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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여백
우리의 잘못에도 하나님은 넉넉하시다
by Chad Ashby
2022-06-26
내가 옳지 않은 일을 하려고 들거나 문제가 있는 대학에 간다면? 그러면 안 될 때인데도 이사를 간다면? 문제가 있는 교회에 등록하거나 나쁜 사람과 결혼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세워 두신 계획을 내가 뜻하지 않게 바꾸게 되면 어떡하지?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이 마치 외줄타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서 떨어져버릴 것 같은 위험에 늘 처해 있다고 느낀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잘못된 데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더 나쁘게는 우리가 선택해서 연 문 뒤에 하나님이 숨겨두신 심각한 결과가 있을 거라는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우리가 내린 잘못된 선택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벌을 내릴 거라고 두려워한다.이런 두려움은 우리 자신의 유한한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 인생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청사진을 전부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우리의 하루하루를 정확하게 기록해 놓으신 하나님의 특별한 책을 들춰 보고 싶어 한다(시 139:16).요컨대 우리는 전지하신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린 전지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한한 지성과 우리 미래에 대한 제한된 지식을 주신 것은 사실 좋은 소식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외줄타기가 아니다. 인생은 매우 넓고, 넉넉한(forgiving) 길이다. 우리 잘못에도 넉넉하신 하나님의 여백현대 영어에서 우리는 딸꾹질, 실책, 실수를 봐줄 때 넉넉하다고 말한다. 엉덩이가 배기지 않게 해주는 자전거 안장을 두고도 넉넉하다고 말한다. 신체 결함을 가려주는 검정색도 우리는 넉넉한 색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도 어떤 의미에서는 넉넉하다. 시편의 시인이 이렇게 기도했듯이 말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을 넓게 하여 주셨고, 발을 잘못 디디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시 18:36, NIV의 역자 사역).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겠습니다”(시 119:32). 주님은 우리를 외줄 위에 올려놓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넓게 하여 주셨다.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우리 발목이 접질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에게 넉넉한 길을 주셨다.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넉넉한 자비로우심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갈 5: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눈길 아래서 그리스도인의 지혜로 살아간다. 우리가 길을 벗어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허술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우리의 죄도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 놓지 못한다. 우리의 나쁜 결정도 하나님이 정해 두신 우리의 목적지를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넉넉하심(forgiveness)으로 우리의 길을 언제나 지켜주신다.그렇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는다(사 53:6). 양은 조심하지 않으면 길을 잃고 헤매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는 우리가 죄를 짓거나 이기적인 욕심을 좇아도 되는 면허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하나님의 양 무리인 우리는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따라 넓은 데로 다녀야 한다(요 10:27).성경 + 공동체 = 지혜로운 선택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걱정하는 그리스도인이 사실은 성경을 읽지 않고 교회에 열심이지 않는 바로 그 사람인 경우가 태반이다.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말씀 안에 있는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 이들은 목자이신 주님의 양 무리에서 벗어나 외톨이로 지낸다(잠 18:1).목자이신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성경을 읽으면서 당신이 준비해 두신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매일의 결정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돕는다.어린 양들이여, 겁낼 것 없다. 그리스도의 전능한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있는 그런 결정을 우리가 내릴 일은 없다(요 10:27-29).원제: Can I Mess Up God’s Plan for My Life?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김은홍
성도의견인
용서
근심
불안
성경
무신론자의 믿음
by Glen Scrivener
2022-06-20
“너도 알겠지만 난 네 믿음을 절대로 가질 수 없어.” 내 친구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 친구는 자기 기질로 볼 때 뭘 믿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 친구 중에 이렇게 생각하는 친구가 많다. 아마도 당신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자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이건 터무니없는 사고방식이지만 흔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로 이건 너무나 터무니없다. 왜냐하면 나는 신앙인이고 회의론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것이 (또는 의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나는 신앙인이기도 하고 회의론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신앙인이고, 동시에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는) 회의론자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살고 있다. 우리 모두, 언제나, 그렇게 산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믿음의 두 유형나는 우리의 믿음을 구분하여 “일상의” 믿음과 “가장 깊은” 믿음’이라고 부르곤 한다. “일상의” 믿음은 우리가 항상 실행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무엇인지, 사람을 움직이는 건 무엇인지, 사회를 작동시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가정이 다. 이런 믿음을 우리는 거의 점검하지 않는다. 증명하려고도 정당화하려도 하지 않는다. 이 믿음은 그냥 우리가 숨 쉬는 공기다.이런 믿음에는 “사람에게는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 “사회는 가장 약한 구성원을 대하는 방식으로 판단해야 한다” “힘이 정의는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서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호(弧)는 길지만 정의를 향해 휘어져 있다” 같은 것이 있다.이런 “일상의”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어떻게 우리가 다들 이것들을 믿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들을 믿는다. 내 친구들도 이것들을 믿는다. 현대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들을 믿는 것 같다. 이렇듯 정말로 우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가장 깊은” 믿음 곧 실재의 근본적인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관점에 관해서 토론하지만 말이다. 크나큰 틈은 바로 이 수준에서 벌어진다. 가장 깊은 갈등리처드 도킨스가 보는 우주는 “근본적으로 계획도, 목적도, 악도, 선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맹목적이고 무자비한 무관심만을 있을 뿐이다.” 반면에 모세는 “그 영원한 팔이 떠받쳐 주신다”(신 33:27)고 말한다. 그러니 골라잡아라. 무신경하고 잔인한 힘이 떠받치고 있는 우주, 아니면 사랑의 팔을 뻗고 계시는 영원한 하나님,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가장 깊은’ 수준에서 발생하는 믿음의 충돌은 화해가 불가능해 보인다.이처럼 엄청난 차이이다 보니, 내 친구가 왜 내가 믿는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맹목적이고 무자비한 무관심”과 “영원한 팔”을 펴시는 사랑 사이의 간극을 연결할 다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틀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두 개의 가장 깊은 믿음 사이에 존재하는 틈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다른 불일치에 초점을 맞추는 게 어떨까? 왜냐하면 정말 연결할 수 없는 균열은 우리의 무신론자 친구들 ‘내부에 존재하는’ 균열이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들에 어떤 부조화가 있는지 살펴보자.• 우리는 불가침의 인권을 가지고 있는 영리한 침팬지이다. • 우리는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볼 의무가 있는 생물학적 생존 기계이다.• 우리는 무의미한 바위에 매달려 무의미한 우주에서 영원한 멸종을 향해 돌진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행성을 우리가 물려받은 것보다 더 나은 상태로 물려주어야 한다.• 적자생존은 인간 삶에 대한 가장 심오한 설명이며, 블라디미르 푸틴은 틀렸다.내 친구들은 이 진술들에서 절반은 진심으로 믿는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가장 소중한 직관들이 모든 수준에서 우리의 됨됨이를 형성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증명할 수 없는) 이러한 믿음들에 목숨을 건다. 우리는 모두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나 지적해야 할 진정한 불일치가 있다. 그것은 무신론자의 가장 깊은 믿음과 그리스도인의 가장 깊은 믿음 사이의 불일치가 아니다. 가장 극명한 불일치는 무신론자들 ‘안에’ 존재한다.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직관과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믿음 사이에 있는 간극이 그것이다.예수 혁명의 영향을 받다The Air We Breathe: How We All Came to Believe in Freedom, Kindness, Progress, and Equality(우리가 숨 쉬는 공기: 우리 모두는 어떻게 자유, 우애, 진보, 평등을 믿게 되었는가)에서, 나는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일곱 가지 직관이 어떻게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가 되었는지 다루었다. • 평등: 우리는 계급, 인종, 종교, 성별, 성(sexuality)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 가족 구성원의 평등한 도덕적 지위를 믿는다. • 연민: 우리는 사회를 가장 약한 구성원을 대하는 방식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 동의: 우리는 힘 있는 사람이 자신을 남에게 강요할 권리가 없다고 믿는다. • 계몽: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을 믿으며, 완력이 아니라 설득과 논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의 힘을 믿는다. • 과학: 우리는 과학을,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개선하도록 도울 수는 과학의 능력을 믿는다.• 자유: 우리는 사람은 재산이 아님을 믿으며,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 진보: 우리는 역사의 호가 길지만 정의를 향해 휘어져 있다고 믿는다.‘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이러한 가치들을 창세기부터 조지 플로이드까지 독자를 초대하여 기독교 이야기의 맥락에서 탐구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구약에서 시작하여, 신약으로 이어지고, 초기 교회의 성장, 중세 그리스도교세계(Christendom), 과학의 진보, 노예무역 폐지, 2차 세계대전과 민권운동을 거쳐 현재까지 살펴볼 수 있다.각각의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직관들이 당시에는 전혀 명백하거나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가치들은 기독교 이전과 비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러한 믿음들은 모두 예수 혁명(a.k.a. 기독교)을 통해 왔다. 그리고 이것들은 예수 혁명을 빼고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의 충돌에 집중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신앙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믿음들에 대한 놀라운 합의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입증할 수 없는 가치들이 기독교 혁명을 통해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소중한 믿음들을 역설할 때마다, 우리는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충돌은 정말이지 비그리스도인 안에 존재하는 충돌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친구들이 (비록 스스로 불신자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소중히 여기는 믿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떼어놓고서는 성립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견고한 토대다. 다른 토대는 모두 가라앉는 모래다.편집자 주: 이 글은 Glen Scrivener의 The Air We Breathe(The Good Book Company, 2022)를 간추린 것이며, 이 책은 The Good Book Company와 협력하면 출간되었습니다. 원제: Everyone You Know Is a Believer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김은홍
