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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비상벨이 울리면 결정해야 합니다
2021-03-12
마태복음 24장 15-35절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비상벨이 울릴 때비상벨은 위험하다는 신호이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마지막 때의 비상벨이 어떤 소리로 울릴지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다니엘의 때와 같이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게 될 때(15절)가 멸망의 시작임을 말씀하신다. 인용하신 말씀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제사를 없애고 우상을 세웠던 당시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가 바로 경보기의 비상벨이 울리는 때이다.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게 되는 것에 대한 의견은 학자마다 분분하다. 어떤 학자들은 로마 총독이 성전 안에 건립한 신상으로 해석하였다. 실제로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신성시되는 장소인 성전에 로마의 신상이 세워지는 것만큼 가증한 일도 없었다. 또한, 예루살렘이 로마 군인에게 에워싸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그러나 앞서 9-12절에 언급한 교회 분열의 맥락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곧 하나님의 전인 교회와 교회로 세워져야 할 우리 내면의 상태를 분열시키는 거짓 선지자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가증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는 ‘브델뤼쏘마이’로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곧 교회와 성전이 세워져야 할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로 인하여 분열될 때, 그 상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역겹고 혐오스러운 상태라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위기이며 산으로 피해야 할 때이다.이와 같은 때, 경고의 비상벨이 울릴 때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산으로 도망해야 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도 산이었으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도 산이었다. 그로 인해 산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의 근원으로 인식된다.교회가 분열되고, 성전이 세워져야 할 우리의 삶이 분열되는 위가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피하여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의뢰하여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단, 산으로 올라갈 때 반드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안에 어떤 물건도 가지러 가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신다. 위기는 결코 기다려 주지 않으며, 한순간의 미련도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면 안 된다. 하나님을 찾을 때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야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 이와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고의 순간을 분별해야 한다.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 있더라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멸망의 자리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나는 신앙의 위기가 올 때,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선택받은 자주님의 말씀을 듣고 분별하는 자들이 마지막 때에 선택받을 수 있다. 주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환난들이 닥쳐올 때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24절).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이 먼저 택함을 받지 않는 자들을 미혹할 것이라는 말이다. 또 가능하면 택하신 자들마저도 미혹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행히 이 말은 반드시 미혹 당하게 될 것이라는 완료형이 아니라. 가능성을 뜻하고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그 말씀대로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면,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 당하지 않을 수 있다.오류로 인해 잘못 울린 비상벨들은 진짜 재난 상황에서 생명을 잃게 할 수 있다. 이 역시 오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을 갖고 그저 머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비상벨에는 오류가 없다. 그 비상벨이 울렸다면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이대로 그 자리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동수칙대로 움직일 것인가?창세로부터와 이후에도 없을 환난의 시간이 닥쳐오기 전 비상벨이 울렸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움직여야 한다. 환난의 기간이 감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미혹하는 자들을 피해야 한다. 이곳저곳에서 “그리스도다” 하는 이들이 큰 기사와 표적으로 등장할 때 그들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마지막 때임을 깨닫고 더욱더 힘써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힘겹고 괴로운 환난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를 견뎌내는 성도들에게는 비로소 선택받은 자가 되는 은혜가 있다.“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31절). 주님이 오시는 마지막 그날까지 견디고 인내하는 택함을 받은 자들을 주님께서 모으신다고 하신다.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연하여 지면 여름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깨닫듯(32절), 주님께서 말씀하셨듯 비상벨이 울릴 때 주님이 문 앞에 오셨음을 깨닫고(33절), 환난을 견뎌내야 한다.나는 우리를 미혹하는 자들을 분별할 영적 분별력이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조병옥 목사(움직이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마지막에 웃는 자
2021-03-11
