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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빈대가 쏟아 놓은 판도라의 항아리
by 필립 정2023-11-11

요즘 한국 사회가 빈대 출몰로 매우 시끄럽다. 내년에 올림픽이 열릴 프랑스 곳곳에서 빈대가 퍼진다는 소식을 듣고 온 세계가 촉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꿈쩍하지 않던 한국인들도 멀리 떨어진 나라의 작은 벌레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러다 인천의 한 찜질방과 대구의 한 대학 기숙사에서 빈대가 발견되고, 10월 한 달에만 서울의 18개 구에서 빈대가 출몰하자 코로나 이후 잠자고 있던 혐오 정서들이 빈대에 대한 공포와 함께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빈대를 잡으러 다니는 직업 때문에 빈대를 흔하게 본다. 그래서 빈대를 보아도 개미나 거미 같은 벌레 보는 것처럼 별다른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다. 진정 내게 공포를 일으키는 것은 신중치 못하게 빈대를 퍼뜨린 사람들을 속단하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공포와 불안을 투사하며 날 선 혀를 휘두르는 사람들이다.

  

코로나 유행기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를 노려보던 미국인들의 눈길이 아직도 선하고 중국인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코로나 한풀이 하던 한국인들의 냉소도 여전히 끔찍하다. 그런데 요즘 빈대 출현과 함께 온라인의 댓글과 소셜미디어로 실어 나르는 혐오의 바이러스들이 다시 퍼져 나가고 있어 내 불안을 붙들어 맬 수가 없다.


교회도 혐오, 편견, 인종 차별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역사가 있다. 흑사병으로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던 14세기 로마 교회의 모습은 코로나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와 매우 흡사하다. 로마 교회는 종말론 교리를 앞세워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페스트의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 과오로 이전까지 수백 년간 쌓아 온 영적 권위를 실추시켜 버렸다. 이 얼룩진 역사의 거울에 지금의 우리 사회를 비추어 보면 온전치 못한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반성할 수 있을까 싶어 이 글을 써 본다.


페스트, 종말의 공포를 부르다


14세기의 소 빙하기로 인한 대기근(1315-1322)과 페스트 전염병(1348)으로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이상이 죽어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의 전부를 교회와 함께했던 유럽인들은 전쟁, 아사, 전염병을 겪으며 이를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종말의 징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채찍질하며 회개하여 재앙을 피하려 하였지만 페스트는 교회를 통해 더 번져 갈 뿐이었다.


당시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건강을 살피고 공포를 극복하게 도울 곳은 교회가 유일했다. 교황부터 사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체계화된 조직력으로 유럽의 곳곳에 명령 전달이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속 권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기 지방만 관할하는 영주들의 분산된 힘으로는 범 인류적 재난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또한 영주들의 세력에 비해 아직 중앙집권적 왕권은 충분히 무르익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일한 희망이었던 로마 교회는 이미 스스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오랜 십자군 전쟁의 여파와 패배로 그 단단하던 조직력이 붕괴하고 있었다. 대기근이 오자 농노를 기반으로 하는 장원 제도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고 페스트 전염병으로 농도가 절대 부족하자 교회 재정이 무너져 버렸다. 교회 권력의 와해는 곧 사회적 불안과 공포에 불을 지폈다.


미국의 역사가 바바라 터크만(Babara W. Tuchman, 1912-1989)은 이 시기를 “폭력적이고, 고통스럽고, 당황스럽고, 붕괴된 시기였으며 사탄이 승리한 시기였다”고 정의하였다. 결국 교회가 무너져 가는 교회와 성직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선택한 것은 마녀사냥이었다. 세상이 불행해지는 것은 악마의 탓이라며 악마와 결탁한 마녀의 소행으로 몰아가기 시작하였다. 기근과 전염병의 공포에 눌려 있던 농민들과 도시 빈민들도 현실을 잊고 광분하여 폭력의 불길에 휩쓸려 버렸다.


