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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재발견: 루틴의 영성이 필요한 시대
by 김선일2022-02-26

습관이 무의식적 반복을 포함한다면, 루틴은 구체적인 목적과 방향을 갖고 삶을 통제하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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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일상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부쩍 높아졌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자기만의 시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일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과제가 강요되었다. 우리의 삶을 성장시키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나 경험이 아니라 하루하루 반복되는 습관과 실천이라는 깨달음도 덤으로 주어졌다. 슈퍼개인의 시대는 이제 삶의 질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한다. 자기 발전을 위한 시간과 습관 관리는 진정한 슈퍼개인이 되는 과정이다. 김난도와 공저자들은 이를 가리켜 ‘바른생활 루틴이’라고 부른다(트렌드 코리아 2022, 327).


루틴 열풍


루틴(routine)은 습관과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둘 다 규칙적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하지만, 습관이 무의식적 반복을 포함한다면, 루틴은 구체적인 목적과 방향을 갖고 삶을 통제하는 의식적인 노력이다(트렌드 코리아 2022, 333). 바른생활을 위한 루틴으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셀프바인딩, 즉 자기 묶기이다. 셀프바인딩이란 다이어트나 공부 등의 목표를 세워 놓고, 중도에 이탈하지 않도록 벌금이나 보상 체계를 세우거나 타이머를 통한 시간 관리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각성시키는 방식이다.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카카오 프로젝트 100’은 스스로 계획(책 읽기, 일기 쓰기, 운동하기 등 무한히 다양하다)을 세워 놓고 일정 금액을 예치해 놓은 다음 일정대로 실천하면 예치금을 돌려받지만, 계획된 과제를 제시간에 못 마친 경우에는 금액을 차감하는 형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매일의 과제를 수행하면 선생님이 도장을 찍어 주듯이, 성인들도 자신에게 필요한 독서나 취미, 자기계발의 상황을 감독하고 인증해 주는 프로그램과 앱을 통해서 도장을 받는 스탬핑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열’정을 ‘품’은 ‘타’이머라는 의미의 ‘열품타’ 앱이나 ‘스터디윗미’(Study with Me) 앱은 가상 독서실 역할을 한다. 이러한 셀프바인딩과 스탬핑 방식은 회사에서 직원들의 업무를 측정하는 데도 사용된다. 재택 근무 시대에 직원들의 인터넷 방문과 근무 여부, 집중도를 체크하는 보스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발과 논란도 있지만, 직원들은 개인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러한 실질 업무 감독 프로그램에 대해서 의외로 수용성을 보인다고 한다.


온라인 리추얼 


바른생활 루틴이 습관화되고 정례화되면 리추얼(ritual) 곧 의례로 발전한다. 원래 의례는 한 집단이나 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하기 위해서 통과하게 하는 특별한 절차를 말한다. 예를 들어, 국가주의 시대에 우리는 국기의 게양식과 하강식을 통해서 전 국민이 날마다 의례를 경험했다. 학교에서도 모든 중요한 행사에서는 국민의례를 먼저 가졌다. 제사는 한 집안의 가장 대표적인 의례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의례의 효력이 약해지고 있는데, 인간은 의례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는 동기부여를 얻는다. 이러한 의례의 결핍 지점에 개인의 자기 계발을 위한 온라인 리츄얼이 파고들고 있다. 예를 들어, ‘밑미’(MeetMe)라는 리츄얼 메이커는 글쓰기, 생각정리, 차마시기, 피아노 연주기록 같이 60개가 넘는 다양한 유료 리추얼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신청을 받는다. 밑미의 홈페이지를 보면 스스로를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타인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고유하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리추얼이라는 용어가 온라인에서 개인의 차원으로 사용되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회고를 위한 기록


이와 같은 루틴의 개발과 통제는 궁극적으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자신을 보듬으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큰 성과나 이벤트가 없어도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성찰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기록은 루틴의 중요한 결과물이 된다. 자신을 돋보이게 해서 시선을 모으려는 브이로그가 아니라, 진정성 있게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공간인 블로그가 다시금 중요해지고 있다. 블로그는 개인의 회고와 정리를 위한 공간이면서 상호 방문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경험, 생각, 감정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유력한 공간이다. 이러한 기록은 블로그, 또는 다이어리를 통해서 서사와 비하인드 스토리의 형식으로 남겨지고 전달된다(2022 트렌드 노트, 166),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그냥 하지 말라’에서 앞으로는 우리가 남긴 모든 종류의 기록들이 그 사람을 보여주고 알려주는 메시지이자 브랜드가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상의 복음


위와 같은 일상의 돌봄과 개발은 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에서도 발견된다. 종교개혁 운동은 로마가톨릭의 성직주의적 수도원적 영성 추구와는 평범한 일상에서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고자 한다. 청교도들은 주일 이후에 소그룹으로 모여서 주일의 말씀을 요약하고 각자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집담회’(conference)를 실천하며 영적 성장을 도모하였다. 리처드 백스터는 몇 년간 설교를 듣고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집담회를 통해서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말씀에 따르는 삶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고 술회하기도 했다(Joanne Jung, Godly Conversation : Rediscovering the Puritan Practice of Conference). 존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도 속회, 신도회, 연합신도회 등의 조직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성화의 삶으로 나아가도록 상호 격려하고 돌보아 주는 일상의 영적 관리 체계를 갖추었다. 


교회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체화시키는 성스러운 루틴을 격려하는 곳이기도 하다. 큐티(QT)와 신앙의 필요에 따른 소그룹은 영적 루틴 관리의 장소이자 만남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미 교회는 바른생활 루틴이를 양산하는 경험과 기회를 더 많이 제공했었고,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자신의 일상을 의미 있게 관리하고 성찰하는 일은 오롯이 혼자만의 역량으로 가능하지 않다. 루틴 관리와 회고적 기록이 자기의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기 위함이라면, 이는 더욱 상호 책임감 있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건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렇게 일상에 대한 상호책임의 공동체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종교적인 목적의 공동체뿐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영역인 취미, 배움, 봉사를 위해서도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와 소그룹들이 보완된다면 선교적 접촉의 영역도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개신교회의 전통은 아니지만, 예수회의 창시자 성 이그나티우스가 제안한 ‘성찰의 기도’(prayer of examen)는 일상의 영적 회고와 성찰을 위해서 우리도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자원이다. 성찰의 기도는 하루를 끝내기 전에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오늘의 모든 경험과 사건들을 회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하루의 회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기억하며 감사하기, 2)하루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기, 그리고 3)하나님의 부르심과 그의 기뻐하시는 요구대로 살지 못한 것을 고백하기이다. 이 기도의 취지는 우리의 단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점검 없이 보내지 말자는 것이다. 어떠한 습관과 루틴이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매일을 돌아보고 성령의 위로와 능력을 경험하는 일상이야말로 가장 참되고 능력 있는 자아성장의 플랫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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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습관과 루틴이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매일을 돌아보고 성령의 위로와 능력을 경험하는 일상이야말로 가장 참되고 능력 있는 자아성장의 플랫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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