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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륙 선교의 길목을 트다

이 땅 첫 교회들을 찾아: 춘천중앙교회

by 이종전 · 장명근2023-08-17

이 땅 첫 교회들을 찾아

대한 강토에 선 첫 세대 교회들을 찾아 떠납니다. 그 이야기들에서 우리 신앙의 근원과 원형을 찾아보려 합니다.


강원도 지역의 선교는 다른 도(道)에 비해서 많이 늦게 시작되었다. 또한 이후에도 남북으로 이어진 태백산맥과 그 지맥들이 깊은 계곡과 강을 품고 있고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물론이고 전도인들의 접근도 쉽지 않았다. 따라서 선교의 시작도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도 어려웠던 것이 강원지역이다.


그런가 하면 복음이 전파되는 루트도 산맥과 길을 따라서 각각 다르게 접근되었다는 것이 이 지역 선교 역사의 특징이다. 즉 먼저 철원에서 춘천으로 이어지는 루트, 다음은 여주나 충주에서 원주와 강릉으로 이어지는 루트, 그리고 원산에서 고성, 속초, 양양으로 이어지는 루트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현 춘천중앙교회는 강원지역의 내륙선교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위치로 세워진 교회이다. 


강원지역의 선교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늦은 것은 지리적 환경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따라서 먼저 도착한 선교부는 자연스럽게 강원지역을 선교함에 있어서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감리교회와 장로교회 선교부 사이에 선교 협약을 맺으면서 지역을 분할해서 선교구역을 담당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선 유리한 지역부터 선교구역으로 맡다가 보니 역시 강원지역은 적극적으로 맡으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닐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후발주자인 남감리교회 선교부가 맡을 수 있도록 남겨졌다고 할 수 있다. 


1885년 10월 18일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남감리교회 해외선교부 헨드릭스(E. R. Hendrix)감독과 리드(C. F. Reid) 선교사가 입국해서 조선 선교 가능성을 살펴본 다음, 이듬해인 1886년 리드 선교사 부부가 서울에 입경하여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했다. 리드 선교사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남감리교회는 1897년 강원지역을 자신들의 선교구역으로 확정하면서 전도인을 파송했다. 그것이 춘천 선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1897년 12월 강원지역에 대한 선교를 결정한 선교부는 1898년 서울 광희문교회의 나봉식과 정동렬, 두 사람을 춘천에 전도인으로 파송했고, 이들이 퇴송골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린 것이 춘천중앙교회의 시작이다. 그들의 활동과 함께 1898년 9월에 퇴송골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고 보고하고 있음을 보면 춘천중앙교회의 시작을 그해 4월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온전한 교회로 자라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이에 적극적인 공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선교부는 1902년 경기도 장단 고랑포교회의 이덕수 전도인을 파송해서 전도하게 했으며, 그가 정주할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돌보면서 이 공동체를 교회로 성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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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수 전도인이 춘천에 와서 거처를 마련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남감리교회 선교부는 춘천에 선교사를 상주시키는 것과 함께 선교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남감리교회는 1908년 무스(Robert J. Moose) 선교사 가족이 직접 춘천에 이주하여 정주하게 했다. 이미 정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던 이덕수와 함께 대판리(현 조양동)에 양옥을 매입하여 선교 거점으로 활용했다. 이 시점이 남감리교회 선교부가 사실상 춘천선교부를 설치한 것이고, 춘천을 경기, 강원 내륙선교를 위한 교두보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이덕수의 활동이 큰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04년 공동체가 성장함으로 춘천구역이 독립되었다. 춘천을 중심으로 한 내륙지방에 선교의 가능성을 확인한 남감리교회 선교부는 1907년에 병원, 학교, 예배당, 선교사 주택 등을 건립했다. 이때까지 춘천에 정주하는 선교사들은 없었고 순회하면서 공동체를 돌보는 역할은 콜리어(Charles T. Collyer) 선교사가 중심이 되어서 감당하다가 1908년 무스 선교사가 이주하여 정착하게 됨으로써 춘천 선교 거점이 완성되었다.


