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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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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말씀 QT_누가복음 14장 25-35절

2022-08-16

누가복음 14장 25-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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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제자의 최우선 순위


참 제자는 스승에게 참으로 반응한다. 예수의 제자는 결단만 해서는 안 된다. 자기 부모와 처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해야 한다. 또한,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 ‘미워하라’는 상대적인 말이다(26절). 가족을 미워하라는 것은 고대 근동 당시의 비교 과장법에 해당한다.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은 소중하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제자는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을 최우선에 두는 자이다. 그렇지만 주님의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을 돌보지 않는 행위는 합당치 못하다. 왜냐하면, 자신과 가족과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사랑의 우선순위에 관한 일이다. 즉, 예수의 사랑을 삶에서 가장 첫 번째에 두라는 명령이다.


무엇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지 않는 자는 제자가 될 수 없다. 당시 십자가의 형벌을 선고받은 사람은 처형 장소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갔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힘들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지고’의 헬라어 ‘바스타제이’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움을 말한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자기 부정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는 자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 자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아 부정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십자가는 날마다 져야 한다. 가끔이 아니다. 매일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안위와 쾌락을 버리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다.


나는 주님의 제자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계산하는 제자


대가를 계산하는 자가 대가가 된다. 제자로 나설 때, 철저하게 계산해야 제대로 제자가 될 수 있다. 망대를 세우는 자의 비유는 제자로 결단한 사람에게 경각심을 준다. 아무 계산 없이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자는 어리석다. 제자의 길은 안락한 신분을 보장하지 않는다. 풍족한 물질을 제공하지 않는다. 즉, 평탄한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길임을 인식하기 위해서 꼭 계산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룟 유다처럼 예수를 팔 수 있다. 데마처럼 제자의 길을 포기하고 세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전쟁에 출전하는 왕의 비유는 제자도의 본질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왕은 현재 침략을 받고 있기에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즉, 전쟁이냐, 화친이냐에 대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왕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없다. 오직 두 가지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 이같이 제자도 마찬가지이다.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자기 앞에는 하나님과 화친이냐, 대적이냐, 이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단호히 지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제자가 될 수 있다(33절). 여기서 ‘버리다’는 헬라어로 ‘아포타소마이’인데 ‘포기하다’라는 뜻이다. 제자는 모든 소유를 팔고 나눠주는 자가 아니다. 제자는 자신의 재산에 대한 주인 의식을 포기한 자이다. 또한, ‘아포타소마이’는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한순간만이 아니라 계속된 포기이다. 제자는 소유물에 대한 의식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소유물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위탁하신 것이다. 즉, 제자는 청지기 정신으로 사는 자이다.


나는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 철저하게 계산하였는가? 아니면 적당하게 계산하고 적당한 제자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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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임재환(예수소망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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