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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팀 켈러, 조용히 다가와 내 삶을 바꾼 사람
by 이규현2023-05-26

기리며: 팀 켈러(1950-2023)

2004년 안산동산교회는 하나의 큰 나무가 되기보다 큰 숲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로 하면서 교회 분립개척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결정의 결과로 내가 개척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 어깨에는 두 가지 큰 짐이 지워져 있었다. 하나는 개척된 우리 교회가 아름답게 뿌리를 내려서 또 하나의 나무로 든든히 서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의 짐은 우리 교회가 좋은 모델이 되어서 안산동산교회의 ‘큰숲운동’이 아름답게 이어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한국 교회의 분립 운동은 모 교회에서 사역하던 부목사에게 재정을 지원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얼마간 개척 헌금을 해주는 대신에 모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서 개척하게 했다. 물론 그것도 개척하는 목회자에게는 매우 고마운 것이고 모 교회 입장에서도 정말 힘든 결정을 한 것이었다. 안산동산교회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교회개척 운동을 펼쳤는데, 재정 지원과 함께 사람을 파송해 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 결과로 우리 교회가 개척될 때 100여 명의 성도들이 동참했고, 이것이 교회가 빨리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안산동산교회 담임목사였던 김인중 목사님과 함께 10여 명의 담임목사님들이 모여서 매주 셀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 모임에서 분립개척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거기서 더 많은 교회가 분립개척 운동에 동참하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실제로 몇몇 교회들이 분립개척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자연스럽게 고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분립한 모든 교회가 건강하게 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미국의 리디머 교회에서 시티투시티(CITY TO CITY)라는 이름으로 교회분립 개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것을 배우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 결과로 팀 켈러 목사님의 제자들이 한국에 와서 CTC의 개척 운동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던 소중한 교훈이 재정 지원과 개척 멤버 파송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척할 목회자를 평가하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고민이 확 뚫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CTC코리아가 생기게 되었고, 그때부터 팀 켈러 목사님의 여러 책을 읽게 되면서 그분의 사역 방향을 같이 배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리디머 교회를 방문해서 팀 켈러의 설교를 한 번 들은 경험과 그분이 한국에 왔을 때 설교를 듣고 가까이에서 같이 식사한 정도의 친분밖에 없지만, 그분의 수많은 저서와 여러 훈련 매뉴얼을 통하여 소중한 가르침을 얻게 되었고, 그것이 내 설교와 목회의 방향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미국 CTC에서 오신 목사님들의 강의를 처음 들을 때 교회개척의 노하우를 듣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이분들은 계속해서 복음에 대해서 강의했다. 솔직히 많은 사람이 실망했다. 우리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복음은 단지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한 자격증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 전반에서 ‘왜, 무엇을, 어떻게’를 결정짓는 전부임을 알게 되었다. 복음을 설교하지만 목회는 세상의 가치관으로 하고 있고, 복음을 공부하지만 세상에서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그런 복음 말고,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모든 방식,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를 결정짓는 것이 바로 복음임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교회가 도시 속에서 어떻게 복음적으로 사역할지 많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우리끼리 교회에 갇혀서 게토화되어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도시를 이해하고 도시를 사랑하고 도시의 필요를 채워가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깨닫고 적용하게 되었다.


또 팀 켈러를 통해서 우상의 실체를 깊이 안 것이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 자신도 분명히 복음적 사역을 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정말 눈치챌 수 없는 우상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인정과 박수가 어느새 내 안에 우상으로 들어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을 온전히 다스리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우상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별히 팀 켈러를 통해서 배운 그리스도 중심 설교는 성경의 본문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큰 흐름을 보게 하는 눈을 열어주었다. 결국 모든 설교는 청중에게 하기 전에 먼저 내가 들어야 하는 설교가 되었고, 그것이 내 삶을 새롭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부교역자들과의 관계, 목회 방침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게 했다. 특히 더 큰 교회를 목표로 끝없이 달려가는 목회가 아니라, 자신의 살을 찢으면서 우리를 살리신 주님의 마음으로 가장 귀한 동역자들을 새로운 교회로 파송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더 큰 교회를 부러워하면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고 작은 교회와 비교하면서 거들먹거릴 수도 없는 복음적 교회를 향해 작은 발걸음을 내딛게 했다.


처음에 소중한 사람들을 파송하고 나면 그 빈자리가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빈 자리에는 그동안 소극적으로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들이 최선을 다해 섬김으로써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그리고 파송 받아 간 교회들을 방문해 보면 우리 교회에서 겨우 주일 출석만 하던 분들이 그곳에서는 앞장서서 섬기는 일꾼이 되어 있었다. 결국 교회개척은 파송된 교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파송한 우리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팀 켈러가 말한 대로 가장 확실한 전도 방법은 교회개척이고 가장 확실한 교회 갱신도 교회개척임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 팀 켈러가 남긴 여러 가르침이 교과서에 들어 있는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 목회와 삶에서 살아서 펄떡거리게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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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규현

이규현 목사는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산격제일교회를 거쳐 안산동산교회 부목사로 섬기는 중 2004년 안산동산교회로부터 분립 개척되어 은혜의동산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CTC코리아 이사, 은혜의동산기독교학교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