믿음
신앙인과비신앙인
무신론
회의론자
‘지혜’를 들려주는 짧은 책 50권
by Brett McCracken
2022-06-10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지혜를 기르려면 좋은 책 읽기는 필수 과정이다. 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반복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실이다. 에이미 카마이클은 (아래 추천한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이라는 음식은 고기처럼 단단해야 한다. 하는 생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형성된다. [하찮은 생각, 나약한 생각을 하면 영혼의 근력도 기력도 잃어버린다(역자 보충).]”지혜의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먹는 음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형성된다. 이는 내 책 The Wisdom Pyramid(지혜 피라미드)의 중심 생각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의 “지혜 식단”(wisdom diet)에 왜 책이 중요한지를 한 장을 할애하여 이야기했고, 또 우리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일별했다. 이 책을 쓸 때 내가 가진 생각은 우리를 지혜로 풍성하게 해 주는, 내가 직접 찾아낸 책들을 알려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책을 포함시킬 수 있겠지만 자제하고, 짧은 책들(임의로 225쪽을 넘지 않는 책으로 정했다)에 집중하려고 한다. 우리를 압도하는 두꺼운 책도 시간을 내서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만! 아래 선별한 책은 모두 논픽션이다. 풍성한 지혜를 담고 있는 픽션 목록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자제하겠다. (때가 되면 이 목록도 만들 작정이다.) 아래 50권(출간연도순) 중 일부는 “클래식”이고, 일부는 모두가 인정하는 지혜를 담고 있는, 비교적 신간이거나, 또는 덜 알려져 있거나 개정된 책이다. 이 책들 속에 들어 있는 모든 말을 내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동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책들에서 배운 게 많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들 모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책이다. 이번 여름에 이 가운데 몇 권이라도 읽기를 바란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역주_목록에 소개된 도서의 국내 역간본이 있는 경우는 역간본을 서명을 앞에 적었고, 국내 역간본이 없는 경우는 원서명을 먼저 적었다. 소개된 원서의 역간본은 아니지만, 동일한 책의 다른 판본의 국내 역간본이 있는 경우에는 *표로 따로 표시해 두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On the Incarnation, 4세기). 하나님에 대한 기초 교리의 하나인 (그러면서도 신비로운 교리의 하나인) 성육신에 관한 시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지혜. 110쪽.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hn Chrysostom), On Marriage and Family Life(혼인과 가정생활에 관하여, 4세기). 성례로서의 결혼의 신학, 신비, 의미를 담은 지혜. 114쪽.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On Christian Teaching(그리스도교 교양, 5세기) 가장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의 폭넓은 기독교 지혜. 208쪽. *그리스도교 교양(분도출판사) 토마스 아 캠피스(Thomas a Kempis), The Imitation of Christ(그리스도를 본받아, 15세기). 그리스도의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사는 이야기하는 경건 지혜의 고전. 144쪽. *그리스도를 본받아(CH북스)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The Bruised Reed(상한 갈대, 1630). 연약하고 지친 순례자들이 그리스도의 참 마음을 알고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좇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지혜. 160쪽. *꺼져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지평서원)존 오웬(John Owen), The Glory of Christ(그리스도의 영광, 1684). 그리스도의 무한한 영광을 되새기고 독자들에게 그 영광을 누리도록 권하는 청교도의 지혜. 184쪽. *그리스도의 영광(지평서원)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하나님의 임재 연습, 1692).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깨달아 알고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 겸손한 카르멜회 수도사의 지혜의 단편들. 42쪽. *하나님의 임재 연습(두란노)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Walking with God(하나님과 동행, 17세기).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삶의 본질과 실천에 관한 청교도의 지혜. 86쪽.프레더릭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s),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1845/지만지). 누군가는 잊고 싶어 하는, 그러나 움츠러들지 않고 반드시 증언해야 하는 지혜. 160쪽. G. K. 체스터턴(G. K. Chesterton), 정통(Orthodoxy, 1908/아바서원). 회의적인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를 변론하는 고전적이고 명쾌한 지혜. 트레빈 왁스 주석 최신판도 함께.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I and Thou(나와 너, 1923). 저 유명한 나-그것, 나-너 관계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하나님이 만드신 신성한 관계에 관한 지혜. 132쪽. *나와 너(대한기독교서회)J. 크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기독교와 자유주의, 1932). 자유주의 기독교의 침입과 돌연변이에 맞서 정통 기독교를 확고하게 방어하는 지혜. 200쪽. *기독교와 자유주의(복있는사람)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Life Together(성도의 공동생활, 1939).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필연성, 난점에 관한 지혜. 122쪽. *성도의 공동생활(복있는사람)C. S. 루이스(C. S. Lewis), The Weight of Glory(영광의 무게, 1941). 읽기 전까지는 꼭 필요한 줄 모르는 책. 내가 읽고 인생을 바꾼 유일한 책. 208쪽. *영광의 무게(홍성사) 도로시 세이어즈(Dorothy Sayers), The Mind of the Maker(창조자의 정신, 1941). 창조적인 삶이 어떻게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 제공하는지에 관한 지혜. 206쪽. *창조자의 정신(IVP)C. S. 루이스, The Abolition of Man(인간 폐지, 1943). 진리를 찾을 데와 찾지 못할 데가 어디인지에 관한 지혜. 우리의 “탈 진리” 시대를 위한 시간을 초월한 책. 128쪽. *인간 폐지(홍성사)시몬 베유(Simone Weil), Gravity and Grace(중력과 은총, 1947). 뜻밖의 영적 깨달음과 새로운 연결점들로 가득한, 파스칼 유형의 기독교 영성 지혜. 224쪽. *중력과 은총(문학과지성사)칼 헨리(Carl Henry),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 1947/IVP). 변하지 않는 복음을 수호하고 또한 이 복음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고자 하는 복음주의자들을 위한 근본 지혜. 112쪽. 요셉 피퍼(Josef Pieper), Leisure: The Basis of Culture(여가: 문화의 토대, 1948). 아름다움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여가와 휴식, 감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얻으려면 꼭 읽어야 하는 책. 44쪽.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 That Way and No Other(오직 그 길, 20세기 중엽).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신실한 선교사의 한 사람에게서 가려 뽑은 보석 같은 지혜 모음집. 144쪽.아브라함 헤셀(Abraham Heschel), The Sabbath(안식일, 1951). 안식일을 “시간의 건축”이라는 이야기하는 우아한 지혜. 144쪽. *안식일(성광문화사)J. I. 패커(J. I. Packer),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 1958). 우리의 가장 위대한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을 옹호하는 지혜. 191쪽.C. S. 루이스, A Grief Observed(헤아려 본 슬픔, 1961). 깊이 헌신된 사람 때문에 느낀 깊은 슬픔에 관한 지혜. 76쪽. *헤아려 본 슬픔(홍성사) A. W. 토저(A. W. Tozer), The Knowledge of the Holy(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 1961). 하나님의 위엄을 앎으로써 결국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삶을 지향하는 지혜. 128쪽. *하나님을 바로 알자(생명의말씀사)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Letter From Birmingham Jail(버밍햄 옥중 서신, 1963). 인종, 정의, 자연법, 시민 불복종에 관한 선지자적 지혜. 64쪽.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바다출판사) 중 “버밍햄 교도소에서 온 편지”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 The God Who Is There(거기 계시는 하나님, 1968). 현대 세계에서 기독교의 독특성-그리고 매력-을 깨달아 아는 지혜. 191쪽. *거기 계시는 하나님(생명의말씀사)자크 엘륄(Jaques Ellul), The Meaning of the City(도시의 의미, 1970). 성경의 내러티브에서 도시의 신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저돌적이면서도 가치 있는 지혜. 209쪽.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대도시의 성서적 의미(대장간)매들랜 렝글(Madeleine L’Engle), Walking on Water(물 위를 걷다, 1972). 예술과 신앙의 관계를 고찰하는 유려한 지혜. 224쪽.헬렌 로즈비어(Helen Roseveare), Living Sacrifice(희생의 삶을 살다, 1979). 희생은 기쁨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증언하는, 분투하며 섬기는 삶에서 우러나온 지혜. 144쪽.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 한 길 가는 순례자(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 1980/IVP). 일시적 유행, 변덕스러운 애착, 주의력 결핍의 시대에 요구되는 신실하고 꾸준한 믿음과 순종의 지혜. 220쪽. 닐 포스트먼(Neil Postman),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 1985/굿인포메이션). 의사소통 형태의 형성 효과에 대한, 무서울 정도로 예언자적인 미디어 비평가의 지혜. 208쪽.코넬리우스 플랜팅가 Jr.(Cornelius Plantinga Jr.),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Not the Way It’s Supposed to Be: A Breviary of Sin, 1996/복있는사람). 교활하고 음흉한 죄의 본성을 밝히는 냉철한 지혜. 202쪽.알렉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For the Life of the World, 1997/복있는사람). 정교회 기독교의 관점으로 삶과 문화, 신학을 바라보는 지혜의 보고. 151쪽. 애니 딜러드(Annie Dillard), For the Time Being(이 세상에 사는 동안, 1999).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슬프고도 기묘하며 경이로운 신비를 관조하는 지혜. 224쪽. 