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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세속적 신비주의인가, 그리스도 중심 영성인가
by 이춘성2023-10-17

안정된 직장, 자랑하고 싶은 남편, 누구나 살고 싶은 뉴욕 맨해튼의 고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던 한 전문직 여성이 어느 날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이혼한 후에 1년간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여자는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에 가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 가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 가서는 열렬히 사랑한 후에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 이야기는 2010년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줄거리이다.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은 미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자전적 이야기를 쓴 동명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이다. 이 책에는 “난 내 안에 있는 신을 존중한다.” “‘나’만을 위한 식사를 즐긴다.” “내 안의 에너지가 응답한다.” “어느 목요일 오후 신과 하나가 되다.” 이런 신비한 영적 체험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 모든 신비적 체험과 일상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다.


위와 같이 ‘나’를 찾기 위한 여행과 행복의 중심에 ‘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는 이전부터 있었던 세속적 신비주의라는 영적 흐름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1976년 첫 출간된 후 3,500만 부가 넘게 팔린 웨인 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는 세속적 신비주의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 책에서 웨인 다이어는 세상에서 살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외부의 도움이 아닌 내면의 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내면의 힘이 영적인 힘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영적인 힘을 끌어내는 다섯 단계의 단순한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힘든 일과 마주치면 먼저 심호흡부터 하라.

둘째, ‘나는 괜찮다’라고 선언하라.

셋째, 기도하거나 간절히 원하라.

넷째, 믿고 맡겨라.

다섯째, 감사하라.


웨인 다이어가 제안한 이 다섯 단계 명상법은 일종의 명상 매뉴얼이 되어, 지금도 각종 명상의 핵심 요소이다. 현재 이와 유사한 명상 방법은 여러 형태로 발전되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구글과 아마존 등과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IT 업계에서는 직원 복지 차원에서 회사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제공한 지 오래다. 번아웃 세대를 쓴 곽연선은 특히 MZ세대들이 이 명상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직장이나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가 말한다. 이제 세속적 신비주의의 명상은 현대인의 일상 안으로 들어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현상은 사람들이 세속적 신비주의의 명상과 기성 종교를 병행하면서 그 사이의 충돌이나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위의 다섯 단계의 명상법에서 주어만 바꾸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나’ 중심 영성


첫째, 힘든 일과 마주치면 먼저 심호흡부터 해라.

둘째, 하나님께 ‘나는 괜찮다’라고 선언하라.

셋째,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간절히 원하라.

넷째, 하나님께 믿고 맡겨라.

다섯째, 하나님께 감사하라.

 

실제로 밑줄 친 부분에 다른 신의 이름이나 사람의 이름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다. 웨인 다이어의 명상법은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대중적인 성격이 있다. 문제는 웨인 다이어의 세속적 신비주의가 가르치는 영성은 꼭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그가 제시하는 방식의 명상이나 영성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속적 신비주의는 종교와 유사한 신비한 체험을 경험하게 하지만, 이러한 체험을 주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단지 내가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가르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영적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그 영적 경험을 위해 내가 믿는 대상을 바꿀 수도 있으며,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세속적 신비주의 논리적 결론이다. 그러므로 신비적 경험의 주체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나’라는 주관적 자아이다. ‘나’는 행복의 기준이며, 의미의 판단자이고, 모든 윤리의 창조자이다.


‘그리스도’ 중심 영성 


사도 바울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을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내용은 겉으로 보기에는 웨인 다이어가 가르친 세속적 신비주의 영성과 유사하게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기쁨과 기도, 감사는 주관적 행복과 의미를 찾기 위한 명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영적 활동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살전 5:18)이라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바울은 극도로 가난했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들의 행복과 실용적 유익을 얻기 위한 기쁨, 기도, 감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기쁨, 기도, 감사를 명령하였다. 기독교의 영성은 ‘나’와 ‘우리’가 아닌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그리스도를 기뻐하며,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며, 그리스도로 감사하는 ‘그리스도 중심’ 영성인 것이다. 기독교 영성은 기쁨과 감사를 찾는 여행이 아니다. 역으로 이미 받은 기쁨, 감사, 기도의 근거인 ‘그리스도’를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사는 순종의 영성이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정직하게 묻고 싶다. 지금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지배하고 있는 영성은 과연 ‘그리스도 중심 영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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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춘성

이춘성 목사는 20-30대 대부분을 한국 라브리(L'Abri) 간사와 국제 라브리 회원으로 공동체를 찾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환대 사역과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목사,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KICE) 사무국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