고 홀로 십대 입양아를 키우며 종교여성학 과정을 신설했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종교여성학자들과 네트워크를 다지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러다가 일흔이 다 되어갈 무렵 열 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이 결혼은 여지껏 싱글인 제자들에게 부러움과 함께 ‘나도 어쩌면’ 하는 희망도 품게 한 결혼이었다.) 결혼 얼마 후 지도 교수는 은퇴하고 남편과 같이 아프리카 지역 엔지오 활동을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블로그도 시작했다. 학술적인 글만 쓰다가 처음으로 대중 독자를 위해서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거스르며 살아온 것 같은 지도 교수도, 아프리카에서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죽다 살았고, 열 살 어린 남편은 원인 모르는 장 질환으로 영양 섭취가 안 되어 한동안 고생을 했다. 능동적인 선택 뒤에 따라오는 불가피한 상황들이다. 2년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일흔 후반에 들어선 시점에서 바라보는 인생은 많이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눈빛은 마치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는 길의 또 다른 차원으로 들어선 것 같아 다소 낯설게 다가왔다. 너무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것 같다는 내게 딱 좋은 나이에 시작했다고 말씀해 주신 분이었다. 그때 나는 마흔 초반에 집을 박차고 나가 박사 공부를 시작했다는 서사에 제법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딱 1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박사 학위 하나로 팔자를 고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대학 사회의 온갖 모순 속에서 뼈저리게 느끼며 살고 있다. 능동적 선택 뒤에 따라오는 또 하나의 불가피한 상황들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 차이는 사십 대의 계단에서 바라보는 해지는 풍경과 오십 대의 계단에서 바라보는 해지는 풍경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좀 식상하지만 산의 비유를 쓴다면, 산 밑, 산 중턱, 산 정상의 풍경이 다르듯이 그 풍경이 사뭇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지는 해를 향해 가는 이 길에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애초에 이 여정을 시작하게 한 동기이다. 팔머는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혼란스러운 것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나도 비슷하다. 이건 도대체 왜 이런 거야, 하는 의문이 나를 글로 이끌었다. 흔히들 자신이 아는 것을 글로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글을 쓰면서 알아간다. 어떤 때는 내가 뭐가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것은 이것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던 나의 글은 학부 졸업 논문이었는데, 이 글도 이해하기 어려운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그때 나의 의문은 왜 현실은 이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하는 것이었다. 그 논문으로 졸업생 우수 논문상을 받았는데, 이 질문은 그 이후로도 몇 년간 내 글쓰기의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여성학 석사 과정에 지원할 때 나의 의문은, 왜 나는 똑같은 나인데 평신도일 때랑 사역자 부인일 때랑 교회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다른가였다. 이 주제로 쓴 나의 연구 계획서로 석사 과정에 합격했고, 이 질문은 훗날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사 과정에 진학할 때 나의 의문은 여성에 대한 차별은 문화적 문제인가 종교적 문제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여성주의 의식을 가지고도 보수적 신앙관을 수용한 여성 작가들을 연구하고 그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연구교수 생활을 거쳐 특임교수 타이틀을 달고 영문 학술지 편집 일을 하는 지금도 나는 궁금한 것들이 많다. 왜 여성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공격성은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사회가 여성을 억압한다고만 할까? 왜 한국의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한때 여성주의에 그렇게 열광했을까? 이런 궁금증들을 풀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쓴다. 하나의 궁금증을 풀다 보면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기고, 세상은 이해 못 할 일을 쉼 없이 던져주기에, 연구 논문도 쓰고, 이렇게 짧은 에세이도 쓰고, 책도 쓴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의 자세를 더 잘 갖추기 위해서 더 열심히 듣고 관찰하려 한다. 내가 선택한 것도 그 선택이 나를 데려간 곳도 모두 이런 관찰을 통해 글이 된다. 이런 선택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을 기독교 전통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소명일 것이다. 근대 이후의 사회가 선택을 마치 운명이나 주어진 상황을 거스르는 일에만 해당하는 것 같은 착각을 심어주었다면, 소명을 마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꾹 참고 위에서 부르는 대로 질질 끌려가는 일처럼 생각하게 만든 것은 교회의 실수다. 소명도 선택과 마찬가지로 치고 나가는 능동성과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있다. 그리고 사실 선택이라고 하는 것도, 어디까지가 내 선택이었는지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소명 또한 어디까지가 주어진 것인지 선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다만, 삶이 던져주는 것들에 응답하며 가다 보니 그 길에 나와 함께 자라나는 무엇이 생겼다면, 그런 게 소명 아닐까. 그리고 그 자라난 무엇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내 옷같이 느껴진다면 그 옷을 입고 지는 해를 향해서 가도 좋을 것이다.
