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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의 필요성
2018-11-29
창세기 15장 17-18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오늘은 맹세와 서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한다. 맹세와 서원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의 타락과 관련이 있다. 이 점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완전한 상태에서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우리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서약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항상 말을 잘 지킬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말을 지키겠다는 다른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단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약속을 어길 기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보다 높은 다른 존재에 의지해 약속을 어기면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할 필요가 없다.그러나 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는 완전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본래 만물을 ‘심히 좋게’ 창조하셨지만(창 1:31), 피조 세계는 더 이상 그 상태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피조 세계는 타락했고, 그 타락은 말의 진실성을 비롯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모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속은 경험이 있다. 결혼 서약, 사업 계약, 정치 공약 등 자녀와 친구, 이웃과 부모에게 한 약속이 깨어짐으로 인해 인간 사회에 큰 해악이 초래된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다(시 116:11). 모두 사기와 악독이 가득하다(롬 1:29). 물론 모든 말이 전부 거짓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진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의 절반만 말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이런 이유로 타락의 결과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맹세를 제정하셨다. 맹세와 서원은 거짓을 제어하고, 거짓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한다. 성경은 하나님도 맹세하셨다고 말씀한다(히 6:13-20). 그렇다면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는 성향을 지니고 계신다는 뜻일까? 그런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타락한 피조물의 한계에 맞추기 위한 은혜로운 배려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창조주를 신뢰하는 믿음을 유지해 나가려면 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심으로 그에게 확신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동물들을 죽여 절반으로 나눈 사이를 지나가면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그런 운명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셨다(창 15장). 물론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다. 따라서 이 맹세는 창조주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증표였다. 아울러 창세기 15장의 문맥에서 알 수 있는 대로, 이런 사실은 언약을 맺는 상황에서는 맹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코람 데오크리스천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누군가가 말을 확실하게 지키라는 의미로 맹세를 요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 진실해야 한다. 그러나 엄숙한 언약을 맺는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런 경우에는 맹세가 필요하다. 맹세가 필요한 이유는 약속을 어길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Necessity of Oaths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재물을 모으는 삶
2018-11-28
잠언 13장 11절“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우리 사회에는 손쉽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소리가 많다. 일을 거의 하지 않거나 열심히 하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소리에 쉽게 빠지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한 돈을 빠르게 늘려주겠다고 약속하는 자들에게 돈을 맡겼다가 평생 모은 돈을 다 날린 이야기도 뉴스를 통해 종종 들려온다. 도박에 중독되거나 혹은 위험천만한 게임이 지속적인 수입을 가져다 준다고 착각해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더욱이 복권에 당첨되어 엄청난 상금을 받은 사람들이 불과 수년 만에 파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거의 3천 년 전에 기록된 오늘의 본문은 이런 서글픈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지혜를 전달한다. 사회는 변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솔로몬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사람들은 손쉽게 돈을 벌기 원한다. 그러나 넓고 편안한 구원의 길이 결국 멸망에 이르는 길인 것처럼, 손쉽게 버는 돈도 필경은 부의 몰락을 가져오기 십상이다(마 7:13).‘망령되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재물을 손쉽게 얻으려는 태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부정한 저울추를 가증하게 여기신다(신 25:13-16). 악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모든 재물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부유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일과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나 다름없다.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사람에게는 열심히 수고해서 얻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 진리는 근면 성실하게 모은 재물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늘의 본문은 인내하며 투자하는 방법이 많은 재물을 벌 수 있는 비결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그것이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이 구절은 꾸준히 성실하게 일해서 번 재물은 없어지지 않고 갈수록 늘어난다는 데 강조점을 둔다. 왜 그런지 그 이유가 상세하게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얻어진 열매를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의 성향에서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거저 받은 돈보다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저축하려는 마음을 품는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으로부터 상급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삶을 권장한다. 매튜 헨리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모은 재산은 줄어들지 않고 갈수록 더 늘어난다"라고 주석했다.코람 데오오늘의 본문이 암시하는 대로, 성경은 재물을 모으는 일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단지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으려는 삶을 정죄할 뿐이다. 오늘의 본문도 정직하게 재물을 쌓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추구해야 할 일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이 금하는 것은 돈을 사랑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그 돈을 버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죄를 짓지 않고 또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거나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Increasing Wealth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감각을 일깨우는 예배
