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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는 이렇게 번져간다
빈대의 확산을 막는 지혜
by 필립 정
2023-11-14
요즘 빈대로 떠들썩한 한국 사회라 빈대가 어떤 벌레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빈대를 다루는 매체마다 매우 자세하게 빈대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니 이 지면에 빈대에 관해 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빈대에 감염이 되고 확산이 되는지는 어느 매체도 잘 알려주고 있지 못하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16년간 빈대를 잡아 온 기록을 찾아보았다. 개인적으로 빈대 방역 처리 기록이 70여 차례가 넘고 나와 같이 일하는 직원들 기록까지 더하면 100차례가 넘는 것 같다. 여기에 빈대 검사만 하고 돌아온 기록까지 더 하면 훨씬 더 많은 경험이 축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달리 비교적 짧은 페스트 컨트롤 역사를 갖고 있고 빈대의 재출현도 시간적으로 얼마 되지 않아 빈대 감염과 확산 연구에 대한 자료가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물론 내가 사는 이곳이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미국 남부라는 지역적 한계가 있고 한국과 주거 환경이 달라 일반화하기 쉽지 않겠지만 아직 빈대 출현의 빈도수가 낮은 한국에 보다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써 본다.나는 이 글을 통해 빈대의 감염과 확산 경로, 빈대를 잘 옮기는 사람 특징, 그들의 직업적 특성, 문화적 특성, 주거 형태, 왜 주로 빈곤층에 빈대가 확산하는지, 나아가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빈대의 감염과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떻게 지혜롭게 행동해야 하고 빈대의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페스트 컨트롤 전문가로서 견해를 밝히고 싶다.빈대 감염과 확산 경로나는 고객들의 의뢰로 빈대를 잡으러 가면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있다. 최근에 여행 가서 어디서 묵었는가, 손님을 집에 재운 적이 있는가? 왜냐면 빈대의 감염 경로를 찾아야만 빈대의 확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객들이 여행하면서 묵었던 숙박업소에서 감염되어 온 경우가 50퍼센트를 웃돈다. 그다음이 고객의 집에 다른 사람을 재웠던 경우로 30퍼센트 이상 되는 것 같다, 버리려고 내놓은 가구를 가져오거나 남이 입던 옷을 사 입었을 경우도 매우 흔하다. 아주 드문 경우이지만 아파트 천장 안에 비둘기가 살았는데 비둘기 몸에 있던 빈대가 거주인에게 옮겨 온 적도 있다. 빈대 감염과 확산은 직업과 매우 관련이 깊다. 출장이 잦거나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호텔에서 잘 수밖에 없으니 빈대에 잘 감염되어 집으로 옮겨 온다. 미국에서 호텔은 저가의 숙박업소나 고급 호텔 할 것 없이 빈대의 온상지로 유명하다. 호텔을 옮겨가며 잠을 자야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빈대를 피할 수 없다. 한번은 매우 큰 호텔에서 호텔 전체에 빈대 약을 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충격적으로 빈대가 많아 호텔 측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호텔 측은 경영난에 빈대까지 겹쳐 영업을 포기하고 버티다가 결국은 다른 큰 호텔 업체에 인수되었다.많은 손님을 맞이하는 숙박업소 직원, 찜질방 종사자의 숙소에도 빈대가 번져 네 번이나 가서 처리해 준 적이 있다. 단체 생활을 하는 학생, 근로자들도 빈대를 많이 옮긴다. 기숙사에서 살던 대학생이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와 빈대를 옮긴 경우도 여러 차례이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가방에 빈대가 함께 와 온 집안에 빈대를 확산시킨 적도 여러 번 있다.국가 간 문화에 따라 빈대 감염과 확산에 차이가 있다. 내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난히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이 강한 문화를 지닌 민족일수록 빈대가 더 잘 퍼지는 특징이 있다. 한국, 남미, 인도 등 이런 나라들은 자기의 먼 친척, 오래전 친구라도 연락이 오면 쉽게 방을 내주고 잠을 재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초청받아 온 사람이 장기간 여행하며 여러 호텔을 거쳤다면 가정집 방문은 확산의 경유지가 된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빈대는 주로 잘 안 물리는 사람이 옮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데 사실 빈대에 전혀 물리지 않거나 거의 물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한집에 같이 사는 부부인데 한 사람만 물리는 경우가 흔하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가설이 가능하다. 빈대는 사람들이 입과 피부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에 반응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빈대에 잘 물리지 않는 사람들은 본인이 감염된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리저리 다니며 빈대를 확산시킬 수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무증상자들이 코로나를 확산시키는 원리와 동일하다. 내 자료에도 거의 40퍼센트 이상이 빈대에 물리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곳과 다른 곳에 빈대를 옮겨 온 것으로 나타났다.미국이 한국과 다른 것 중 하나는 중고 용품의 재사용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사용하던 가구나 옷들을 싸게 파는 유명한 가게들이 매우 많다. 이런 곳에서는 사실 빈대를 잘 옮겨오지 않는다. 헌 용품을 구매할 때 깨끗이 손질해 내놓거나 세탁하기 때문에 옮길 일이 많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옷을 입어보고 벗어 놓는 과정에서 빈대를 옮겨오는 일이 매우 흔하다. 또 중고 물품을 위생처리 하지 않고 구입한 그 상태로 다시 되파는 가게들도 많다. 그래서 빈대가 헌 옷과 중고 가구와 함께 들어오는 것이다. 가장 흔한 경우는 빈대에 감염되어 버리려고 내놓은 가구들 때문이다. 주로 침대 프레임, 매트리스를 가져와 문제가 발생한다. 서랍장, 신발장에도 빈대가 딸려 오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내 자료에 의하면 이 경우 10건 가까이 된다.빈대의 확산은 주거 형태와 깊은 상관이 있다. 미국의 아파트나 한국의 고시원에서 빈대가 비교적 잘 번지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아파트와 한국의 고시원은 매우 얇은 나무 합판 벽 하나로 나뉘어져 있다. 옆방에서 내는 작은 소리조차 들릴 정도라 한 곳에서 빈대가 나타나면 곧 옆집, 위아래 집으로 번져간다. 미국의 호텔도 마찬가지 원리다. 이런 곳에 빈대 처리 문제로 가면 한곳에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주거 형태가 구조 때문에 사방으로 빈대가 잘 번져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기숙사도 같은 이유로 쉽게 번진다. 작은 규모의 방을 나무 벽으로 이어 붙였기 때문에 한곳에서 번지면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한다. 내 경우 제일 심했던 곳은 노인 아파트이다. 미국엔 65세 이상이면 약간의 돈만 내고 살 수 있는 노인 아파트가 있다. 세대 전원이 노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그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같이 먹고 나누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 바퀴벌레, 빈대가 상당히 번져 있다. 빈대도 너무 심하고 경제적으로도 취약하여 손을 쓸 수 없어 내 경우에도 여러 번 의뢰를 받았지만 포기한 적이 많았다.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외로운 노인들은 계속 다른 노인들의 아파트를 방문하면서 빈대를 계속 옮겨 왔기 때문이다.