능력 있는 기도의 비밀
by David Mitchell
2024-03-07
마태복음 6:5-15에서 기도를 가르치신 예수님은 모든 기도가 똑같지 않다고 경고하셨다.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전에 세상 사람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먼저 주의를 주었고, 그렇게 함으로 기도의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여주셨다. 위선자의 기도첫째, 예수님은 위선자, 즉 기도 쇼를 하는 자들을 겨냥하셨다. 기도를 위한 오후 번제 시간(오후 3시경)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 공동체 사람들이 다른 신도들과 함께 번잡한 거리로 나가거나 회당에 나갈 때이다. 따라서 그 시간에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당신이 참으로 얼마나 경건한지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정말 좋은 방법이다! 모든 사람이 당신의 열심을 볼 수 있도록 한쪽 눈을 뜨고 큰 소리로 기도하라. 예수님은 5절에서 “그들이 자기 상을 온전히 받았느니라”고 경고한다. 결국 이런 기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어쨌든지 당신이 정말로 원했던 것, 즉 당신과 비슷한 수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뿐이다. 예수님의 해결책은 사람의 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향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기도이다. 능력 있는 기도의 첫 번째 비결은 기도를 은밀하게 하는 것이다. 강력한 기도는 다른 어떤 사람도 끼어들지 않고, 오로지 당신과 하늘 아버지 사이에서만 소통이 일어날 때 가능하다. 이방인의 기도둘째, 예수님은 비유대인의 기도를 겨냥하신다. 그들의 기도 방식은 신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많은 말을 쏟아붓는 특징이 있다. 이는 존경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결국, 때때로 기도하는 내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면 신을 경건하게 불러야 한다. 예를 들면, 앤서니 알바니스(Anthony Albanese), MP, 호주 총리시여…. 이런 식으로 말이다. 누구나 내가 하는 기도가 다른 사람 기도 이상으로 능력 있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런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왜? 왜냐하면 그런 식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단지 기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이 기도하는 하나님에 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요점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으로 돌아간다. 8절에서 예수님은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실제로 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강력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동시에 아버지께도 나아간다. 나는 알바니스 총리의 아들이 그를 “총리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에서 그런 호칭이 나올 리가 없다. 이제 당신은 왜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시라면 그런 식으로 장황하게 호칭하는 게 부적절한지 알 것이다. 인간도 아첨과 헛된 말을 간파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얼마나 더 잘 아시겠는가? 필요한 것을 기도로 요청하는 제자들이 하나님에게 아부부터 할 이유가 없다. 당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면,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를 아시며 당신의 아버지이시다. 능력 있는 기도의 원천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위선자들처럼 기도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이방인처럼 기도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친절하시고, 관대하시며, 강력하시고 정의로우시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듣고 있다. 그분은 이미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 능력 있는 기도의 비결은 우리 아버지를 바로 알고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교도들과 위선자들이 저지른 진짜 실수는 기도의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누구에게서 나오는지를 몰랐다. 이교도들은 기도의 힘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에게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기도가 필요했던 이유는 마법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주문을 외우다 보면, 어쩌다가 딱 맞는 단어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아니면 자신들이 얼마나 존경심 있고 진지한지를 보여줌으로 그들이 섬기는 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조작으로 움직이는 신은 결코 진정한 신 또는 강력한 신이라고 할 수 없다. 술수를 써야 하는 신에게 사랑이 있을 리 없다. 기도는 마술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를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위선자들은 기도의 힘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지역 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인정받지 못했다. 기능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기도의 진정한 힘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보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기도가 주는 유일한 유익은 사교였다. 그들이 기도하는 신은 아마도 기도로 조종되는 이교도 신보다 더 형편없는지도 모르겠다. 하늘 아버지에게 기도하기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사람들에게 기도의 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그분의 지혜와 능력을 믿는다. 그분의 선하심을 믿는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허락하시고 듣고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와 이 세상을 위해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주신다. 기도는 나와 말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기도 생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진짜 기도, 즉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사랑이 많으시고 이해심이 많으신 아버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하나님, 그분 자신이 성공적인 기도의 비결이다. 우리는 나의 불안, 어려움, 약점, 죄를 들고 나아간다.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루고도 남을 만큼 크고 사랑이 넘치신다. 그는 지혜롭고 능력이 넘치며 사랑에 가득하여 우리를 용서하는 분이다. 원제: The Secret of Powerful Prayer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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