마태복음 24장 1-14절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지막 때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의 일을 언급하기에 앞서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신다. 당시 성전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집과 같은 곳이었다(마23:38). 그들로 인해 성전은 왜곡되었고 우상화되어 있었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감람산에 올라갈 때까지 제자들은 뒷말을 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3절). 주님께서는 왜 마지막 때를 말씀하시기에 앞서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셨을까?앞서 말한 대로 성전은 본질적인 의미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온갖 죄악들이 판을 치며, 용인되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곧 주님께서 보실 때에 당연히 파괴되어야 할 것이었다. 온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왜곡되고 부정해진 교회를 허무는 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때의 요약된 모습이다. 참된 것의 세워짐을 위해 거짓된 것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마지막 때의 비유를 통해 원수들이 뿌린 가라지를 다 자랄 때까지 뽑지 않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마 13:29). 추수할 때에 다 자란 가라지는 알곡과 더욱 선명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를 말씀하실 때 미혹 당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신 이유가 그것이다.마지막 때에는 미혹하는 자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성도 곁에 숨어 있다.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거짓 증거를 바탕으로 성도를 미혹한다. 마지막 때는 그렇게 거짓과 진짜가 구별되고, 거짓이 무너지고 진짜가 세워지는 때이다.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진짜일까? 가짜일까?마지막에 웃는 자마지막 때에 있어야 할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끝이 온다. 본문을 보면 두 가지 시점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시간을 의미하는 ‘때’라는 단어이다. 두 번째는 결말을 의미하는 ‘끝’이라는 단어이다.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알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의 모습을 말씀하신다.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며, 난리가 일어나며 전쟁과 기근, 지진이 일어난다. 그것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향한 핍박이 시작됨을 말씀하셨다. 또한, 불법이 가득하여 사랑이 식은 시대가 도래한다. 이때가 마지막 때이다.주님이 말씀하시는 그때는 성도들은 웃지 못하는 때이다. 성도들을 미혹하고 핍박하는 무리가 웃는 때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주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절). 왜냐하면, 마지막 때가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이 모든 일이 있어야 드디어 끝이 난다. 그리고 그 끝에 웃는 자는 따로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 끝에 웃을 수 있는 자들은 누구일까? 환난과 미혹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견딘 자들이다(13).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난과 핍박을 견디며 즐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끝이 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고난으로 인해 믿음을 포기한 적이 없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조병옥 목사(움직이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일곱 번째 저주
2021-03-10
마태복음 23장 29-39절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외식하는 자들겉모습을 꾸미는 자들에겐 저주뿐이다.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저주하신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여주는 마지막 외식은 무엇일까?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선지자들의 무덤과 비석을 치장하는데 굉장한 공을 들이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아니하였으리라”(30절). 라는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도덕성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저들의 교만함을 지적하신다. 그들은 “나는 우리 조상들과 달라, 나였다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였다. 후로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결국, 주님께서 말씀하셨듯 “나는 우리 조상과는 다르다”라고 말한 그들은 “스스로 증거함이로다”(31절) 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루었다. 그들 역시 조상의 자손인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며 그 조상의 남은 죄의 분량을 채우게 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이와 같이 외식하는 자들이 받게 될 구체적인 저주에 대해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33절)라는 말씀을 하신다. 여기서 ‘피하겠느냐’라는 표현은 가정법적 표현임과 동시에 심판이 피할 수 없이 닥치게 되었다는 강조적 표현이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말씀과 같이 주께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구박하는 것(34절)으로 주님의 말씀을 이룬다.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모든 이에게 경고하신다. 그 경고의 말씀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 결국엔 저주의 성취로 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는 자들에겐 기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주님의 말씀 앞에 외식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저주의 실체주님의 저주를 두려워해야 한다.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어지는 저주의 실체는 아벨의 피로부터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돌아가게 되는 것(35절)이다. 이 말씀은 저들의 조상에게 죽임을 당한 의인의 피에 대한 책임이 그대로 전가되었음을 뜻한다. 공동번역에서는 ‘피’를 ‘핏값’으로 번역하여 조상들의 악행에 더불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악행의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말하였다.또한, 저주의 대상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에서 이 세대(36절)로 확장 시키신다. 비단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국한된 저주가 아니다. 율법주의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며 회개하지 못하는 모든 세대에게 저주가 있음을 최종적으로 선언하신 것이다.그렇게 저주를 마치신 주님께서 한탄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37절). 한탄스러운 주님의 외침에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주님의 심정이 담겨있다.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할 그들의 삶의 터전은 황폐하여 버린 바 되어 주님을 탄식하게 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구원을 잃은 자들이 돼버리게 된다.주님의 저주는 폭력적이지 않다. 저주를 두려워하여 돌이키는 자에겐 저주받은 자에게 주어지지 못하는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주어진다.나는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조병옥 목사(움직이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성도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2021-03-09
