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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일

이단 제품, 쓰지 않아야 하나요?
by 김선일·이금주2023-07-17

엉겅퀴와 가시덤불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겪는 문제와 질문을 두고 김선일 교수와 이금주 교수, 두 신학자가 대화하며 그 답을 찾아 나선다.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 화장품을 쓰고 있는데, 그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가 이단과 연루된 곳이라고 합니다. 이 제품을 계속 사서 써도 되는지 고민입니다. 제품은 좋은 것 같은데, 그 회사의 매출이 늘어나게 함으로써 결국 이단의 포교를 돕는 것이 아닐까요?

: 저도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신학대학 다닐 때, 학교에서 강의하시던 미국인 선교사님이 한겨울에 석유난로를 많이 쓰지 말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석유 판 돈으로 이슬람이 선교한다고요. 


: 저는 이 질문을 보고 자칫 율법주의 관점에 빠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이 보이콧해야 할 회사들이 있다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에 반하는 정책이나 윤리를 지지하는 회사들의 제품을 불매하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낙태나 동성애를 옹호하는 회사들의 리스트를 만듭니다. 제가 그 리스트를 갖고 있는데, 굉장히 많습니다. bibleblender.com에 의하면, 아마존부터 있네요.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책을 사야 할까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항공사 대부분, 코카콜라, 펩시콜라, 드롭박스, 이베이, 애플, 골드만삭스, 페이펄, 마이크로소프트 등등 100개도 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회사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 거부하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화장품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지만, 아마 고민 없이 아이폰을 쓰고 있을 수도 있어요. 


: 저는 그러한 생각에는 순결주의 강박도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신앙은 어떻게 해서든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것이지요. 사실상 그렇게 살기는 불가능하고, 늘 경각심은 가져야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신앙의 동력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이 문제를 큰 틀에서 봐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를 봅시다. 11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4절에서는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즉, 세상에 있지만(in the world), 세상에 속하지(not of the world) 않은 것이 예수님께서도 인정한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모든 환경을 기독교의 관점으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 저는 그다음 15절 말씀도 주목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분리된 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신실하게 살기를 원하신 것이지요. 


: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세상과 완전히 차단돼서 사는 것은 불가능함을 아십니다. 제가 아는 권사님도 한때 이단이 경영한다고 의심받은 화장품 회사에서 세일즈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 말씀이 그 회사의 경영자가 종업원들을 굉장히 잘 지원한다는 거예요. 또한 좋은 화장품을 싼값에 공급하는 게 회사의 모토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제품이 많이 팔리면 이단 포교를 돕는 것이라는 하나에만 매달리지 말고, 그 회사의 종업원들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창출되고, 회사에 매출이 늘어나면 더욱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연구 개발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지 내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 일의 신학이 이러한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겠군요. 아무리 이단이나 타종교에서 운영하는 회사라 하더라도 그들이 일의 신학에 부합되는 가치를 실천하며 공동선에 기여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하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과도 연결됩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 5:45)라고 하셨습니다.


: 저는 누가복음 6:32-33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35절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와 종교가 다른, 심지어 이단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비즈니스와 일에 대해서 먼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 그들이 노동을 착취하거나 불량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한다면 일의 신학의 관점에서 거부해야겠지요. 전에 이단들이 신도들에게 임금도 주지 않고 길거리에서 꽃을 팔아서 번 돈으로 자기네 조직과 교주의 배만 불린 적도 있었으니까요. 


: 예. 맞습니다. 그들이 낙태 옹호 단체에 돈을 보내거나 기독교 가치나 생명윤리에 명백히 배치되는 일을 공공연하게 한다면 거부해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은 로마서 14장입니다. 20절을 보면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먹음으로써 남을 넘어지게 하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해롭습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적용하자면 우리가 이단의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악하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이단의 것인 줄 알면서 자유분방하게 애용하거나, 또는 약간이라도 불편한 마음을 품고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 오래전 신학생 시절에 신학 교수님이시고 목사님이신 분과 차를 타고 지방에 가다가 휴게소에 들렸는데, 거기서 그 교수님이 통일교에서 판매하는 음료수인 맥콜을 사서 거리낌 없이 마시고 저에게도 괜찮다면서 나눠준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일로 며칠 동안 저분이 정말 제대로 믿는 분인가 하고 고민했었습니다. (웃음)      


: 로마서 14장에서 그러한 말씀을 하는 이유는 또 다른 더 중요한 원칙,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을 배려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 나는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신앙의 덕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고려하여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헌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그런 좋은 화장품을 만들어서 방문판매 하는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들이 성공주의와 물질주의에 완전히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피라미드식 판매를 통해 실적을 쌓아서 다이아몬드를 이루면 한 달에 1억을 번다.’ 이런 점이 오히려 일의 신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봐야 할 사항 아닐까요? 


: 그건 우리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단 포교를 얼마나 하느냐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성공주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처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비즈니스가 물질적 성공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비즈니스를 선교적 소명으로 삼고 운영하는 기독교 회사라면 모를까, 세상에서 운영하는 회사를 그런 문제로 탓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갈 때까지 ‘이 모순된 현실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까’라는 숙제를 안고 있을 뿐입니다.


: 그런데 때로는 신앙의 이름으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를 포장하는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모든 회사가 다 그렇다고 하면 결국 내 안의 욕망을 정당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나 자신이 윤리적으로 바로 서는 게 중요합니다. 나의 현실과 상황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의 이웃을 배려하고,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늘 헤아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단순히 예, 아니요로 나뉘지 않습니다. 


: 그리스도인이 이단 회사의 제품을 이용해도 되는가? 이 질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과 같이 대답을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먼저 일의 신학적 가치를 고려하라. 그 회사가 노동착취를 하는 반사회적인 사교 집단이거나 불량제품을 만드는 곳이지 않은 한, 또는 공공연히 기독교 가치를 파괴하려고 하지 않는 한, 무조건 거부할 필요까지는 없다.


둘째, 이단의 포교와 같은 문제는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라. 그들의 비즈니스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 안에서 인간을 이롭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셋째, 그렇다고 이단의 제품이라는 걸 알면서 굳이 계속해서 애용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도 알아보라.


넷째, 믿음이 약한 이들을 배려하라. 이단의 제품을 사용하는 나의 자유가 그들에게는 시험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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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선일·이금주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사회와 복음의 만남을 위해 섬기며 전도학과 일터 신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한국 기독교의 성장 내러티브교회를 위한 전도 가이드 등이 있다. 

이금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핵물리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도미하여 세계적 금융투자사인 피델리티 매니지먼트에서 28년 근무했다. 그후 고든콘웰신학교에 진학하여 신학석사와 목회학박사를 취득하고, 아프리카의 여성과 교육을 위한 선교단체인 Matthew 28 Ministries를 설립하였다. 일의 신학과 변혁적 리더십을 전문으로 하는 바키대학원대학교(Bakke Graduate University)한국어 과정 위원장이며, 미국과 한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의 신학을 가르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