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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다시 ‘보이는 교회’로

개혁주의 교회론 읽기 2: 깊은 교회, 선교적 교회, 교회 밖의 교회

by 김경호2023-02-25

개혁주의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명제처럼, 교회론도 계속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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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운동 2.0 위하여

서울기독교세계관연구원(SIEW)과 함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다시 원점으로: 보이는 교회론 


오늘날 전통 교회와 이머징 교회 사이에서 고민하며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전통 교회의 조직성과 지나친 이머징 교회의 유기체성을 다시 균형 있게 조화시키고자 합니다. 최근 짐 벨처Jim Belcher는 이러한 교회의 시도를 “깊은 교회”Deep Church라고 표현합니다. 그의 깊은 교회론은 전통 교회와 이머징 교회 간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성경+전통+선교라는 논쟁의 틀을 다시 재구성함으로써 균형을 맞추자는 것입니다. 성경과 선교만을 강조하는 이머징 교회와 성경과 전통만을 강조하는 전통 교회를, 이 세 가지 요소로 통합하자는 것입니다. 벨처는 이머징 교회를 유기체 교회로, 전통 교회를 제도 교회와 동일시합니다. 결국 교회론에 있어서 그의 대안은 제도 교회와 유기체 교회라는 “보이는 교회론”을 다시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벨처의 이 아이디어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er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벨처는 카이퍼의 교회론을 적용하여, 교회는 ‘구분’되는 동시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구분과 참여는 카이퍼의 교회론에서 제도 교회와 유기체 교회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벨처는 ‘참여’의 부분에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각과 언어가 일반은총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원점은 전통적인 “보이는 교회론” 안에서 카이퍼에 의해 수정, 보완된 “(교회 밖의) 유기체 교회론”입니다. 


‘선교’를 ‘균형’으로 


여기서 나는 벨처가 카이퍼의 교회론을 대안적 교회론으로 보았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벨처의 등식인 성경+전통+선교에는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유기체성을 선교라고 보는 관점은 환원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세계관 진영에서 선교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이러한 환원주의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이클 고힌Michael Goheen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Graig G. Bartholomew의 세계관에 나타난 선교에 대한 강조는 지나칩니다. 고힌과 바르톨로뮤의 선교적 대면 개념은 그 출처인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으로부터 너무 많은 선교적 개념들을 도입함으로써 지나치게 선교화하는 경향으로 나아갑니다. 그 구체적인 예들로는 ‘선교적 대면’ ‘선교적 대화/소통’ ‘선교적 자세’ ‘선교적 교회’ ‘선교적 소명’ ‘선교적 실천’ ‘선교적 논리’ 등과 같은 개념입니다. 이러한 표현에 내재된 개념들은 에큐메니칼 신학의 전형적인 선교화의 특징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주의 진영에서 선교 개념을 주도적으로 제안한 존 스토트John Stott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균형” 있는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배우는 교회(양육), 사랑하는 교회(교제), 예배하는 교회(예배), 전도하는 교회(선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토트는 이렇게 진술한다. “최초의 성령 충만한 공동체의 이 같은 특징들을 되돌아볼 때, 그것들이 모두 교회의 관계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관계들이란 사도들-양육, 서로-교제, 하나님-예배, 세상-선교입니다. 스토트는 균형 잡힌 교회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어느 하나에 의해 환원되는 것들이 아니라 상호 관련성을 가지면서 교회 공동체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이머징 교회의 ‘선교’는 성경과 기독교 전통과 함께 ‘균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보이는 교회의 핵심은 하나의 표지로서 교회됨이 교인에게, 교인의 그리스도인됨이 비-그리스도인에게 보여져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 보이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비-그리스도인들이 교회됨과 그리스도인됨을 보고,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유기체 교회의 목적이 달성됩니다. 


온전한 제안: 카이퍼의 보이는 “교회 밖의 교회론” 


카이퍼의 유기체 교회론. 카이퍼는 제도 교회와 유기체 교회를 구분합니다. 제도 교회는 유기체 교회보다 그 범위가 좁습니다. 그 이유는 제도 교회가 말씀, 성례, 자선, 그리고 교회 정치의 사역에 한정되지만, 유기체 교회는 재-창조로부터 발생하는 기독교 교제, 기독교 지식, 기독교 예술, 그리고 가정, 사회, 사상, 사업, 과학 등의 모든 것들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유기체 교회는 그 발생에 있어서 제도 교회에 우선합니다. 즉, 유기체 교회는 제도 교회 이전에 존재했으며, 제도 교회 배후에 놓여 있고, 제도 교회에 실체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카이퍼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산위에 있는 동네’로서의 교회를 제도 교회와 특별은총의 열매로 구분하고, ‘교회 밖의 시민적 삶’으로서의 교회(교회 밖의 교회)를 유기체 교회와 일반은총의 열매로 구분합니다. 또한 카이퍼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제도적 교회와 유기체 교회를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관계와 관련하여 네 영역으로 세분합니다: (1) 특별은총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일반은총의 영역(중국과 같인 비-그리스도인 국가), (2) 전적으로 특별은총으로 발생한 제도적 교회 영역(그리스도인의 제도적 교회), (3) 특별은총의 빛에 의해 밝게 비추어진 일반은총의 영역(과거 미국의 모든 그리스도인), (4) 일반은총의 데이터를 활용한 특별은총의 영역인 유기체 교회입니다. 여기서 유기체 교회는 ‘교회 밖의 시민적 삶’으로서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 교회 밖의 유기체 교회의 영향력은 특별은총으로부터 일반은총을 향해 나아가, “한 나라의 법과 생활에 있어서 노예제도의 폐지를 이끌어내고, 여성의 지위 향상, 공중도덕의 보존, 안식일에 대한 존중,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 물질 이상의 이상에 대한 일관된 존중에 이르기까지 인간적인 모든 것의 발전을 이끌어” 냅니다. 카이퍼의 유기체 교회 개념은 세상의 변혁을 위한 전략이자 영향력 있는 수단입니다. 


