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예술과 문화

음악, 또 하나의 복음 언어
by 서나영2023-10-11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진리를 알리고자 한다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고전 9:22)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문화 속에서 복음전도에 관한 언어적 고민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다음 세대가 시각적, 청각적, 문학적 언어를 선택하는 양상이 짙어지고 있는 오늘날, 제프 밴더스텔트(Jeff Vanderstelt)가 말했던 “복음의 언어”는 단순히 언어의 개념을 넘어 유창해질 필요가 있다. 


음악은 바울이 고백했던 “여러 모양” 중 하나다. 교회 역사를 통틀어 주의 백성들은 언제나 음악의 아름다움을 가장 숭고한 사명인 복음에 옷 입히길 원했다. 문학신학자 리랜드 라이켄(Leland Ryken)은 “예술의 유용함이란 언제나 진리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는데,[1] 이는 예술이 진리를 전달할 때 가장 숭고한 역할을 수행하게 됨을 뜻한다. 특별히 ‘음악’은 ‘시’라는 거대한 문학 장르와 합쳐져서 진리를 함양할 수 있는 광대한 세계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iver)는 자신이 겪은 삶의 이야기를 엮어 2018년에 출간한 배움의 발견(Educated)에서 16년간 학교에 다녀본 적 없는 한 소녀가 배움에 대한 갈망이 생기게 된 계기를 정확하게 나타낸다. 그것은 음악이었다. 그녀는 처음 정교한 합창음악 음반을 들으며 질서 없는 모든 공기가 조화롭고 균형을 잡으며 질서가 생기는 환상을 보았다. 매일 음악을 들으며 그녀는 꿈을 키웠다. 당시에는 그 꿈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후에 그 꿈은 한 인간으로 정돈되고 교육되고 꿈꾸는 삶 그 자체였다. 후에 음악이 아닌 지성사에 대한 연구로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가 되지만, 그녀가 이룬 결과는 음악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음악은 혼돈 속에 떠다니는 공기 중의 파장을 모으고, 적합하고 아름답게 재배열하고, 비례와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 낸다. 


피타고라스에서 플라톤을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양에서는 음악과 우주의 원리에 대한 밀접한 관계에 주목했다. 이들의 음악적 소리, 특히 화성과 리듬의 조화가 우주의 질서와 일치함을 보고, 우주의 질서를 표현하고 반영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당시 음악은 교양 과목 중 하나로 소리들 사이의 측정 된 관계(특히 시적인 음)와 관련된 지적 분야였고, 지금 시대의 음악의 실용성보다 훨씬 뛰어난 개념이었다. 


당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음악신학적 연구를 보면 인간은 음악의 아름다움을 통해 일시적인 타락한 영혼이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의 조화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2] 유진 피터슨 목사 또한 그의 저서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에서 성경 속 다윗이 연주한 수금 음악이 사울의 영혼을 정돈하는 역할을 했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음악의 신학적 아우라는 시문학과 결합하여 놀랍도록 아름다운 언어로 변신한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에 들어 있는, 그가 사형집행 직전 쓴 음악들은 진정한 기독교의 언어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진리를 나르는 아름다운 시, 선율, 그리고 운율의 언어다. 때로는 ‘복음’의 비유로, 때로는 ‘계시’의 비유로, 진리의 증인의 역할을 진귀한 예들은 역사 속에 넘치도록 충만하다. 


특히 시라는 문학예술 장르를 생각해 보면 복음 언어로의 음악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어떤 복음의 텍스트의 ‘의미’가 필요한 것이라면, 만일 그 복음의 자세한 내용만이 중요하다면, 복음을 나타나는 텍스트 이외의 다른 요소는 불필요하지 않겠는가? 시는 일반 텍스트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특별히 음악에 포함되어 있는 시(운율)의 텍스트는 일반 에세이나 연설문에 비해서는 턱없이 그 양이 적다. 그렇지만 시는 일반 텍스트가 가지지 않은 놀라운 설득의 힘을 가지고 있다. 


