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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SQ란 무엇인가?
by 최창국2023-11-27

인간의 삶-생명은 형성하는 하나님의 신비에 의해 육체와 마음과 영(시 16:9)으로 선(先, 태초에/최초에) 형성된 통전적 존재다. 인간의 삶-생명은 생체적 육체 또는 몸, 역할적 마음 또는 정신, 초월적 영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되어 가는 존재다. 인간의 세 차원은 내적으로 상호 대화적, 상호 침투적, 상호 형성적 작용을 통해 온전한 삶을 형성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어느 한 차원만으로는 온전하게 형성될 수 없다. 인간의 세 차원은 내적 차원이면서 동시에 내적 형성의 장이다. 사회-역사적 차원은 외적 형성의 장으로서 인간의 삶을 함께 형성하는 근원적 차원이다. 인간은 사회-역사적 상황 안에서 현존하면서 세계로부터 형태를 부여받고 또한 형태를 형성해 가는 존재다. 인간의 생체적, 역할적, 초월적, 사회-역사적 차원이 상호 작용을 통해 공명(consonance)을 형성할 때 온전한 삶을 형성할 수 있다. 


천연적인 통전적 존재로 선 형성된 인간은 생체적, 역할적 차원을 통해 발현되는 IQ와 EQ와 초월적 또는 영적 차원을 통해 발현되는 SQ를 창조적 선물로 받았다. SQ(Spiritual Quotient 영성 지수 또는 지능)는 인간의 정신 또는 마음과 유기적인 관계 안에 있지만, 몸과 정신을 초월해 형성하는 하나님의 신비와 마음과 뜻과 공명하게 하는 지능으로 초월적 지능이다. SQ는 인간으로 하여금 근원적 문제인 선과 악을 질문하게 하고, IQ와 EQ를 통합하며, 제한된 삶의 조건을 초월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게 하는 지능이자 인격이다. 데오도르 로작이 “우리는 이제 영혼의 운명이 곧 사회적 질서의 운명이라는 것-만일 우리 안의 영이 말라비틀어지면 우리 주변에 세워 놓은 온 세계 역시 말라비틀어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Theodore Roszak, Where the Wasteland Ends: Politics and Transcendence in Post-industrial Society, xxii-xxiii)라고 간파했듯이, 인간의 영의 지능인 SQ는 인간의 삶-생명에서 중요한 지능이자 인격이다. 


인간은 타락 후에 공명적 삶에 기능 장애가 발생하여 조화로운 삶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불공명적 삶은 SQ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불구 상태가 되었다. 원래 히브리어의 사탄은 ‘무응답’, ‘응답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은 하나님께 응답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탄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SQ가 불구 상태가 되어 하나님과 불공명적 상태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SQ가 불구 상태에 놓이면 실제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즉, 인간은 SQ가 불구 상태가 되면 자신의 IQ와 EQ를 통해 얻은 지식과 명예와 소유 등에 스스로 지배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자의식에만 의존하게 되고, 삶의 겉모습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고, 삶의 근원적인 것들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인간의 SQ가 형성하는 하나님의 신비로부터 분리되면 결국 악의 힘에 노출되고 만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인간의 심리 내적 에너지마저 불공명적 상태가 된다. SQ가 결여된 인간의 불공명적 삶은, 쇠렌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부른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절망은 죽음, 생명의 결핍,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반응의 결핍이 그를 구속한다. 


인간이 자살을 하는 근본 원인도 SQ의 결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SQ가 결여되면 인간은 삶의 궁극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인간의 자살은 절망의 극한적 행위이고, 무의미성에 대한 항복과 관계되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서 자살이나 자살 시도가 유행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여러 요인으로 나타나지만, SQ와 깊은 관계가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런던 선데이 타임스는 젊은이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원인 중 하나는 삶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어서 자살을 시도한다고 보고하였다. 의미의 상실은 결국 SQ의 결여와 관계가 깊다. SQ가 결여되면, 삶의 의미를 순간 너머를 바라보거나 사태를 더 큰 의미와 가치의 구조에 자리매김하는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SQ의 결핍은 심각한 영적 왜곡 상태를 낳는다. 인간을 자살로 몰아넣는 절망은 영적 왜곡 상태의 가장 심각한 형태다. 그러므로 형태와 정도와 관계없이 모든 영적 왜곡 상태는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며, 종종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SQ가 결여되거나 배제되면, 인간의 생체적, 역할적, 영적 성향 모두가 왜곡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삶은 불공명적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인간의 영적인 병도 삶-생명의 불공명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적 건강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SQ와 IQ와 EQ가 전체적으로 공명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SQ는 영적인 병에서 영적 건강 상태로 가게 하는 원형적인 원동력이다. SQ는 의미의 회상과 관계된 지능이다. 여기서 회상은 문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분열된 조각들을 ‘다시 모으다’(recollect), ‘모으다’(gather)라는 뜻이다. SQ는 삶-생명의 차원들이 흩어져 불공명적 상태에 놓일 때, 다시 모아 공명적인 상태로 전환하는 지능이자 인격이다. 깊은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도 인간의 IQ와 EQ와 SQ의 공명적인 관계의 회복과도 관계된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SQ는 인간 존재의 핵심에 자리 잡은 신비로운 지능이자 인격이다. 이것은 공명을 위한 근원적인 지능이다. SQ는 다른 형성적 지능인 IQ와 EQ의 성향들을 불필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들을 더 새롭고도 심오하게 뿌리내리도록 한다. SQ는 IQ와 EQ가 자신들의 성향들 자체에 사로잡히게 되는 일이 없이 서로 생동적으로 공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인간의 공명, 즉, 인간의 정신 또는 마음과 몸의 평화의 신비스러운 원천이다. 