2018-11-27
시편 150편 1-6절“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오늘은 시편 150편을 통해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배의 원리를 간단히 알아보겠다. 특별히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을 비롯하여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반영하는 요소들을 예배에 어떻게 포함시켜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예배의 다양한 요소들은 우리의 오감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전달한다.음악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의사전달의 수단 가운데 하나다. 음악은 예배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교회는 무반주 영창, 오르간의 반주에 맞춘 찬송가,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춘 성가대의 찬양 등 음악을 늘 예배의 핵심 요소로 간주해 왔다.음악을 느끼는 일차적인 감각 기관은 청각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은 귀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깊이 침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심오한 진리를 전달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음악이 그런 진리를 나타내거나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어리석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다른 인간을 찬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 줄 수도 있다. 우리가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도 마찬가지다. 찬송가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돕는다. 곧 하나님과 구원에 관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의 가사를 생각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신학은 예배와 분리될 수 없다. 누군가가 그릇된 교리를 찬송가로 만들면 하나님의 백성은 그것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배를 위한 음악을 선택할 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늘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악기와 노래로 자신을 찬양하라고 명령하셨다. 우리는 예배에 적합한 노래를 불러야 한다.아울러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후각을 자극하는 예배를 요구하셨다. 예를 들면, 성막과 성전의 제단에서 향을 태웠다(출 30:1-10).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는 여전히 향을 태운다. 심지어는 개신교 교회들 가운데도 향을 태우는 예가 적지 않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들 가운데는 그런 관습을 찾아보기 매우 드물다. 우리는 신약 시대의 예배에서 향을 태우는 일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건물에서 나는 냄새가 교회에 관한 어떤 인상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회의 리더들은 이런 현실을 의식하고, 예배당이 교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코람 데오인간은 오감을 통해 정보를 처리한다. 예배를 비롯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오감이 관여한다. 예배에서 얼마나 오감에 호소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견해는 전통마다 제각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을 통한 예배가 예배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고려하며 성경적인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해야 한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Worship with Senses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가족들과 즐겁게 사는 복
2018-11-26
전도서 9장 9절“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초창기 미국의 위대한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했던 깊은 통찰력을 지녔다. 그는 "잃어버린 시간은 결코 되찾을 수 없다"라는 말로써 현재의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의미를 간결하게 표현했다. 하나님의 계시를 고려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칫 방탕한 향락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짧은 인생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들을 올바로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이 가르치는 요점이다.오늘의 본문은 ‘헛된 평생의 모든 날’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전도서에서 종종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헛된’은 온전히 공허하거나 무익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은 ‘덧없다’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전도서를 쓴 저자가 말하려는 요점은 세상에서의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삶을 경건하게 즐기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날수가 한정되어 있더라도 그 사실을 슬퍼하기보다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즐거워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관대하신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가장 귀한 선물 가운데 하나는 경건한 배우자다. 우리는 남편이나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잠언 19장 14절은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라고 한다. 하나님의 좋은 선물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우자를 허락해 이 세상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 동반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배려하셨지만, 우리는 그런 기회를 십분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경건한 아내, 또는 남편이라는 보배로운 축복을 경시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우리는 이 교훈을 다른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가족을 우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지만, 자녀들과 손자들을 비롯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분의 뜻이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매우 짧다. 오늘의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허락하신 창조주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해 아래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분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즐거워해야 한다. 한 번 지나간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코람 데오우리는 배우자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즐거워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바로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며, 하나님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의 고통을 달래줄 많은 축복을 허락하시는, 참으로 관대하고 자애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자신을 기억하도록 만들기 위해 가족들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하자.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Gift of Life with Family번역:조계광 (매일배움)