오스 기니스(Os Guinness), 선지자적 반시대성(Prophetic Untimeliness, 2005/이레서원). 덧없는 유행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문화 속에서 영원한 진리에 매달려 사는 지혜. 128쪽.팀 켈러(Tim Keller),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 2011/두란노).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탕자 이야기 깊은 곳에서 발굴해 낸 복음의 지혜. 192쪽.메릴린 로빈슨(Marilynne Robinson), When I Was a Child I Read Books(나는 어렸을 때 책을 읽었다, 2013). 하우스기핑, 길리아드, 홈 등으로 생존하고 있는 최고의 기독교 작가에 반열에 오른 저자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지혜로 가득 찬 에세이. 224쪽.N. D. 윌슨(N. D. Wilson), Death By Living(죽음을 사귀며 살아가는 삶음, 2013). 쇠락과 죽음의 세상에서 기쁨과 감사와 헌신의 삶을 사는 지혜. 208쪽.크리스천 와이먼(Christian Wiman), My Bright Abyss(나의 밝은 심연, 2014). 세속 사회에서 신앙을 위해 싸우고 시련을 겪으면서 담금질하고 벼려 낸 지혜. 182쪽.피터 라잇하르트(Peter Leithart), Traces of the Trinity(성삼위 하나님의 자취, 2015). 창조세계 안에서 창조주의 자취를 발견하는 지혜. 176쪽.프란치스코 교황(Pope Francis),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On Care of Our Common Home, 2015/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인류 공동의 집인 창조세계를 돌보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을 설파하고 그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지혜, 176쪽.티시 해리슨 워런(Tish Harrison Warren), 오늘이라는 예배: 사소한 하루는 어떻게 거룩한 예전이 되는가(Liturgy of the Ordinary, 2016/IVP).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발견하는 지혜. 184쪽. 제임스 K. A. 스미스(James K. A. Smith), 습관이 영성이다(You Are What You Love, 2016년/비아토르).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만 아니라 우리가 숭배하는 대상과 그 숭배 방식에 의해서도 우리는 형성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지혜. 224쪽.젠 윌킨(Jen Wilkin), 주 같은 분 없네(None Like Him, 2016년/예수전도단).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하나님이 곧 지혜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혜. 176쪽.재키 힐 페리(Jackie Hill Perry), Gay Girl, Good God(게이 소녀, 좋으신 하나님, 2018).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욕망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아는 지혜. 208쪽. 메건 힐(Megan Hill), A Place to Belong(우리가 속해 있는 곳, 2020). 우리에게 지역 교회―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를 사랑하라고 독려하는 지혜. 184쪽제이 킴(Jay Kim), Analog Church(아날로그 교회, 2010). 갈수록 육체가 사라지는 (따라서 지혜도 사라지는) 시대에 시의적절한 체화된 교회론을 제시하는 지혜. 216쪽.레베카 맥클러플린(Rebecca McLaughlin), The Secular Creed(세속 신조, 2020).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이고 혼란스러운 쟁점 다섯 가지를 논하는 명쾌한 지혜. 125쪽.데인 오틀런드(Dane Ortlund), Gentle and Lowly(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201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라고 말씀하시는 분에 깊이 생각하면서 발견한 지혜. 224쪽.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 Uncontrollability of the World(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세상, 2020). 우리의 삶은 쟁취하고 지배하고 통제하는 대상이 아니라 은혜로 받은 선물임을 깨닫게 하는 지혜. 140쪽원제: 50 Short Books Packed with Wisdom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김은홍
성령강림주일의 기도
by Scotty Smith
2022-06-05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2:1-4.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당신의 영을 당신의 교회에 주신 그날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또한 성령님이 우리 삶에서 하시는 모든 일에 기뻐하는 날입니다.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무한하신 너그러우심에 당신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일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하오니, 우리가 복음을 믿을 수 있는 것조차도 그러하기에 가능합니다. 성령님은 죽은 우리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결핍의 존재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그 결핍을 채우는 측량할 수 없는 선물이신 예수님을 알려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복음은 진리입니다! 성령으로,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영원히 인치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거듭나지 않은 자 같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으로부터 끊어지거나 버림받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최종 구원의 첫 열매이십니다, 우리가 그날에 완전히 예수님처럼 될 것이라는 보증이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 형제자매 모두와 더불어 살게 될 그날의 보증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끼운 결혼반지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신랑이신 예수님과 맺은 우리의 약혼의 서명이요 보증이십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예수님의 사랑에서 결코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 할렐루야!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는 듣습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려주시는 당신의 말씀을, 우리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죄책과 정죄로부터 풀려난 당신의 자녀라는, 당신이 어여뻐하시고 기뻐하시는 자녀라는 당신의 말씀을 듣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당신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성령님의 이끄심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 마음이 산만하고 낙심하여 기도할 수 없을 때조차도, 기도하고 계심을 알기에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당신은 우리에게, 하나도 빠트리지 않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섬길 수 있는 은사를 주셨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성령강림주일에,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이르신 당신의 명령에 다시금 귀를 기울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당신의 명령에 기뻐 순종합니다. 오소서, 성령님. 오셔서 우리를 충만히 채우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이웃에게 축복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고귀하고 사랑 많으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원제: On This Pentecost Sunday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김은홍
성령강림주일
성령강림
오순절
성경을 가까이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by Mike Nappa
2022-05-29
책장 너머로 선택받길 기다리는 끝없이 늘어선 책들이 보인다. 토니는 오늘 밤 잠들기 전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까? Clifford the Big Red Dog(크로 붉은 개 클리퍼드)일까? 100번은 읽은 Goodnight Moon(달아 잘 자)일까?잠시 후 토니의 도톰한 손가락이 기분 좋게 두툼한 책 한 권에 가 닿는다. 아이는 어린이 이야기 성경을 가져오며 “다윗과 골리앗!”을 신나게 외친다. 세 살배기 토니의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의 씨앗이 심겨 물을 주고 있다.이렇듯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성경의 풍성한 유익을 나눌 기회를 얻는 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로 성경에 대해 진정한 열망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다섯 가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다.1. 책 읽는 아이로 양육하라.글로 쓰인 단어의 경이로움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성경 읽기에 흥미를 느끼고 열중할 가능성은 그러한 경험을 가진 아이보다 현저히 낮다. 우선은 (어떤 책을 읽든) 독서가 당신의 미취학 자녀의 삶의 한 부분이 되게 해야 한다. 독서 문화를 가정에 정착시키기 위한 몇 가지 전략이 있다.• 아이 방 여기저기에 그림책을 널어놓아라.• 매주 정기적으로 도서관에 방문하라.• 부모와 함께 적절한 내용의 일요 만화를 즐기게 하라.• 저녁에 “가족 독서 시간”을 정해서 온 가족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 독서 모험을 떠나라.• 중고 서점이나 세일 코너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보물 같은 책들을 찾아내라.• 책이 가정생활에서 일상이 되게 하라.일반적인 독서 습관의 정착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다면, 당신은 자녀를 성경으로 이끄는 데 커다란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2. 미취학 아동을 위한 성경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라.다행인 것은 성경을 가까이하는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 작가의 어휘와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의 그림을 활용하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고 나이에 적절한 성경 이야기를 아이가 접하도록 하라.예를 들어, 데이비드 헬름(지은이)과 게일 쉰메이커(그림)의 큰 그림 이야기 성경(The big Picture Story Bible, Crossway, 2014)은 미취학 자녀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다. 이 책은 그 소개 문구처럼,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쉬운 어휘와 인상적인 삽화”로 재구성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셀리 로이드 존스(지은이)와 제이고(그림)의 The Jesus Storybook Bible(zonderkidz, 2007)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시각적인 흥미를 끌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이야기 중심에 계신 구원자를 아이들이 발견하도록 돕고 있다그 밖에 미취학 아동을 위한 성경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케빈 드영과 돈 클락의 The Biggest Story Bible Storybook(Crossway, 2022) • 케빈 드영과 돈 클락의 보드북 The Biggest Story ABC(가장 위대한 이야기 ABC(Crossway, 2017)• 데본 프로벤처와 제시카 로빈 프로벤처의 보드북 시리즈 Big Theology for Little Hearts(Crossway, 시리즈 출간 중)• 미칼 키퍼의 Notes from Jesus(Group Publishing, 2018)• 마이크 나파(Mike Nappa)의 Bibleman Bible Storybook(B&H Kids, 2017)3. 성경을 귀하게 여기고 즐거워하는 본이 되라.우리 스스로가 성경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을 수 없다. 아이들은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성경에 관해 이야기할 때야, 그리고 그 나눈 대로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볼 때야 우리가 성경을 가치 있게 여긴다고 생각할 것이다.이제 막 걷기 시작한 당신의 아이가 성경을 대하는 당신의 자세를 그대로 취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성경을 읽는 것을 특권이 아닌 잡일로 접근한다면 당신의 아이도 그럴 것이다. 반면에 당신이 성경을 읽는 일에 열심과 열정을 가지는 것을 네 살짜리 아이가 알아차린다면 그 아이 역시 그 길을 갈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흡수하길 원하는 방식대로 당신도 살라. 