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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기독교교양

현대인을 위한 기독교가 될 수 있을까?

저자명 손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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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방영민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  출판사 죠이북스 / 작성일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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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대선을 지나며 언론에 등장하는 기독교와 교회의 뉴스가 성도의 마음을 복잡하고 부끄럽게 만들고 일반사회와 시민들까지 불편하고 황당하게 만든다. 기독교에 어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는 코로나시국에 예배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정부를 향해 여전히 기독교 핍박과 탄압이라고 부르짖는다. 의료와 보건과 공무를 위해 수고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지는 못할망정 우리를 공격하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어느 종교나 자신들이 믿는 교리와 신앙 내용이 보편적 진리가 되기를 원하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작금의 교회의 모습은 보편적 진리가 상실되고 상식이 실종된 상황이다. 일반 종교도 폭력성과 위해성이 있으면 사회악이 될 수 있는데 지금의 교회는 사회악이 되었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교가 된듯하다. 복음은 공공성을 추구하고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는데 복음이 아주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 현상은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는 신천지와도 손을 잡고 무속을 따르는 지도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기독교는 무엇인가? 거짓과 선동을 분별하지 못하고 이념에 사로잡힌 기독교는 바른 것인가? 새벽을 깨우겠다는 책으로 한 때 젊은층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어떤 목사는 청와대에 간첩들이 즐비하다며 거짓설교를 행하고 있다. 이런 설교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과연 일반인들은 이런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할지 필자는 부끄러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 책은 기독교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목사라고 말하기가 민망하고 성도라고 소개하기가 조심스러운 시절에 과연 기독교가 무엇인지 교회와 ‘특히’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교양을 쓰기 위해 약 3년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챕터를 쓸 때마다 많은 책을 읽고 소화하여 자신의 말로 설명하고 탁월한 통찰과 적절한 비유는 기독교를 더 빛나게 소개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글쓰기를 선호한다. 자신이 연구한 책을 소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펼쳐가는 것이다. 각주 달기에 급급하고 인용하고 언급하는 것으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화된 것을 검은색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정도의 준비와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그것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그것도 기독교교양을 새롭게 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원인 분석과 대안1- 반지성주의를 극복하다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의 자화상과 청사진을 제시한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내용을 대화하고 공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대 기독교의 가장 문제 중 하나는 반지성주의와 무속적인 기독교일 것이다. 기독교는 역사를 거치며 엄밀한 체계와 구성을 갖춘 탄탄한 진리인데 지식이 없는 종교가 된듯하다. 지성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지성주의의 흐름은 합리와 이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종교처럼 보인다.


저자는 기독교가 이성과 과학을 무시하지 않고 역사와 배경과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소개한다. ‘계시’를 설명하는 면에 있어서도 왜 특별계시만 교회역사적으로 강조되었는지 초대교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와의 조화를 추구하고 텍스트의 강조와 함께 콘텍스트의 필요성도 적절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저자의 장점은 문제를 발견했다면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만 잘 읽어도 우리의 기독교가 지성과 이성을 활용하는 지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기독교가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보편진리를 소개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 내면의 변화와 구원의 감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독교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들과의 거리를 충분히 좁힐 수 있다.


원인 분석과 대안2-복음을 드러내다


기독교교양은 독자들에게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들려준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종교이다. 우리는 기독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유일한 진리라 믿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만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기독교는 타종교를 향해 배척하고 공격하고 파괴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정신과 사상이 아니다. 나와 믿는 것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향해 지옥에 가라고 저주할 수 없고 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와 타종교의 비교를 통해서 이러한 복음의 성격도 잘 설명한다.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단지 죽고 난 이후 저 세상에서만 눈물과 슬픔 없이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는 보증수표를 주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부를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사람들을 그런 세속적인 것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존재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고 그 거듭난 사람의 지성과 사상의 확장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퍼져가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독교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종교가 되었고 사회에서 혐오하는 집단이 되었다. 이제는 나는 정통교리를 믿는 교회를 다니기에 정통신앙인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복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것인데 복음이 하나님을 이용하고 타인을 미워하는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 복음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유를 주는데 사람들을 질리게 하는 무서운 독약처럼 비춰진다.


기독교가 가진 놀라운 능력은 죄를 해결하고 모든 것에서 구원한다는 것인데 언제부턴가 죄를 짓고 있고 고통을 주고 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복된 소식인데 복음이 슬픈 소식이 되었다. 복음은 우리의 영혼을 부요케 하는 것인데 우리의 물질을 부요케 해준다고 변질되었다. 기독교의 신비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알아가고 나를 변화시켜가는 것인데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다.


원인 분석과 대안3-교회주의를 극복하다


기독교에 문제 중 하나는 교회가 거의 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전은 이미 이 땅에서 사라졌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모신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성전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성전이라 신성시 한다. 교회는 한 성도이고 그가 가는 곳이 예배 처소가 될 수 있음에도 교회라고 모이는 집단을 절대화한다. 물론 이 공간이 가지는 특별함과 역할과 기능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중개자로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는 공동체가 되어야지 교회집단의 이익과 체제를 위한 곳으로 이해하면 안될 것이다. 만약 교회라는 곳을 체제 유지와 집단 존속을 위한 것을 목표로 삼으면 기업화되고 대형화되어 세상을 따라가는 곳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정신만이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해야 되는데 교회가 권력화 되면 교회의 말이 더 권위를 갖게 될 것이고 교회 지도자가 하는 말이 법처럼 여겨질 것이다.


교회는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고 자유를 침범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을 돕고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도록 기도해주고 주어진 자유를 주님을 위해 아름답게 살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그러나 교회가 세속화의 물결을 막지 못하고 대기업이 되어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인간의 마음을 만지지 못하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곳이 되었다. 기도도 일을 위해 체제를 위해 하는 기도의 변질을 보게 된다. 예수님이 성전을 엎으신 모습을 똑같이 재현하고 있지는 않은가.


역사적으로 전체주의는 인간을 도구화하고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했다. 체제를 위해서라면 어떤 선동과 차별과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그 안에 녹아져 있는 정신은 사탄의 정신이고 자신과 반대되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허무는 정신이다. 교회가 전체주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교회가 보편적인 원리와 일반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만을 위한 곳이 된다면 이 사회는 교회를 혐오하게 될 것이다.


결론


오늘날 교회가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반사회적인 집단이 되었다. 대선을 거치며 일반인들에게 기독교는 혐오스러운 곳이 되지 않았을까. 아무런 매력과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무엇에 사로잡히고 중독된 모습처럼 보인다. 내가 믿는 기독교는 구원과 감동과 감격이 넘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인데 언제부턴가 ‘사랑’이 없고 폭력과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예수님의 삶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섬기는 것이었는데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잃게 되었다.


교회는 서로의 필요와 종교성을 채워주기 위해 인간에 의해 세워진 곳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곳으로 진리가 역사하여 인간을 구원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 또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곳이다. 한 개인과 집단의 사적인 단체가 아니라 공공성을 가지고 있으니 사회의 유익한 공동체가 되어야한다. 누구나 올 수 있고 소속되어 목적이 있는 인생이 되고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곳이 되어야한다.


우리의 복음은 결코 이기적이고 자아중심적이지 않다. 복음은 나와 다른 타인을 적화시키지 않으며 공공성을 가지고 공동선을 추구한다. 교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세력을 형성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곳이고 그 나라는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곳이니 성도는 구원을 위한 발걸음을 여기에 맞추어 걸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차별하고 배제하고 혐오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이 북 리뷰는 ‘크리스찬북뉴스’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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