카이퍼의 전통을 따르는 카이퍼리안. 고든 스파이크만Gordon J. Spykman은 카이퍼의 유기체 교회론에 따라 변혁을 설명합니다. 스파이크만의 교회론에 있어서 세상과 관련한 변혁의 핵심은 유기체로서의 교회 개념에 있다고 봅니다. 조직적 교회는 유기체 교회를 위한 수단입니다. 조직적 교회는 소문자 church로 표기되며, 유기체 교회는 대문자 Church로 표기됩니다.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다양한 사역을 수행하는 예배드리는 공동체와 교회 밖의 모든 삶의 영역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교회 안에 유기체성이 있는가 하면 교회 밖에도 유기체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 교회 밖의 유기체성의 개념에서 가장 적극적인 변혁의 의미가 나타납니다. 스파이크만은 세상, 그리스도인의 자유, 거룩함, 사명의 개념을 통해 변혁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먼저, 성경에서 ‘세상’은 세 가지의 의미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사람들의 세계로서 사회의 구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기독교적 의미로서의 죄로 물든 세속적 삶의 총체적인 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 번째 의미의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스파이크만은 이 시점에서 구속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합니다. 죄로 물든 세상과의 싸움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대규모의 도전이고, 그 해결책은 그리스도에게 있지만, 동시에 구체적이고 현대적인 방법으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거룩은 분리됨이 아니라 구별됨이고, 유기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자 헌신입니다. 같은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도 정죄로부터의 자유이면서 동시에 순종을 향한 자유입니다. 거룩과 자유는 상호 관련성을 가지며, 세상을 향한 유기체적 교회의 소명으로 인도됩니다. 이 소명은 문화명령으로 알려진 것으로서, 결혼, 가족부양, 교육, 노동, 그리고 예배를 포함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다양한 과업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파이크만은 문화명령을 대사명(마 28:18-20)과 함께 묶어 ‘무한한 사명’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무한한 권세와 무한한 동행하심으로 이 무한한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사명은 단계적으로 진행됩니다. 이 소명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으로 제도적 교회church의 사명으로, 그리고 제도적 교회에서 다시 유기체 교회Church의 사명으로, 그리고 마지막 도달점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자위데마S. U. Zuidema는 두 은총의 관계성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의 수단이 되며, 특별은총 또한 일반은총을 필요로 합니다. 먼저 자위데마는 이 일반은총의 수단적 성격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연장의 개념입니다. 죄의 결과인 죽음에 대한 심판의 연장은 특별은총을 위한 필수적 선결 조건입니다. 둘째, 제도적 교회를 위한 발판으로서의 일반은총입니다. 기독교 활동은 현세적-가시적 측면에서 일반은총의 넓은 기초를 필요로 합니다. 셋째, 교회 자체도 일반은총의 영역에 속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제도적 교회입니다. 따라서 일반은총은 제도로서의 교회와 연결되어 예비적 은혜로서 역할합니다. 또한 자위데마는 일반은총을 위한 특별은총의 역할에 대해 간접적 관계와 직접적 관계로 설명합니다. 첫째, 특별은총의 간접적 역할입니다. 기독교가 뿌리내린 곳에서 일반은총이 더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례로 유럽과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둘째, 특별은총의 직접적 역할입니다. 특별은총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활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여기서 기독교 활동의 주체는 유기체로서의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론을 되새기며 


교회의 가시성의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교회는 교회의 표지를 통해 교인들의 교회의 교회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교인의 교인됨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통해―사랑과 하나됨―비-그리스도인에게 보여져야 합니다. 따라서 보이는 교회는 조직 교회를 수단으로, 유기체 교회를 목적으로, 서로 상호작용할 때 가능합니다. 그러나 메가처치와 이머징 교회는 보이는 교회론의 균형을 깨뜨렸습니다. 메가처치는 조직성을 강조하고, 유기체성을 해체시켰습니다. 이머징 교회는 유기체성을 강조하고 조직성을 해체시켰습니다. 이러한 교회론의 균형상실에 대해, 나는 대안적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벨처는 다시 보이는 교회론으로 돌아와 제3의 길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성경, 전통, 그리고 선교입니다. 그러나 나는 ‘선교’를 ‘균형’(예배-양육-교제-선교)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보았고, 여기에 전통적으로 보이는 교회론을 발전시킨 ―교회 밖의 유기체성―카이퍼와 카이퍼리안의 보이는 교회론을 대안으로 제안했습니다. 나는 보이는 교회론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회론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통 교회로부터 발전되어 온 보이는 교회론을 시대 상황에 맞게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계속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이는 개혁주의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명제처럼, 교회론도 계속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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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경호

김경호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M.Div.) 논문 “세 가지 유형의 개혁주의 세계관 연구”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연구단체 Worldview & Work를 설립하여 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0년부터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외에서 세계관 교육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