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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빈스’와 흙
by 양혜원2023-07-19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흙의 모습으로 오신 이분을 글로밖에 전달할 수 없다면, 분명 그 글은 손에 흙을 잔뜩 묻힌 글일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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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큰이모네 집은 마당이 있는 양옥집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많은 집이 그랬듯 마당에는 개가 있었다. 울산에 살던 우리는 방학을 이모네 집에서 보낼 때가 많았는데, 어느 여름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꼬물거리는 강아지가 여러 마리 있었다. 그해 여름, 또래의 사촌들과 나와 여동생은 각자 강아지를 한 마리씩 안아 들고는 신나게 데리고 놀았다. 원래 집 안에는 들이지 않는 강아지를 집 안에까지 안고 와서 놀다가 강아지가 마룻바닥에 쉬를 하는 바람에 이모에게 혼을 나기도 했다. 자아의 경계가 아직 분명하지 않던 그 어린 시절, 나는 망설임 없이 강아지들을 끌어안았고 이뻐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털 달린 것들을 꺼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다시 털 달린 것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둘째 아이를 보내고 나서였다. 힘들게 진통해서 낳은 아이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보지도 못하고, 바로 죽은 자들이 가는 곳으로 보내서였을까. 불어난 젖을 물릴 아이도 없이 말려야 했던 나는 아무런 열매 없이 푹 꺼진 배가 그리 허전할 수가 없었고, 아이를 안아야 할 품은 너무도 공허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이 털 달린 것들에 눈을 돌리게 했다. 어느 가게에서 내 다리를 쓸고 지나가는 고양이가 사랑스러웠고, 품에 안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양이를 들일까 생각했다. 그 무렵 지인도 마침 고양이를 막 키우기 시작해서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았기에 솔깃했지만, 개냥이 같은 고양이를 만나는 것은 확률에 의지해야 했기에 우리는 강아지를 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온 녀석이 빈스(Beans)다. 하지만 원해서 들였음에도 나는 쉽게 친해질 수가 없었다. 처음에 그 강아지 녀석이 부엌에서 일하는 내 다리를 스쳐 지나갔을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 ‘엄마야’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으니 돌아다니는 게 당연한데도 내 예상 안에 들어오지 않는 행동 패턴은 제법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빈스는 식구들이 일터로 학교로 나가고 나 홀로 집에서 번역 일을 할 때, 내 곁을 지키는 동지가 되어 주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한 번씩 집에 올 때면, 이러다 숨넘어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정신없이 좋아서 매달리며 나를 반겼다. 


그 빈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머물 때였다. 저녁에 일이 있어 나갔다가 아들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 길거리에 서서 전화를 붙들고 나는 수화기 건너편의 아들과 같이 한참을 울었다. 이유를 모른 채 둘째를 보내고 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들였던 빈스가 또 이유를 모른 채 떠났다. 그러한 빈스의 죽음은 이제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하나의 신호처럼 내게 다가왔다. 일본에서 체류 연장을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가능성이 별로 없겠다 생각하던 차이기도 했지만, 그냥 그 모든 것이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모아졌다. 