빈대는 주로 학생, 노동자들의 숙소, 노인 아파트 같은 저소득층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다른 곳으로 확산할 소지를 갖고 있다. 이유는 빈대 방역의 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방 한 칸만 약을 쳐도 원화로 60만 원이 넘는다. 아파트라도 방 두 칸에 거실까지 합치면 원화로 150만 원 이상이 든다. 이 비용이 크기 때문에 저소득자들은 본인이 해결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빈대는 일반인들이 처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확산해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빈대의 유행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가 있다. 한국 매체의 기사를 보면 빈대 감염의 원인으로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등이 많이 언급되는데 감염과 확산 이유는 매우 다양해서 누구나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함부로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예를 들자면 빈대의 확산은 고비용 때문에 저소득층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나지만 오히려 외국 여행을 하며 호텔에서 숙식할 수 있는 중산층에서 감염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혀를 잘못 사용하여 스스로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여행과 이동이 잦은 그리스도인들이나 목회자들이나 고려해야 할 것 하나가 있다. 이들이 국내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 초청받아 호텔에서 묵을 때 침대에 눕기 전에 유심히 침대 매트리스와 이불을 살펴야 한다. 나무 침대면 특히 침대 프레임 사이 사이와 매트를 잘 살펴 검은 점같이 생긴 빈대의 배설물이 있으면 즉각 방을 옮기거나 다른 호텔로 옮기는 것이 좋다. 혹시 모르고 하루를 보내더라도 몸의 혈관을 타고 일정한 간격으로 빨갛게 물린 흔적이 여러 개 있으면 입었던 옷은 버리거나 아니면 비닐봉지에 넣고 입구를 잘 묶어 봉하여 후에 세탁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호텔 예약할 때 빈대를 발견하면 호텔비용 반납이나 피해 보상을 처리해 주는지 꼭 물어보는 게 좋다. 호텔마다 빈대 문제 처리에 대한 정책들이 있다. 알고 계약할 것을 권한다. 호텔 측은 빈대를 눈으로 발견하지 않는 이상 절대 빈대가 있다고 인정하거나 피해 보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호텔의 명예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을 꼭 찍어 두어야 한다. 빈대가 있던 호텔에 묵었다가 초청자의 교인 집에 묵는 것은 큰 실례이다. 그냥 호텔에서 묵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빈대의 유행은 잼버리, 올림픽, 엑스포 같은 국제 행사가 열리고 나면 한껏 올라갔다가 방역이 강화되면 다시 완화된다. 지금처럼 심할 때는 타인의 집에 묵는 것은 민폐 행위다.당분간은 중고 물품을 거래할 때 유의해야 한다. 빈대가 유행하면 유난히 중고 물품 거래가 많고 버리는 빈도가 급격히 늘어난다. 이때 중고 물품을 살 때 주의하여 살펴보고 남이 버린 물건을 가져오는 행위는 금지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감염된 물건을 버릴 때 반드시 빈대에 감염된 물건이라는 메모를 남겨 다른 사람들이 재사용하는 걸 막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빈대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코로나 유행 시 우리가 들어가 앉을 곳을 가려가며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했듯이 지금은 자신과 타인을 위해서 자신과 주위를 항상 살펴야 한다. 극장같이 사람이 많은 곳을 다녀왔으면 바로 옷을 벗어 비닐에 넣어 묶어 두었다가 나중에 뜨거운 물로 세탁 또는 뜨거운 열로 말리길 권한다.매체에서 읽은 약간의 지식으로 빈대에 대해 아는 체하거나 조언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빈대 감염자를 돕는다고 어설픈 지식을 전수하는 것은 매우 해롭다. 빈대에 감염된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봉사 정신으로 이리저리 약을 쳐 주는 것 역시 100퍼센트 자해 행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방역 비용을 보태 주거나 전문가를 소개해 주는 것이다. 가끔 외국 유학생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대부분 파리, 런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유학하는 한국인들이다. 이들은 엘리트층이라 자기가 인터넷을 찾아 빈대 약을 사고 약 치는 방법도 익혀 서로 약을 쳐 주며 한국인의 도전 정신을 시전한다. 그러다 한계에 막혀 나에게 전화하는 것이다. 이러면 너무 빈대 감염이 악화하여 힘들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이라도 전문가 부르세요’라고 조언한다. 비싸서 못한다고 하면 ‘그럼 나중에 훨씬 더 많이 들어요’ 대답한다. 약을 어설프게 치면 잠자리 근처에 머무르던 빈대는 집안 곳곳으로 깊이 들어가 숨는다. 가구 틈, 천장, 카펫 바닥, 창문틀, 어디든 살 곳으로 찾아 숨어 좀처럼 사람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전문가들도 힘들어한다. 비용만 더 들 뿐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더 많은 시간과 약을 써야 하도록 일을 그르쳤기 때문이다.다른 전염병과는 다르게 빈대는 어떤 질병도 옮긴다는 기록이 없다. 그래서 빈대 처리 보조금이나 보험처리를 어느 나라 정부도 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냥 두면 학교, 극장, 전철, 버스, 호텔, 직장 등을 통해 온 나라와 세계로 퍼져갈 수밖에 없다.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자금을 모아 전달하거나 기금을 만들어 주위에서 빈대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정말 지혜로운 일이다. 빈대는 그야말로 공포를 부른다. 항상 새벽에 물기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것은 물론이고 알레르기 반응이 심각한 사람은 물린 부위가 심하게 부어오르고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어한다. 평상시에도 스멀스멀 빈대가 기어가는 느낌이 있어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곤란할 정도다. 그래서 이들을 돕는 것은 중병 환자들 돕는 것 같이 시급한 일로 취급해야 한다.한국인들의 체면 문화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밝히지 않아 문제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빈대 감염 여부를 주위에 빨리 밝히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다. 이런 일로 경제적 도움을 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오히려 지혜롭고 서로에게 선한 일이다. 빈대가 다 처리되는 동안 교회나 이웃, 직장 출근을 삼가는 것 역시 지혜로운 일이다.코로나 유행 시 교회는 비대면 세상에서 살았다. 많은 교인이 교회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교회의 따듯한 말 한마디와 도움이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유의 일을 겪어야 했던 교회는 이 일로 좋은 경험을 쌓았다. 이제 빈대로 곤란을 겪는 이웃을 위해 어떻게 도울지 모를 수 없다. 앞으로 이런 감염과 질병으로 사회 문제가 계속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를 살아가는 교회는 지속적으로 이웃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하는 도전을 받고 있다. 세상의 정부는 이런 것 하나 처리하려 해도 법을 만들고 시행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교회처럼 신속하게 결정하고 적절하게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이 또한 주가 주신 은혜를 베풀 기회가 아니던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역사적...
