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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주어진 몫에 즐거움이 있다
2020-12-15
전도서 3장 16-22절16.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여전히 살아있는 정의악도 쓰임새가 있다. 악이 정의를 빛나게 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세상에서 ‘악’을 목격한다(16절). 가장 정의가 빛을 발해야 할 재판정에서 악이 행해지고 있었다.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자부하는 모든 곳에서 어김없이 악이 득세하고 있었다. 죄를 짓고, 양심을 속이고 사는 사람들이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잘살고 있다. 반대로 의인들은 억울한 일들을 당하는 부조리한 현실이다. 그것을 보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도자는 이내 소망을 품으며 마음으로 고백한다.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17절).악한 권력에 의해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세상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옳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며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실 것이다(18절상). 여기 ‘시험하다’란 말은 테스트가 아니라 ‘깨끗하게 하다’는 뜻이다. 금속을 펄펄 끓고 있는 도가니 속에 넣어 가열함으로써 불순물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을 가리킨다. 재판정에서조차 악이 득세하는 현실의 부조리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믿고 말씀을 따라 의의 삶을 살 것이냐? 어차피 인생은 불의로 가득하니 그들처럼 살 것이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그래도 하나님의 정의는 살아 있다고 믿으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가 참 신앙인이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의인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실 것이다.그래도 정의를 저버리고 불의를 택하는 사람이 있다. 악에 편승하여 그것이 주는 달콤함을 더 누려보려는 자들이 있다. 전도자는 그들을 깨끗하게 걸러내실 것을 믿었다. 그들 스스로가 짐승과 다름없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임을 바라보았다(18절하). 하나님의 심판이 연기되고 악한 자들이 세상의 주인처럼 산다. 그들이 당장 승리하는 듯 보여도 악의 편에 서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대세이고 세상의 흐름이라 해도 악은 악일뿐이고 악인은 반드시 심판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나는 달콤하게 다가오는 악의 유혹 앞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내 일에 즐거움이 있다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인생도 짐승처럼 결국 죽는 존재이기 때문이다(19절). 전도자는 짐승과 인간을 비교함으로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한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이 세상에 악을 허용하신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짐승과 다름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다.인생은 죽음 앞에서 모두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다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20절). 전도자가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 수없는 경고 앞에서도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것을 통해 인간이 죄악 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대면하길 원하신다. 의로우신 하나님만이, 인생이 참으로 의지하고 경외할 분이심을 깨닫기를 바라신다.그렇다면 이 악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전도자는 이미 사람이 오늘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선언했다(2:24). 그래서 다시 강조한다. 사람이 자기 일을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22절).여기의 ‘일’은 ‘상급’을 말한다. 우리가 해 아래서 행하는 일들은 헛되다. 인간도 짐승처럼 똑같이 흙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온갖 악한 것들이 득세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는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삶 가운데서도 참된 즐거움을 누리는 길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상급’을 주신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나는 오늘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성실함으로 그 놀라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상규 목사(The은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때를 알면 다른 삶이 온다
2020-12-14
전도서 3장 1-15절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의 타이밍모든 일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다. 해 아래 모든 것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고 모든 목적에는 때가 있다(1절).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말이다. “시간이 있다”는 것은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그러나 그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행동의 제한성을 보여준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2절상). 인간의 삶은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다는 것이다. 식물도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2절하).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히브리 개념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먼저, ‘크로노스(Chronos)’다. 이것은 연대기적 시간이다. 2020년 12월 14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연대기적 시간, 크로노스라고 한다.또 하나는 ‘카이로스(Kairos)’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시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역사가 현실화되는 시간을 말한다. 예수님이 죽으셔서 무덤에 계셨던 사흘이란 시간은 그냥 똑같은 크로노스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시는 결정적인 시간,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시간이 있었다. 이것이 카이로스다.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은 그냥 벌어지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도 시간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때가 되면 완성의 날이 온다. 그 시간이 카이로스다.열심히 수고해도 아무 유익이 없는 것 같다(9절). 내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고 모든 것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카이로스라는 결정적인 순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크로노스의 시간을 잘 보낸 사람들에게 온다.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카이로스의 시간, 완성의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는 굉장히 힘든 시간이 온다. 그것을 견디면서 자신의 일들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크로노스가 끝나고 카이로스가 온다. 