하나님의 말씀은 소중하고 삶을 변화시킨다(딤후 3:16, 히 4:12).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면 당신의 소중한 아이의 인생에서 성경은 친밀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4.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임을 아이들에게 상기시키라.성경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삶의 교훈 이상이며 도덕 이야기 이상이다. 맷 스맷서스트가 말하듯이, “하나로 이어지는 스릴 넘치는 드라마를 상상해 보라. 대서사시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당신이 좋아하는 어떤 동화 이야기보다 더 매혹적이다. 그 모든 것이 실화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성경은 우리를 위한 책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스맷서스트는 우리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성경에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계획, 하나의 플롯, 한 명의 용사, 한 명의 왕이 있다.”다시 말해 성경 전체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 예수의 이야기는 “하나님께 우리를 다시 드리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으로 요약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아이들과 성경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사실들을 엿볼 때마다 한껏 그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5. 성령님을 의지하라.오직 하나님만이 말씀에 대한 사랑의 불꽃을 당신 자녀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의 무능함이 당신을 무릎 꿇게 한다. 성경을 향한 아이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성경의 기쁨에 동참하며, 그들의 삶에 진리의 씨앗이 심어지도록 기도하면서 말이다.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가 백 번은 읽은 “다윗과 골리앗”을 또 외치며 당신 품에 뛰어들게 하실 때를 기대하며 읽을 준비를 하라.원제: 5 ways to Raise Bible-friendly Kids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염영란
독서문화
독서습관
상상력
성경이야기
자녀가 성경을 읽도록 준비하라
by Joe Carter
2022-05-28
우리는 왜 자녀에게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가?당신은 이런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아무도 당신에게 이렇게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자녀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려고 합니까? 아니면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자녀의 학교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면, 당신은 곧바로 다른 학교를 알아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분명히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유익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자녀에게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에게 읽는 법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당신이 그리스도인 부모라면, 그 대답은 매우 분명하다. 그래야 성경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이다. 성경은 자녀가 평생 읽을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기도 하다. 토니 라인케는 말한다. “모세가 두 개의 돌비를 가지고 산에서 내려온 후 이 세상에 있는 책은 성경과 그 외의 책들로 구분되었다.” 성경을 읽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자녀가 표지판의 글씨를 읽고, 문자를 읽으며, 전쟁과 평화와 같은 책을 읽을 수도 있는 것도 또 다른 유익이다. 그러나 그런 유익은 성경을 읽는 유익에 덧붙어 오는 유익에 지나지 않는다.문맹자에게 글을 읽는 법을 가르치는 데 수년 또는 수십 년의 세월을 들이는 선교사도 있다. 왜 그렇게 하는가?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를 위해 파송 받은 선교사이다. 우리가 자녀를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자녀가 스스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오랫동안 자녀에게 유익할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문자를 읽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녀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가장 위대한 책을 읽는 법이것은 별것 아닌 차이처럼 보인다. 결국, 읽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은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이는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성경 읽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면 엄청난 차이가 벌어질 것이다. 당신의 자녀가 지금 어떤 단계에 있든지, 처음으로 글자를 배우는 아이건, 대입수능시험을 준비하며 단어를 공부하는 고등학생이건 상관없이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읽는 법을 배우는 이유는 성경을 보다 더 잘 읽기 위해서이다.읽기의 목표가 성경이라면 자녀 교육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목표가 달라지면 자녀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더 좋은 독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서 자녀는 다른 유형의 책에도 더 좋은 독자가 되는 유익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1940년에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였던 모티머 애들러(Mortimer J. Adler)는 독서의 기술(How to Read a Book)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애들러는 이 책이 “더 나은 이해를 얻기 위하여 책을 읽는 독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성경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잠 4:7). 그러므로 애들러가 제안하는 방법은 서구 사회에서 가장 위대한 책인 성경 읽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방법은 우리 자녀가 가장 위대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읽기의 첫 단계는 초보적 읽기이다. 애들러는 이 수준의 네 단계는 초등학교 저학년 커리큘럼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1 단계: 읽기 준비―지시를 따르는 능력, 집중을 유지하는 능력 등등.• 2 단계: 단어 익히기―기초 단어를 읽는 능력, 맥락과 연결하여 단어의 의미를 구분하는 능력 등등.• 3 단계: 기능적 독해―단어들의 조합을 빠르게 읽어내는 능력, 맥락과 연결하여 단어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능력 등등.• 4 단계: 향상된 독해―이전에 익힌 능력의 개선 및 강화이 가운데 우리는 1 단계와 2 단계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1 단계: 읽기 준비이 단계의 목표는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부모는 자녀의 마음에 성경을 읽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알파벳을 배우기 전이라 하더라도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1) 자녀가 부모의 독서 습관을 모방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 또한 (2) 성경 이야기와 인물을 자녀에게 노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자녀가 마음에 “열망을 갖게 되는” 주된 통로는 모방이다. 아이는 끊임없이 어른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따라 하고자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지켜본다. 아이가 종종 당신에게 커피 한 모금만 마셔도 되는지 묻는 것은 커피의 맛이 궁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는 커피를 마시는 행동이 어른이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자신이 하지 않는 행동을 엄마와 아빠가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에 열망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자녀가 당신이 성경을 읽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것이 어른스러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자녀가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그런데 갓난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아이를 두고 성경을 읽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갓난아이가 옆에 있을 때에는 성경 읽기보다 더 쉽고 간단한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시간을 일부러 구분하여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자녀가 지켜보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 자녀가 지켜보게 하는 시간은 당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자녀의 교육을 위한 시간이다.성경 읽기에 대한 자녀의 열망을 끌어올리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자녀에게 성경의 이야기와 인물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녀에게 큰 소리로 성경을 읽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노력은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 읽기는 아이들을 지루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이를 피하고자 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발달시킬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경의 본래의 의미는 그대로 간직한 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다시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Jesus Storybook Bible, International Children’s Bible, Easy to Read Version 같은 다양한 어린이 성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성경 이야기를 묶어 놓은, 가령 The Complete Illustrated Children’s Bible 같은 시리즈 성경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 이 방법은 특별히 미취학 아이들에게 적합하다. 이 책은 성경의 원래의 이야기를 각색하여서 모아놓은 것이기에 성경이 본래 가지고 있는 그 장엄함과 너비를 모두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런 책은 아이들이 성경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게 하는 데 매우 유익할 수 있다. 멀리 내다 봤을 때 1 단계에 도달해야 할 목표는 아이들이 성경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2 단계: 단어 익히기이 단계에 아이들은 단어의 의미를 배우면서 어휘를 확장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아이들은 단어의 의미를 들어서 배우거나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힌다. 성경 읽기를 하면서 자녀와 함께 즐겁게 단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녀와 함께 야외로 나가 보라.시편 19편은 노래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1-2절). 하나님은 성경을 통한 “특별 계시”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또한 “일반 계시”를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의 진리를 담아내는 통로인데,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에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일반 계시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성경 읽기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스콧 스텔처(Scott Steltzer)는 이렇게 설명한다. 창조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은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간직하기 위한 좋은 마음 상태이다. 이는 간단한 단어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잠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다음 단어들을 큰 소리로 읽어 보라. 한 단어씩 읽은 후에 눈을 감고 우리의 마음 안에서 그 단어들과 성경을 연결해 보라: 양, 푸른 초장, 하늘의 별들, 태양, 나무, 가지, 씨앗, 뿌리, 빛, 하늘, 바위, 개울, 모래, 파도, 폭풍, 구름, 천둥, 번개, 산, 들판, 절벽, 먼지, 돌, 메뚜기, 꽃, 참새, 사막, 바다, 불, 물.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창조세계에 대한 무관심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물론 아이들이 양, 메뚜기, 겨자씨 같은 단어를 책을 통해 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양털을 만져보고, 메뚜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 느끼며 단어를 익히면 그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자연 속에 들어가서 산책을 하고 동물원에 가서 동물을 관찰하는 것은 그저 재미를 위한 일만은 아니다. 이런 활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당신의 아들과 딸이 평생토록 성경을 읽을 때 영향을 줄 것이다.원제: How to Prepare a Child to Read the Bible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박광영