by 고상섭
2023-11-02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현재까지 이스라엘-하마스 사이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종교적 이권 다툼 속에서 선량한 사람들까지 희생당하는 고통의 현장을 보고 있다.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한 손에 성경을, 또 한 손에 신문을 들라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이 문제를 역사적 시선과 성경적, 신학적 시선 모두를 통해 바라보아야 한다. 앞으로 두 차례의 글을 통해 역사적인 시선과 신학적인 시선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대학가의 움직임과 개인들의 지지 성명이 있었다. 미국 쪽의 기사나 목회자들이 쓴 글들은 대개 이스라엘을 호의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 우리나라의 기독교 안에서도 비슷한 입장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서 선과 악의 구도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순한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신학적 뿌리가 있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동의 역사중동지방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만제국이 통치하던 하나의 나라였다. 다양한 민족들이 있었지만 한 국가 안에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제국은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불가리아와 동맹국 편에서 이 전쟁에 참여했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연합군에 패한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이후 현재의 아랍 22개 국가가 분리, 형성되었다. 한 나라를 여러 나라로 임의로 나누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나누어진 한 나라 안에 다양한 종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고, 또 민족이 여러 국가로 쪼개져 편입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현재 이라크는 같은 이슬람을 믿지만, 이슬람의 지도자를 선발하는 방식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큰 시아파와 수니파가 각각 60퍼센트, 3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기타 종파들도 3%). 수니파 중에서도 아랍권이 20퍼센트, 쿠르드 민족이 17퍼센트를 차지하는 등 한 나라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서로 간의 이권 다툼 등으로 내전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그들의 종교적, 정치적 이권들이 개입되어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이라는 나라를 임의로 나눈 것이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이스라엘은 기원전 1세기경에 하스몬 왕조가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66년부터 세 번의 유대 전쟁을 통해 독립을 꿈꾸었지만 로마 제국에 진압되었고, 그 과정에서 티투스 장군에 의해 현재 남아 있는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이방인의 뜰 부분의 서쪽 담장만 남아 있고, 성전이 무너졌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축출되어 여러 나라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시작된다. 나라를 잃어버린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다양한 핍박을 받고 편견과 오해에 극심하게 시달렸다. 특히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은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의 서러움을 폭발시켰다. 포병 대위 드레퓌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명을 쓰고 재판에 회부되어 감옥에 가게 된다. 러시아에서도 반유대주의의 확산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았다. 이런 일들을 계기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유대인들의 열망은 결국 시온의 땅, 곧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자는 ‘시온주의운동’으로 이어진다. 이 운동은 테오도르 헤르첼이 ‘유대국가’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급물살을 탔고, 이런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 벨푸어 경이 시온주의운동의 재정 후원자 로드 차일드 가문에 편지를 보내 영국에 재정을 후원해 주면 유대인의 독립을 보장하겠다는 ‘벨푸어 선언’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벨푸어 선언’은 이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맥마흔 선언’과 상충하기 때문에 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맺었던 두 개의 조약이 지금의 중동 전쟁의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되었다. ‘벨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시온주의는 점점 확산하였고,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긴장이 시작될 무렵 1948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가결한다. 이스라엘은 유엔의 결의안을 따라 독립을 선포했고, 팔레스타인은 반대했다. 팔레스타인으로서는 2,000년 동안 자신들의 땅이었던 터전에 이스라엘이 과거에 자신들이 살았던 땅이라며 나라를 세우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은 유엔의 분할안을 거부하면서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에에 전쟁이 벌어졌다. 3차까지 이어진 중동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인근 아랍 국가의 상당한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스라엘은 현재까지도 그 점령지에 유대인 정착촌을 세우는 등 그 땅들을 차지하고 있다. ‘두 국가 해법’과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해결책으로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 등장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자기의 영토에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며 사는 것이 두 국가 해결론의 핵심이다. 이 해결책은 시간이 흘러 1993년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아라파트 의장이 미국의 빌 클린턴의 중재로 맺은 오슬로협정으로 이어졌다. 이 협정으로 세 지도자는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의 극우파들은 이에 반발했고, 결국 이스라엘 라빈 총리는 이스라엘 극우파에 의해 1995년 11월에 암살당하고 말았다. 뒤이어 이스라엘에서는 우파 연합의 강성 지도자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가 되면서 중동 문제는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스라엘 극우 세력은 그들의 약속의 땅인 팔레스타인을 전부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들의 지지를 받는 강성 정치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해 나갔다.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와 있으며, 이로써 분쟁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은 국제법상 불법이지만 시온주의를 신봉하는 종교적 유대인들을 계속해서 정착촌으로 이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은 규탄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단순히 선량한 이스라엘에 하마스가 이유 없이 공격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팔레스타인이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는 갈등 속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과 악의 구도로 나누지 말라 중동지역은 오스만제국이 소멸하면서 여러 국가로 나뉘어졌고, 한 국가 안에서도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뒤섞여 살기 때문에 갈등과 내전이 빈발하지만, 같은 이슬람권 또는 아랍권이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공통의 적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할 때는 전 아랍이 연합하여 공격하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2023년 10월 17일 가자지구에 있는 알하흘리 병원 폭발 사건은 하마스의 오발이라는 주장과 이스라엘이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아랍과 협상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스라엘의 전략이라는 주장 등 여러 설이 난무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이유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단일 사건이 아니라 복잡한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 이유도, 단순히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전체 아랍국가의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하마스가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민간인을 습격하고 인질로 잡아간 반인륜적 행위이기에 철저한 보복과 공격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마스 입장에서는 자신의 터전을 무단으로 장악하려고 하는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한 정당한 저항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격과 정착촌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무장단체 하마스를 정식 투표를 통해 정당으로 인정해 주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 이 전쟁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위험성 때문이다. 세계적인 헤지펀드를 운영하고 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1년 일찍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CEO 레이 딜레오는 그의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서 역사는 반복적인 빅 사이클을 가진다고 분석한다. 강대국이 무너지고 다른 신흥강국이 들어서는 일이 반복되는데, 특히 사이클의 마지막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폭동이 일어나거나 전쟁을 통해 강대국의 종말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외부와의 전쟁을 통한 사이클이 반복되는데, 이 기간이 150-250년 정도이고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절대로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는 않지만,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에서 경제적 갈등에서 촉발된 분노가 외부의 전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특히 경제가 힘들어지고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면 내전 또는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고 서로 감정적으로 공격하게 되면서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역사가 반복되었다는 레이 딜레오의 분석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존 스토트는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에서 그리스도인은 화평케 하는 사역으로 부름을 받은 존재들이기에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과 다른 나라의 갈등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균형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고 평화의 본을 보이는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한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공적 토론의 장에서 평화를 위해 애써야 하는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음을 알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 벌어지는 기근과 전쟁의 소식들은 모두 세계를 품고 기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너무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의 방산 회사 주식이 올랐다는 기사가 있었다. 