미련한 여인
2018-11-23
잠언 9장 13절“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잠언 8장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의로운 말을 가르치는 여인의 모습으로 지혜를 의인화했다. 지혜의 반대가 어리석음인 것처럼,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도 여인으로 의인화된 어리석음과 정반대의 짝을 이룬다.오늘의 본문이 묘사하는 어리석은 여인의 첫 번째 특징은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다. 조금도 놀랍지 않은 말이다. 왜냐하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목소리를 가장 높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말을 많이 할수록 귀를 기울어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 적은 법이다. 잠언 10장 8절은 말이 많은 어리석은 자는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낸다(잠 13:16). 이것이 잠언 9장에 여인으로 의인화되어 나타나는 어리석음의 특징이다. 어리석은 여인은 주장만 강할 뿐, 긍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녀의 말이 가치가 없을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매튜 헨리는 이렇게 말했다. “합리적이지 못한 말을 할수록 그녀는 더욱 강압적이고 격한 태도를 드러낸다. 또 무례한 자세로 힘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든다.” 우리가 이 가르침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세상에서 인기가 높은 사람들과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혜의 본보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시끄러운 다수가 반드시 옳거나 지혜롭지 않은 이유는 대개 크게 떠들기만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여인의 반대인 어리석은 여인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어리석은 여인이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권위의 자리를 가리킴)에 앉아 지도자인 척 행세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잠 9:14). 많은 사람이 그녀를 따르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은 일종의 찬탈자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 안에서 그 귀한 특권을 모두 잃고, 어리석음의 노예로 전락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수 있다(고전 1:30). 마지막으로 오늘의 본문은 어리석은 여인을 성적 부도덕과 연결시킨다. 도둑질한 물과 몰래 먹는 떡은 불의한 성적 관계를 상징한다(17절). 금지된 관계는 생명을 약속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파멸과 죽음과 결혼의 파경을 초래한다. 어리석음은 거짓 약속으로 사람들을 스올, 곧 죽음으로 유혹한다. 오직 지혜로운 여인, 바로 하나님이 계시하신 올바른 진리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준다. 코람 데오 우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과 명예를 훼손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궁금해 할 때가 많다. 사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죄가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리석음을 따르는 이유는 그것이 제시하는 거짓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여인의 거짓 약속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워 거룩한 지혜로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출처: www.ligonier.org원제: Meet Woman Folly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만사는 다 때가 있다
2018-11-22
전도서 3장 1절“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나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고 말한다 . 별들이 우리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말하는 별점에서부터 두 주인공이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고 말하는 멜로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의 모든 것에 운명이라는 개념이 침투해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모두 비인격적인 힘이 만사를 지배한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인격적인 존재가 만사를 다스리고, 모든 일에 목적을 부여한다는 말은 좀처럼 듣기 어렵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과 변증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비인격적인 실체는 그 어떤 것에도 의미나 목적을 부여할 수 없다. 목적이란 말은 그 자체로 인격적인 특성을 지닌다. 오직 생각할 줄 아는 인격적인 존재만이 목적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 비인격적인 힘은 단지 존재할 뿐이다. 예를 들어, 중력은 자체적으로 의도를 갖고 활동하지 않는다. 중력은 단지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단지 주어진 현실일 뿐 , 계획을 세우거나 상황을 이끌어 정해진 목적이나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우리의 눈에 세상만사가 궁극적인 목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만사를 다스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다면,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말은 무의미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전도서 3장과 같은 성경 본문을 대할 때는 전도자가 이스라엘이 믿었던 언약의 하나님, 곧 작정하신 목적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사 46:8-11).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는 말씀은 부분적으로는 탄생, 죽음, 파종, 슬픔, 기쁨과 같은 것이 적절한 때가 있다는 세상사의 이치를 관찰해서 얻어낸 결론이지만, 전도자가 그런 일들의 적절한 때와 적절하지 못한 때를 구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런 때를 정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전 12:13-14).오늘의 본문에 언급된 때와 기한은 인생의 시작(‘태어날 때’)과 끝(‘죽을 때’), 농작물 재배(‘심을 때와 뽑을 때’)를 포함해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된다. 삶은 많은 점에서 반복을 거듭하지만 끝없이 순환하지는 않는다. 삶은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은 인격적인 창조주께서 작정하신 때와 기한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만사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말보다는 ‘만사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이유가 있다’라고 말해야 옳다. 코람 데오 세상만사가 다 때와 목적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만사를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세계는 비인격적인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온전히 다스리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에 의해 통제된다. 그분은 모든 일을 그의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엡 1:11).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놀라게 하거나 그분의 계획을 망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안심할 수 있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A Time for Everything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다음 세대를 위해