성경읽기
성경읽기의유익
독서습관
모방
성경읽기에대한열망
흥미
어휘력확장
어린이성경
무엇이 부부를 멀어지게 하는가
by Stephen Witmer
2022-05-21
몇 달 전 아내의 생일이 다가오던 즈음이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내년에 가까운 도시에서 연주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기뻤다. 나는 좋은 자리를 예약하고, 여느 생일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는 아내의 반응을 기대했다.아내의 생일날 아침, 내가 준비한 콘서트 티켓 선물을 본 아내가 웃기 시작했다. 너무 크게 웃어서 내가 좀 놀랄 정도였다. 잠시 후 다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내는 우리가 한참 전에 똑같은 콘서트를 예약한 적 있다고 내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때야 나는 기억해 냈다. “아, 맞아…. 그랬었지.” 오랜 코로나바이러스가 초래한 연기 덕에 그때 그 콘서트가 내 마음에서 완전히 멀어졌던 것이다. 이제 우리 손에 있는 건 4장의 비싼 표였다. 그런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아내 생일에 맞춰 내가 새롭게 예약한 좌석은 우리가 전에 예약했던 좌석만큼 좋은 게 아니었다. 고맙게도 아내는 내 실수를 웃고 넘겼다. 물론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그때의 특별한 계획을 내가 완전히 잊어버렸기에 맘이 조금 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탄력 있는 친밀함이 일을 놓고 아내와 내가 나중에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내가 했던 식의 실수 때문에 웃음이 아니라 폭발적인 논쟁으로 이어지는 부부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내에게 그것은 남편의 냉담한 무시를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을 것이고, 시간이 흘러도 그 이야기는 괴로움과 분노와 혐오감으로 반복되어 등장할 것이다. 남편은 어떨까? 사과하거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도리어 더 크게 화를 낼 것이다. 그럼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왜 달랐던 건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결혼 생활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일, 어리석은 실수, 불편함, 잘못 선택한 단어, 의견 충돌, 서로에 대한 태도와 행동의 죄를 견디도록 하는지 그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답의 중요한 부분은 다른 게 아니라 부부 사이의 친밀감에 있다. 결혼생활의 친밀감이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깊은 상호 지식과 애정, 두 배우자가 공유하는 경험과 감정, 생각, 성적 로맨스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의 결혼은 지금도 분명히 진행 중이고,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하거나 되고 싶은 남편의 절반에도 여전히 미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통해 이 친밀함을 넘은 더 깊은 수준을 맛보고 싶다. 친밀감의 장애: 바쁨나는 지난 수년 간 많은 부부를 상담하면서 부부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진정한 친밀감의 아름다움과 축복을 맛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결혼 생활에서 만나는 많은 장애물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분주함이다. 친밀감을 위해 공유된 경험, 감정, 생각 및 성적 로맨스가 다 필요하다면, 그런 친밀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여기저기서 15분 단위로 가져다가 맞출 수 없다. 하지만 많은 부부에게 이런 시간이 부족하다. 직업, 집안일, 교회 참여, 아이들 등하교시키기 등등, 꼭 해야 하는 이 모든 책임이 삶을 채우고 쉬지 않고 우리를 다른 방향을 향하게 한다. 마치 밤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처럼 남편과 아내가 밤에 만날 때, 이 두 사람에게는 피상적 관계를 극복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친밀감의 장애: 노력 부족부부 사이의 장애에 또 하나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들이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부분적으로 이 문제는 우리 문화가 만들어내는 잘못된 관계 이상화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금의 문화가 그려내는 꿈같은 관계의 시나리오는 소울 메이트를 만나자마자 즉각적이고 마술적이며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깊은 관계를 경험한다는 식의 환상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결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환멸을 느낀다. 결혼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지침은 히브리서 10:24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기독교 공동체 내의 관계이다. 영어 성경(ESV)에 따르면, “서로를 격려해서(stir up one another) 어떻게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할지”이다. 이것을 좀 더 직역하면, “서로를 배려해서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격려하라”(stirring up of love and good works)는 뜻이다.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에 주목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프로젝트(남을 선동하는 방법)가 아니라 사람(“서로”)을 고려하라고 촉구한다. 고려(consider)라는 단어는 어떤 것에 대한 고의적인 생각과 함께 무언가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암시한다. 기독교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곳이다. 그렇기에 결혼은 더욱 더 그렇다. 우리는 배우자를 생각하고, 관찰하고, 숙고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경지로 상대를 아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모든 연구 분야와 마찬가지로 배우자 연구라는 장기 과정에는 에너지와 집중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실패하면 친밀감이라는 보상은 사라진다. 가장 깊은 장애물시간과 노력의 부족이 다 중요한 장애물이기는 하지만, 이것들이 유일한 장애물도 아니고 가장 깊은 장애물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별 다른 요인을 제외하고 우리는 누구나 다 정말로 관심 있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기 마련이다. 최신 넷플릭스 쇼, 철도 모형 동아리, 축구 리그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거기에 시간을 내어 열중한다. 그렇다면 결혼생활에서 이런 투자를 막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일반적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물 아래에 진짜 장애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각한 것 중 하나가 이기심이다. 배우자와 진정한 친밀감을 느끼려면 시간, 노력, 약점 노출(vulnerability), 그리고 희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다른 목표와 욕구를 방해하는 경우라면, 이런 비용을 피하기가 훨씬 쉽다. 가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지겹고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때, 아내를 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상황이 역전되어 얘기를 들어주어야 할 사람이 내가 될 때도 있다. 그러한 순간에 (또한 수천 번의 다른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친밀감을 향하거나, 아니면 그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무지도 친밀감을 손상시킨다. 결혼생활에서 감정적‧관계적‧성적 친밀감을 갈망하지만, 그러한 친밀함의 본보기를 본 적도 없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적이 없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밀감은 미스터리이자 낯선 땅이며, 그에 관한 안내 지도도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탐색하기 위해 유쾌한 대화나 실제적인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우자와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달력이나 멀뚱멀뚱 보면서 “이번 주에 뭘 하지?”하는 식의 대화 수준에 머물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장애물이 무지가 아니라 불안정일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심하게 상처를 받은 경우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정서적 친밀감이라는 특정 영역을 아예 금지 구역으로 차단했을 수도 있다. 내 삶의 가장 은밀한 구석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여는 방법뿐 아니라, 꼭 그래야 할지 여부조차도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친밀감을 방해하는 가장 심각한 장애물 중 하나는 용서 부족이다. 배우자 중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가 해결되지 않았고 회개와 은혜로 덮이지 않았을 때, 분노가 솟구치기 마련이다. 이후에 이뤄지는 상호작용은 과거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의심의 렌즈를 통해 해석된다. 쓴 뿌리가 축적되며 친밀감은 약해진다. 결혼생활의 친밀감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그렇다면 이런 장애물을 앞에 두고도 어떻게 해야 결혼생활을 친밀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친밀감을 향한 비전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결혼생활의 친밀함을 소중한 목표로 갈망하며 바라보고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의 그림이며,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감정적‧지적‧경험적‧성적 친밀감이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의 친밀한 사랑을 반영하고 표현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에베소서 5:28-31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시고 돌보시며”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며,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한 몸”이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실로 놀랍고도 매력적인 친밀감의 비전이다. 친밀감의 근원어떻게 해야 이 친밀함을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결혼이 하나님의 아들과 백성 사이의 친밀한 사랑을 반영할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신다. 따라서 우리가 친밀감을 위해 하나님께 진정으로 그리고 끈기 있게 도움을 요청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실 것이다. 때때로 즐거운 방식으로, 어떤 때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키실 것이다. 고통의 계절은 우리의 관계를 심화하고 더 달콤하게 만들 수 있다.결혼 초기 몇 달 동안 나는 특히나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나의 불안을 아내에게 드러냈지만, 아내는 시종 한결같은 부드러움과 연민으로 나의 취약함에 반응했다.