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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의 설계에 충실한 제자훈련을 위한 ‘이중 귀 기울임’
by 최창국2023-04-29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이중 귀 기울임을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때”의 빛에 비추어 “지금”을 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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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은 단지 성경과 교리의 지식 습득이 아니라 성경과 세상(요 3:16), 영성 형성과 삶의 형성 두 지평의 연결이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과 자연 만물을 모두 포함한다. 제자훈련은 하나님과 인간, 성경과 세계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제자훈련을 위해서는 존 스토트가 강조한 ‘이중 귀 기울임’은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에서 필수 불가결하다. 이중 귀 기울임은 하나님과 복음을 신실하고 효과적으로 세상과 연결하기 위해 성경과 인간과 세계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과 관계된다. 스토트는 이중 귀 기울임은 먼저 ‘이중 거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너무 열중해서 세상을 직면하지 못할 정도로 말씀으로 도피하는 것과 세상에 너무 몰두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판단하지 못할 만큼 순응하는 것 모두를 거부한다. 도피와 순응은 정반대의 실수이지만, 이 둘 다 기독교적 선택은 아니다(존 스토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33-34).  그는 우리는 이런 이중 거부 대신에 이중 귀 기울임 곧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에 귀 기울이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 때는 겸손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애써야 하지만, 세상에 귀 기울 때는 비평적 자세와 세상의 처지에 공감하며 복음이 어떻게 세상과 관련되었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은혜를 구하며 들어야 한다. 그는 이런 이중 귀 기울임을 통해 신실하고 민감하게 말씀과 세상을 서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 두 지평을 연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함과 세상에 대한 민감성이 있어야 한다. 즉, 거짓된 적실성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도 안 되지만, 말씀에 대한 신실함이란 미명 아래 세상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이 두 가지 의무 중 하나를 희생하면서 다른 하나를 성취하면 안 된다. 말씀에 대한 실실함과 세상에 대한 민감성을 조화시켜야 진정한 제자훈련이 가능하다. 제자 훈련은 세상 속에서 제자도의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토트의 이중 귀 기울임의 목적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비평뿐 아니라 공감 행위와도 관계된다. 그는 세속 사회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경청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 혼란과 절망에 공감하면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에 대답하고, 아무도 가려워하지 않는 것을 긁어 주며,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 것을 제공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스토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293-94). 그가 이해한 이중 귀 기울임은 한편의 귀로는 성경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동시에 다른 한편의 귀로는 세상의 습관과 문화적 어법을 주의 깊게 듣고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과 한숨을 경청하는 것을 포함한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이중 귀 기울임을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때”의 빛에 비추어 “지금”을 살아낼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비록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제자훈련이 행해진다고 할지라도, 이 훈련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영혼의 활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자훈련의 사회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따라야 할 삶의 규범이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식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은 단지 그리스도와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다지는 일과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사회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일과도 관계된다.


스토트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기독교를 ‘외톨이’ 종교로 바꾸어 버리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한 존 웨슬리의 말이 옳았다”라고 보고, 그리스도인은 사회 속에서 현대적이며 진보적이어야 함을 피력한다(스토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290).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 말씀과의 관계에서는 보수적이어야 하지만,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진보적이어야 한다. 제자훈련은 개개인의 구원과 영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도 포함해야 한다. 제자 훈련은 개인의 영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 성장과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더 넓은 문화를 알아가며, 이 둘과 대화할 수 있는 자질을 길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도 성경뿐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비평과 공감도 요구된다.


제자훈련이 성경과 교리에 대한 이론적 차원에만 머무르고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일에 실패할 때, 이러한 제자훈련은 일상 안에서 진정한 제자도의 삶을 실현해 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언어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요 3:16), 즉 인간과 세계에 대한 언어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에 대한 한계”라고 말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도전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Ludwig Wittgenstein, Culture and Value, 3). 성경과 세상의 언어, 즉 이중 언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의 역동적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중 언어를 배운 사람은 통역가가 필요 없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오직 성경의 언어만을 배우고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 즉 인간과 세계에 대한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왜곡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만연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몸에 대한 이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플라톤의 사상에 기초하여, 몸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몸도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인격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달라스 윌라드는 “종교에서 육체를 제외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종교를 배제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의 연합 안에서만 살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육체적인 삶이다”라고 하였다(달라스 윌라드, 영성훈련, 42). 로버트 브라우닝은 그의 시를 통해 사람은 ‘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몸 때문에’ 발전한다고 하였다(오스왈드 챔버스, 전도서, 116에서 인용).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설계의 비밀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창조적 선물이다. 


제자훈련에서 이론과 실재의 균형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제자훈련은 삶의 실재를 위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종교적 신념이나 믿음은 단순한 사고방식이 아닌 삶의 방식이 되게 하는 것이다(Wittgenstein, Culture and Value, 73). 이런 맥락에서 좋은 신학은 단순히 바른 생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의미 있는 삶과 사랑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제자훈련도 삶의 실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단지 교리와 성경 해석과 같은 이론적인 정확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제자훈련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본질적인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실재에 관심을 돌려 단지 성경 텍스트에만 초점을 맞추는 우를 법할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의 살아있는 인격적 실재를 이론으로 대치하려는 위험이 있다. 루이스는 본질적으로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믿었다. 물론 복음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복음에 대한 해석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실재에 첨가되는 것일 뿐이다. 루이스는 “나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는 것처럼 기독교를 믿는다. 단순히 내가 그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에 의해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C. S. Lewis, C. S. Lewis: Essay Collection and Other Short Pieces, 21). 그에게 기독교 복음은 ‘큰 그림’을 보게 하는 눈이자 생명이었다. 여기서 큰 그림이란 우리가 눈으로 관찰하는 것 너머와 그 아래의 숨져져 있는 가치와 의미의 방식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티머시 제닝스가 강조한 인간과 세계에 계시된 하나님의 설계의 비밀을 아는 것과도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티머시 R. 제닝스,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46-49). 나아가 우리의 경험 세계가 아무리 서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기독교 복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큰 그림, 즉 교회와 세상, 성경과 인간, 영혼과 몸, 신앙과 일상 등은 서로 의미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실재다. 성경은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서 있다”(골 1:17)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제자훈련이란 이 큰 그림을 붙드는 것이고, 그 구조 안에서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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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창국

최창국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학위(MA, PhD)를 받았다. 개신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제자들교회 담임목사로 섬겼다. 현재는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삶의 기술』, 『실천적 목회학』, 『영혼 돌봄을 위한 멘토링』, 『해결중심 크리스천 카운슬링』, 『영성과 상담』, 『기독교 영성신학』, 『기독교 영성』, 『중보기도 특강』, 『영성과 설교』, 『예배와 영성』, 『해석과 분별』, 『설교와 상담』,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 『영혼 돌봄을 위한 영성과 목회』 등이 있다. 역서는 『기독교교육학 사전』(공역), 『공동체 돌봄과 상담』(공역), 『기독교 영성 연구』(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