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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회개를 통한 회복으로
2020-08-10

사무엘상 6장 1절–7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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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5.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진정한 회복은 회개를 통해


회개 없이 진정한 회복은 없다. 그 어떤 종교 행위도 영적인 회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무려 7개월 동안 이어진 국가적 재앙은 블레셋 사람들을 비탄에 빠뜨렸다(1절). 마침내 그들은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들은 ‘속건제’를 통해 이스라엘의 신을 달래려 했다.


블레셋의 다섯 성읍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금 독종과 금 쥐를 만들어 제물로 삼았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한 것이다(5절). 하지만 이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이들이 기획한 종교 행위는 회개가 아닌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단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는 암소 두 마리가 벧세메스까지 수레를 이끌고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송아지를 남겨둔 채로 말이다. 사실, 그들은 7개월간의 재앙이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길 바랐던 것이다(9절). 겉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듯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롬 1:28).


그럼에도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12절은 암소들이 벧세메스를 향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똑바로 갔다고 기록한다. ‘대로로’로 번역된 히브리어 ‘빔실라 아하트’는 ‘한 길로’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암소가 가는 길을 이탈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김구원).


그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16절). 이를 통해 7개월간의 재앙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켰다는 구절은 찾을 수 없다.


이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온 궤를 보고 기뻐했다(13절). 그러나 그들이 7개월 전, 하나님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려 한 죄악(삼상 4:3)에 대해 회개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종교 행위로 회개의 자리를 대신했다(14-15절). 그 종교 행위마저 그릇된 방법으로 행해졌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임의로 대했다. 그들은 수컷이 아닌 암소로 번제를 드렸고(14절; 레 1:3 참조), 거룩히 다뤄야 할 ‘여호와의 궤’를 구경거리로 삼았다(15, 19절).


그 결과,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회복이 아닌 죽음이었다(19절). 그들은 끔찍한 참상 앞에서 탄식하며 질문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20절)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찢고 돌이켜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반응은 블레셋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내며 블레셋과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21절). 회개 대신 회피를 택한 것이다. 그 후 20년간 이스라엘은 그 어떤 회복도 경험할 수 없었다(삼상 7:2).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피가 아닌 회개


회개는 단순히 종교 행위가 아니다. 종교 행위는 회개를 대체할 수 없다. 수많은 예배가 존재하는 한국교회의 내리막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억하자. 진정한 회복은 종교 행위로의 회피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를 통해 시작된다.


지금 나 자신은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 회개하는 척이 아니라 진실로 무엇을 뉘우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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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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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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