모든 나라들이 자기네 나라의 이권을 먼저 생각하는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어려운 시기이기에 더욱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 한 나라를 지지함으로 선과 악의 구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중동지방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잘못된 유대 민족주의를 버리고 팔레스타인을 인정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팔레스타인도 더 이상의 무력 충돌과 전쟁이 아닌 타협점을 찾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때이다. 종교와 정치적 이권이 뒤섞인 인간의 탐욕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이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안위를 넘어 우리는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할 사명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오늘도 무릎을 꿇고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이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주께서 바라는 한 가지’
애즈베리 부흥 8개월이 지나고
by J. T. Reeves
2023-10-23
2023년 봄, 리브스(J. T. Reeves)는 휘튼 칼리지 4학년이 되었다. 그와 친구들은 애즈베리 대학교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영적 각성 소식에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갔다. 8개월 후, TGC는 리브스에게 그때의 경험이 그와 동료 학생들의 삶에 어떤 지속적인 영향이 미쳤는지를 물었다. 작년부터 나는 이 모든 것이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관해서 자주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말로 정의하기에는 참으로 답답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서 에즈베리의 그 부어 주심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단지 이 글을 통해 내게 부어 주신 그 은혜를 당신이 상상하길 바랄 뿐이다. 세속화의 습격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린 세속주의의 폭풍 속에서 자랐다고 상상해 보라.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그걸 믿기에 당신은 너무 현명하거나 또는 너무 냉소적이다. 사춘기가 오기 전, 만연한 개인주의는 당신을 서커스 동물처럼 강제로 우리에 가두고 외롭지 않은 척하라며 아이폰을 건넨다. 당신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그래서 때로는 외롭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효과가 없을 때, 불안감이 커지고 더 많은 벽을 쌓게 된다. 달리 말해서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수준의 만족함에 참석하라는 도전이나 초대를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이다. 타인에게 압력을 가하지 말라는 포스트모던적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어려운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당신의 삶은 오로지 가상 세계에서 이뤄진다. 엔터테인먼트는 삶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말 그대로 신이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회사의 알고리즘이 당신의 관심(숭배 대상)을 독점한다.때로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삶의 속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마치 움직이는 스포츠카에서 뛰어내려 안전하게 착지하겠다는 것과 같다.Z세대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인”은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그 어떤 것도 아님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하지만 솔직히 “그런 것” 중 어느 것도 당신에게 그렇게 끔찍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불가피한 일이다. 궁극적으로 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당신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다. 그런데 중에 예기치 않은 입소문 하나가 들린다. 켄터키 주 한가운데에 있는 한 대학에서 뜨거운 예배 모임이 있다는 말이었다.처음에는 절대 갈 수 없다고 속으로 말하지만, 어느날 친구가 그런다. “지금 너한테 진짜로 중요한 일이 있어? 아니잖아?” 친구의 말은 상처를 준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당신은 30분 후에 짐을 싸서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그리고 앞으로 7시간 운전을 누가 하고 아는 사람 누구 집에서 어떻게 자는지 등등을 의논한다. 거기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게 이상하기만 하다. 당신은 당연히 회의를 느낀다. 왜 다들 “여러분 모두 다(y’all)”라고 말하지? 거기서 만난 광경은 틱톡에 나온 것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가 당신을 붙잡아 떠나지 못하게 한다….사람에 따라서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또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당신의 경우는 몇 주가 걸린다. 캠퍼스로 돌아가서 몇 주에 걸친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수년 동안 갇혀 있던 안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조금 더 선명해지며, 당신과 친구들은 왜 지금까지 그분의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아해하며 서로를 바라본다. 아니,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뿐. 영광을 목격함당신은 기적을 믿지 않았지만, 친구 몇몇이 의학적 설명으로 불가능한 일을 경험한다. 불행하게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은 성경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제는 불가능한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막 11:23).당신이 원하는 것은 예배뿐이다. 더 이상 아닌 척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느새 개인주의는 사라진다.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당신은 마음이 녹았고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고백을 쏟아낸다(약 5:16).당신과 당신 친구의 친구들이 매일 서로에게 나사렛 예수를 따르도록 도전을 (아니, 초대를) 할 때 불안이 금세 사라질 것이다. 밤새도록 기도하는 일(눅 6:12), 자발적인 예배(시 27:4), 그리고 눈물로 중보하는 일(빌 3:18)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닌 것 같다.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모든 “재미있는” 것에 대한 당신의 식욕은 언젠가부터 사라졌고, 공부방에 들어간 당신의 눈앞에 죄책감을 가지고 당신을 바라보는 친구가 있다. “정말 끔찍해.” 그녀가 말한다. “뭐가?”하고 당신이 묻는다. “할 일이 너무 많아. 하지만 도무지 성경 읽기를 멈출 수가 없어!” 그 말에 당신은 그만 웃음을 터뜨린다. 실상은 당신도 출애굽기 27-30장을 마저 다 읽고 싶어서 공부방에 들어온 거니까. 잠시 중단.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당신은 출애굽기 27-30장을 읽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당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분이 마침내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는 빠르게 움직이는 당신 삶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서 당신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그의 말에 매료되었다. 당신은 애초게 그가 더 나은 삶을 주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사실을 경험할 시간이나 관심을 결코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달라진 상상나는 다양한 캠퍼스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2023년 봄 성령님과의 만남은 매우 달랐지만, 우리 대부분은 다들 비슷한 말을 했다. 애즈베리의 부어주심은 독특했다. 그것은 대규모 개종이나 대규모 회개, 대규모 선교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감미로운 노래처럼 보였다. 그건 예배 받아 합당한 분에게 드리는 우리의 관심과 예배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라는 초대였다.비명을 질러대는 알고리즘의 흐름 위에서, 질투하는 하나님이 속삭였다. 나는 네가 내게 주려고 꿈꾸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네게서 요구할 것이다. 그래야만 나는 네가 꿈꾸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네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게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고 싶은가? 대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은 내 모든 상상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분이 다시 그 일을 하실 거라고 믿으며 우리는 살고 있다. 애즈베리 부흥 관련 기사 보기• 애즈베리 부흥 앞에서 진짜 던져야 할 질문• 평범하고도 특별했던 하루• 이상하게도 마음이 뜨거워지다원제: ‘All You Want to Do Is Worship’: A Student Reflects on 8 Months After Asbury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이스라엘 상황에 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by Paul Carter
2023-10-21