나는 하나님의 시간이 있음을 믿고 있는가? 오늘의 힘든 현실을 잘 견디고 있는가?하나님의 시간은 기다림을 통해 옴기다림이 미래를 결정한다. 이는 기다림의 시간이 사람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생들을 수고하고 애쓰게 하신다(10절). 왜 그럴까? 힘이 넘치면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불행은 힘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힘이 넘칠 때 일어난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그분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기다림이란 나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의 차이를 깨닫는 시간이다. 이때는 수동태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왕의 왕이시지만 십자가 앞에서는 철저히 수동태가 되셨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다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대로 자신의 몸을 내어놓으셨다. 하나님이 정해놓은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약속과 거리가 멀고,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이때 절망하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신뢰이기 때문이다.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1절상).” 여기에 전도자가 하나님에 대해 깨달은 중요한 세 구절이 나온다. 먼저 ‘지으시되’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행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행하신다. 또 하나는 ‘때를 따라 아름답게’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아름답게’는 ‘적절하게 하셨다’, ‘정확하게 그 위치에 놓았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가장 적절하게 행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마지막 중요한 구절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다. ‘시간’이라는 인간이 행동하고 살아가는 제한된 영역을 넘어, 인간이 알 수 없는 더 넓은 영역이 있다. 바로 ‘영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시간을 뛰어넘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허무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하나님의 때를 알면 어제와 다른 내일, 영원한 삶이 오기 때문이다.전도자는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이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것을 깨달았다(14절).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인생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도록 하셨을까?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할 때 하나님은 준비하신 가장 복된 은혜의 시간이 온다는 것을 보여주신다.나 자신은 답답하고 허무한 현실 가운데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시간을 신뢰하며 기다리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상규 목사(The은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즐거움에도 주인이 있다
2020-12-13
전도서 2장 18-26절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내일을 모르는 슬픔끝이 있음을 아는 것이 축복이다. 모든 일에 끝이 있음을 알면 겸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엔 끝이 없다.” 자기들이 끝없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유혹하는 한 케이블TV의 로고다. 그러나 아무리 즐거운 일도 끝이 있다. 쾌락의 무대가 끝나고 커튼이 내려가는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허무감은 그 시간이 즐거울수록 더 진하다.“내가 해 아래서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한다”(18절상). 평생을 수고하고 그 대가로 즐거움을 누린 왕의 고백이다. ‘수고’라는 말 자체에 ‘고난’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고난을 견디며 누구보다 애쓰고 수고하여 즐거움의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먼저는 자신이 수고하여 이룬 것을 뒤를 이을 자에게 남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18절하). 수고는 분명 자신이 했는데, 그 수고의 열매는 자기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수고하지 않은 자가 누리게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자신의 유산을 이어 받을 자가 지혜자인지 우매자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19절). 지혜자라면 다행이지만, 우매한 자가 이 엄청난 부를 물려받게 되면 그 많은 재산은 오히려 그에게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것이다.많은 유산을 물려주었는데 자식이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을 확장하다가 망해먹는 일을 우리는 주위에서 수없이 목격한다. 이러한 인생의 부조리를 깨달은 전도자는 마음에 크게 실망한다(20절).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고 고백한다(23절). 내일을 모르는 슬픔이다. 밤에도 쉬지 않고 성취를 이루었지만, 이것조차 헛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밤잠 설쳐가며 정신없이 일하지만, 그것이 해 아래서의 삶만을 위한 것이라면 결국 ‘슬픔’ 하나 건지려는 헛수고일 뿐이다. 오늘 내가 열심을 내어 수고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슬픔’을 건지려는 것인가? 영원한 ‘가치’를 건지려는 것인가?오늘을 누리는 기쁨오늘이 선물임을 아는 것이 축복이다. 오늘이 선물임을 알면 가치 있는 하루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모르는 슬픔에 대해 탄식한 전도자는 그 자리에서 절망하고 주저앉지 않았다. 참된 기쁨, 진정한 즐거움에도 주인이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수고하고 애써서 얻은 즐거움을 살아있는 오늘 누리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없다(24절).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생 애써 일하고 수고만 하다가 죽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전도자는 우리에게 힘주어 강조한다. 인간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결국 먹고 마시는 일, 자신의 노동이나 수고의 정당한 대가로 주어지는 즐거움이 분명 존재한단다. 세상에서 이것보다 나은 것은 없단다. 왜 그런가?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기 때문이다.정당하게 수고하여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행복이다. 그것에 만족하며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사는 것은 분명히 오늘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그것마저도 헛되다는 것을 알고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26절). 즐거움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고, 즐거움에도 주인이 있음을 알라는 교훈이다.즐거움 자체가 목적이 되면 언제든지 그 즐거움이 괴로움과 허무로 바뀔 수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진리를 앎으로 누리는 자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누리는 기쁨만이 참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오늘 내가 누리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인가?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상규 목사(The은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죽음을 이기는 지혜를 의지하라!
