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만의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지 않은 채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으며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과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근원이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꿰뚫어 내려가서 그 근원을 보면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거듭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다릅니다. 수백만 명의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은 행복의 근원에 있어서 결코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그들은 여러 다른 이유로 교회에 다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이 수백만 명이나 있는데 그들은 거듭나지 않은 채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믿으며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과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근원이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꿰뚫어 내려가서 그 근원을 보면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거듭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다릅니다. 수백만 명의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은 행복의 근원에 있어서 결코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다른 이유로 교회에 다닙니다. 오히려 …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완전한 의가 나타나며 부활이 일어나고 죄와 사망과 타락이 없는 상태요. 그때도 이런 계명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살인, 간음하지 말라” 부활의 몸을 입고는 살인이나 간음을 저지르기 힘들겠지만요. 그런 율법이 정말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고 답변한다면 아직 완전한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거겠죠. 만일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다면 이런 물음을 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걸까?’ 저는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살인하지 …
저는 실제로 성경에서 지옥에 대해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문자 그대로라고 믿습니다. 은유적으로 도입된 부분도 물론 있지만요. 예들 들면, 어둠은 하나님의 완전한 부재를 나타냅니다. 불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잦아들지 않는 열기는 죄책감에 삼켜지는 양심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은유적이고 문자적 이미지 둘 다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들은 바로 이에 대해 가장 좋은 설명은 이미지가 있다면 어떤 이미지가 은유라면, 그리고 성경에서 그 은유가 사용된 경우라면 언제든지 그 이유는 그 실체를 제대로 묘사할 수 없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