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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팀 켈러의 질문에 답함
by 김선일2023-06-19

심플리 미셔널

Simply Missional


탈교회화, 비종교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선교 과제로서 복음을 새롭게 제시합니다. 기독교의 변증 유산으로부터 오늘을 위한 복음 변증의 지혜를 발굴하고, 현대 한국의 문화적 표현들과 복음의 대면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교인들은 이제 아직 “집” 안으로 들어올 준비가 되지 않은 외부인에게 레모네이드를 대접할 수 있는 포치를 그들의 교회에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외부인을 준비시켜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교회의 포치는 어떤 모습일까? 

위의 글은 지난 5월 19일 별세한 팀 켈러 목사의 (지금까지 나온) 마지막 글에 실린 한 대목이다. “포치에서 나누는 레모네이드 한 잔: 탈 기독교 사회에서 복음전하기”라는 이 글에서 그는 미국 교회가 처한 전도의 위기 상황과 아울러 그 해결방안을 논한다. 비슷한 문제의식 내용이 팀 켈러의 탈 기독교시대 전도라는 책에서도 나왔다. 이 책의 원제는 “어떻게 다시 서구 사회에 전도할 것인가”(How To Reach the West Again)이다. 사실 이 질문은 은퇴한 선교사 레슬리 뉴비긴이 1984년 프린스턴신학교 워필드 강연에서 최초로 제기한 것이다. 그의 강연 제목 “선교학적 문제로서 후기 계몽주의 문화: 서구 사회는 회심할 수 있는가?”(‘Post-Enlightenment Culture as a Missiological Problem: Can the West be Converted?)였고, 팀 켈러는 2017년 프린스턴신학교 카이퍼 강연에 초대받아 33년 전에 제기된 질문을 염두에 두고 “뉴비긴에게 답함”(Answering Newbigin)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상황에서 답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팀 켈러의 탈기독교시대 전도가 그 강연의 내용을 확장하여 전도의 방향을 위한 담론을 제시했다면, “포치에서 나누는 레모네이드 한 잔”은 전도에 대한 고민과 해법을 포치와 레모네이드라는 일상의 은유로 표현하며 실제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 것이다. 아쉽게도 그는 이후에도 계속 구체적인 전도의 사례들을 다루겠다고 밝힌 상태에서 운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작이 나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대신, 팀 켈러 역시 뉴비긴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필자가 처음 인용한 “교회의 포치는 어떤 모습일까?”는 미국과 서구 교회만의 질문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한국 교회의 질문으로 마주해야 한다. 한국 교회 역시 20세기의 폭발적인 기독교 성장을 경험한 뒤 현재 교세의 감소뿐 아니라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 저하로 인해 복음을 증언하는 과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레슬리 뉴비긴이 서구 기독교 문명의 침식을 목도하면서 던진 질문에 대해 미국의 상황에서 팀 켈러가 대답하고자 했다면, 이제 그 질문은 한국의 상황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할 과제이다. 


포치와 레모네이드


팀 켈러와 이 글에서 말하는 포치와 레모네이드의 의미를 잠시 살펴보자. 


1) 포치(porch)라는 곳: 포치는 집 입구에 마련된 테라스와 같은 공간으로 길과 접하고 있다. 포치는 집 안과 밖을 잇는 중간 지대이다. 안전하고 이웃끼리의 왕래가 빈번한 동네는 포치에서 사람들끼리 만나고 인사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팀 켈러는 포치를 오늘날 활기찬 동네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집을 교회로, 거리를 세상으로 본다면 포치는 세상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와 접촉하는 공간이다. 포치는 지리적 의미에서의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비록불신자라 하더라도 기독교 신앙에 우호적인 의식을 갖고, 교회와도 어느 정도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에게는 관념적, 정서적 포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중립적 공간에서 사람들은 교회나 그리스도인들과 접촉하고 기독교에 대해서 듣고, 신앙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포치란 “사람들이 일반적인 교회 예배와 교육 이에 유익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기독교에 노출되는 장소를 말한다”고 한다. 장소는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일련의 관계라고 한다. 불신자들이 환영받고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도 될 수 있고, 그들과 맺는 좋은 관계도 될 수 있다.