1484년 교황 이노켄티우스 8세는 마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황령으로 단죄를 지시하였다. 곧 교황의 지시로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Malleus Maleficarum, 1486)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 책에는 마녀와 악마와의 계약, 마녀들의 범죄, 마녀를 가려내는 방법, 재판과 처형 방법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은 이후로 100년이 넘도록 28판이나 인쇄되었고 수십만 명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는 안내서가 되었다.


교황이 처음에 마녀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지금의 독일 지역의 주술사들이었다. 성경(출애굽기 22:18)에 근거하여 마녀재판을 시작하였지만 사실 이들 다수는 전통적 의학을 시전하거나 신앙의 힘으로 전염병을 극복하도록 돕는 사람들에 불과했다. 교황은 이들이 교회의 권위를 침해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전염병은 몇 년이 더 지속되었고 교회는 계속 희생자를 찾아야 했다. 


갈수록 걸인, 외국인 이주민, 저소득 여성, 어린아이, 특히 유대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마녀로 몰려 희생되었다. 철저한 정결 의식 때문에 전염병이 잘 안 걸리는 유대인들을 우물에 독을 타 질병을 퍼뜨렸다고 모함하여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내 수십만 명을 처형하였다.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절망에 젖은 농민들이나 배고픈 도시 빈민들은 종말론의 교리를 만나자 곧 자신들의 처지가 개선될 것 같았다. 지금 사탄이 잠시 승리해 재앙이 임하였지만 곧 그리스도가 이를 제압하고 천년왕국이 이루어져 살기 좋은 세상이 오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탄과 손잡은 마녀들을 심판하기 위해 불을 지르고 폭력 사태를 행하며 천년왕국을 도래시킬 하나님의 전사로 자처했던 것이다.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위한 초법적인 그들의 행태는 더 큰 혼란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포스트 코로나


인류는 언제나 재앙이 닥치면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양 삼아 혐오와 분노를 분출하며 사회적 낙인을 찍고 폭력을 가하는 행태들을 계속하였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천연두가 번지자 아시아인 이민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괴롭히고 추방법까지 만들 정도였다. 페스트 유행이 70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마치 페스트 유행 시대를 거울로 보는 것 같은 유사한 일이 코로나 시기에 일어났다. 내가 사는 미국에서 검은 머리를 한 아시아인들은 언제 폭력을 당할지 모르는 위기를 겪어야 했다. 코로나 유행 이후 미국에서 아시아인 증오 범죄는 급증하여 1년간 4,000건이나 된다고 인종차별 혐오범죄를 연구하는 AAPI가 발표하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한국인의 중국 유학생, 조선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많은 한국인이 코로나19를 일부러 중국 바이러스 또는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고 국내 중국인들을 잠재적 바이러스 보균자로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런데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코로나 이후 잠잠하던 혐오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빈대가 나타나 증오와 혐오가 가득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이다. 빈대가 나타나자 매체마다 학자들의 입을 빌어 기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여러 편을 읽어 보았는데 한결같이 그 기사들의 행간들에 숨겨진 의도들은 불순하기 짝이 없다.


오프라인, 온라인 가리지 않고 그 기사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최근에 발견되는 빈대들은 예전에 있던 종들과 다르게 주로 열대 지방에 사는 종인데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외국 이민자, 또는 외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한국인들이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 빈대 종이 발견된 곳이 주로 외국 유학생 기숙사, 고시원, 찜질방 같은 곳이다.” 이 글을 쓴 기자들은 전문가의 견해를 자기들의 입맛에 맞도록 편집하여 독자들의 혐오 정서를 자극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많은 사람이 기사를 구독하고 읽게 하여 돈벌이를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14세기에 ‘마녀들을 잡는 망치’를 쓴 학자들을 대신해 지금 21세기의 각종 매체가 혐오와 폭력의 광기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돈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수단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알면 속지 않는다


빈대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면 우리는 매체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빈대는 원래 박쥐의 몸에 붙어 있던 박쥐벌레(Batbug)였다. 석기 시대에 수렵 생활을 하던 조상들은 주로 떠돌며 동굴에서 생활하였다. 동굴에서 박쥐와 함께 기거하면서 사람들의 몸에도 박쥐벌레가 같이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수렵 생활을 끝내고 농작물 경작을 하며 주거 생활을 하면서 박쥐벌레도 사람들의 주거지에 같이 살게 되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 벌레를 침대벌레(Bedbug)라 부른다.