마태복음 23장 13-28절13-1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성도의 사명성도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연결이 실력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으며 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을 잘 연결해주는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뜬 이유는 결국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성도는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고, 또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사람이다. 그것을 전도라고 하고, 혹은 삶이라고 한다. 성도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도의 사명은 잘 연결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연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단절시켰다. 막아서는 역할을 했다.마태복음 23장 13-33절까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일곱 번의 화를 선언하신다. 마태복음 안에 있는 숫자들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그중 7이라는 숫자도 그렇다. 예수님은 완전수 7을 사용해서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연결의 실패다.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를 단절시킨 죄를 가장 먼저 지적하신다.“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천국 문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막는다.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해 사람을 붙들었다가, 더 지옥의 자녀가 되게 한다.”그들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단절시켰고, 잘못된 삶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단절시켰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해주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 죄에 대해서 엄하게 말씀하신다. 여기서 ‘화 있을 진저’는 ‘얼마나 큰 고난을 겪게 될지’ 혹은 ‘얼마나 끔직한 고난이 닥쳐올지’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만큼 큰 잘못이라는 의미다.성도는 장애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이어주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을 알려 준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 가깝게 지내도록 살아간다. 성도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다.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성도는 하나님을 소개해야 한다. 다리 놓는 삶이 되려면 하나님을 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돈에 집중하게 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했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성전의 돈으로 맹세하면 지키라고 말했다. 기도하는 드림보다, 헌금하는 드림만 강조했다.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에게 집중하게 만드셨다. 심지어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선택하신다. 그 십자가가 다리다. 오로지 하나님에게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다리가 된다. 성도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이다.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다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본질은 요란하지 않다
2021-03-08
마태복음 23장 1-12절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본질본질은 요란하지 않다. 가짜의 특징은 화려하다. 진짜가 아니기에 자신이 없다. 그래서 화려하게 본인을 꾸민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은 화려하다. 누가 봐도 대단해 보인다. 그들의 가르침을 들으면 입이 쩍 벌어진다. 그들의 복장도 화려하다. ‘경문’이란 히브리어로 ‘테필린’인데 신명기 6장 8절 말씀에 근거해서 생긴 관습이다. 말씀을 손목과 미간에 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적은 종이를 작은 상자에 담아 손목과 미간에 묶고 있었다. ‘옷술’을 길게 한다는 말은 민수기 15장 38-41절과 신명기 22장 12절의 말씀 때문에 시작되었다. 파란 실과 하얀 실을 꼬아서 만든 후 겉옷의 네 귀퉁이에 달았던 술이다. 히브리어로 ‘지지트’라고 부른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옷술을 크게 해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늘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는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 속에는 속이려는 몸부림이 들어 있다. 본질이 빠진 텅 빈 노력이 들어 있다. 본질은 요란하지 않다.예수님의 탄생은 요란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겸손했다.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주로 사역을 감추신다. 감추려고 하는데 드러난다. 진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요란함 속에 감춰지면 안 된다. 요란함을 내려놓아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진실한 신앙하나님께 인정받아야 진짜다. 바리새인은 너무나 요란하고 화려해서 스스로 속았다. 사람들의 대접과 인정에 속는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처럼 우쭐한다. 우리의 신앙은 요란함이 아니다. 본질을 추구하는 진솔함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다.사람에게 인정받으려면 자꾸 꾸미게 된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진실하게 된다. 신앙은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진솔하게 인정할 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바리새인과 같은 겉모습의 화려함은 내려놓고, 소박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진실함이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화려함과 요란함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사랑하는 삶이 믿음이다