요즘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스라엘의 위기에 관해 대화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그에 관한 목회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당신은 아마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하마스의 이런 끔찍한 공격을 단호하게 규탄한다. 여성, 어린이, 노인을 살해하는 것은 지극히 야만적이다. 그리고 나는 적으로부터 국민과 영토를 방어할 책임이 있는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권리를 지지한다. 여기에 더해서 추가 의견을 제시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이스라엘에게 전쟁 규칙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국제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가자 지구의 민간인 사상자의 최소화를 위해서 모든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추가 의견을 제시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하마스와 동조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마스는 종종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는 억압적인 테러 국가이다. 하마스에 반대한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인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다. 우리는 그들과 여전히 특별한 연대를 나누고 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추가 설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면 좋을 것이다. 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특별한 중심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하는 새 언약 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함께 구성된다. 로마서 9장 속 사도 바울의 분명한 가르침처럼, 그 누구도 단지 아브라함과 유전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근거만으로 구원받지 않는다. 나는 유대 민족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적인 믿음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없으며 또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순간 분명하게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내 설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서 또 모든 민족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유대인과 아랍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크게 부어지도록 기도하자. 원제: How to Speak to Friends and Loved Ones About the Situation In Israel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하나님은 아말렉의 전술을 심판하신다
by Peter J. Leithart
2023-10-19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은 고대 암흑기의 전쟁을 연상케 했다. 약탈자는 영토나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질을 잡기 위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그들은 젊은 여성들을 살해했고, 노인들을 거리에서 납치했으며, 심지어 자녀들과 함께 있는 가족을 살해하고 불태웠다.하마스가 쓴 전술은 성경에 나오는 아말렉의 전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여호와의 저주모세가 아론과 훌의 손을 잡고 언덕에 앉아 있는 동안 여호수아는 아래 계곡에서 적을 물리쳤다. 모든 일이 끝나고 여호와가 맹세했다. “‘주님의 깃발을 높이 들어라. 주님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실 것이다’ 하고 외쳤다”(16절). 여호와는 아말렉에 대한 기억이 하늘 아래에서 아예 지워질 때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다(14절).여호와는 약속을 지키신다. 그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삼상 15:1-3). 사울은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고 엄청난 약탈을 일삼지는 않았다. 사무엘은 길갈에서 아각을 쳐부수지만, 그럼에도 아말렉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다윗이 블레셋에서 유배 생활을 마무리할 무렵,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에 있는 다윗의 진영을 공격하고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납치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아말렉의 약탈자들을 쫓아내고 그의 아내와 자녀와 재산을 되찾은 것이었다(30:1-20).400명이 다윗의 손을 피해서 탈출했고(30:17), 아말렉은 또다시 살아남아 훗날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는 자신의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악당은 사울 왕과 싸웠던 왕의 후손인 “아각 사람” 하만이다(에 3:1; 8:3). 에스더는 교묘하게 하만을 함정에 빠뜨렸고, 주님(이름은 밝혀지지 않음)이 모든 사건을 뒤에서 조율했고, 그 결과 하만이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만든 교수대에서 그 자신이 죽게 된다. 이것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말렉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다. 여호와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잊힌 민족이 된 아말렉은 이제 단지 성경에서만 기억될 뿐이다.고대 세계에는 사악한 민족이 적지 않게 있었다. 아시리아 민족의 잔인성은 악명 높았고, 가나안 족속들은 여호와의 진멸 명령을 받아 마땅했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왜 하필이면 아말렉을 특별히 적대하여 지목했을까?전쟁 중인 아말렉아말렉은 약자를 공격하는 데에 특화된 민족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아말렉의 정체를 상기시켰다. “그들은 당신들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에, 길에서 당신들을 만나, 당신들 뒤에 처진 사람들을 모조리 쳐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신 25:18).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사울과 싸우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을 때 아말렉 침략자들이 시글락을 공격했는데, 거기에는 오로지 여자들과 아이들만 있었다(삼상 30:2-3). 하만은 포로로 잡혀간 유대 민족을 멸절하고자 아하수에로 제국의 힘을 모을 계획을 세웠다.아말렉 민족은 단지 잔인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정반대, 즉 네거티브 필름(photonegative)과 같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고아, 과부, 나그네, 기타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거듭 지시했다(출 22:22; 신 10:18; 14:29; 24:19-21; 26:12-13).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이스라엘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않는 자”(신 27:19)를 향한 저주를 선언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선지자들은 약한 자들을 학대하는 이스라엘과 지도자들을 비난했다(사 1:17; 렘 7:6; 22:3; 겔 16:49; 슥 7:10).아말렉 민족에 의한 여성과 어린이의 “민간인 피해”는 우연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선택된 성읍에서 시행했던 남자, 여자, 어린이, 동물을 죽이는 문제에 있어서의 금지령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모든 남자가 사라진 뒤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 여리고와 아이, 호르마 성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견고한 성읍들을 공격하여 함락시켰고 그 모두를 연기와 불로 여호와께 바쳤다. 그에 반해서 아말렉 사람들은 특히 여성과 어린이, 약한 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아말렉은 반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인류를 향한 여호와의 목적에 정반대되는 생활 방식과 가치관, 군사 전술을 가진 민족이었다. 아말렉의 메아리하마스는 아말렉이 아니다. 말하자면 하마스가 지금 여호와의 금지와 저주 아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똑같은 것도 아니다.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이 그리스도인이며, 많은 무슬림 팔레스타인은 하마스와 폭력에 반대한다. 하마스를 아말렉과 비교하는 게 대량 학살의 정당화 또는 암시가 아니다.그럼에도 10월 7일에 하마스는 아말렉의 전술을 사용했다. 하마스가 아말렉처럼 싸우는 유일한 테러 집단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테러 단체는 여성과 어린이를 방패로 삼았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주의자들은 여성을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활용했고, 보코하람은 어린이를 “인간 폭탄”으로 악용했으며, 아프가니스탄 테러리스트들은 산부인과 병동에서 임산부와 아기를 살해했다. 하마스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방식을 모방할 위험이 있다.아말렉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주의 주인이시다. 여전히 폭력적인 사람들, 특히 무력한 사람들을 죽이는 악한 이들을 파괴하기로 결심하신 분이다. 아말렉 민족뿐 아니라 피를 흘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은 미워하신다. “주님은 의인을 가려 내시고, 악인과 폭력배를 진심으로 미워하신다”(시 11:5).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여섯 가지 것 중에는 다음이 있다. “교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와 무죄한 사람을 피 흘리게 하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꾸미는 마음과 악한 일을 저지르려고 치닫는 발”(잠 6:17-18).정의를 위한 기도예수님은 쇠지팡이를 손에 들고 다스리시며 세상 나라들을 질그릇 같이 깨뜨린다(계 2:27). 그는 하마스의 아말렉 사람들뿐 아니라 폭력을 사랑하고 자비를 미워하는 모든 원수를 그의 발 아래로 끌어들일 것이다. 때때로 예수님은 폭력적인 사람들을 개종시킴으로써 패배시킨다. 또 어떤 때는 아예 그들을 멸망시키심으로써 패배를 안긴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그에게 그렇게 하시도록 요청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정의와 악인에 대한 심판을 위한 기도로 가득한 기도서이자 찬송가인 시편이 있다. 지금은 저주하는 시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국적에 관계 없이 모든 아말렉인이 하늘 아래에서 제거되어 정의로운 세상이 되도록 해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할 참으로 좋은 때이다. 원제: Hamas Is Borrowing Tactics from the Amalekites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이스라엘의 9/11: 도덕적 명확성이 필요한 때
by Bernard N. Howard·Ivan Mesa
2023-10-11