2020-12-12
전도서 2장 12–17절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5.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죽음 앞에서 마주하는 지혜의 무익함세상의 어떤 지혜도 죽음 앞에서는 무익하다. 물론 지혜는 인생에 여러 가지 유익을 준다. 마이클 이튼(Michael A. Eaton)은 전도서에 기록된 지혜의 유익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지혜를 소유하는 것은 인생의 성공을 허락한다(전 10:10). 또한 생명을 보호하며(전 7:12), 힘(전 7:18)과 기쁨(전 8:1)을 준다. 인간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아 인생을 살아가며(전 2:3), 심지어 위기에 처한 도시를 회복하는 정치에도 영향을 준다(전9:15). 그러므로 지혜와 우매함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와 같다(13절).지혜는 빛과 같다. 지혜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다. 심지어 곤경에 빠질 때라도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매자는 항상 그들에게 닥치는 일에 놀랄 뿐이다(Duane A. Garrett). 그들은 지혜자와 달리 세상을 보는 눈이 없다. 어둠 속에 헤매는 것이 당연하다(14절).그러나 지혜자와 우매자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당하는 일(14절)', 즉 '죽음'이 그것이다. 죽음은 지혜자와 우매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지막 적인 죽음은 일류 대학의 박사 학위도 막을 수 없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리고 빨리 죽은 자들을 잊어버린다. 잊히는 것은 지혜자와 우매자 모두 동일하다(16절).그렇다면 지혜가 주는 유익이 무엇인가? 이것이 전도자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 질문이다. 아무리 지혜가 수많은 유익을 준다고 하여도, 죽음 앞에서는 무익할 뿐이다(15절). 전도자는 이러한 허무 앞에서 삶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17절). 삶은 그야말로 고통이며 헛된 것이다. 죽음의 힘은 모든 것을 공허하게 만든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마주한 절망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다른 지혜가 필요하다. '해 아래'에 있는 지혜가 아닌, 죽음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지혜 말이다.죽음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지혜오직 하나님의 지혜가 죽음을 이기고 생명으로 인도한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공허를 가득 채우는 영원한 생명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지혜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역설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다(고전 2:6-10). 우리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롬 5:17). 그래서 한 시편 기자는 이렇게 탄식한다.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시 89:48).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이 진리 안에서 우리는 인생의 절망을 이길 수 있다. 끝이 없이 밀려오는 삶에 대한 부정과 허무의 수렁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상의 지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지혜, 그리스도 안에 있다.당신은 어떤 지혜를 의지할 것인가? 죽음을 이길 수 없는 무익한 지혜인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지혜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만족을 위한 방황의 끝
2020-12-11
전도서 2장 1-11절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3.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참된 만족을 위한 방황이 세상의 부실한 낙은 결코 마음을 채워 줄 수 없다(알렉시 드 토크빌). 이것이 전도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발견한 진리다. 그는 죽음이 주는 인생의 허무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길 원했다. 과연 무엇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참된 만족을 줄 수 있는가?(1절, 3절) 그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했다. 일의 성취, 더 많은 소유, 육체적 쾌락이 그것이다.우선 그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4절). 사업의 확장이 만족을 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집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었다. 자신을 위해 동산과 과원을 만들어 각종 열매 맺는 나무를 심었다(5절). 자신을 위해 연못을 만들어 삼림에 물을 공급했다(6절).이것이 아니라면 돈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그 누구보다 많은 가축을 소유했고 엄청난 귀금속을 쌓아둘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7-8절). 이 또한 아니라면, 육체적 쾌락이 답이 될까?그에게는 자신의 정서를 만족하게 해 줄 사람이 있었다. 또한, 많은 여성과 성적인 만족을 탐닉했다(8절). 그는 참된 만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그가 못 할 일은 없었다(10절).그러나 그는 그 어디에서도 참된 만족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제임스 패커의 말처럼, “쾌락의 종류와 횟수를 늘릴수록 오히려 기쁨은 감소하게 된다. 내적 공허함이 주는 심적 고통은 더욱 심해지며 아무런 만족도 느낄 수 없게 된다.”이 진리를 깨달은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1절).” 그는 이 땅에서 경험하는 웃음과 즐거움이 ‘미친 것’이며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2절). 결국, 참된 만족을 위한 탐색은 끝이 없는 방황만 선사할 뿐이다.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시도는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는 무익한 것이다(11절).웃을 때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다(잠 14:13).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으로는 우리의 구멍 난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만족인생의 갈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된다. G. K. 체스터턴은 “창녀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예외 없이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갈증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만족을 위한 방황의 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경험한 우주적 갈증으로 인해 우리의 갈증이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당신은 참된 만족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는가? 육체적 즐거움이 지닌 한계를 알면서도 여전히 쾌락을 문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인생의 의미는 무엇으로 발견되는가?
