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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디모데전서 2:12은 정확히 무엇을 가르치는가?
by Robert W. Yarbrough2023-08-03

편집자 주: 교회 안에서 자주 오해되는 성 역할이라는 주제를 기사 하나로 제대로 다루는 건 불가능합니다. 유익한 “성경 전체”의 설명이 궁금하다면, “아름다운 차이: (성경 전체에 걸친) 남성과 여성의 상보성”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12을 지역 교회에 적용하기란 정말 까다롭다. 바울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물론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쓰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들은 이 말에 사도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또 이 말이 갈라디아서 3:28(“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과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교회 봉사와 성별은 무관하다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상보성을 견지하는 교회(complementarian church), 즉 자격을 갖춘 남자에게만 목사 안수를 주는 교회에 출석하는 경건한 여성이 디모데전서 2:12을 보고서 이런 궁금증을 갖는다고 가정해 보자.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이지?” 그녀는 과연 어떤 결론을 무엇을 근거로 내려야 할까? 이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10절)가 배워야 하는 것들(11절)의 맥락에서 좋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실천에 옮긴다는 뜻이 들어 있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건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울이 오랜 동료인 디모데에게 목사의 중요한 책임들을 요약하는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1) 예수님이 제자들을 양육한 것처럼, 충실한 성경 해석을 통한 가르침, (2) 예수님이 추종자들을 돌보고 또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방한 것처럼, 자비로운 감독과 목양(예: 벧전 5:1-5).


디모데전서 2:12의 적용을 간략하게 다루는 정도로는 전체 문맥에 비춰서 바라봐야 하는 이 구절에 대한 완전한 설명에 이를 수 없다. 나도 이 주제를 다루었고(‘The Letters to Timothy and Titus’ 137-89), 이 사이트에서도 평등주의에 기반하여 비판하는 사람들의 글을 포함해서 여러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설명조차도 위에서 제기된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이 되지 못할 수 있다. 성경의 난해 구절을 그 구절만으로 완전하게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한 구절이 주장하는 바는 그 구절에 빛을 비추는 구절들로 이루어진 더 큰 집합의 일부이다. 


성경 전체라는 맥락에서 우리가 디모데전서 2:12에서 만나는 것은 경건한 여인에게 주는 교훈이다. 경건한 여인, 곧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헌신하는 여인이다. 그녀에게 추구하라고, 그리고 피하라고 권하는 몇 가지가 있다.


경건한 여인이 추구해야 하는 것


“추구”라는 측면에서 다음 것들이 있다. 


1. 여성은 남성과 나란히 완전한 존엄성을 확보해야 한다(창 1:27).


2. 여성은 남자의 특징을 보완하고(창 2:18) 출산을 통해 인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창 1:28) 성적 특징을 확증해야 한다. 


3. 여성은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징벌적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구속적) 영향을 미치는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창 3:14-19).


4. 여성은 개인적 죄와 공동의 죄를 의식하면서 엘리사벳과 마리아, 여선지자 안나와 같은 믿음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오심에 담긴 기쁜 소식을 보아야 한다(눅 1-2장).


5.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후(막 1:15), 여성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눅 8:3),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하고(막 15:40-41), 제자들이 믿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부활에 대해 처음으로 간증하고(눅 24:10-11), 그 이후로도 초대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긴 많은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6장은 뵈베, 브리스가, 마리아, 루포의 어머니, 드루배나, 드루보사, 유니아 같은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신약 전체에서 성도에게 확신을 주고 그들을 인도하는 데에 대한 통찰은 결코 여자로부터 고립된 남자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과 바울과 같은 지도자들은 여성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여성의 은사를 확인했으며, 그 은사를 활용해서 교회와 세상에서 복음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세워나갔다. 


6. 마지막으로, 여성의 위치는 열두 제자를 오로지 남자로만 뽑은 예수님의 선택, 그리고 오로지 경건한 남자만 목회 교사와 감독의 위치에 임명하는 사도적 정책(신약 전체에 걸쳐서 통일되게 진술되는 사실) 속에 반영된 회중 질서 속에서 확인해야 한다. 이 점은 우리를 다시 디모데전서 2:12로 돌아가게 한다. 


경건한 여인(2:10)은 예배 현장에서 배움에 헌신하라는 권면을 받았다(2:11). 그녀에게는 목회 교육(“가르치다”)과 감독(“권위를 행사하다”)의 역할이 부여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건한 여인과 아내라면 자연스럽게 목양에 참여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니, 최소한 그래야 한다. 안수받은 남자들은 교인들을 향한 특정한 책임을 맡으며 교인 가운데 있는 여인들의 지혜로부터 유익을 얻는다. 목회자와 여성 사이에 건전한 관계가 있다면, 목회자가 자매들의 관심과 의견을 그들의 기도와 봉사와 지도력 측정에 반영할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그 모든 내용을 마음에 간직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운영되지 않는다면, 교회에는 기능 장애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조정이 필요하다. 더 나은 목회 관행과 영적 갱신, 남편과 아내가 결혼 생활에서 경건한 역동성을 추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 교회 전체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앙금을 해소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등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경건한 여인이 피해야 하는 것 


디모데전서 2:12은 경건한 여자에게 무엇을 피하라고 권고하는가? 노골적으로 말해서, 오늘날 서구 환경에서 남자에게만 주어진 특정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개심을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외 없이 수행해야 하는 제자 양육의 명령에는 여성도 최선을 다해서 충성해야 하지만(마 28:19-20), 성경을 가르치고 또 권면하는 목회 교육에 해당하는 의무는 교회에서 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여자는 설교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서 교회의 구조와 관계없이 남자를 목회 감독해서도 안 된다. 제자 사역에 은사를 받고 부르심을 받은 여자는 (믿는 모든 여자가 다 그렇겠지만) 얼마든지 그들의 보살핌과 영향력이 필요한 다른 여자들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원칙이 교인 전체의 행정에서 여성의 지도력을 배제하는 건 아니다. 종종 전체 목회자가 전체 교인 구조라는 틀 안에서 천재성을 가진 여성 행정가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 행정가는 목회자가 아니다. 역할이 서로 얽혀 있을 수 있지만 병합되거나 역전되어서는 안 된다. 


겹칠 수는 있으나 같지 않은 사역의 영역


짧은 글에서 너무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기란 어렵고 또 현명하지도 않다. 교단 관행과 회중 역학은 매우 다양하며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적용 범위에 따라서 주의 깊게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 사도를 거쳐 초대교회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성이 아닌 남성(비록 과분한 역할이기는 하나)이 목회자로 임명받은 사실을 확인한다. 여성들은 사생활에서부터 회중의 모든 활동과 이웃사랑,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에 이르기까지 경건한 봉사라는 측면에서 남자와 여러 영역에서 중복된다. 그러나 여자의 사명은 남성과 동일하지 않다. 개인 생활과 교회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누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여성과 남성이 함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달콤한 시너지 효과에 달려있다. 여자와 남자의 상생 효과를 일으키는 목회 지도력은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서 상호 증진과 상호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희생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세우려는 교회에 임하시길 기도한다. 디모데전서 2:12이 교회가 나아가는 길에 선한 빛을 비추시기를 기도한다. 



원제: What Exactly Does 1 Timothy 2:12 Teach?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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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obert W. Yarbrough

로버트 야브루는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St. Louis, Missouri)의 신약학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