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이어지는 아내의 참을성 있는 사랑은 우리의 결혼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공동체 속 친밀함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행동하실 뿐만 아니라 행동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역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의 친밀함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는 우리의 결혼생활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진정한 부부관계는 내적 핵심이 되는 복음과 더불어 기독교 공동체라는 외적 맥락을 모두 필요로 한다. 친밀함은 복음에서 비롯되어야 하고 교회라는 공동체로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공동체에서 우리의 이기심과 용서하지 않는 죄는 사랑으로 식별될 뿐 아니라 기도와 도전을 받는다. 공동체를 통해 우리는 배울 수 있고 본받을 수 있는 건전하고 친밀한 결혼의 예를 만날 수 있다. 그런 결혼생활은 로드맵을 제공한다. 지혜롭고 경건한 부부와 함께하는 결혼상담도 좋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들의 삶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어떻게 의사소통이 일어나고, 갈등이 해결되고, 예의가 베풀어지고, 사역에서 협력이 향유되는지, 우리 스스로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당신의 결혼생활이 오래되었고, 그래서 피상적인 수준이라면, 복음 그 자체뿐 아니라 복음으로 충만한 신자의 공동체에 더 깊이 참여하겠다고 지금 결심하지 않겠는가?내 결혼 생활이 뭐가 문제인 거지? 기독교 공동체가 부부 사이의 친밀함을 키우는 맥락이 된다면, 복음은 필수적인 핵심이다. 오직 복음만이 우리의 내재된 이기심, 용서 부족, 불안감이라는 진짜 숨겨진 장애물마저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복음은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이끈다. 복음이라는 좋은 소식에 흠뻑 젖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의 장엄함과 우리 자신의 죄의 중대함을 경험하게 된다. 한번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부부를 상담했다. 일단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검토하도록 요청한 다음에, 나는 각 배우자가 45분 동안 상대방의 결점을 지적하는 것을 경청했다. 그들의 경우에 문제의 진짜 원인은 그들의 죄였다. 상대방의 결점은 엄청나게 컸지만, 자신의 결점은 작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이유가 다름 아닌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는 복음은 이런 식의 왜곡된 견해를 말살시킨다. 그러나 복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깨끗해지고 소중히 여기심을 받았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알고, 또 사랑하신다. 그렇기에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진정한 부부 사이의 친밀함은 기도하고 소중히 여기고 추구해야 할 귀중한 보석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추구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원제: What Keeps Couples Apart? How to Pursue Marital Intimacy출처: www.desiringgod.org번역: 무제
부부관계
친밀감
부부생활
결혼과교회
복음과부부생활
부부갈등
마지막 혼인 잔치
by Marshall Segal
2022-05-20
왜 역사는 홀로 있는 한 남자와 함께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하나님은 남자를 만드시고는 왜 잠시 멈추셨을까? 하나님은 그 사이에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그 남자 앞으로 이끌어 오시고, 왜 마지막에 가서야 그의 배필, 그의 여왕을 만나게 하셨을까? 에덴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지만, 딱 한 가지는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창 2:18).에덴동산에서의 결혼은 오랜 기다림 끝에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그렇게 만드신 데는 분명한 뜻이 있으셨다. 하나님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이 광대하고 놀라운 지구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창조의 마지막에 이 외침이 기분 좋은 지진처럼 그가 만드신 만물에 울려 퍼지게 하셨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창 2:23).결혼은 마지막 순간에 첨가된 것이 아니다. 결혼은 완성―살과 피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 남자와 여자, 친밀과 안정과 생식―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창 1:27-28). 하나님은 결혼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곳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아담의 짝을 만드시는 걸 미뤄 두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혼인을 통하여 남자가 홀로 지내는 그 긴장, 온 세상을 사로잡고 있던 긴장을 해소시키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로 둘을 만드시고, 다시 둘로 하나를 만드신다. 그렇지만 결혼의 아름다움이 저 최초의 러브 스토리를 이룬 원천은 아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는 남자가 또 다른 사랑, 더 큰 사랑, 더 좋은 배필이 있나 찾아 사방을 헛되이 돌아다니게 내버려 두셨다. 결혼은 왜 있는 것일까?하나님은 아담이 창조의 제단 앞에 오랫동안 불편하게 서 있게 하셨고, 이로써 우리가 하와를 고대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랜 시간을 기다리신 다음에 당신의 아들을 그 제단에 보내셨고, 이로써 우리가 그 신랑을 만날 날을 고대하게 하셨다.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저 첫 번째 결혼을 주제하실 때 당신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엡 5:31-32).결혼은 그저 독신의 외로움을 달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택한 백성, 교회를 찾으시는 그리스도의 끝없는 뜨거운 사랑을,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교회의 중단 없는 열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결혼이다. 신랑 그리스도께서는 신부 교회를 얻을 때까지 결코 평안하지 않으실 것이다. 신부 교회는 신랑 그리스도께서 찾아내실 때까지 결코 평안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 속에 나타낼 수 있도록 아내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남편 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 5:25-27).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 속에 나타낼 수 있도록 남편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주이십니다(엡 5:22-23).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결혼을 우리의 영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캔버스로 만드셨다. 아내의 말, 태도, 행동, 결정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거룩하게 할 수도 있고 더럽힐 수도 있다. 또한 남편의 말, 태도, 행동, 결정은 신랑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할 수도 있고 더럽힐 수도 있다. 신부 교회 안에 있는 나의 기쁨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강한지를 설명하기 위하여서 결혼의 이미지를 거듭거듭 사용하시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4:5-6을 보자.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너를 구속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다. 버림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너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사 54:5-6).하나님은 신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혼인과 결혼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백성에게 전하고자 하신 당신의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님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너의 아들들이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이다(사 62:4-5).하나님은 남편들이 아내로 인하여서 참된 기쁨을 누리도록 만드셨다. 이를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인하여서 얼마나 큰 기쁨을 누리는지 알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말씀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때에 내가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아들이고, 너에게 정의와 공평으로 대하고, 너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긍휼을 보여 주고, 너를 아내로 삼겠다. 내가 너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겠다. 그러면 너는 나 주를 바로 알 것이다(호 2:19-20).그 길을 걸으시는 하나님비록 결혼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기다려온 그 신랑임을 알고 계셨다. 또한 당신의 오심이 온 세상이 기다려온 사랑임을 알고 계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다고 정죄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의 손님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이니, 그 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마 9:15). 오랫동안 신부는 죄와 수치와 소외 속에서 고통을 당하며 고대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신랑이 오셨다. 하나님께서 그 동산에 심어놓으신 씨앗이 마침내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없는 작은 동산에서 싹을 틔웠다. 그는 당신의 갈비뼈를 내주는 대신에 십자가를 지고 외롭고 먼 갈보리 그 길을 걸어가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빌 2:7-8). 그 신랑은 결혼 예복을 입고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는 겸손의 옷을 입으셨고, 이름 없이 자라셨고, 대적들의 공격을 받으셨고, 고통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첫 신랑은 신부를 찾고 또 찾아다녔고, 이 마지막 신랑은 신부를 얻기 위하여 죽으셨다. 어린 양의 결혼식결혼이란 것은 결국 끝날 것이기에, 결혼―에덴동산에서도 그리고 오늘날에도―은 결혼 너머의 것을 준비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신랑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부활 때에는 사람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 22:30). 하나님은 창조세계의 중심에 신랑과 신부를 세워 두셨다. 이는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혼인의 씨앗을 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돌아오실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은 우리를 지으시고 허락하신 결혼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하와를 얻게 된 아담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예수께서 당신의 얻으실 때에, 열방은 “큰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큰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한 소리”로 노래할 것이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6-8).그리고 천사가 외칠 것이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9:9). 마침내 자신의 아내를 찾은 신랑의 기쁨을 우리 모두 저 멋진 마지막 결혼식이 임할 때 우리 모두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혼을 주셨다. 언젠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내를 주셨다. 당신이 당신의 교회 안에서 보는 아름다움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편을 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용기와 능력과 사랑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하셨다. 원제: The Wedding at the End of Marriage출처: www.desiringgod.org번역: 박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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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남자 되기: 영적 성숙을 위한 6단계
