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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맹세의 필요성
2018-11-29

창세기 15장 17-18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오늘은 맹세와 서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한다. 맹세와 서원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의 타락과 관련이 있다. 이 점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완전한 상태에서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우리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서약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항상 말을 잘 지킬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말을 지키겠다는 다른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단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약속을 어길 기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보다 높은 다른 존재에 의지해 약속을 어기면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는 완전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본래 만물을 ‘심히 좋게’ 창조하셨지만(창 1:31), 피조 세계는 더 이상 그 상태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피조 세계는 타락했고, 그 타락은 말의 진실성을 비롯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모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속은 경험이 있다. 결혼 서약, 사업 계약, 정치 공약 등 자녀와 친구, 이웃과 부모에게 한 약속이 깨어짐으로 인해 인간 사회에 큰 해악이 초래된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다(시 116:11). 모두 사기와 악독이 가득하다(롬 1:29). 물론 모든 말이 전부 거짓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진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의 절반만 말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이런 이유로 타락의 결과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맹세를 제정하셨다. 맹세와 서원은 거짓을 제어하고, 거짓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한다. 성경은 하나님도 맹세하셨다고 말씀한다(히 6:13-20). 그렇다면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는 성향을 지니고 계신다는 뜻일까? 그런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타락한 피조물의 한계에 맞추기 위한 은혜로운 배려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창조주를 신뢰하는 믿음을 유지해 나가려면 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심으로 그에게 확신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동물들을 죽여 절반으로 나눈 사이를 지나가면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그런 운명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셨다(창 15장). 물론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다. 따라서 이 맹세는 창조주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증표였다. 아울러 창세기 15장의 문맥에서 알 수 있는 대로, 이런 사실은 언약을 맺는 상황에서는 맹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코람 데오


크리스천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누군가가 말을 확실하게 지키라는 의미로 맹세를 요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 진실해야 한다. 그러나 엄숙한 언약을 맺는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런 경우에는 맹세가 필요하다. 맹세가 필요한 이유는 약속을 어길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Necessity of Oaths

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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