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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나의 아름다운 습관 만들기

‘거룩에 다가가는 습관’ 기르기 연습

by 전재훈2023-03-09

‘거룩에 다가가는 습관’ 기르기 연습


· 나의 아름다운 습관 만들기

· 마음에서 기억나도록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회 청년부 새내기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청년부 부장 집사였고 형은 총무였다. 주일 저녁 집에서 밥을 먹는데 아버지가 형에게 한소리 하셨다. “청년부는 임원회를 했으면 결과를 부장 집사인 내게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아버지의 느닷없는 호통에 형은 난감했다. 자기는 회장이 아니라 총무였을뿐더러 청년부가 어떤 일을 하건 부장님에게 보고해야 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대 부장님들은 한번도 청년부 일에 간여하지 않았다. 다들 그냥 이름뿐인 부장이었고, 시각장애인교회의 특성상 비장애인이 대부분이다시피 한 청년부 활동에 시각장애인 부장 집사님이 해 주실 일은 거의 없었다. 가장 적극적인 참여라 해봐야 임원들 밥 사 먹으라고 돈이나 주는 게 전부였다. 


“버릇이 안 돼 있어서 그래요.” 


내 딴에는 형을 편들려고 꺼넨 말이었는데, ‘습관’이라고 해야 할 말을 ‘버릇’이라고 해 버렸다. 돕는다는 것이 도리어 같이 비난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발끈한 형은 숟가락으로 내 머리를 쳤다. 


습관과 버릇은 같은 뜻의 말이다. 다만 습관은 한자어이고 버릇은 순우리말이라는 차이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습관과 버릇은 다르게 쓰인다. 주로 바람직하지 못한 걸 가리킬 때 버릇을 쓴다. 내가 다리를 떠는 것은 버릇이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습관이다. 


하루의 삶 속에서 습관과 버릇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가는 것이 습관일지 버릇일지 몰라도 매일 하고 있다. 씻을 때도 먼저 물을 온수로 틀어놓고 칫솔에 치약을 묻힌다. 냉기가 사라졌다 싶을 때 입을 헹군다. 컵에 물을 받아 머리를 적시고 세수를 한다. 이런 행동은 아무런 고민 없이 물 흐르듯 이뤄진다. 이것은 습관일까 버릇일까? 옷 입을 때도 자신만의 순서가 있고 밥 먹을 때도 숟가락을 먼저 집든지 젓가락을 집든지 별생각 없이 같은 순서를 반복한다. 출근하는 과정도, 사무실에 도착해서 하는 행동도 매일 복사-붙여넣기의 반복이다. 매사에 깊이 생각하고 하는 행동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런 반복되는 일상에 의도적으로 습관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있다. 당뇨병에 걸린 후로 약을 먹는 일에 습관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약을 건너뛰거나 두 번 먹는 일이 생기곤 한다. 소화기관이 별로 좋은 않은 내가 밥 먹기 전에 새우젓 하나 집어 먹는 습관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은 의도적으로 훈련을 거쳐 습관으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습관을 만들기는 어려워도 한 번 습관으로 만들어지면 그다음부터는 매우 쉽다. 


아침에 출근하면 커피를 내리고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과 뉴스를 검색하고 그날 일과를 체크한다. 그냥 노력하지 않고도 습관이 되었다. 삶이 습관을 만들어 준 셈이다. 하지만 컴퓨터를 켜기 전에 먼저 묵상하는 일은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매일 아침 소셜 미디어로 말씀을 보내주는 지인이 여럿 있다. 그중 한 분은 시를 보낸다. 놀라운 습관을 지닌 열심 있는 지인들 덕에 말씀을 고르는 수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쁜 사진과 함께 보내주는 말씀에 내 묵상을 담아 답장하는 일은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잊어버릴 때도 많고 “귀차니즘”에 무시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켜기 전에 말씀 묵상이 와 있지 않으면 내 루틴이 방해받은 것처럼 서운해지기도 한다. 


책을 가까이하려는 노력 덕분에 내 주변에는 늘 책이 넘친다. 읽어야 할 책, 발제나 강의를 위한 책이 책상을 점령하고 있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은 책꽂이에 꽂지 않는다. 한 번 책꽂이에 들어가면 다시 꺼내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매일 읽어야 하는 책들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책상에 강림한다. 이들에게 빨리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라도 책과의 농밀한 만남을 중요한 일과로 삼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사무실에 앉으면 일반 서적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소설이나 에세이, 혹은 심리학이나 철학책에 소홀해지곤 한다. 이유를 딱히 꼽을 수는 없지만,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신학 서적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거나 강의와 발제를 위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의도적으로 만든 습관이 카페에 가서 책 읽기이다.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주인이나 손님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카페에서는 신학 서적보다 일반 서적이 더 잘 읽힌다. 커피가 주는 중독성 탓인지 인문학 서적이 주는 기쁨 탓인지 여러 날 카페에 가서 책을 읽지 못하면 몸이 달아오른다. 약속이 있으면 두 시간 정도 일찍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집에 들어가기 전 동네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보는데 대략 두세 시간이면 족하다. 두꺼운 책은 파트별로 나눠서 3일짜리 책이라는 느낌으로 접근한다. 이런 습관을 들인 덕분에 베스트셀러나 고전 필독서, 심리학이나 철학 서적을 꾸준히 읽을 수 있다. 


목사가 직업이면 신학 서적은 물론이려니와 꾸준히 인문학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사조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수고 없이 신학을 시대에 녹여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내게 주어진 은혜도 성도의 삶에 상황화하지 못하면 전달은 요원할 뿐이고, 성도의 삶과 동떨어진 언어는 외국어나 다름없다. 


책과 가까이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책을 읽는 습관도 필요한 직업이 목사이기도 하지만, 감사하게도 내게는 활자중독이 있어서 책을 안 읽고 하루를 버티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러나 일반 도서를 읽고 이해하려는 일은 의도적인 수고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나는 그 방법을 찾았고 지금도 카페에 앉아 책 읽다 말고 이 습관을 나누기 위해 글까지 쓰고 있다. 카페가 주는 물리적 환경 덕분인지 커피 향 가득하고 사람들의 대화가 나지막한 소음을 만들어 내는 이곳에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꽤 낭만적인 느낌까지도 선사한다. 


아직 책 읽는 습관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혼자 가까운 카페에 가서 책을 펼치고 앉아 우아하게 커피 한 잔 할 것을 권한다. 누군가에게 몰래 사진이 찍힌다면 이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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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재훈

전재훈 목사는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발안예향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히려 위로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