지난 토요일, 가자 지구에 본부를 두고 이란의 자금 지원을 받는 이슬람 테러 단체 하마스가 육해공 전반에 걸쳐서 이스라엘 남부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 이스라엘인 900명이 사망했고, 2,400명이 부상당했으며, 수백 명이 인질로 잡혔다.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진과 영상은 참혹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음악 축제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지붕으로 아이들을 탈출시키던 아버지가 살해당했다. 테러리스트가 픽업트럭에 벌거벗은 여자를 태우고 행진하고 나이 든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총을 들고 하마스 군인과 함께 포즈를 취하도록 강요당한다. 다섯 살과 세 살 먹은 두 딸을 둔 젊은 여성이 인질로 잡혀갔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겪은 심리적 피해를 미국의 9/11 테러에 비유했다. 이는 홀로코스트 이후 하루 만에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유대인 대량 학살이며, 앞으로 이스라엘 사회를 심오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라는 맥락에서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견해와 상관없이,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도덕적으로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도덕적 명확성의 가능성 죄 많은 세상에서 갈등하는 양쪽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건 당연하다. 한쪽을 비난하는 사람은 당장에 내로남불이라는 반박에 직면할 것이다. “웃기고 있네. 이건 어떤데? 너희가 저지르는 잔혹한 짓은 뭐가 다른데?”우리는 팔레스타인 국민을 향한 이스라엘의 행동이 항상 흠잡을 데 없이 정당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지금 상황에서 이 글을 쓰는 우리 두 사람은 친이스라엘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이스라엘 정부나 군대가 출범부터 오늘날까지 취한 모든 행동을 은폐하자는 건 아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좌절, 고통, 슬픔을 보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를 포함해서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포함하여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양쪽 모두에게 다 피할 수 없는 범죄가 있다고 해서 항상 도덕적 안개가 생기는 건 아니다. 때때로 안개가 걷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이라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주저 없이 비난해야 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도 모호함 없이 단호하게 비난해야 하는 유사한 범죄 행위의 명백한 사례이다. 기독교적으로 올바른 식별은 행동의 성격과 목적을 모두 다 살펴야 한다. 하마스가 단순히 민간인 인질을 잡았다면 그 행위는 자체로 악하다(성경은 납치를 금지한다). 그러나 납치의 목적에는 틀림없이 어느 정도 군사적 정당성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름 가능하다. 과거에도 인질을 팔레스타인 포로와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마스는 단순히 인질을 잡은 것이 아니었다. 군사 작전은 애초에 민간인을 살해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민간인 희생자는 군사 목표물에 대한 공격으로 인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었다. 민간인 자신이 표적이었다. 이 학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성경적 정당성도 찾을 수 없다.도덕적 명확성의 유익정치적으로 분열된 교회를 목회해 본 사람이라면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라면 균형의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그러다 보니 문제의 양면을 제시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는 어느 한쪽만 주장하는 것을 명백한 목회적 실수처럼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덕적 명확성이 정당화되면, 큰 이점이 따라온다. 1. 도덕적 명확성의 일반적인 이점진 엘쉬타인(Jean Bethke Elshtain)의 관찰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우발적인 사망과 고의적인 살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형사사법제도는 붕괴될 것이다. 만약에 전투원 살해와 평화로운 민간인을 겨냥한 살해 의도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도덕적 허무주의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동일한 회색 음영으로 전락한다. 그 결과 우리는 정치적 그리고 도덕적 태도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별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이 방식에 근거해서 방향을 잡으면 우리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신뢰해야 할지 쉽게 알 수 있다. 카타르 외무부 등 일부 외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국민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침해하는 정책을 확대하는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 아랍국을 포함한 다른 정부들은 이스라엘을 비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종류의 가면을 벗기는 것은 외교 정책에 관여하거나 중동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유용하다. 현재 갈등에 대한 도덕적 명확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제 발생할지도 모를, 미국과 좀 더 밀접한 사건에 대비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분별력을 발휘함으로 우리는 미래에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잘 갖추게 된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도덕적 통찰력은 많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당시에 증거가 모호하다고만 생각하던 나치즘의 가면 아래 숨은 공포를 똑똑히 보게 만들었다. 그의 강력한 도덕적 비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도 꼭 알아야 할 사건에 대해서 분명하게 분별함으로 본회퍼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하자. 2. 도덕적 명확성의 구체적인 이점도덕적 명확성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명령을 만들어 낸다. 비정치적인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악한 자를 그들 중에서 쫓아내라”(고전 5:13)고 요구했다. 구절 속 문제의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었고(1절), 그로 인해서 그는 지역 교회에서 파문되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명확성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데에 필요한 명령을 내린다. 일요일 뉴욕시에서 열린 친팔레스타인 집회에서 행진 참가자들은 “사람들이 점거되면 저항은 정당하다”고 외쳤다. 그리스도인은 방어할 능력이 없는 민간인을 향한 고의적인 학살을 옹호하는 그러한 종류의 집회(또는 그에 상응하는 소셜 미디어 집회)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변호해서는 안 되는 것을 옹호하는 것(살인, 강간, 납치를 “저항”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방식이 아니다.동시에 도덕적 명료함은 한쪽을 위한 적절한 기도를 하도록 한다. 우리는 하마스의 조속한 패배를 기도해야 한다. 하마스의 살인적인 작전실은 결코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좋은 지도력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양쪽 모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즉, 그들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말이다. 더불어서 그들의 보호와 치유, 위안을 기원하자. 그리고 양국 국경 안에 있는 교회가 성장하도록 기도하자. 우리가 이처럼 양방향을 향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테러리즘에 빠진 한쪽을 완전히 좌절시키고 패배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더 담대히 간구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원제: Israel’s 9/11: The Need for Moral Clarity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영적 존재를 부정하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by Joe Carter
2023-09-22
이야기: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점점 더 많은 미국인이 하나님, 천사, 악마 같은 영적 존재의 실재를 부인하고 있다.배경: 미국에서 하나님, 악마 및 기타 영적 실재에 대한 믿음이 최저점에 도달했다. 최근 갤럽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하나님, 천사, 천국, 지옥 및 악마의 존재를 믿는 미국인의 비율이 2016년 이후 3-5퍼센트포인트 하락했다. 그러함에도 미국인 대다수는 여전히 영적 존재를 믿고 있는데, 74퍼센트가 하나님을 믿고, 69퍼센트는 천사의 존재를 믿으며, 67퍼센트는 천국을 그리고 59퍼센트는 지옥의 존재를 믿는다. 악마의 존재를 믿는 수치는 58퍼센트였다. 2001년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감소한 게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믿음인데 각각 16퍼센트포인트였다. 2001년 이후 지옥에 대한 믿음도 12퍼센트포인트 떨어졌고, 악마와 천사에 대한 믿음도 각각 10퍼센트포인트씩 하락했다. 전체적으로 미국인의 51퍼센트는 다섯 가지 영적 존재를 모두 믿는다. 그 어떤 존재도 아예 믿지 않는 사람은 11퍼센트이며,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7퍼센트이다. 전반적으로 모든 연령대에 걸쳐서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감소했지만, 18-34세 연령대가 그중에서도 가장 낮았다. 가톨릭보다는 개신교인에서 믿는 비율이 더 높았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종교 예배에 참석하는 성인 대다수가 다섯 가지 영적 존재를 다 믿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치 성향도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화당원의 78-87퍼센트가 다섯 가지 영적 존재를 믿는데, 무소속의 경우에는 51-68v퍼센트이다. 이에 비해서, 민주당원의 56-66퍼센트가 하나님과 천사, 천국은 믿는다고 했지만, 지옥과 악마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절반 미만이었다. 무슨 의미인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감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식론적 권위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특정 주제에 관한 인식론적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해당 주제에 관해서 보유하고 있는 정보나 통찰력이 신뢰할 수 있다고 인정받는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인식론적 권위는 현실에 대한 공유된 감각과 현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권위에 대한 존중에 크게 뿌리를 두고 있었다. 예를 들어, 새로 태어난 아기를 놓고 삼신할머니가 준 거라고 말하는 어린아이와 자기의 자궁에서 나왔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두 의견이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어머니의 말을 믿었다. 아기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현실을 어머니가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식의 많은 영역에서 인식론적 권위는 여전히 지배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형이상학적 주관주의에 빠르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형이상학은 실재의 근본적인 본질에 대한 연구이고, 형이상학적 주관주의는 실재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입장이다.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실재 또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의 인식, 신념 또는 기타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구성되거나 조건화된다는 것이다. 실재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저 바깥”의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형성되거나 심지어 존재하게끔 되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형이상학적 주관주의는 너무도 터무니없어서 누구도 그것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낙태에 관한 1992년 대법원 사건인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Planned Parenthood v. Casey) 사건을 생각해보자. 