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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지혜가 주는 평안
2020-12-27

전도서 9장 11-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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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13.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15.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17.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18.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낙심


거짓 지식은 일시적 위로를 주지만, 참된 지혜는 온전한 평안을 준다. 한 해가 저문다. 인생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과(因果)’는 ‘원인’에 따른 ‘결과’가 있다고 말한다. 기상청은 수많은 원인을 조사해서 결과를 예측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그러나 자연 세계는 종종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다.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자신의 운명(미래)을 대한다.


첫째, 인과 원칙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도덕주의자(종교/율법주의) 혹은 실용주의자(비종교/사회정의)로 대표되며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을 중시한다. 둘째는 인과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낙관론자들은 앞으로의 일이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산다. 비관론자들은 앞으로의 인생을 어둡게만 본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에 합리적 이유를 갖지 않는다. 다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전도자는 오랫동안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왔다. 그는 모든 것이 꼭 원인에 따른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의 지혜도 능력도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11-12절). 물고기들이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잡히듯 우리는 닥쳐오는 시간을 대비하지 못한다. 구약학자 두안 가렛은 공로가 항상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며, 세상은 불공평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은 성공을 촉진할 수 있지만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대비함 또한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전도자가 보았던 작은 성읍이 이를 말한다(14절). 성읍이 처한 상황이 우리다. 힘-우리의 능력은 부족하고(16절), 호령-우리의 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없다(17절). 무기-우리의 자원은 위기를 막는데 역부족이다(18절).


미래를 ‘노력’으로 일궈낼 수 있다는 신념과, ‘행운’에 대한 낙관론적인 기대는 결국 낙심을 줄 것이다.


안심


피조물은 창조주를 기억해야 한다. 전도자가 이 사건을 주목한 이유는 성읍에 사는 ‘가난한 지혜자’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수단과 동네 초등학교 학생들의 경기처럼 뻔했던 결과가 뒤집혔다. 그는 원래 멸시받았으나 ‘지혜’의 말로서 성읍을 구했다(15-16절).


요나서에 등장하는 큰 성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당시 근동지역에서 가장 빛나게 번성한 도시였다. 이웃 나라들 보다 정치, 종교, 문화가 가장 앞섰던 도시가 니느웨다. 무엇보다 앗수르는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선지자 요나를 보내신다. 그것도 ‘화해’의 이야기가 아니라, ‘임박한 심판과 회개의 필요’에 대한 말씀을 들고(욘 1:2).


요나가 니느웨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니느웨는 큰 성이어서, 사흘 동안 걸어야 했다. 그런데 겨우 하루 동안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외쳤는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그가 탁월하게 설교한 것이 아니라 마지못함으로 설교했다는 점을 주목하라). 흥미로운 것은 니느웨의 왕과 온 성읍이 모두 회개했다는 점이며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비껴갔다는 점이다(욘 3:6-10). 참 지혜로 이르는 말 덕분이다.


예수님은 화려한 성 예루살렘의 타락을 경고하시고 멸망을 예고하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원수들이 둘러싸고, 공격할 때 성내 건축물의 돌 하나도 돌 위에 쌓여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19:43-44). 그러나 그 지혜의 말을 듣지 않은 예루살렘은 A. D. 70년, 로마의 공격으로 파괴된다.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처럼 ‘요나 보다 더 큰 이’다(마 12:41).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이’다(마 12:42).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메시지를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미래를 아시고 주관하시는 ‘가난한 지혜자’다. 모든 것이 그분께 달려 있다. 바울은 피조세계가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 같으나 이 또한 그분의 주권 아래 놓여있다고 말한다(롬 8:20). 그분께서 나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신 사실과 그분이 온 세상을 지금도 다스리신다는 두 가지 사실 안에서 우리는 평안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가난한 지혜자’를 잊어버림으로서(15절) 위기 때마다 불안해한다. 오늘 우리의 문제도 그분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잊어버림’에 있지 않을까? 전도서의 마지막 결론은 그럼으로 “창조주를 기억하라”이다(12:1).


새로운 한 해를 앞에 두고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참 지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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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김병완 목사(우리가꿈꾸는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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