 

2) 포치의 상실: 팀 켈러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인용하며 유럽의 문화는 그 자체가 교회를 위한 (포치가 자리한) 앞마당이었으나, 세속주의가 유럽인의 의식을 지배하면서 포치가 사라졌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는 복음전도에 제기되는 근본적 도전이다. 미국에서도 문화적 앞마당이 급속하게 소멸하고 있다. 2001년 전까지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였으나, 이후에는 문명충돌의 시대에 기독교가 과격한 또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경계심이 있다. 또한 동성혼이 합법화된 이후로 기독교의 성윤리는 혐오를 조장하는 위험한 편견으로 간주된다. 코로나 기간은 사회적 거리는 사람들의 모임과 만남을 더욱 동질화시켰다. 이러한 양극화 속에서 복음주의 기독교가 자유와 공감의 적이 되었고, 이는 미국에서 교회 개척과 교회성장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3) 전통적 포치에서의 전도: 한때 서구의 사람들은 일생에 교회를 최소한 몇 번은 다녔다. 교회를 안 다녀도 신 존재, 사후세계, 천국과 지옥과 같은 기독교의 대략적 신념 체계를 암묵적으로 따랐다. 그러한 공유된 가정 위에서 사영리, 전도폭발 같은 전도사역들은 희미한 신념들을 성경적으로 더욱 명확히 해주었다. 전통적 포치에서의 전도들이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메시지가 소통되어야 할 맥락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함께 공유했던 공동의 신념 체계가 와해됐기 때문이다. 교회의 포치가 사라진 것이다. 오히려 도로 위의 사람들은 교회 앞의 텅 빈 포치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4) 새로운 포치에서의 전도: 팀 켈러는 미국의 교회들이 더 이상 과거의 기독교 문화라는 포치에 대한 환상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포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교인들은 이제 아직 ‘집’ 안으로 들어올 준비가 되지 않은 외부인에게 레모네이드를 대접할 수 있는 포치를 그들의 교회에 만들어내야 한다.” 그는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프란시스 쉐퍼가 세운 라브리 공동체는 신앙은 없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을 맞이해서 삶을 공유하며 신앙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양질의 교육으로 지역사회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 기독교 학교도 믿지 않는 부모를 위한 포치가 될 수 있다. 교회의 봉사 및 구제 프로젝트도 비신자들에게 교회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사람들의 필요와 관심을 위한 독서나 취미 소모임, 또는 비신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성경공부나 기독교 신앙학습 모임도, 특히 교회 밖에서 이루어질 경우에는 포치 역할을 할 수 있다.  라브리 공동체가 사역하는 간사들의 집으로 찾아온 이들을 초대했듯이, 사실 기독교 가정은 원래부터 이웃을 환대하며 기독교 신앙이 스며들게 하는 모범이었다. 단순히 초대와 환대만이 포치의 전부는 아니다. 포치에서는 안전하고 중립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탐구와 토론만 하지 않는다. 불신자들의 가치와 신념이 기독교 세계관과의 대면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전복되는 성취가 일어나야 한다. 그들의 세계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넘어서는 더 큰 세계의 일관된 진리를 만나야 한다. 


한국 교회를 위한 전도의 포치는 무엇인가?


팀 켈러는 마지막 글에서 새로운 포치에서의 전도 사례들을 더 많이 나누겠노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그의 유작이 나오지 않는 한, 이것이 그의 생전 마지막 글로 보인다. 이제 그가 남긴 미완의 과제는 우리 몫이 되었다. 