돌아와서 취직을 하기는 했으나, ‘코시국’으로 나가는 날보다 집에 있어야 하는 날이 많던 그 시절, 나의 외출은 글을 쓰거나 연구를 하다가 마스크를 쓰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게 거의 전부였다. 사람과의 만남이 극히 제한되었던 그 시절에 내가 자주 마주쳤던 또 다른 털 달린 것은 비둘기 떼였다. 비둘기에 대한 기억은 강아지에 대한 기억과 달리 썩 좋지 않다. 어린 시절 동네 놀이터에 늘 무리로 구구거리던 비둘기 떼 틈새로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나갈 때 사방으로 흩어지던 그 모습은 재미가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생물체는 아니었다. 게다가 어느 날,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장이 다 드러난 비둘기 사체를 보고 난 이후로 비둘기는 조류 공포증이 생길 만큼 꺼리는 대상이 되었다. 대영 제국의 전성기를 자랑하는 트라팔가 광장의 높디높은 넬슨 제독 석상에, 인간의 업적을 비웃듯 그 머리와 어깨와 얼굴에 사정 없이 배변을 해대는 비둘기 떼의 광경도 비둘기에 대한 인상을 개선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스크를 끼고 귀에는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들으며 또 하루의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나는 비둘기 떼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고, 무심결에 비둘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빈스의 눈에 비하면 아주 작은 팥알 같은 눈이었지만, 그와 비슷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빈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아, 나는 언제 한번 내가 사는 세상을, 그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제대로 살을 맞대어 본 적이 있던가? 이런 털 달린 것들이 밟고 다니는 흙의 질감을 한 움큼 제대로 만지며 느껴본 적이 있던가?’ 사실 내게 이 세상은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세상이었고, 거리를 두고 싶은 세상이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라고,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가르치는 기독교 세계관도 배웠고, 그런 책들도 여러 권 번역했지만, 결국 거기에서 말하는 것은 이 세상을 판단하여 뒤집으라는 말뿐, 내가 사는 세계와 친밀해지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내가 비둘기를 새삼스레 보며 빈스를 떠올리고, 인간의 원료인 흙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더듬어 보니 그 시작은 아무래도 내 아이를 잃은 그 일이었지 싶다. 그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강력한 힘으로 나를 세상의 밑바닥으로 던져 넣었고, 그 바닥에서 아마도 나는 조금씩 세상의 것들을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그 시작에 빈스가 있었다. 


나의 글쓰기가 그 무렵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글쓰기와 이 바닥의 경험, 나의 흙됨을 마주하는 이 경험이 가지는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국의 가톨릭 여성 작가 플래너리 오코너는 소설 쓰기는 손에 흙을 묻히는 행위라고 했다. 소설은 인간에 대한 것인데 인간은 흙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에 흙 묻히는 게 싫은 고상한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말 것을 권했다. 나는 이 말이 비단 소설 쓰기에만 국한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다는 이 땅, 이 세상, 그 안의 인간을 알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손에 흙을 묻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신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알기 위해서도 흙의 것들을 알아야 한다. 혹 흙을 경유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특별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수단이 없는 나와 같은 범상한 사람들은 계속 손에 흙을 묻히기로 택하는 수밖에. 


글과 흙. 생뚱맞은 조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머슴은 땅에서 비로 마당을 쓸고, 선비는 몇 계단 올라 있는 방 안의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었던 시절의 습성 때문일까. 우리는 글을 높은 단상에 올리고 우상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습성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글을 통해서 아주 특별한 한 사람을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본 사람은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 곧 글을 통해서이다. 이 글을 처음 기록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우리에게 만지는 것처럼 전달할까, 고민했을 것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흙의 모습으로 오신 이분을 글로밖에 전달할 수 없다면, 분명 그 글은 손에 흙을 잔뜩 묻힌 글일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시간과 공간과 문화를 건너 우리에게 전달된 이 글에서 우리는 흙은 툭툭 털어버리고, 경건주의자는 경건주의자대로, 자유주의자는 자유주의자대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글을 이용할 때가 많다. 내가 번역한 작가들 가운데 이러한 식으로 성경을 이용하는 것을 가장 강하게 비판한 사람이 유진 피터슨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동네에서 축구를 하는 소년들을 보면서 그렇게 또래들과 땀범벅이 되어 흙바닥을 뛰어다녔을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성경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된 예수님은 그런 예수님이었다. 흙을 잔뜩 묻힌 글에서 그 흙을 제대로 읽어낸 셈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에게 글과 흙의 조합은 사실 매우 중요한 조합이다. 그래서 나의 글도 어느 순간 흙을 초월해 거창한 이념의 세계로 넘어가 버리지 않을까 조심하게 된다. 그때 잃는 것은 단지 흙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흙이 된 한 사람을 앎으로써 얻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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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양혜원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특임교수.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 수료 후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세월 번역가로 일하면서 유진 피터슨, N. T. 라이트, 알리스터 맥스래스, C. S. 루이스, 헨리 나우웬, 미로슬라브 볼프, 일레인 스토키의 저서 등 90여 권의 번역서를 출간하였고, 유진 피터슨 읽기: 삶의 영성에 관하여, 교회 언니,여성을 말하다,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 종교와 페미니즘, 서로를 알아가다,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