2021-03-07
마태복음 22장 34-46절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계명사랑하는 삶이 믿음이다. 성숙은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이 살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삶이기 때문이다. 교리를 많이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칠판에 쓰여진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삶에 쓴 내용은 기억에 남는다. 솔로몬의 지식이 신앙을 지켜주지 못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앎이 믿음은 아니다.성경 교리를 누구보다 아는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의 앎은 100점인지 모르지만 삶은 0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옭아매려 했다.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지를 묻는다. 그들의 질문에서 말하는 ‘크다’는 헬라어 ‘메갈레’로 가장 크다는 의미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형태는 질문인데 실상은 도전이다. 이미 자신들이 알고 있는 답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답은 알고 있는데, 그 답과 다르게 행동한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사랑의 말씀으로 도전하고 있다.그러나 예수님은 말씀대로 사셨다. 이 본문은 예루살렘 입성 다음 사건이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살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오셨다. 예수님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다. 예수님은 사랑을 위해 예루살렘에 오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사랑의 말씀으로 미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큰(메갈레) 계명은 무엇인지 아는데, 큰 계명을 작게 여기며 살고 있다. 믿음은 삶이다. 삶 중에서도 사랑하는 삶이다. 사랑하는 삶이 바로 믿음이다.예수님의 질문하나님께 고정되면 흔들리지 않는다. 예수님께 계속 질문하던 사람들이 모였다.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이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신다.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대하여 질문하신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데 다윗이 왜 주라고 칭했는가?” 예수님이 원래 말씀하실 때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메시아’로 질문하셨다. 헬라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번역이다. 마태복음은 그리스어가 교회에서 통용될 때 쓰였기 때문에 ‘메시아’라는 용어 대신 ‘그리스도’를 사용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에 대한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더욱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당시에는 신앙의 중심 주제였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앎의 뿌리가 든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한 번 질문에 흔들리고 무너진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실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신앙은 나의 ‘앎’에 달려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심’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면 흔들리고 방황을 할 수밖에 없다.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성도는 내 생각으로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한다. 그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나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앎보다 삶이 우선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부활을 논쟁하다
2021-03-06
마태복음 22장 23-33절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사두개인들의 소모적인 질문사두개인은 어리석었고 예수님은 지혜로우셨다. 사두개인들은 지극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다르게, 부활을 믿지 않았다(행 23:8). 그랬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부활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을 시작한다. 계대결혼 제도를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반박하려 한다.계대결혼이란 형이 자손 없이 죽었을 경우,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를 죽은 형의 아들로 간주하여 기업을 잇는 제도다.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했다고 단언하셨다. 그들의 관심은 부활에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소모적인 논쟁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에 흠집 내기를 원했다.이는 불신 현대인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태도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가지고, 설령 성경 지식을 많이 알아도 그 안에 담긴 목적과 의도에는 무관심한 채 궤변을 늘어놓는다. 자기 생각에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심이나 진리의 목적과 어긋나는 모든 궤변과 질문은 비본질적이며 소모적이다.물론 우리는 불신 현대인들과 충분히 대화하며 온유하고 따뜻한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진리를 수용하려는 조금의 마음도 없이 이야기만 늘어놓기 좋아하는 대화는 결국 평행선을 그릴 뿐이다. 대화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고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문에도 현답을 주시는 분이시다. 나는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나만의 생각에 가로막혀, 더 깊은 진리의 은혜를 깨닫기를 거부하고 있진 않은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힘쓰는가?부활의 확실성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잘못은, 성경과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에 사용된 헬라어 ‘메 에이도테스’는, 원인을 나타내는 분사형으로써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사두개인들의 실상은, 그들 자신의 정경 즉 모세오경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신다.부활 때에는 결혼이 필요 없다. 