2020-12-10
전도서 1장 12–18절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세속적 지혜가 지닌 한계세속적 지혜는 인간이 지닌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모든 인생이 피할 수 없는 질문은 과연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 즉 삶의 목적을 향한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는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학식을 가진 전도자도 온전히 답할 수 없었다(16절). 그는 자신의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이에 대한 답을 얻길 원했으나, 결국 그 모든 시도가 '헛되다'고 말한다(14절). 이는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아무리 애를 써도 세속적 지혜를 통해서는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다”(15절). 즉, 세속적 지혜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우리는 한 과학 작가의 고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에 생명이 출현하게 된 동기를 다양한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표준이론'은 없다. 생명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생물물리학이나 생화학과 달리, 생명 자체는 범접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인간의 의식도 지금의 지식수준으로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불가사의다."(짐 배것) 그는 단지 이 비밀이 언젠가 풀릴 것이라는 신념을 안고 살아갈 뿐이다.그러므로 세속적 지혜는 우리를 영원불변의 진리로 이끌어 주지 못한다. 이 세상 지혜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다(고전 3:18).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지혜인생의 의미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지혜를 통해 발견된다. 세속적 지혜가 지닌 한계로 말미암아 우리는 허무와 절망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삶을 계획하고 목표를 정하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 방법을 주셨다.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말한다(잠1:7; 9:10). 여기서 말하는 '경외'는 "몸을 사리는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의 사랑 앞에 품는 외경과 경이의 태도다"(팀 켈러). 즉, 하나님과 맺은 생생한 사랑의 관계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이 놀라운 관계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온전히 실현된다.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이다(고전 1:24)."결국 지혜로워지는 주된 길은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으로 인해 마음이 밝아진다. 이것은 지위나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팀 켈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인생의 시작을 알게 된다. 우리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이처럼 세속적 지혜에게 감추어진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드러났다(골 1:26). 인생의 문제를 마주할 때 여전히 세속적 지혜를 의지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지혜를 발견했다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다윗의 아들 전도자의 말씀
2020-12-09
전도서 1장 1-11절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모든 것이 헛되다사람이 살면서 얻는 유익은 아무것도 없다. 전도자(코헬렛트, qoheleth)는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주제로 본문을 시작한다. ‘헛되다’로 번역된 원어 ‘헤벨’은 ‘허무함’, ‘숨’을 말한다. 이는 비현실적이고 일시적이며 덧없는 존재와 같은 개념을 포함한다. 즉 전도자에게 있어서 영원토록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을 살면서 전도서의 저자처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전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이다. 이것은 사람이 살면서 얻는 유익과 보람이 아무것도 없다는 내용을 인간적 지혜의 차원과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정말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을까?자연의 이치를 보면 땅은 영원히 있다(4절). 해는 뜨고 진다(5절).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간다.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6절).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한다.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른다(7절). 즉 해와 바람과 강물은 같은 주기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보기에는 모든 사물이 움직이는 것 같고 변화하는 것 같지만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변하지 않는 땅과 자연에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왔다 가는 것이다.