2018-11-21
시편 78편 4절“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우리는 믿음의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의 진리를 물려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진리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사를 돌아보면, 복음을 확실하게 선포하지 않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호해지고, 언약의 공동체가 교리와 예배의 많은 결함으로 인해 호된 시련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잘 보존해 물려주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소명이 아닐 수 없다. 시편 78편은 이 원리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친다. 본문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를 언급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 이 시편의 저자인 아삽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런 행위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로, 성령의 영감에 의해 역사 속에 나타난 창조주의 사역과 그분의 행위를 기록하고 있는 신구약성경은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어졌다(롬 12:1-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목적은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다(딤후 3:16-17). 아삽이 언약의 백성에 관한 역사를 언급한 이유는 후세대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알게 하고, 그분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5-8절). 이 시편을 공부하면 더욱 알게 되겠지만, 아삽은 주로 부정적인 사례를 언급해 교훈을 가르치는 방식을 취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감사할 줄 모르고 패역을 일삼은 광야 세대(9-53절)와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서 그곳의 우상들을 제거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실패(54-66절)에 대해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 시편은 하나님이 다윗을 일으켜서 자기 백성을 경건하게 살도록 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67-72절). 하나님은 충실한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범사에 그분을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존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그 일을 인간들을 도구로 삼아 이루실 생각이셨다. 남은 자들을 보존하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작정에 의해 결정된 일이지만, 자기 백성을 믿음으로 인도하고, 남은 자들을 굳세게 하고, 교회를 지탱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그분의 왕국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는 사람들을 통해 계속된다.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들이 중단 없이 대대로 이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각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일은 인류의 마지막 한 가정이 남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코람 데오 우리는 개혁주의 전통을 따르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주권과 약속의 확실성을 굳게 믿는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존하시는 일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그런 보존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인간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충실한 교회의 사역자들, 어머니와 아버지들, 정신적인 조언자들을 통해 진리를 대대로 전하신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For the Coming Generation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2018-11-20
시편 119편 81절“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편 119편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탱해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약속이 힘든 시련과 환난을 겪는 신자들에게 생명을 준다고 거듭 강조한다. 예를 들어, 시편 저자는 50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고난 중에 자신을 살렸다고 말했다. 또한 54절을 살펴보면, 그가 지극히 거룩하신 창조주의 율례와 계명 가운데서 약속을 발견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가 생명을 주는 능력을 지닌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인내를 포함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다(딤후 3:16-17). 오늘의 본문도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들의 삶에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시편 119편 81절은 구원을 부르짖는 대목이 시작되는 첫 구절이다. 여기에서 구원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에게 주어지는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구원은 시련으로부터의 구원, 곧 시편 저자를 박해하는 사람들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84-87절). 이런 구원의 갈망은 인내하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끝까지 희망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씀의 씨앗이 굳게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다(마 13:18-23). 오늘의 본문에 기록된 구원의 갈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희망을 둔 시편 저자의 믿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시편 저자의 인내는 시련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묘사한 말에 비추어 보면 참으로 놀랍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83절)라고 말했다. 바싹 말라붙어 검댕이가 묻은 포도주용 가죽 부대는 포도주를 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하나님의 확실한 율례를 잊지 않았고, 그분의 계명을 버리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지킬 수 있도록 생명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83, 86-88절). 존 칼빈은 이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어떤 고난에 처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음으로써 그분의 도우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시편 저자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고자 하면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다. 항상 성경을 의지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코람 데오 하나님의 약속을 항상 믿으려면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약속을 알려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날 때는 물론이고, 성경을 펼쳐 들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조차도 항상 성경을 읽으려고 애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신뢰하기를 원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강건하게 하는 믿음을 허락하신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암기하고 묵상하려고 노력하자.출처: www.ligonier.org 원제: God’s Sustaining Word 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다른 사람들의 칭찬