우리의 몸도 질적으로 바뀌게 된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 인류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허락하신 제도이지만 천국에선 그렇지 않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고 천국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져 가는 중요한 공동체이지만, 천국에서는 더는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 천국은 말 그대로 천국이기 때문이다.예수님은 출애굽기 3:6절을 인용하시며 부활의 확실성에 관해 설명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실 당시는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후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들이 죽어서 사라진 게 아니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을 믿고 천국을 소망한다.나는 부활의 영광에 소망을 두고 있는가? 혹시 이 땅의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쏟고 사느라, 천국의 영광을 소홀히 여기고 있진 않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정대진 목사(안산오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
2021-03-05
마태복음 22장 15-22절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올무를 놓는 무리들악인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 바리새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는가 였다. 그래서 늘 상의했다(15절). 그들에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진리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퍅하고 딱딱하게 굳은 마음에는 조금도 부드러운 면이 없었다. 바리새인들만이 아니었다. 헤롯당도 마찬가지였다.친 로마적 성향의 헤롯당은 바리새인들과 늘 적대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예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거부하며, 예수님을 죽이려는 일에는 서로 하나가 됐다. 이처럼 악함은 서로 연합한다. 그들은 예수님께 아첨하며 묻는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습니까?”(17절).이건 단순히 세금 문제가 아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예민한 이슈를 건든 것이다. ‘세’는 헬라어로 ‘켄손’으로서, 모든 성인들이 해마다 바치는 인두세를 뜻한다. 이로써 로마에 점령당하고 있는 현실을, 좀 더 고통스럽게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때 만약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대답하시면 민족의 배반자로 몰고 갈 수 있었고,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시면 로마의 통치에 대한 반란을 선동했다고 몰고 갈 수도 있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속셈으로만 가득했다.나는 예수님에 대해, 진리에 대해 진정 부드럽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 나의 기대와 맞지 않는 예수님의 음성에 강퍅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진 않은가?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가이사의 통치보다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바로 아셨다. 그리고 그들의 악함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책망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18절). 예수님은 중심을 아신다(막 2:8). 예수님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말씀하신다. 당시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1절).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저버렸기에 고통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것이었다. 로마의 식민통치로 인해 분노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 차갑게 반응했던 스스로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했다. 그들의 심령에 이미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형상 앞에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순전함이 회복됐어야 했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다스리고 있는 가이사는 그들의 진짜 주인이 아니다. 그들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급선무였다.내 심령 가운에 진하게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 앞에, 나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기뻐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정대진 목사(안산오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초청에 합당한 자가 되라
2021-03-04
마태복음 22장 1-14절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임금의 초청을 거부한 백성들임금은 은혜를 베풀고자 하나, 백성은 끝내 거부한다. 예수님은 또 비유로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떤 나라의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잔치는 왕자를 왕의 후계자로 임명하겠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임금은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넉넉히 준비했다. 그리고 미리 초청했던 사람들을 부르려고 종들을 보냈다(3절).이 이야기에서 임금은 어떤 모습인가? 자신의 백성들에게 짐을 지우는 게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고 베풀려는 은혜로운 임금이다. 이 임금은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지만 임금의 초청을 받은 백성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초청을 거부한다. 온통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큰 은혜를 베풀며 함께 기뻐하려는 임금의 의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임금이 보낸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6절). 이유는 한 가지다. 임금의 아들이 임금의 뒤를 이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내면에는 자기의 구미에 맞는 임금이 세워지기를, 심지어 자신이 왕이 되기 원하는 교만함으로 가득했다.임금의 은혜에 교만과 불순종으로 반응하는 모습은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오늘날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모습이다. 결국, 임금은 군대를 보내어 끝까지 반역한 백성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나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여전히 내 삶에만 몰두한 채 은혜의 초청을 너무 쉽게 거부하진 않는가?임금의 초청에 합당하지 않은 백성들혼인 잔치에는 누구나 초대받지만 아무나 가진 못한다. 결국, 임금은 종들을 시켜 다른 백성들을 혼인 잔치에 초청한다. 