나의 인생은 헛된 삶인가? 그렇지 않은가? 자연의 이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새로운 것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전도자가 자연의 이치를 본 결과는 어떠한가?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한다(8절). 즉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지루할 뿐이며 절대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왜 만족함을 느끼지 못할까? 그리고 전도자는 역사의 무의함을 말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9절). 즉 과거나 미래 사이의 뚜렷한 차이점이 없고, 미래는 과거를 반복하고, 실상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10절).” 이것에 의하면 새로운 것이 없고, 영원한 것도 없으며, 더욱이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새 것은 없으며 오래전의 일이 계속되어 반복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많은 것을 누렸던 그가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11절).”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삿 2:7). 그러나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삿 2:10). 즉 장래 세대가 이전 세대들을 기억하지 못했다.결론적으로, 인생은 끝없이 반복되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인생은 헛된 것이다. 이것이 전도자, 곧 코헬레트의 관점이다. 나는 이 관점에 동의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학섭 목사(영광스러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바울의 개인적인 당부와 끝인사
2020-12-08
디모데후서 4장 9-22절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어떤 관계, 어떤 사람주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로마 옥중에 있는 자신의 상황을 알리며 신속한 로마 방문을 요청하고 있다(9절). ‘너는 어서 속히’ 곧 ‘서둘러’, ‘모든 노력을 기울여’ 어서 속히 자신에게 오기를 원했다. 또한, 방문할 때 마가를 대동하여 올 것(11절)과 드로아가보의 집에서 겉옷과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부탁한다(13절).바울은 자신이 처음 변론할 때에 자신과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다 자신을 버렸다고 말한다(16절).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나의 편에 서서 나를 도와준 사람이 있는가? 어떠한 상황에도 나를 믿고, 신뢰하며,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인가? 바울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허물(책임을, 기록을)을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조심해야 할 사람(14-15절), 보살펴야 할 사람(20절), 함께 할 동료들에 대해 안부를 전한다.그는 엄청난 반대에 맞서서 믿음을 변호해야 하는 위기의 때에, 실제로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자신의 곁에 서서 자신에게 힘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 주님이 자신을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게 하셨다고 말한다(17절). 이것은 바울이 시편 시인의 고백이 자신과 동일한 고백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시 22:21).”나에게 있어 시편 저자의 고백과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수 있는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함을 신뢰하는가?마지막 인사하나님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도널드 거스리에 의하면, “바울은 몇몇 동역자들에게 디모데를 통해 인사를 전하며 다른 이들에 대한 소식을 알린다. 이전에 바울서신에 소개되지 않았던 몇몇 사람들이 디모데에게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축도가 고별 서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다.” 즉 바울은 동역자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축도를 통하여 서신의 마무리를 하게 된다.브리스가 혹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행18:2), 오네시보로(딤후 1:16-18), 에라스도(행19:22), 드로비모(행 20:1-5; 21:29)는 그래도 알려진 인물들이다. 하지만 으블로, 부데와 리노, 그라우디아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은 아니다. 무명의 인물들이지만 바울의 복음전도에 함께 동역한 인물들로 바울에게 문안 인사를 받게 된다. 성경에는 이렇게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복음을 위해 살아간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바울의 축도는 다음과 같다. “주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바라며,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들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즉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디모데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며, 주님의 은혜가 모두에게 함께 있기를 축복한다. 이렇게 바울은 사랑하는 동역자들을 위해 서신의 마지막에 축도를 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바울의 이러한 축도의 표현은 다른 서신에서도 나타난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살후 3:16-18).”나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동역자들이 있는가? 그들을 위해서 오늘 무슨 기도를 하면 좋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학섭 목사(영광스러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하라
2020-12-07
