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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by 최창국2023-03-29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한다(요일 4:7-8). 요한은 이 말씀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관계 이론과 훈련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마르틴 부버는 어느 날 한 청년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종교적’ 열정이 가득한 어느 아침 이후에 오전 시간, 한 낯선 청년이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딱히 친절히 대해 주지도 않았다. … 말을 열심히 들어주기는 했지만 그가 끝내 꺼내지 않은 질문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그의 친구들에게서 그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이 그가 하지 못한 질문들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그가 우연히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운명에 이끌려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잡담을 나누러 온 것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러 온 것이었다(Martin Buber, Between Man and Man, 16)  


부버는 이 청년이 찾아왔을 때 자신은 매우 종교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상적인 삶보다는 신비로운 경험에 관심이 많았었다. 그 당시 그의 사상은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 일상보다는 신비로운 경험, 세상보다 세상 이면에 있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자신을 찾아온 청년이 자살하면서 그의 사상은 크게 변한다. 그의 죄책감은 청년을 절망에서 구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자신이 청년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부버는 그 청년이 자신을 찾아온 시간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그 청년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에게 그 일은 자기가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한 심판처럼 느껴졌다(Kenneth Paul Kramer with Mechthild Gawlick, Martin Buber’s I and Thou: Practicing Living Dialogue, 174-75). 


그의 경험은 그의 사상과 삶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는 그 후 관계의 틀을 개발했다. 바로 ‘나-그것’과 ‘나-당신’의 관계다. 그에게 이 관계의 틀은 상대방을 대하는 방식과 관계된다. 사람들을 인격이 아닌 사물이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면 ‘그것’으로 대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을 신성하거나 거룩한 존재로 보면 ‘당신’으로 대하게 된다. ‘나-그것’ 관계에서는 학벌, 출신, 돈, 직장, 가문 등으로 사람들을 평가한다.  ‘나-당신’ 관계에서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존재, 비할 데 없이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본다. ‘나-당신’ 관계에서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 보며 나와 다른 모습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는 “모든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라고 말하면서 인격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Martin Buber, I and Thou, 5). 부버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람들 사이의 ‘나-당신’ 관계가 하나님과의 ‘나-당신’의 관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즉, 나와 다른 사람을 인격으로 보는 모든 진정한 관계는 ‘영원한 당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부버는 그의 삶의 여정에서 어느 날 자신과 종교적 믿음이 다른 그리스도인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리어트(T. S. Eliot)와의 만남이 끝난 후에 사람들이 사상적 갈등을 예상하고 질문을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사람을 만날 때 사상이 아닌 그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습니다(Kenneth Paul Kramer with Mechthild Gawlick, Martin Buber’s I and Thou, 32). 


부버의 ‘나-당신’의 관계적 틀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의미를 제공해 준다. 즉,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신성한 하나님의 형상인 ‘당신’으로 보고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물론 사람들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도 사랑의 대상이지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진리를 옹호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데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자리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잘 알고 여러 형태의 영적 훈련을 열심히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방어적이고, 비판적이고, 엘리트주의적 자세를 가졌다. 예수님이 원하는 제자는 성경과 교리의 지식으로 넘쳐난 엘리트주의자가 아니다.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통합한 제자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라는 제자의 모습을 분명히 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는 누구보다도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와 생각이 다르거나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것은 사람들이 신뢰가 되지 않을 때도 사랑하는 것이며, 확신을 가지고 함께 계속 걸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Ken, “Ethnography and Congregational Transformation at a Protestant Church,” 최창국, 실천적 목회학, 42에서 인용). 그런 의미에서 사람 사랑에 관한 제자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하워드 스나이더의 말처럼 “하나님 나라가 서로 사랑하는 우리의 관계를 통해 입증되기까지는 우리가 믿지 않는 깨어진 세상을 향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Howard Snyder, The Community of the King, 35). 


한국 교회는 무엇보다 영성 형성을 통한 공동체적 삶의 함양과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의지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 린더 켁이 Interpretation 창간 50주년을 기념하는 기고문에서 했던 말처럼, “지금은 성경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멈추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걱정할 때다. 지금은 성경을 이용하려는 것을 멈추고 성경과 더불어 살아야 할 때다”(Leander Keck, “The Premodern Bible in Postmodern World,” Interpretation 50, 135). 성경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성경을 통해 변혁적 삶과 사랑하는 삶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타자적 실체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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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창국

최창국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학위(MA, PhD)를 받았다.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삶의 기술』, 『실천적 목회학』, 『영혼 돌봄을 위한 멘토링』, 『영성과 상담』, 『기독교 영성신학』, 『기독교 영성』, 『영성과 설교』, 『예배와 영성』, 『해석과 분별』, 『설교와 상담』, 『영혼 돌봄을 위한 영성과 목회』 등이 있다. 역서는 『기독교교육학 사전』(공역), 『공동체 돌봄과 상담』(공역), 『기독교 영성 연구』(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