이미 준비된 혼인 잔치에 먼저 초청된 사람들이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혼인 잔치에 초청했다(9절). 그래서 왕자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전혀 없던 사람들도 그곳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혼인 잔치에 걸맞은 예복도 받았다. 당시 사회에서는 초대한 손님에게 미리 예복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창 45:22, 에 6:8~9).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혼인 잔치에 온 사람 중에 준비된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11절). 왜 예복을 입고 오지 않았냐는 임금의 질문 앞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수치를 당하고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12~13절). 혼인 잔치에 누구나 올 수 있었지만 아무나 오진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신다(14절).여기서 ‘택함을 입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클렉토스’는 ‘선별된 자들, 선택된 자들’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진정한 제자들을 가리키실 때 사용했던 단어다. 잔치에 초정되어도 실제로 다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니듯이, 복음이 선포될 때에도 선택받아 참된 믿음으로 반응하는 이들만이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게 된다. 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합당한 예복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로 옷 입어야 한다. 천국은 거룩한 흰옷을 입은 주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나는 하나님께서 미리 베푸신 은혜에 온전히 반응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나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쉽게 생각해서 안일하진 않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정대진 목사(안산오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은혜에 반응하는 자인가?
2021-03-03
마태복음 21장 33-46절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신앙과 불신앙신앙은 은혜에 반응하는 것이고, 불신앙은 은혜를 배척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포도원의 농부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이사야 5:1-7의 포도원의 노래가 그 배경이며, 앞에서 언급한 두 아들 비유를 의미 면에서 더욱 구체화하고 보충해 준다. 이사야서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포도나무를 심으신 이유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였다(사5: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열매 없는 종교지도자들의 완악한 마음을 책망하기 위해서였다.포도원 농부 비유에서 집주인은 하나님, 농부는 이스라엘, 종들은 선지자, 아들은 예수님, 다른 농부는 이방인을 상징한다. 이런 의미 안에서 비유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집주인은 포도원에 산울타리를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과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났다(33절).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먼저 택하시고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율법의 가르침과 교훈으로 보강하기 위해 제사와 여러 의식 등과 같은 보조수단도 주셨다는 것을 상징한다(호크마주석). 더 나아가 주인이 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하나님은 열매가 거둘 때가 되어 그 열매를 받으시려고 자기 종인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에게 보냈다(34절).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리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돌로 치는 악행을 저질렀다(34-3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해 더 많은 선지자를 보냈는데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악행을 저질렀다(36절).그런데도 하나님은 악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래 참아주셨다. 심지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셨으면, 그의 아들까지도 보내주셨다(37절). 그러나 그들은 주인이 베풀어 준 은혜를 잊어버리고 아들의 유산까지도 차지하기 위해 그 아들마저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다(39절). 은혜에 반응하는 것이 신앙이다. 불신앙은 은혜를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것이다. 불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찾을 수 없다.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가?하나님의 심판의도적으로 신앙을 배척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다시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물어보았다(40절). 종교지도자들은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제때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41절). 이 결론은 종교지도자들의 입을 통해서 나왔지만, 예수님께서 내리신 결론과 같다.예수님은 시편 118:22의 말씀을 인용하여 악한 농부로 비유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메시아로 적합하지 않아서 버린 돌이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가르쳐 주셨다(42절).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또한, 예수님은 불신앙의 사람들이 스스로 넘어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됨을 ‘돌 위에 떨어지는 자’와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는 모습’으로 말씀하셨다(43-44절).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고 경고하신 이유는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회개가 아닌 더욱 완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다(46절). 종교지도자들은 더는 회복될 수 없는 저주 아래 떨어졌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배척하였기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나는 의도적으로 내 유익을 위해서 신앙을 배척했던 일이 없지는 않은가? 혹시라도 생각나는 게 있다면 주님 앞에 자백하고 회개하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지현호 목사(올리브선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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