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문화에는 강한 신념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가 내가 말할 권리를 결정한다는 신념이죠. 어떤 경우엔 이 신념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신념은 객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에 자신이 어떤 입장인지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동시에 이런 방식의 사고는 약간 도움이 되는 면은 있습니다. 저는 세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 번의 출산을 했습니다. 만일 제가 어떤 사람들 앞에 서 있고 누군가가 그 사람들에게 출산하는 게 어떤 경험인지 말해 달라고 하는데 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한 남성이 출산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출산을 해 본 저나 혹은 다른 여성들은 그 남성을 보는 눈길이 ‘왜 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거죠. 당신은 출산이 어떤 건지 아무것도 모르지 않느냐’는 식이겠죠. 그 상황에서는 저의 경험이 제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줄 겁니다. 그 남성의 삶의 경험은 그 권리를 주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만일 이 남성이 갑자기 출산이 어떤 것인 지에 대해 선언하듯이 말하는 대신에 ‘저는 세 번 출산한 제 아내의 경험을 매우 주의 깊게 경청했고 제가 여러분에게 나누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경험입니다’라고 했다면 아마도 매우 다른 차원의 대화가 되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