그 판결에는 형이상학적 주관주의에 관해서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 중에서도 가장 명확하고 영향력 있는 주장 하나가 포함되어 있다. 낙태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면서 케네디 판사는 다수의견에서 “자유의 중심에는 존재, 의미, 우주,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개념을 정의할 권리가 있다”라고 썼다.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케네디도 형이상학적 주관주의가 자명하다고 가정한다. 전직 판사 케네디의 정의에 따르면, 존재의 본질(존재함), 윤리의 본질(의미), 물질세계의 본질(우주), 그리고 사고와 감정 및 행위(인간 생명의 신비) 등 기본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은 하나같이 개인이 정의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실재의 본질을 스스로 정의할 권리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에 필요한 기본 권리가 된다. 물론 아무리 케네디라고 해도 형이상학적 주관주의를 일관되게 적용한 적이 없다. 아니, 그건 아예 불가능하다. 그런 개념은 터무니없고, 누구라고 거기에 따라서 살 수는 없다. 케네디의 견해는 합의가 필요한 실재에 대한 부정이자 누구나 스스로 실재가 무엇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법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대법원 판결이 가능하려면, 현실 내지 실재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 자기모순 없이는 누구도 일관되게 형이상학적 주관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념상 형이상학적 주관주의 내에서 자기모순은 누군가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실재”가 된다. 따라서 얼마든지 실재 그 자체를 거부함으로 누구라도 비일관성과 모순이라는 현실을 피할 수 있다. 자기모순을 무시하고 대신에 “자기 눈에만 보이는 진실”에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지극히 자기 모순적이고 실재의 재정의라는 형이상학적 주관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트랜스젠더 운동이다. 얼핏 보기에 이건 거의 갑자기 세상에 튀어나온 것만 같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남자도 여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한 게 아니다. 인식론적 권위를 거부하고 이를 내부 권위로 대체하는 데에는 무려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나의 진실”이라는 말에 더 이상 웃지 않게 되었을 때, 도리어 급진적인 내부 주관성을 지적 존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발생한 게 다름 아닌 트랜스젠더 운동이다. 그렇기에 이번 갤럽 여론조사는 놀랍지 않다. 하나님, 천사, 악마, 천국, 지옥이 정말로 실재한다면(당연히 그렇다), 그 사실은 진리가 개인의 감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생각에 실존적 위협을 가한다. 형이상학적인 주관주의가 기반을 확보함에 따라 하나님과 그 외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비례하여 감소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은 단 하나뿐이다.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 주관주의가 성경의 인식론적 권위와 성경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도록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창조의 근원이시며, 그를 통해서 천사, 귀신, 천국, 지옥 등 모든 실재가 창조되었다(골 1:16-17).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우리의 이웃이 그들의 궁금함이나 채우는 수준의 일반적인 신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대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신 분을 받아들이도록 애써야 한다. 진정한 진리의 권위를 올바로 인식할 때야 우리는 비로소 주관적인 ‘나의 진실’이 얼마나 무가치한 우상인지를 똑똑히 볼 수 있게 된다. 원제: Poll Finds an Increasing Number of Americans Reject Reality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먹구름 틈새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찾아
2023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 리뷰
by 김선일
2023-08-21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 2023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가 발간됐다. 이 조사는 1998년부터 한국인의 종교 실태와 신앙 의식을 파악하기 위해서 시작되었고, 2012년부터 5년 단위로 이번과 같은 체계를 갖추었다. 이 조사는 현재 한국 기독교에 대한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한 영역에 대한 종단연구의 성격을 지닌 가장 유용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동안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조사 결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 조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종교인구는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20대와 30대의 비종교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종교 이탈률에서 개신교가 가장 높다. 교회 다니다가 떠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 추세 또한 꾸준하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믿음과 윤리적 신념도 약화하고 있다. 교회 다니지 않는 그리스도인, 이른바 ‘가나안성도’는 조사 때마다 올라서 이제 거의 30퍼센트에 다다른다. 2012년 조사에서 10.5퍼센트였는데, 2017년 조사에서는 23.3퍼센트, 이번 2023년 조사에서는 29.3퍼센트까지 치솟았다. 개신교인 10명 가운데 3명이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교회가 없는 셈이다. 비종교인들의 종교별 호감도에서 개신교는 불교(32.9%)와 천주교(29.9%)는 물론이고 유교(11.3%)보다도 낮은 6.8퍼센트가 나왔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개신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가가 이제는 종교로서의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유교나 토속 신앙이나 미신 취급받는 샤머니즘(3.9%) 사이에 위치했다는 결과는 쓰라리다. 그런데 이번 조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교회가 가능성과 방향성의 좌표를 찍을 수 있는 몇 가지 결과들이 있다. 이를 긍정적인 혹은 희망적인 결과라고 말하면 자기 위로의 정신 승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을 찾아서 교회의 사역을 보완하고 갱신하기 위한 지표로 본다면 유용하리라 본다. 이러한 차원에서 다음의 열 가지 결과에 주목한다. 1. 젊은 기독교: 29세 이하에서 개신교 인구는 불교와 천주교에 비해서 훨씬 높다. 20대의 개신교 인구는 11퍼센트로 불교(3.5%)보다는 3배, 천주교(4.5%)보다는 2배 이상이 높다. 30대에서도 개신교 인구는 14.6퍼센트인데, 이는 불교(4.7%), 천주교(4.8%)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물론 젊은 세대에서 종교인구와 개신교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는 젊은 층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친밀한 종교이다.2. 개종 의향 종교: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서 향후 개종하거나 믿고 싶은 종교로 개신교가 1순위로 나타났다(32.1%). 응답 표본이 91명에 불과하고, 천주교(30.2%)나 불교(29.7%)와 별 차이가 안 나지만, 조사 이래 처음으로 개종 의향 1순위 종교가 된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3. 가족 종교: 개신교는 가족 구성원들의 종교 일치도가 가장 높다. 개신교가 가족 종교화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외연 확장 없이 기존 개신교인들만의 재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지표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가족 내 유대감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이는 잠재성도 지닌다. 가족 사이에 종교가 다를 경우 신앙이 더욱 절실한 가족에게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다만, 개신교 부모들의 자녀 신앙교육 여부가 지난 조사에 비해서 하락한 것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4. 종교적 귀속성: 현재의 종교를 바꾸거나 포기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개신교인은 15.4퍼센트가 그러한 의향을 나타냈다. 불교인은 20.8퍼센트, 천주교는 16.2퍼센트로 그럴 의향이 있다고 했다. 개신교인이 가장 강한 종교 귀속성을 보인다. 이는 전반적인 신앙 활동에서 개신교인이 가장 높은 것과도 상응한다. 5. 신앙적 정체성: 신앙생활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도 개신교는 개인적인 요소보다는 종교적인 요소를 더 많이 선택한다.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응답은 개신교의 경우 35.9퍼센트인데, 불교는 2.7퍼센트, 천주교는 7.2퍼센트에 불과하다. 불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개신교와 뿌리가 같은 천주교와도 큰 차이가 난다. 구원의 확신에서도 개신교인은 66.9퍼센트가 ‘있다’고 대답했지만, 천주교는 47.7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6. 가나안성도의 귀환: 가나안성도가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 그들에게 교회 재출석 의향을 물었을 때, 그들의 42.9퍼센트가 다시 교회로 돌아올 마음이 있다고 답했다. 신앙단계가 높고, 소그룹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에 더욱 재출석 의향이 높게 나타났다. 가나안성도를 교회와 무관하거나, 분리된 자들로 단정 짓지 말자. 그들 중 상당수는 교회가 갱신된다면 돌아올 마음이 있다!7. 성경 공부와 봉사에 대한 관심 증가: 교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봉사활동이 22.9퍼센트, 성경공부 모임 참여가 22퍼센트로 가장 높게 나왔다. 성경공부 모임은 2017년보다 9.2퍼센트의 가파른 상승률을 보였다.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들도 2017년의 55.2퍼센트보다 대폭 감소한 27.7퍼센트로 나타났다. 향후 교회 활동에 대한 참여 의지도 이전 조사보다 크게 높아졌다. 8. 가족 외의 전도: 가족 종교화가 심화하는 가운데도, 전도를 한 개신교인들의 경우에는 전도 대상에서 가족보다 친구/선배, 이웃/친척의 비율이 높아졌다. 특히 20대와 30대에서 친구/선후배를 전도했다는 응답(20대=50.8%, 30대=54.4%)이 높게 나왔으며, 60세 이상은 이웃(45.6%)이 가장 높게 나왔다. 이는 연령별로 어떤 대상에게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전략적 포인트가 된다.9. 신앙의 촉매로서 소그룹: 여러 조사에서 소그룹 참여자들이 신앙생활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신앙 정체성과 소속감이 높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온다. 교회 재출석 의향이 있는 가나안성도에서도 과거 소그룹 경험자들이 많다. 개신교는 소그룹 소속 비율에서 다른 종교보다 높다. 소그룹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신앙 공동체의 유형인 것은 분명하다. 10. 기독교 이미지 형성의 주체: 비개신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주변 교인들의 언행’(30.1%)이 가장 높게 나왔다. ‘목회자/교회 지도자의 언행’(25.2%), ‘매스컴 보도’(17.9%)가 그다음이다.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진 책임을 목회자나 언론에만 돌릴 것이 아니다. 목회자와 교인 모두를 포함한 하나님 백성의 변화된 삶이 중요하다. 교회는 새로운 성품과 습관을 형성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열거한 희망을 찾기 위한 열 가지 조사 결과는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상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여전히 한국 교회에는 위기의 경종이 훨씬 선명하게 울린다. 그러나 반복되는 부정적 진단에 익숙해지고 관성이 생긴다면 더욱 위험하다. 전략 차원에서는, 우리의 약점과 잘못을 반성하고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우리 앞에 놓인 가능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희망을 찾아 나서는 걸음을 더욱 힘있게 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악인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 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악인이 아닌 ‘의인 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창 18:16-33). 한국 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를 지적하고 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의 효능을 삶으로, 공동체로 증언하는 겸손하고 신실한 하나님 백성들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예수님: 팀 켈러 추모 예식
