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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뭣이 중헌디?
2022-05-17

잠언 14장 1-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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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지혜 있는 자가 살아가는 방법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엇인지 안다. 본문은 계속해서 지혜 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를 대조하여 설명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일이 잘된다. 반면, 하나님을 경멸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무너져 버린다. 이는 잠언에서 분명히 강조하는 신학적 주제이다. 그렇기에 지혜롭게 살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바른길을 걸으며 여호와를 경외한다. 그러나 잘못된 길을 걷는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사람이다.


단순한 행동의 윤리성 여부를 뛰어넘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잠언의 주제인 지혜로운 사람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어리석은 자는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주제를 말한다. 3절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어리석은 자는 지혜가 없어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말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사려 깊은 사고로 남을 배려하는 말을 한다. 말로 인해 손해를 입지 않는다. 이렇듯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언어생활도 다르다.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지혜 있는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감당한다. 지혜 있는 자는 적은 노력으로도 큰 것을 얻는 방법을 안다. 그것은 바로 소를 키우는 것이다. 4절에서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다”라고 한다. 소가 없으면 여물을 주지 않아도 되니 구유를 따로 청소할 필요가 없다. 사용하지 않는 구유는 깨끗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당장은 편함이 있다.


그러나 후반 절을 보면 소가 없으므로 얻는 유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가 있을 때의 소출과 없을 때의 소출은 큰 차이가 난다. 결국,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귀찮고 번거로울지라도 소를 키우기 위한 수고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에 해당하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 이는 앞에서 나눈 정직의 개념과 같은 맥락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소가 없는 이유는 노동하지 않은 결과이다. 하다 하다 소를 키울 수 없는 지경까지 왔음을 보여준다. ‘구유’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부쓰’는 ‘먹이다’, ‘살찌우다’라는 의미를 지닌 것만이 아니다. ‘외양간’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렇기에 본문은 소를 기르기 위해 지어 놓은 외양간이 텅 비어있음을 말한다. 농사를 돕는 소가 없으니 농사를 잘 짓기 어렵다. 그 결과 곡식 창고가 텅 비었음을 의미한다.


예전에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울 거야~?”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소는 누가 키우는가? 어리석은 자가 아닌 지혜 있는 자가 키운다. 지혜 있는 자는 작은 수고로움이 큰 유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이는 지혜 있는 자가 살아가는 삶의 지혜이다. 하나님의 창조 법칙 안에 있는 섭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혜 있는 자는 근면하며 성실하다.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히 알고 있기에 가능하다. 


세상은 말한다. “좁은 길이 아닌 넓고 편한 길로 가라”, “피곤하게 살지 말라”, “봐도 못 본 척, 다른 사람들처럼 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꼬임에 넘어질 때가 참 많다. 그러나 오늘 지혜 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를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한다. 한 영화의 유명 대사가 떠오른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나는 지혜 있는 자로서 수고로워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수고로움을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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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김다솔(주향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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