디모데후서 4장 1-8절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전도자의 직무전도자의 일을 하며 주어진 직무를 다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면, 교회 안의 일부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끌어들일 것이며, 진리를 듣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다(3-4절). 그러한 사람들에 맞서 디모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혹시 그런 시대는 아닌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바울은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1절). 즉 바울은 심판자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염두해 둔다. 그리하여 명령형 동사를 사용하여, 디모데에게 전도자의 일을 하며 직무를 완수하라고 말한다. 이 명령형 동사는 다음과 같다.1) 말씀을 전파하라(케뤽손). 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에피스테티). 3) 경책하라(에렉손).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4) 경계하라(에피티메손). 5) 권하라(파라칼레손). 6) 모든 일에 신중하라(네페). 7) 고난을 받으라(카코파테손). 8) 전도자의 일을 하라(포이에손). 9) 직무를 다하라(프레로포테손). 이와 같은 아홉 가지 전도자의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의 직무이다. 나는 이러한 직무가 나의 일이라고 믿는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바울의 믿음의 경주우리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다. 바울은 전제와 같이 자신이 벌써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말한다(6절). 여기서 ‘전제’는 구약 시대에 행해진 제사 방법 중 하나로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말한다(출 29:40-41; 민 15:5). 신약에서는 같은 의미로 관제로 번역되었고,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바치겠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딤후 4:6; 빌 2:17).그는 자신의 평생의 삶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한 싸움을 싸웠고(톤 카론 아고나), 달려갈 길을 마쳤으며(톤 드로몬 테테레카), 믿음을 지켰다(텐 피스틴 테테레카). 여기에 사용된 동사 세 개는 모두 현재 완료형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와 같이 말하며 자신을 경주를 거의 마쳐가는 경주자에 비교한다.바울은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믿음의 경주를 마친 자신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호 테스 디카이오쉬네스 스테파노스)이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스테파노스’는 유대인들이 나무나 꽃으로 엮어서 절기나 결혼식 때 머리에 쓰고 기쁨과 명예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사28:1). 즉 하나님이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들을 위해‘의’라는 꽃으로 만든 면류관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기 원하신다.나의 믿음의 경주는 어떠한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가? 잘 달리고 있는가? 믿음을 지키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학섭 목사(영광스러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믿음의 용기를 가지라!
2020-12-06
디모데후서 3장 10-17절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신앙적 본이 되어야 함복음사역자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10절과 11절은 사도바울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두절 밖에 안 되는 짧은 구절이지만 그 속에는 사도바울의 30여 년간 주를 위해 살았던 삶이 묻어나오고 있다. 복음전도자로서 그의 삶은 우리가 그를 믿음의 본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해 보이지는 않는다.그는 모진 고통을 당했고, 많은 매를 맞기도 했고, 심지어 감옥에 갇혀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신앙적 모델이 되어 주었다. 실제로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1)”고 말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였다.신앙은 말과 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인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고 보여야 한다. 사도바울처럼 신앙적 본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나는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 삶에 흘러갈 때 신앙적인 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십자가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가?진리를 거스르는 믿음의 용기를 가져야 함13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세상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 말씀은 이천년 전의 상황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실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해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는 말씀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그런데 여기서 악하다는 말씀은 도덕적으로 악한 것을 넘어서 악과 선의 기준이 되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의 근거로 삼고 세상을 판단할 때, 세상은 점점 더 그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 멀리멀리 간다는 것이다.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와 같다. 불륜을 저질러도 감옥에 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세상의 사람들이 다 맞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다면 아니라 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갖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걸어가셨던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도록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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