by Sarah Eekhoff Zylstra
2023-08-17
캐시 켈러는 팀 켈러를 추모하기 위해 오늘 모인 2,000여 하객들에게 “오늘 예배가 보통 하는 그런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추모식에는 고인을 기리는 물건도, 또 켈러의 사진과 비디오도 없었다. 캐시가 말을 이었다. “이건 팀이 원한 방식입니다. 그는 다른 성도들도 이런 식으로 장례식을 하길 좋아했어요. 예, 장례식은 죽은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예, 맞아요. 그러나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진짜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는 고인이 지금 만나고 있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 그것이 바로 켈러 추모 예배에서 일어난 일이다. 뉴욕 시에 있는 리디머 장로교회의 설립자이자 The Gospel Coalition의 공동 설립자인 팀 켈러가 췌장암으로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흔두 살의 나이였다. “팀은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캐시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교회의 하나인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열린 90분 예배 중간 정도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추모 예배 참석은 배우 Max McLean, 여배우 Patricia Heaton,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David Brooks, 래퍼 Lecrae, 최근에 회심한 역사학자 Molly Worthen, 그리고 The Gospel Coalition 공동 설립자 돈 카슨을 포함한 초대 손님으로 한정되었다. 전 세계에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Redeemer City to City에서 방송하는 생중계로 동참했다.“팀은 St. Michael 묘지에 묻혔습니다. … 하지만 그곳은 워낙 커서 아무리 찾으려고 돌아다녀도 못 찾을 거예요.” 캐시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니까 무덤에 가려고 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끝부분을 보면, 누군가가 죽은 사람 기념비 앞에서 고인과 마음속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죽은 사람하고 대화한다고? 그 사람이 거기에 없어요. 그래서 그런 장면을 볼 때면 우리 부부는 항상 불편했습니다.”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신 팀은 지금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치유받고, 사랑받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하고, 더 행복합니다. 비석과 관련해서, 나는 다양한 성경 구절을 고려했다고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어요. …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알려드릴게요.”그녀가 이사야 25:6-9을 읽고 말했다. “이건 비석에 새겨놓을 게 아닙니다. 이걸 다 새기면 높이가 20피트는 될 거예요. 이 말씀은 단지 맥락일 뿐입니다.”그녀가 이사야 26장에서도 특히 주목한 건 1, 12, 19절이었다. “그 날이 오면, 노래를 부를 것이다. … 우리가 성취한 모든 일은 모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칠 것입니다.”이사야는 더 이상 죽음이나 눈물이 없는 미래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캐시가 말을 이었다. “팀은 이 말씀이 가리키는 바로 그 현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그 잔치에 함께 앉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팀이 지금 얼굴을 맞대고 경배하시는 하나님을 우리 모두 믿고 의지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사랑하는 아빠이어서 그녀는 28쪽짜리 프로그램으로 짜인 대본을 벗어나 장남과 막내아들에게 “조나단, 뭐 하고 싶은 말 있어?”라며 마이크를 넘겼다. 조나단은 할 말이 있었다. “아빠는 정말 뛰어난 격려자였습니다. 친구들과 가족 여러분, 슬프지만 그의 삶을 기억하면서 격려를 받읍시다. 제 아버지의 삶이야말로 이 세상과는 비교도 안 되는 더 크고 영원한 다른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조나단의 형제 데이비드는 기도하는 동안 눈물을 참기 위해 여러 번 멈춰야만 했다. 추모 예배에 참석한 모두의 감정이 가장 격해진 순간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상실감이 슬프지만 아버지가 지금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습니다.” 캐시와 조나단이 옆에 선 상태에서 데이비드가 기도를 이어갔다. “하나님, 슬픔에 잠긴 우리를 만나 주시고, 이 시간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희생의 사랑으로 당신께서 이미 죽음을 정복하셨음을 깨닫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서 당신이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실 때, 우리도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나를 본향으로 불러주소서.’” 복음에 찍힌 방점추모식 나머지는 순서에 따라서 성경과 C. S. 루이스 낭독, 켈러가 선택한 찬송가 부르기, 가족 친구인 샘 올베리의 강론으로 이어졌다. 올베리가 말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팀의 모든 자질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이 발견하는 바로 그 자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팀이 불완전했던 부분에서 그리스도는 항상 완전하셨습니다. 팀이 했던 말 중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을 하나 빌리자면, ‘예수는 참되고 훨씬 더 나은 팀 켈러이다’입니다. 따라서 팀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스도를 더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살았던 가장 강력한 한 사람인 예수가 우리를 섬기고 우리를 위해 죽기 위해 왔다고 올베리가 말했다.“팀은 예수님의 섬김을 받을 만큼 비범한 종이었습니다. 팀이 그토록 아름답게 우리를 섬길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의 섬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순간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섬기도록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다면, 지금, 바로 이 시간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섬기도록 하시겠습니까?”올베리의 복음주의 메시지의 어조는 복음주의 인물 중에서 마지막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한 사람의 장례식을 떠올리게 했다. 2018년에 빌리 그레이엄이 죽었다. 그가 죽기 전 가족과 친구들에게 남긴 메시지도 장례식에서 복음을 나누라는 것이었고, 2,000명 넘게 참석한 추모 예배에서는 그의 유언대로 복음이 선포되었다. 올베리는 TGC 인터뷰에서 말했다. “팀은 추모 예배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를 원한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했습니다.”목적이 분명한 예식복음 선포라는 똑같은 목적은 찬송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켈러는 지난 4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열린 예배에서 참석자들에게 “나는 모든 찬송가를 선택했고, 거기에는 순서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선택한 이유가 프로그램에 실렸다. “영원히 계시는 주 하나님은”은 하나님과 그의 속성에 관한 것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관한 것이고, “굳도다 그 기초”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삶에 관해서, 그리고 “Jesus Lives and So Shall I”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소망을 주기 위해서이다. “구원받은 천국의 성도들”은 세상의 수고로부터 쉼을 얻은 모든 성도가 언젠가는 다 다시 모일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켈러의 추도식은 말씀으로 넘쳤다. 개회와 축도 시에 낭독한 구절 외에도 요한복음 14장, 고린도전서 15장, 고린도후서 4장, 로마서 8장, 그리고 마가복음 10장을 리디머 교회 캠퍼스 네 곳의 리더들이 낭독했다. 모든 메시지가 다가올 부활을 가리킨다. “우리는 슬픕니다. 그러나 소망 속에서 슬퍼합니다.” 켈러의 차남이자 목사인 마이클 켈러가 예배를 마치면서 말했다. 그는 사실상 안내서에 인쇄된 D. L. 무디의 말을 반복한 것이다. “언젠가 여러분은 신문에서 East Northfield의 D. L.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절대로 그 말을 믿지 마세요! 신문에 부고가 실리는 그 순간, 나는 더 살아있을 겁니다. 나는 더 높이 올라가 있을 겁니다.” 마이클이 말을 이었다. “다가올 세상은 더 밝고 더 좋고 더 생생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서 그를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곳은 기쁨과 은혜, 사랑과 빛이 영원합니다. 이 사실로 나는 여러분이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지금 그리고 항상 이 진리가 당신을 지탱하도록 하십시오.”원제: All About Jesus: Tim Keller’s Memorial Service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팀 켈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by 고상섭
2023-08-11
팀 켈러가 그토록 사랑했던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이제 눈물이 없는 곳에서 기뻐할 팀 켈러를 생각하면 위로가 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그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존재로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겼다. 그와 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 몇 가지를 되돌아보며 그를 기억하고자 한다. 01 복음의 재발견02 문화의 상황화03 기독교 변증04 복음 생태계05 그리스도 중심 설교06 우상숭배와 복음07 정의와 자비 사역08 신앙과 직업09 통합적 사역10 팀 켈러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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