인간의 SQ가 병들면, 인간은 오로지 역할적 성취나 생체적 만족 또는 사회적 조정에만 중심을 두게 된다. 이런 성향의 인간의 역할적 에고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형성하는 하나님의 신비의 목소리에 대해서 합치적 순종 속에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의 역할적 정신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역할적 정신이 인간을 일방적으로 사로잡아 버리게 되면, 자기만족과 자아도취, 그리고 교묘하게 자기를 낮추는 듯 과시하는 오만함으로 왜곡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인간은 너무도 자주 공격적인 분석적 방식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성향을 분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역할적 정신에 지나치게 중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역할적 정신의 역할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여러 형태로 발현되었다. 예를 들어 역할주의의 한 형태인 관념론에서는 마음이 물질을 형성한다고 여기고, 유물론에서는 물질이 마음을 만들어 낸다고 여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삶-생명에 대한 환원주의적 형태들이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역할적 정신을 중심에 두는 환상을 초래했다. 이러한 역할주의적 삶의 형태는 본질적으로 오만이다. 삶의 오만 형태는 이성주의, 주지주의, 심리주의, 물질주의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삶의 오만 형태인 역할주의적 야망은 불공명적 삶을 야기한다. 인간의 SQ가 결여된 역할적, 생체적 차원은 언제든지 이성주의와 유물론주의와 같은 형태 등으로 발현될 수 있다. 


SQ는 삶의 차원들을 분열하게 하지 않고 다른 차원, 즉 IQ와 EQ와 공명하도록 한다. 이것은 역할주의적 정신이 갈라놓은 것을 다시 온전하게 한다. SQ는 해체적이고 공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오히려 모든 불공명적 성향들 속에서 삶과 세계의 더 깊은 일치를 묵상적이고 회복적이고 온유하게 보존하게 하는 지능이다.  


SQ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근원적 3중 요소와 관계된 지능이자 인격이기도 하다(마 22:37-40; 고전 13:13). SQ는 형성하는 하나님의 신비에 의해 형성된 인간의 삶-생명의 근원적 형태가 영적 존엄과 신비와 관계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형성하는 하나님의 신비와 공명하게 하는 지능이다. 이러한 예는 성경의 바울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회심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형성하는 하나님의 신비에 의해 발현된 영적 체험이었다. 하나님에 의해 그의 SQ가 발현되었을 때, 그의 생체적 몸, 역할적 정신을 통해 얻은 신학적 지식과 교리도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빌 3:5-9). 또한 형성하는 하나님의 신비에 의해 그의 SQ가 발현되었을 때 역할주의의 성향에 의해 형성된 율법주의적 삶의 성향이 근원적 삶의 성향인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성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고전 13:13). 


인간의 평화의 상태와 온전한 상태는 태평하고 아무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생명의 차원들이 영적인 중심에 의해 질서가 잡혀 공명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SQ는 인간의 삶-생명의 공명 형성, 즉, 인간을 더 온전하고 더 넓은 삶-생명의 흐름 속으로 이끄는 지능이자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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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창국

최창국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학위(MA, PhD)를 받았다. 개신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제자들교회 담임목사로 섬겼다. 현재는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삶의 기술』, 『실천적 목회학』, 『영혼 돌봄을 위한 멘토링』, 『해결중심 크리스천 카운슬링』, 『영성과 상담』, 『기독교 영성신학』, 『기독교 영성』, 『중보기도 특강』, 『영성과 설교』, 『예배와 영성』, 『해석과 분별』, 『설교와 상담』,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 『영혼 돌봄을 위한 영성과 목회』 등이 있다. 역서는 『기독교교육학 사전』(공역), 『공동체 돌봄과 상담』(공역), 『기독교 영성 연구』(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