우선 그는 유럽과 미국 교회의 상황에서 복음으로 이웃과 만나는 포치에 대해 논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에도 이러한 포치의 존재와 부재가 적용될 수 있을까? 한국 교회는 비서구권 국가들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20세기에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필자는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 그 자체가 교회를 위한 앞마당이었다고 본다. 근대 한국 사회는 안보의 문제, 산업화 열망, 문화적 욕구에서 서구사회, 특히 기독교 국가로 대표되는 미국을 선망했다. 근대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는 제국주의 식민통치자들의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도와준 우방의 종교였다. 따라서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이 시기에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기독교에 호의적이었다. 이와 같은 안보, 산업화, 문화적 선망의 내러티브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에 다니는 것을 꽤 괜찮은 선택으로 보이게 했다. (이에 관해서는 필자의 저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 내러티브(CLC, 2019)에서 상세하게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에 열어놓았던 앞마당, 즉 포치가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다. 안보, 경제, 문화의 영역에서 한국 사회는 독자적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더 이상 교회는 선진문화의 유일한 통로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교회가 사회에 대하여 윤리적 모범을 보이지 못함으로 인해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실망과 부정적 인식은 더욱 고조됐다. 따라서 교회 앞에는 이웃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포치가 아닌 서로를 가르는 높은 담장이 쳐졌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의 교회 모두에서 포치를 갖추려면 의도적인(intentional) 관계와 공동체 형성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익히 들어온 ‘관계 전도’로 너무 쉽게 비약하진 말자. 왜냐하면 복음이 관계를 통해서 가장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관계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는 태도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로 존재하며, 인간 간의 관계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진심이어야 한다. 관계 전도의 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먼저 관계적인, 혹은 관계에 진실하고 성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이 되는 모험을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첫째로,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관계들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날마다 많은 관계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한번 자기 삶의 주변 반경을 살펴보라. 나는 누구와 자주 접하는가? 나의 경우, 산책하는 동네 주민, 아파트 경비 아저씨, 얼마 전 하수구가 터져서 협상을 했던 윗집의 부부, 자주 가는 동네 이발소 주인 등이 떠오른다. 집 근처 이웃뿐 아니라 나의 일터나 자주 가는 매장에서도 같은 사람들과 종종 마주할 수 있다. 그런 일상의 스치는 만남들에서 한발자국 더 다가가는 것이다. 먼저 인사하라. 아는 사람을 늘리고 관계의 거리를 좁히라.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라.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가 잔존하는 사회에서 낯선 자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상의 선교적 실천을 위한 첫걸음이다. 


둘째로, 그 동안 다소 소원했던 관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중에서 무심하게 대했던 이들, 특히 나에게 먼저 연락을 했거나 친분을 표시했는데도 내 쪽에서 반응을 안 했거나 소극적으로 응대한 경우가 있다면 다시 성의 있는 대화를 시도하라. 꼭 전도를 위한 포섭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먼저 관계에 진실하고 예의 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이웃 사랑의 한 가지 실천일 뿐이다. 교회 차원에서 공적인 봉사만이 이웃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에서 이러한 관계적 성실함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새로운 관계들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 차원의 사역도 필요하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나 구제 사역을 할 경우, 참여하는 교인들은 자신들이 돕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단순히 의로운 시혜적 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인격적인 교제가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한다. 구제와 봉사의 참여는 새로운 만남을 여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또는 주변의 믿지 않는 이들을 이러한 교회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몸으로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먼저 신앙 공동체의 삶의 규칙을 경험하고 나서, 신앙의 내용을 이해하고 수용하기도 한다. 교회가 교회 밖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동의 실천이 있다면 그것도 효과적인 포치가 될 것이다. 

 

교회들이 이웃과 공유하는 삶 속에서 포치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마을 목회도 좋다.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을 돕는 디아코니아 사역이나, 이웃과 함께하는 문화 활동을 시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확장하는 것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더 큰 선물이다. 복음은 그러한 진실한 관계를 타고 흘러 들어간다. 함께 기도하고 상상한다면 팀 켈러가 남긴 포치 테이블에 우리의 이웃을 위한 새로운 레모네이드를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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