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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앤드류 딜리_평생 불안과 씨름해야 한다면?

성경적 상담 시리즈

How Do I Overcome Anxiety and D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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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Andrew Dealy /  작성일 2023-04-23

본문

누군가 불안 문제로 찾아오면 저는 이 모든 것들을 다룹니다. 저를 처음 찾아오거나 오랫만에 온 내담자라면 저는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체 검진을 받은 게 언제였습니까? 의사를 만나 검진을 받은 게 언제였습니까?' 모든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죠.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의 우울과 불안은 신경 화학적인 수준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말하는 현실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은 주님이 ‘육체에 주신 가시’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바울에게 정말로 고통스러웠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은 세 번이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소서. 더 나아지게 해 주소서. 이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소서’라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불안과 우울이 지속적으로 괴롭힐 겁니다. 불안과 우울이 병적인 거라면 그것은 이생의 ‘가시’일 겁니다. 그것이 우리 정체성을 정의하거나 우리를 지배하지는 못하겠지만 남은 생애동안 우리는 그것과 씨름해야 할 겁니다. 우리에게 그런 어려움을 주시더라도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하게 하심이라는 겁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하나님의 응답에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나의 약한 것을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여 내가 약하여도 그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볼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굉장히 강력하신 분임을 볼 것이다. 내가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하더라도 말이다’ 어떤 이들은 한 평생 이러한 가시가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약의 도움을 얻는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이에 대해 먼저 주님께 아뢰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약의 도움을 얻는 것이 도덕적이나 아니냐는 겁니다. 이것은 둘 중 하나가 아니고 중립적입니다. 약은 하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일반 은총으로서 신자들이 다양하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을 믿음으로 먹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아니면 믿음 없이 먹으면서 우리 삶을 제어하는 힘으로 여기느냐 입니다. 그래서 불안의 문제로 의뢰인을 상담하며 약 복용을 고려할 때 우리는 주님께 기도를 많이 하며 그분께 묻습니다. ‘우리가 이 약을 사용하는 것이 당신이 원하시는 건가요? 이 상황에 이 약이 도움이 될까요? 약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 중 어느 것이 현명할까요? 아니면 주님, 지금 이 약을 사용할 때가 아닙니까?’ 따라서 약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약과 관련하여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뢰인에게 건강 검진을 했는지 의사를 만나 보았는지 묻고 모든 기능이 잘 돌아가는지 확인합니다. 그 다음 다른 생리적 요인과 사회적 현실과 영적 현실을 점검합니다. 그들의 불안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요. 특히 오랫동안 불안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경우 이 오랜 시간 동안 주님이 동행하고 계신지 명확하지 않기에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 이유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의 관점에서 그리고 기독교 문화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잘 세우고 사랑해야 하는데 이 영역은 우리가 실패한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렵다는 것을 소통하는 면에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통과 고난으로 특징지어 지지만 그 고통과 고난은 결코 임의적으로 온 게 아닙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항상 행로와 목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다루고 있는 것들로 과중한 부담이 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더라도 하나님께서 끝이 있을 때가 온다고 하셨으니 변화가 있을 때가 올 겁니다. 이생에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잘못된 희망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해서 잘못된 희망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한 주 혹은 한 달만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혹은 바른 성경 구절을 읽으면 혹은 바르게 기도하면 이루어질 겁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며, 고통이 오면, 그것을 견딜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주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바울이 그의 고통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보면 그는 그것에 대해 행복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아프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우니 그것을 가져가 달라고 주님께 간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가 그의 은혜의 보좌 앞에 불만을 가져오는 걸 환영한다는 걸 알기 바랍니다. 욥처럼 정직하게 고통에 대한 불만을 주님께 아뢰십시오. 시편의 3분의 1은 모두 탄식을 쏟아내는 말씀입니다. 시편 88편의 작가처럼 흑암이 나를 둘러쌌다고 부르짖으세요.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며 그때에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아프지 않은 척 가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고통에 대해 정직해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통 중에 주님께 나아가서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나고 있는 진실을 그분께 아뢰고 공동체로 모여 당신을 도우려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이때에 당신이 인내하도록 돕고 그리고 당신이 나아갈 때 매일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제공하실 것이며 그 고통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고통은 우연이 아니며 그 안에 추적할 수 있는 과정이 있습니다. 답답할 수 있는 현실을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당신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말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단지 당신이 그리스도의 이미지에 순응하는 존재라는 더 큰 초월적이야기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으니 우리도 지금 당하는 고통과 면하는 어려움 중에 보다 더 그리스도처럼 되어 간다는 겁니다. 당신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그분이 하시는 일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그리고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요. 그러므로 당신의 고통에 솔직하십시오. 

스피커 Andrew Dealy

앤드류 딜리는 오스틴스톤 상담센터(Austin Stone Counseling Center)의 이사장이며 Austin Stone Community Church 의 영혼돌봄부터 책임자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