2018-11-19
잠언 27장 2절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거만한 사람, 곧 항상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최근에 이룬 성공을 떠벌리며, 과거의 승리를 거듭 되뇌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이룬 업적을 자랑하며 모든 대화를 지배하려 든다. 그는 칭찬에 중독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칭찬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칭찬한다.우리가 교만한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겸손의 미덕을 칭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벧전 5:5).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겸손한 마음을 길러야 한다.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게 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칭찬하게 만든다.물론 스스로를 칭찬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모든 형태의 자랑을 일체 금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경은 다른 곳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가르친다(롬 12:3).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이라는 말이 핵심이다.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든 자신을 높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적절하기만 하다면 스스로 얼마든지 높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교만을 독려하는 의미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기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재능과 성공에 관해 말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입사 면접과 같은 경우에는 우리의 능력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이사야도 하나님이 옛 언약의 공동체를 향해 자신의 진리를 선포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사람을 찾으실 때 선뜻 그분 앞에 나섰다(사 6:8).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오직 나만을 이야기의 중심 화제로 삼으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거나 묻지 않거나 상관없이 항상 우리가 이룬 성공을 모두에게 알리려고 애쓸 때에 발생한다.시편 147편 6절은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을 붙드시고"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할 뿐 아니라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도와주신다. 나 자신을 칭찬하기에 급급하면, 내가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곧 나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런 우상 숭배는 나의 인간 관계에 많은 갈등을 야기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한다. 구원을 원한다면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스스로를 높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신뢰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런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옳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다.코람 데오겸손과 온유는 그리스도를 믿는 참 성도의 특징이다. 이런 덕성을 연약함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겸손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강하다. 이런 덕성을 지닌 성도들은 스스로의 재능과 약점을 옳게 평가한다. 그들은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들을 기꺼이 의지하고, 모든 염려와 필요를 주님께 맡긴다.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자. 나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겸손히 낮추는가?출처: www.ligonier.org원제: Praise from Others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쾌락과 가난
2018-11-16
잠언 21장 17절“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성경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그 중에서도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일상의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특히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해설하고 있다(잠 1:7).잠언은 우리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일들에 대해 가르침을 베풀기 때문에, 재물과 부에 관한 교훈 역시도 풍부하다. 그 중 검소함과 인내를 권장하는 내용은 매우 중요한 교훈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잠언 13장 11절은 "망령되이 얻는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라고 가르친다. 잠언은 단번에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꾸준히 절약하며 지혜롭게 투자하는 태도를 권장한다. 잠언은 번 돈을 단번에 다 쓰지 않고, 꾸준히 재물을 모으라고 권유한다. 간단히 말해, 잠언은 오늘의 본문에서처럼 쾌락을 자제하라고 가르친다.이 본문은 쾌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리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전한다. 만일 단기간의 만족만을 추구하면 일시적인 기쁨을 얻게 될 뿐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길 때마다 마음껏 쾌락을 누리는 삶을 좋아하면, 항상 돈에 쪼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미래를 위해 비축해 둘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지혜롭게 투자해 재산을 꾸준히 늘려가는 일이 불가능해진다.‘술과 기름’은 하나님의 복을 상징한다(신 33:24; 시 104:14-15; 사 61:3). 그러나 하나님의 복이 목적이 되면, 우리는 그 복을 발견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복은 그 자체로써 우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주어지는 선물이다(시 17:15).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재물로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전 5:10),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도 쾌락으로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늘 더 큰 쾌락을 원하다가 그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나 영적으로 파산에 이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분 안에서 온전한 만족과 안전한 삶을 발견할 수 있다.코람 데오오늘의 문화는 육신의 만족을 자제하지 않을 때 미래에 대가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고 당장의 즐거움을 찾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생각하며 더 큰 행복을 위해 쾌락을 자제하도록 이끄신다. 하나님의 선한 선물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그런 선물 자체만으로는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Pleasure and Poverty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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