by Bobby Jamieson
2022-05-18
하나님의 남자로 더 성장하고 싶은가?어쩌면 당신은 초신자일지 모른다. 예수님을 믿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성격도 많이 바뀌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쩌면 당신은 오랜 신자일지 모른다. 그래서 영적으로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영적 성장이 있었는지 콕 짚어서 말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당신이 이 둘 중 하나에 해당한다면, 이 글에 담긴 두 목표는 당신을 위한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포부를 갖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남자가 되는 여정에 필요한 몇 가지 지침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의 남자”(man of God)라는 표현에서 “남자”는 의도한 단어다. 나는 특히 남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부분 내용이 여성에게도 적용되지만, 다섯 번째는 오로지 남자로 부름 받은 형제에게만 해당한다. 먼저, 새로운 목표(new ambition)부터 제시하겠다.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남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길 바란다. 그리고 그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한 것처럼 말이다. “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을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딤전 4:7-8).경건은 “모든 면에 유익”하다. 경건은 육체적 힘이나 재정적 성공보다 더 가치 있다. 경건은 경력이 넘치는 두꺼운 이력서나 탐나는 재산보다 더 가치 있다. 경건은 장기적으로 세상의 어떤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그럼 어떻게 경건을 얻을까? 여기 여섯 가지의 조언이 있다. 간격을 명심하라첫째, 당신과 하나님의 성품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염두에 두라. 이 간격은 결코 좁혀질 수 없다. 아니, 사실상 “무한한 간격”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이 간격을 뛰어넘으라고 명령하신다.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 19:2; cf. 벧전 1:15-16).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성품을 보고 평가하는 법을 배우라. 성경을 거울삼아 당신에게 부족하지만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에게는 있지만 하나님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요일 1:5). 당신 안에 어떤 어둠이 있는가? 어떤 빛이 없는가? 굳이 어떤 특정한 기준으로 자신을 측정하려면, 산상수훈(마 5-7장), 성령의 열매(갈 5:22-23), 그리고 장로의 자격(딤전 3:1-7; 딛 1:5-9)을 공부하라.이 간격을 더 잘 유념하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경건한 사람을 찾아 연구하는 것이다. 당신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기쁨, 그리고 사랑을 더 많이 발산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를 알아가라. 그에게 가까이 가라. 그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아보고, 그를 따라하라. 당신과 그의 성품 사이의 간격은 당신과 하나님의 성품 사이 무한한 간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어떻게 경건한 사람이 더 경건해졌는지를 배우는 것은 경건을 향해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동기를 발굴하라진정한 변화는 마음에서 온다. (물론 동기가 모든 변화의 원인은 아니지만) 이를 위해서는 일련의 새로운 동기가 필요하다. 경건에 있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 당신의 주된 동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고전 10:31).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찬양 받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훈련하라.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열망으로 삼으라(고후 5:9).우리의 주제 구절이 되는 디모데전서 4:7-8에서 바울은 경건이 모든 면에서 유익하다고 약속한다. 그럼 경건이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는 무엇일까? 경건을 추구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경건은 그 어떤 육체적 능력이나 기술적 도달 또는 군사적 힘보다 더 큰 능력을 준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잠 16:32). 경건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깊은 자유, 곧 자아의 압제와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을 맛보게 한다. 예수께서 약속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 8:31-32). 경건이 주는 만족은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 더 크고 값지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은 큰 이득을 줍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딤전 6:6-7).권력이나 자유를 원하는가? 아니면 영구적이고 확실한 이익을 원하는가? 당신은 경건 안에서 모든 선함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하며 신뢰할 수 있는 형태를 발견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의 동기를 지속적으로 재조정하기 위해 노력하라.변혁적 습관을 키우라당신은 변혁적 습관을 키워야 한다. 특히 성경 공부, 묵상, 개인 및 그룹 기도를 위한 습관을 길러야 한다. 도날드 휘트니의 Spiritual Disciplines for the Christian Life(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위한 영성 훈련)과 데이비드 마티스의 은혜 받은 습관(Habits of Grace)은 실제적이고 도전적인 지침서이다.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과 꾸준히 교제하는 습관이 없다면, 다음과 같이 시작하도록 권장한다. 아침 일정이 어떻게 되건 20-30분이라도 조금 더 일찍 일어나라. 성경 어느 곳이라도 일단 펴서 읽으라. 시편이나 잠언의 한 장이 될 수도 있고, 목사님이 다음 주일에 설교할 구절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기도 제목을 찾으라. 본문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무엇인가? 본문이 당신의 삶에서 어떤 죄를 드러내는가? 본문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구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 읽기를 기도로 바꾸면 비록 그리스도와 보내는 시간이 짧더라도, 그 시간은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매일 변화하는 정기적 재충전의 엔진이 될 수 있다.새로운 모델을 구하라누구에게나 모델이 있다.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대담한 개인주의자라고 해도 닮고 싶은 남자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이든 직업적이든, 피상적이든 실체적이든, 당신이 알고 있거나 최소한 알고 있는 남자들이 있고, 닮고 싶은 남자가 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의식적으로 경건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경건한 남자들을 찾고, 그들과 가능한 한 가까이하고, 그들에게서 최대한 많이 배우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빌 3:17). 그리고 또 다시 강조한다.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빌 4:9).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찾으라남자다움에 대한 거의 보편적인 정의 중 하나는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의 Is There nothing Good About Men?(남자라 좋은 건 하나도 없는가?), 195쪽을 보라). 경제적, 물질적 의미에서 보면 그런 원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가족을 부양하려면 쓰는 것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한다. 당신은 잉여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특히 남자의 책임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성경적 명령이다(딤전 5:8).그러나 소비하는 것보다 생산하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이 짧은 정의는 집에 가져가는 월급 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또한 깊은 영적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짐이 있고, 그것을 지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갈 6:2). 우리의 지혜는 제한되어 있고, 우리에게는 따라서 조언자가 필요하다(잠 24:6). 영적으로 생산적인 사람은 잉여의 짐을 지고 잉여의 지혜를 분배하며 잉여분으로 남긴 영적 선과 이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영적 생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 무엇보다 욕망을 잘 다스리고, 내 마음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노력하라.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도록 노력함으로 정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영적 도움을 많이 비축하도록 하라. 또 다른 방법은 아버지가 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이미 아버지라면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녀를 훈련하라(엡 6:4). 지금 미혼이고 앞으로 결혼을 원한다면, 당신을 매력적인 남편 후보로 만들 뿐만 아니라 좋은 아버지로 준비시킬 거룩함, 능력, 리더십 능력, 그리고 성숙함을 추구하라. 자연적이든 영적이든, 부성이야말로 남성적 성숙함의 독특한 형태이다. 아버지는 제공하고 보호하는 존재이다.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가족을 신실하게 부양하고 보호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교인임을 중요하게 여기라마지막으로, 특정 교회의 교인이라는 자격을 중요하게 여기라. 신약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특정 지역의 그리스도인의 모임(교회)에 속할 것이라고 가정한다(예를 들면, 고전 5:1-13). 나는 이 점을 비록 가장 마지막에 두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실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교인 자격은 앞에 나온 다섯 가지 항목에 대한 중요하고도 형성적인 맥락이 된다.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를 찾아 헌신하고 또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되새기고, 경건을 위한 복음의 동기를 상기시키며, 나아가 영적으로 열매 맺는 습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본받을 경건한 모델이 되어 남의 짐을 대신 지고 사랑으로 서로를 세우는 데에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여섯 가지 사항은 더 경건하게 성장하기 위한 길고 종종 어려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도약의 출발점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할 점이 있다. 교인이기에 누리는 좋은 소식은 그리스도와 서로에게 헌신한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날 때, 매주일이 항상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점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경건한 형제들과 나누는 교제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당신의 탐구 여정에 끊임없이 새로운 마음을 북돋을 것이다. 원제: The Man of God You Could Become: Six Steps Toward Spiritual Maturity출처: www.desiringgod.org번역: 무제
하나님의남자
남자다움
부성
경건훈련
영성훈련
경건의습관
영성형성
가정의 달에 ‘독신’을 설교하라
by 고상섭
2022-05-13