한국에 빈대가 급격히 퍼지게 된 계기는 미군정 시기에 들어온 미군 때문인 것 같다. 1차 세계대전, 2차 대전 이후 빈대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렸는데 제일 극심한 곳은 미군 진영이었다. 미군을 따라 상륙한 빈대들은 1970년대까지 한국인들을 괴롭혔다. 그러다 DDT를 사용하면서 그 이후 빈대의 출현이 더 이상보고 되지 않았다. 빈대가 다시 나타난 시기는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세계화의 진행과 더불어 외국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부터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인 정서상 빈대가 얼마나 번져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이에 관한 어떤 연구나 조사도 이루어진 질 수 없었다.

 

최근에 발견되는 열대성 빈대 또한 언제 어디서 누가 들여왔는지 공식적인 보고조차 없다. 빈대에 관한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기숙사나 고시원이나 찜질방에서 기거하는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들을 빈대 유입자로 낙인을 찍어 버리고 있다. 그리고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를 것처럼 분노를 표출한다. 


이제 한국 교회가 과연 코로나로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달래 주고 위로가 되었는지 반성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코로나19가 번져 가자 정부에서 모이는 예배를 당분간 중지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부 교회에서는 종교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심지어는 코로나19는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고까지 하며 예배를 강행하였다. 그러다 여러 교회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이 되면서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되자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잘못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교회사에서 언제나 교회는 자기 생존 유지에 급급하였다. 교회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성도들을 교회로 모이게 해서 페스트를 퍼뜨렸던 14세기의 교회와 지금의 교회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유사하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사회의 약자들을 향한 혐오와 폭력의 광기를 누그러뜨릴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인간은 습관적으로 자기 죄를 부정하고 합리화한다.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누구에게서 옮았을까에만 집중한다. 머릿속에서 작동되는 원인과 결과의 계산기에 언제나 나는 피해자로만 남는다. 나는 절대 가해자일 수 없어 가해자는 언제나 남이 된다. 가해자를 찾아 징벌해야 하는 당위성을 갖고 덤벼들지만, 대상은 항상 자기를 대변할 수 없는 만만한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힘든 뇌구조를 갖고 있다는 뇌 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말이 맞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각종 방어기제와 거짓으로 무장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우리를 보면서 결국 아담의 후손이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원인과 결과의 체계는 계속 죄를 합리화할 수밖에 우리의 영혼이 쉴 자리가 없다. 오늘도 이 글을 마치면서 하나님의 돌발적인 은혜가 이 폐쇄적인 시스템을 파괴하고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겸허히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구해 본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자기가 만든 여자 판도라에게 항아리를 하나 선물한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자 혐오, 증오, 거짓 같은 죄악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놀란 판도라가 항아리를 막아 버리자, 그 안에 담겨 있던 희망은 끝내 세상으로 나아오지 못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이야기와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그러나 성경과 다른 것은 판도라의 항아리에서 쏟아져 나온 것 같은 이 세상에 구원의 하나님이 희망을 주시러 오셨다는 것이다. 빈대 때문에 쏟아져 나온 이 혐오와 폭력의 세상, 주의 은혜가 아니면 어디 희망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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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필립 정

필립 정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BA),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MDiv), 미국 Talbot School of Theology(MA, 목회 상담)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청소년 영어 담당 사역자와 이민 1세대 교회의 목회자로 섬겼다. 현재 Go Eco Pest Control 회사 대표이며,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야생 동물의 관계를 연구하여 달라스 DKNET 방송국 고정 게스트와 달라스 부동산 라이프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과 벌레의 교감을 다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