클랜스 브룩스(Cleanth Brooks)와 로버트 워렌(Robert Penn Warren)은 그들의 저서 Understanding Poetry에서 롱펠로(Longfellow)의 시 “인생의 시편(a Psalm of Life)”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가 우리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이 단지 ‘말의 조언’이라면, 이 좋은 조언에 대한 짧은 산문 진술이 시 자체만큼 좋지 않거나 그보다 더 나은 이유를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메시지’ 때문에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대개, 평범한 산문 진술보다 시를 선호할 것이다.”[3] 즉,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이나 시, 또는 스토리 기반의 영화나 드라마 장르를 “일반 설명”으로 바꾼 것으로 대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예술은 인간에게 실제로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성경 또한 그 자체로 예술적 문학의 방법이 다양하게 구사되어 있다. 특별히 시편과 애가, 아가서와 묵시들은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놀라운 진리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4:44). 예수 그리스도는 직접 “시편”이라는 책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각 성경의 책들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역사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할을 통해 이루셨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시편은 다른 어떤 책보다 독특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시편 2편에서는 메시아의 나라에 대한 예언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22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예표하는 통탄의 표현이 있으며(1절), 특히 25편에서는 사무엘하 7장에 기록된 다윗의 영원한 통치의 약속을 강조한다(6절). 시편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한두 구절 때문에 복음과 관련된 것이라 보기에는 훨씬 더 “그리스도 중심적”(Christ-centered)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내면과 감정을 통한 마음의 소리는 (1)그들의 사하심을 구하며(시 32, 51, 130), (2)애통하며(시 12, 13), (3)감사하며(시 9, 106, 138), (4) 하나님의 법에 감탄하며(시 19, 119), 구속을 확신한다(시 23).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시고 선포하신 시편의 복음성은 복음의 시와 합쳐진 음악이 복음을 전하는 독특하고 신비한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지지한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다. 총 404구절 중에 계시록을 제외한 다양한 성경책들의 내용을 인용하는데 그 내용이 518번이 언급된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그의 저서 요한계시록: 현실을 새롭게 하는 상상력에서 사도 요한의 묵시 속의 성경 언급은 인용이 아니라 “성경에 완전히 동화되어 … 성경의 이미지들과 개념들이 살아 있는 몸 안에 얽히고설켜 살아 있는 조직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 시들은 성경의 내용들과 분리할 수 없는 새로운 개체가 되었다는 뜻이다. 계시록은 그 자체로 복음을 노래하며 어린양을 찬양하는 놀라운 시다.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는 “음악이나 시, 한 예술 작품을 진지하게 깊이 본다면, 그 안에 있는 세상을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4] 특히 음악은, 시와 함께 경험적 진실뿐 아니라 그 진실에 대한 인간 감정의 내면을 그리고 표현하고 이끄는 데 능숙하다. 그리고 복음은 비유의 스토리와 시와 다양한 표현을 포함한다. 


오늘날 교회와 신학은 음악에 대해 충분히 관대하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k)가 말했던 “신학의 시녀”로 말이다.[5] 음악은 복음전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다. ‘메시지를 떠난 음악(악기 음악)’ 또한 감정과 경험을 전달하는 데 매우 강력한 도구로 사람의 마음을 열고, 진리의 따뜻함을 선사하고, 복음의 능력을 기대하게 하는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촉매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동시에 음악은 ‘복음의 또 다른 언어’다. 음악은 때로 예술의 한 분야에 갇혀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다. 음악은 우주적 조화와 질서를 가지고 ‘시’라는 문학을 장착해 복음과 진리의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다. 실제로 수많은 음악은 복음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교회에서 복음전파를 위해 ‘복음의 언어’로의 역할을 감당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다. 음악이 ‘오직 말씀’을 돕는 시녀가 아니라, ‘오직 말씀’을 울려 퍼트리는 ‘아름다운 언어’로 승격됨을 고대하며, Sola deo gloria!




1. Ryken, The Liberated Imagination, 125.

2. Harrison, “Augustine and the Art of Music,” 40-45.

3. Cleanth Brooks and Robert Penn Warren, Understanding Poetry, 3d ed. (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60), 10.

4. Flannery O’Connor, Mystery and Manners, ed. Sally and Robert Fitzgerald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roux, 1957), 73.

5. Bavink, Gereformeerde Dogmatiek, 1:787.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서나영

서나영 박사는 미국 남침례신학교(SBTS)에서 교회음악(MM)과 신학(M.Div.equi.)을 공부하고, 기독교예술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총신대학교 객원교수, 미국 스펄전 대학교 초빙교수로 있으며, 서울기독교세계관연구원에서 문화예술파트 전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