우리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한다. 자연히 5월이면 ‘가정’이 설교의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5월만 되면, 또 그래서 ‘가정’ 설교를 들을 때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청년이 그들이다. 가정을 이루지 못한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마저 생긴다고 그들은 고백한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청년의 비율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은 어쩌면 아름다운 가정, 건강한 가정생활 이전에 건강한 독신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한 시대이다. 성경이 독신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독신과 결혼에 대한 잘못된 문화 내러티브의 영향을 받게 될 위험성이 참으로 큰 시대이니 더욱 그러하다. 독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온전한 삶의 형태이다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기독교야 말로 독신을 삶의 형식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첫 번째 종교”라고 주장했다. 고대 종교와 문화는 거의 모두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일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독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형태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 어디에서도 독신이 기혼 성인보다 미숙하거나 완전히 영글지 않았다는 식의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온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의 삶을 사셨고, 많은 신앙인의 모범이 되는 사도 바울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결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온전한 삶의 형태라면, 독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혹자는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창 2:18)을 근거로 결혼의 절대성을 이야기하지만, 이 구절은 결혼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연합으로 존재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홀로 행복한 존재로 살 수 없다. 사랑의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담을 보시며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혼자서는 바른 신앙의 관계성을 가질 수 없다는 말씀이며, 영적 우정을 나누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신 것이다. 그러나 독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과 오늘날 문화 내러티브 속에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독신을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독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결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결혼을 꿈꾸며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여부를 따지는 세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팀 켈러 목사는 “전통 사회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우상으로는 삼는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그 자리를 개인의 독립성이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273쪽). 결혼을 절대시하는 것도 잘못되었지만, 결혼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독신이 결혼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다. 독신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믿는다고, 이것이 곧 결혼을 거부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고 결혼의 때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 전까지의 삶을 외로움이나 시기심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건강한 독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충만한 은혜 가운데 보내야 한다. 건강한 독신은 경건과 공동체를 통해 세워진다 건강한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세워 가야 하는 중대사이다. 모든 삶의 문제를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인주의 영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성경은 교회 안에서 개인의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전체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과제라 가르치고 있다.건강한 독신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이 건강한 독신을 위해서도 동일한 노력이 필요하다. 독신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외로움이다. 사도 바울은 홀로 된 과부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으로 그 외로움을 해결하라고 권면한다. 참 과부로서 의지할 데가 없는 이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간구와 기도를 드립니다. 향락에 빠져서 사는 과부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디도데전서 5:5-6) 사도 바울이 외로움을 향락과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외로움을 하나님으로 채우지 못하면 결국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외로움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해결책을 두면 관계중독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다. 건강한 독신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충만한 관계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자신의 영혼이 쉴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독신으로 살면서 맞닥뜨리는 외로움의 문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향락이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흐를 수 있다. 독신생활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두려움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은 노후에 대한 걱정이 많다. 독신으로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면 삶은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경제적으로 홀로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 공동체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이는, 예순 살이 덜 되어서는 안 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사람이라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9) 과부로 명부에 올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지원할 사람의 명단을 만든다는 것이다. 과부는 미혼의 독신과는 다른 삶의 형태이지만, 경제적으로 홀로 되었다는 점은 동일하고 그들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공동체가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건강한 결혼의 모델도 필요하지만 또한 건강한 독신의 모델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건강한 공동체라는 뿌리에서 열리는 열매들이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 없이는 건강한 결혼도 건강한 독신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건강한 독신생활은 공동체가 함께 정서적, 재정적 책임을 감당할 때 더 건강한 방식으로 세워질 것이다.독신의 유익사도 바울은 독신의 유익을 온전히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집중력에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씁니다. (고린도전서 7:32) 건강한 독신은 결혼한 사람들과 달리 시간과 돈과 에너지에 여유가 있다. 이는 곧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고 섬길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아이들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든 젊은 부부가 있다면, 예배드릴 때나 소그룹 모임에 참여해야 할 때 아이를 건강한 독신자에게 맡겨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이 일로 독신자는 건강한 결혼생활의 모델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준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독신자와 기혼자가 서로의 필요를 채우면서 더욱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독신의 시기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보내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집중하며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집중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할 때 독신의 시기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독신의 시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결혼의 때가 오면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결혼생활을 하면 된다. 독신과 결혼은 삶의 형태만 바뀐 것이지 하나님을 향한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독신의 시기는 온전히 소명에 집중할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가 될 수도 있다. 웨인 그루뎀은 그의 ‘기독교 윤리학’에서 독신을 주제로 다루면서 오늘날 결혼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한 자매의 질문을 소개한다. “결혼을 바라지만 결혼 상대를 발견하지 못한 미혼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나는 자매가 처한 상황은 베드로가 말한 ‘여러 가지 시험’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윤리학, 3권 65쪽)베드로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이 우리를 더욱 연단시켜 예수님을 닮아가게 만든다고 말한다.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베드로전서 1:6) 기독교 박해의 시대에는 순교를 각오해야 할 만큼 온갖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면, 오늘날은 결혼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어려움의 상황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결혼이 우상이 된 사람은 믿음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나누지 못하는 상대와의 결혼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결혼이 어려워지는 면이 있다. 웨인 그루뎀은 이런 고난을 마가복음 10:29에 나오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가족이나 전토를 버린 사람으로 비유하면서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내려주실 것이라 강조한다. 분명히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가족을 이룰 특권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현세에 있어 백배나 받을 것을 약속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에서의 교제 및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에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기독교 윤리학, 3권 62쪽)성경은 독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완전한 삶의 형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삶의 과정을 외로움이나 교만으로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 서로를 세워 가는 건강한 결혼과 건강한 독신의 모델이 배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 어려운 현실의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알고 믿음으로 그 길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충만히 채워 주실 것이다. 건강한 가정의 모델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독신의 모델이 더욱 절실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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