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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성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입니까?

뉴시티교리문답 Question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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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Leo Schuster /  작성일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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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47 성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단번에 죽으셨습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는 언약의 식사입니다. 또한 그분을 바라보며 우리 믿음을 강하게 하는 수단이며, 앞으로 열릴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자는 자신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레오 슈스터


최근에 어느 식당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그저 식당 이름과 영적인 식사를 경험하세요”라는 글귀만 있었다. 그 광고를 보며 나는 식사라는 것은 기껏해야 물리적인 체험 정도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의아함이 들었다. 그런데 곧 진정한 영적 식사는 성찬이라는 것과, 성찬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성찬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즉 과거, 현재, 미래다.


예수는 성찬을 처음 베푸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 그러시면서 그들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 실제로 그들을 위해 자신이 이미 행하신 일을 가리키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할 때, 우리는 그분이 완수하신 사역에 우리 삶의 기초를 두게 된다. 성찬은 우리가 구원을 얻어 내는 수단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이 나누는 영적 식사다. 성찬은 그리스도가 희생 제 물로 드려져 단번에 완수하신 사역에 그 무엇도 더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 도 안에서 우리를 확증하고 힘을 준다. 이는 저자가 삽입한 일종의 복음의 약기(略記)로서, 우리는 먼저 복음을 듣고 그 뒤에 복음을 맛보며 그 후에 복음이 우리 삶 속에서 두 발로 전진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11:26).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의 승리를 기억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것이 과거의 차원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성찬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차원을 보여 준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10:16). “참여”라는 단어는 “친교”, 또는 “교제"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성찬은 단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상징적으로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지금 예수와 함께, 그리고 서로와 함께 교제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어떤 방식으로든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예수께서 물리적으로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믿음으로 우리에게 그분을 드러내시면서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것이다. 영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자들에게 성찬은 단지 식사에 참여하는 것이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부르심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예수께서 사랑으로 부르시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듣고 용기를 얻는다. “나는 생 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그리고 믿는 자인 우리가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면 예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공동체로 하나 되게 하시며, 우리 에게 자신을 자양분으로 주시고, 우리를 강하게 하셔서 자신을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게 하신다. 이것이 현재의 차원이다. | 예수는 제자들에게 잔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 이 말씀으로 예수는 그들에게 성찬에서 이루어지는 미래의 차원을 알려 주셨다. 즉, 성찬은 우리가 고대하는 그 위대한 날을 가리키는 상징인 것이다. 이것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영광 가운데 성 도들이 그리스도와 즐길 영원한 축제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죄로 인해 망가진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상한 몸을 통해 우리는 다시 오전해졌다. 물론 이 삶에서 우리는 여전히 타락하여 엉망진창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성찬에서 이루어지는 미래의 차원은 우리가 완벽하게 온전해질 그날, 우리가 구주와 함께, 그리고 서로와 함께 최고의 식사를 즐기게 될 그날에 대한 희망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