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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닉

#저 사람들_부족주의에 갇혀 있는 문제

폴 트립의 복음적 SNS 클리닉: 반응성 6

#thosepeople - Our Problem with Tribalism (Reactivity Episod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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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Paul Tripp /  작성일 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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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에서 지배적인 문화 역동 중 하나로써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일상 관계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부족주의 문화입니다. 그것은 내가 한 집단의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데 그들은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반응하는 사람들이며 나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내 ‘부족’을 수호하지만 다른 ‘부족’에 대한 생각에는 닫혀 있는 걸 말합니다. 그것은 성경이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두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보다 넓게는 인간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그것에 대해 매우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특별하게는 구속 받은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두 공동체 모두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고방식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연합하라는 강력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에 있는 다름은 하나님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현재 공동체에 두셔서 온갖 종류의 다양한 생각을 하는 여러 사람들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여기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도록 하신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부족 안에만 갇혀 있다면 어떻게 배우며 어떻게 성장하겠습니까?

오늘날의 반응성의 문화에서 행해지는 것은 위험한 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격을 하니까 나는 내 부족에게 달아나고 그 사람들에게 달아나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안에서 편안함을 얻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이렇게 내 부족에게만 헌신하기 때문에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반발이 부족주의를 촉진하고 부족주의는 반발을 촉진하고 그 악순환이 점점 더 커질 뿐입니다.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떠돌고 있는데요. ‘집단 사고’ ‘반향실’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발생하는 것은 부족주의 안에서는 내 생각이 도전 받지 않고 다만 강화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고 사실 때로 그들은 내가 말하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장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도전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성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이었다고 고백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 견해를 완고히 하는 방법이고 여러 관점에 대한 자기 확신을 더 굳히는 방법일 뿐입니다. 

부족 공동체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은 도전하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전하는 공동체에는 질책과 대립이 있고 그것 덕분에 인격적인 성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죄를 고백함으로써 말입니다 . 그러나 부족주의는 단지 강화만 하는 문화이고 내 의견에 대한 확신과 자만을 더 크게 할 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설계하신 방식은 그분의 계획에 따라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교회에서 관계를 맺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와 다른 색깔의 신학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충분히 생각하고 더 깊게 생각하고 더 겸손히 생각하고 내 생각에 도전하는 대화에 열려 있으며 성경을 더 깊이 파고들어 더 충분히 배우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다른 점들에 대해 감사와 은혜로 대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다른 점들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그것이 제가 하나님 말씀을 더욱 사랑하게 하고 저의 구주를 더욱 사랑하게 하며  그분께서 저를 위해 행하신 것들을  더욱 이해하게 하며 계속해서 서로 섬기며 변화하는 이런 공동체에 더욱 헌신하게 합니다. 여러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한 부족에 속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제 생각에 동의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도전 받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제 말에 동의하고 뒷받침해 주기를 원합니다. 

열려 있고 의존하며 겸손한 복음 공동체에서 사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제 의견에 대해 도전이 있을 것이고 매우 옳다고 여겼던 것에 대해 아마도 그만큼 옳지는 않았다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통찰력에 인내하며 열려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현재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끝나지 않은 대화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는 그만큼 중요하고 사람들의 삶은 그만큼 중요하지만 그것이 조금 지치게 하고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구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에는 그런 계명 하나 하나에는 그분의 은혜가 수반됩니다. 어려운 길이 최고의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주의를 다루기 위해 일하는 방법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만 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 나를 열어 두십시오. 

히브리서에서 말씀합니다.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나를 지켜보는 눈들이 필요합니다. 내게 없는 눈들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사실인데요. 인격적이고 영적인 그런 통찰력은 우리가 이 팟캐스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인격적이고 영적인 통찰력은 공동체의 산물입니다. 

나 홀로는 얻기 힘듭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겠지만 제 생각엔 실제적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정체성을 깨닫고 의미와 목적과 동기를 깨닫는 것이 여러분의 부족, 여러분과 동의하는 사람들의 집단에게서 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정체성과 의미와 목적을 깨닫는 것이 여러분의 주님으로부터 여러분과 그분의 관계로부터 그분의 자녀가 된 것으로부터 입니까?’ 거기에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정체성을 수직적으로 얻는다면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확인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의 동의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름이 있어도 편안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다른 저 사람의 모습이 내가 찾고 있는 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쉽게 가장 편안한 곳으로 달려가서 어울리며 내 의견을 계속 강화해 주는 집단의 일부가 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도전 받아야 하고 반대에 부딪히고 주를 아는 것에 자라나고 주의 말씀을 알고 주의 은혜 가운데 자라야 하는 필요를 부정하게 됩니다. 저희를 도와 주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스피커 Paul Tripp

폴 트립은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The Center for Pastoral Life and Care와 Paul Tripp Ministries의 대표로 목사, 작가, 국제 컨퍼런스 강사로 활동 중이다.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Instruments in the Redeemer’s Hands)와 ‘눈보다 더 희게’(Whiter Than Snow)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