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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잠시’가 영원처럼 느껴질 때
by Josh Butler2022-09-07

예수님이 말씀하신 “조금 있으면”은 사흘이었지만, 제자들에게는 그 말씀이 영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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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약속에 관한 책에는 그 약속이 수백 가지는 된다. 축복, 번영, 위로, 출산, 구원의 약속이 있다. 그런데 놓치고 있는 약속이 하나 있다. 이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요 16:33).


예수님은 이 약속을 하셨고, 나는 이 약속이 어긋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우리는 힘든 시기에 어떻게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한없이 되풀이하는 질문이다. 추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긴급한 질문이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16절). 그리고 제자들이 서로 질문한다. “도대체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18절).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이 네 구절에 걸쳐 일곱 번이나 나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조금 있으면”은 사흘이었지만, 제자들에게는 그 말씀이 영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이 끝이 없을 것 같이 느껴질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시간은 느리게 지나간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조금 있으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예수님이 잡히시고,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 되시는 것을 지켜본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조금 있으면/잠시”는 우리가 그 시간 안에 있을 때 영원처럼 느껴진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면 시간이 느리게 지나간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걸 감지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단편 영화를 보여주고 그 길이를 물었을 때, 우울한 사람들은 실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추정한다. “즐거울 때는 시간이 날아간다.” 이런 옛말이 있지만, 그 반대도 성립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고약하게 느껴질수록 더 천천히 지나간다.” 


정말 그렇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병원 대기실에서 ‘하나님, 왜 고쳐주지 않으십니까’ 부르짖고 있을 때, 원하지 않는 싱글인 당신이 ‘하나님, 지금쯤이면 결혼했어야 하지 않나요?’ 기도할 때, 국가적 비극이 또 닥치고 ‘주님의 손에 온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 상황은 더디게 지나간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주님께 말씀드린다. 주님께서는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저희가 다른 측정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주님의 ‘조금 있으면’이 저희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집니다.


기쁨이 오고 있다


그러나 기쁨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평화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요 16:20).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겪는 그 일을 해산에 비유하신다.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요 16:21).


제자들은 아이를 낳는 여자다. 그들의 고통은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이야기의 시작이다. 끝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면, “크게 기뻐(overjoyed, NIV)할 것이다(요 20:20). 


신약성경도 출산을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이미지로 사용한다.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신(firstborn, NIV) 분”이시다(골 1:1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죽음의 산고(birth pangs)에서 그를 풀어주셨기” 때문이다. “산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오딘)는 비유적으로 새로운 것을 여는 데 필요한 고통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죽음은 새로운 것을 여셨다.


아내 홀리가 강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아내가 정말 얼마나 강한지 실감하지 못했다. 아내는 2009년 9월 8일에 진통을 시작했다. 나는 아내가 출산을 하루만 더―“조금 있으면”―참아 준다면, 우리 딸이 09/09/09라는 정말 멋진 생일을 가질 것 같았다. 나는 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아내는 내 열정을 사양했다. 아내는 바로 지금 아기를 원했다! 우리 아기가 도착했을 때, 아내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나 커서 산통이 까마득한 옛 기억처럼 느껴진 그런 기쁨이었다.


예수님은 부활이 우리가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말씀하신다(요 16:21; cf. 롬 8:18). 이것은 잊는다는 뜻이 아니라 기쁨에 휩싸여 우리 기억이 바뀐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때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출산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웃는 엄마처럼 될 것이다.


평안은 우리가 견디고 있는 고통을 힘들지 않은 척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고통을 다가오는 세상과 비교할 때 온다. 미래의 기쁨은 현재의 슬픔보다 클 것이다. 그러므로 ‘잠시’가 길게 느껴질 때는 눈을 들어 부활을 바라보자.


임신한 여인의 믿음


우리는 출산의 날을 기다리는 임신한 여인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환난 중에도 당신 안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음을 알기를 원하신다(요 16:33).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기까지의 사흘을 말씀하고 계시며, 또한 승천하시고 재림하시기까지의 2,000년이 넘는 시간을 말씀하고 계신다. 곧, “조금 있으면”은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우리는 여전히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옛 세상의 자궁에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롬 8:19)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롬 8:22)고. 우리는 그 골짜기를 통해 앞을 바라보며, 새로운 창조의 빛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 우리의 형제이신 예수님을 본다. 


내 친구 제이크와 렉시는 1년간 큰 시련을 겪었다. 렉시의 양수가 22주에 터졌다. 이 부부의 아들 애셔는 6주 뒤에 1킬로그램 겨우 넘긴 몸무게를 갖고 태어났다. 이 부부는 아기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기는 심장에 난 구멍을 막는 수술과 목에 구멍을 뚫는 기관 절개술을 받아야 했다. 의사들은 아기에게 실명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와 생명 유지를 위한 호흡 기계를 아기에게 달았다. 이 가족은 거의 1년 동안 병원에서 살았다.


영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한 가지 이유로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기쁨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들려준 말이다.


내 궁극적인 기쁨이 이번 생에 올까? 아니면 다음에 올까? 내가 정말 믿는 건 무엇일까? 내 희망은 상황이 나아지는 것뿐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병원이 다시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기에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병원의 벽돌을 모두 허물어 버리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는 희망일까?


지금 이 아이든, 부활한 이 아이든, 내가 내 아들을 안을 수 있다는 걸 알아. 내가 이 아이를 위해 울부짖은 시간보다 더 오래 이 아이를 보게 될 거야. 우리가 예전에 얼마나 걱정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웃으면서 얘기하면서 애셔를 안아 줄 거야. 죄와 질병과 죽음은 왕이신 주님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발판에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세상의 시련보다 더 큰, 생명을 주는 기쁨을 가져오신다. 주님의 치유는 너무나 깊고 강력하여 이러한 “잠시 받는 환난”을 압도하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으로 바꿀 것이다(고후 4:17).


잠시가 영원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부활 기쁨(resurrection joy) 안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다. 그 부활 기쁨이 오고 있다. 




원제: When ‘A Little While’ Feels like Forever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김은홍




‘잠시’가 길게 느껴질 때는 눈을 들어 부활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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