춘천 선교 거점의 중심에 세워진 춘천중앙교회는 1925년 마이시(Mamie D. Myers) 선교사가 주선하여 허문리(현 강원일보 건너편 요선동)에 ‘ㄱ’자 모양의 예배당 갖춰진 선교관을 건축했다. 이 건물은 선교관으로 지었기 때문에 1층은 유치원, 2층은 강습소, 성경공부교실, 양재교육실 등을 갖췄다. 또한 이 건물은 춘천 최초의 근대식 건물이며 서양식 예배당이었다. 예배당 내부는 남녀가 동석할 수 없는 구조였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사회적 분위기가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예배당은 아쉽게도 한국전쟁 때 파괴되고 말았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사변이 끝나고 다시 수복된 상태에서 춘천중앙교회는 예배당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당장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옥천동에 있었던 남감리교회 선교부에서 운영하던 병원 건물을 인수해서 예배당으로 수리하여 예배 처소로 사용했다. 이 건물이 춘천중앙교회로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 역시 아쉬운 것은 처음부터 예배당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같은 선교부가 운영하던 병원 건물을 예배당으로 리모델링해서 사용하다가 그 옆에다 1970년 아폴로 우주선 모양의 새로운 예배당을 지어서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던 붉은 벽돌 건물은 교육관으로 사용하다가 춘천시에 매각했다. 이 건물은 비록 처음부터 예배당으로 지은 것은 아니지만 춘천중앙교회 역사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다행히 이 건물은 춘천시에서 매입하여 건물을 보존하고,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춘천시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언덕 위쪽으로 3만 5천여 평의 부지가 남감리교회 선교부가 각종 시설을 마련하고 운영했던 선교지부가 있었던 곳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미술관 이외에는 선교부와 관련한 어떤 건물이나 상징성을 가진 것을 찾아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다. 결코 좁지 않은 넓은 부지에 각종 시설이 있었지만,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역사 앞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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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중앙교회는 2001년 100주년기념예배당을 완공하고 현재 자리하고 있는 위치로 이전을 했다. 이때 100주년기념예배당에는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는데, 예배당 뒤뜰에 작은 공원을 조성하여 춘천중앙교회 설립 초기에 초석 역할을 한 이덕수 전도인의 묘지를 옮겨왔고, 그를 기념하는 기념비, 그리고 창립70주년기념비, 100주년기념비 등을 조성해놓았다. 이것은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유산을 계승하는 것과 함께 그들을 통해서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공간으로써 의미가 깊은 곳이다. 또한 교육관 1층을 이덕수 전도사의 이름을 따서 덕수홀로 명명하여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옛 건물을 만날 수는 없지만 새롭게 조성한 이 공원에서, 특별히 이덕수 전도인의 묘지와 기념비를 만날 수 있고, 그를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 이덕수 전도인은 춘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성경을 팔고 전도했는데, 1910년 4월 급성폐렴으로 별세했다. 이에 춘천중앙교회에서는 그를 ‘조선의 바울’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옥천동에 있었던 춘천 선교부에서 운영하던 학교와 병원, 그리고 선교사들의 주택들 가운데 병원 건물 하나 외에는 찾아볼 수 없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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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종전 · 장명근

글 이종전 

이종전 목사는 고베개혁파신학교(일본), 애쉬랜드신학대학원(미국)에서 수학하고, 1998년부터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은퇴하여 석좌교수와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인천 어진내교회를 담임하며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C채널 ‘성지가 좋다’ 국내 편에서 역사 탐방 해설을 진행하고 있다.


그림 장명근 

장명근 장로는 토목공학 학부(B.S.)를 마치고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환경공학(M.S & Ph.D)을 공부했다. 이후 20년간 수처리 전문 사업체를 경영하였으며 2013년부터는 삼양이앤알의 대표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정동제일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