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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평안과 생명을 얻는 길
2021-01-25
마태복음 10장 34-42절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참된 평화를 얻으라!예수님은 평안과 생명을 얻는 길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방식으로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병원을 잘 찾아가고, 의사를 잘 만나면 생명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지는 평안은 참된 평안이 아니며, 참된 생명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참된 평안과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34절 말씀을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케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평강의 왕’이라고 했고, 그가 화평을 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진리 하나를 깨달을 수 있다.그것은 참된 평화는 무조건적인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영적투쟁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참된 평화는 오직 불의와 비진리와의 투쟁으로 얻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과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와 타협을 통해 화평을 도모해야 한다. 하지만 신앙과 진리 문제 앞에서는 부단한 노력과 투쟁으로 참된 평화를 얻어야 한다. 비록 삶의 현장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질시를 당할 수 있겠지만, 내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가득 채워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죽음으로 생명을 얻으라!39절의 말씀을 통해 기독교의 역설적인 부분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서 생명을 얻는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기독교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죽어도 산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얻어야 하고, 내 생명이 아닌 상대방의 목숨을 담보로 뭔가를 얻어내려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도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필요하다.오늘 하루의 삶을 통해 죽음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비결을 실천하며, 진정한 복음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나는 평안과 생명을 얻기 위해 어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나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2021-01-24
마태복음 10장 24-33절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나는 주님의 종예수님께서 제자도를 가르쳐주시고 열두 제자를 파송하셨다. 본문은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갔을 때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될 고난과 핍박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또한, 이 말씀은 어떤 고난과 핍박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도록 촉구한다.“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라는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 사회에서 많이 쓰인 격언이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형만한 아우 없다”라는 말과 의미가 상통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말씀으로 가벼운 속담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해야 한다. 즉, 우리는 주님의 제자요,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이다.나의 신분에 대한 정체성은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종이란 주인의 소유임을 의미한다. 즉, 종은 주인을 위해 존재한다. 그 의미는 자신의 계획과 가치관 등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의 제자, 곧 주님의 종이라는 의식이 있을 때 건강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의 종이라는 의식으로부터 나의 삶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갈 때 나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무의미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의미있는 삶과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나는 주님의 소유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것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담대하게 복음과 말씀을 더욱 풍성한 교훈으로 선포했다. 제자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며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 역시 주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음을 은폐하고,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지 않는 성도들도 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숨기고, 세상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분명한 정체성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나는 주님의 종’과 ‘나는 주님의 소유’는 다른 표현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의미이다. 이것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의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 마지막 절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주님의 소유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비된 고난
2021-01-23
마태복음 10장 16-23절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예비된 고난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보내실 때,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이 마음이 쓰이셨다. 잘 알다시피 양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수동적이며 의존적이다. 목자가 없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목자 의존도가 높다. 이런 연약한 양을 집어삼키기 위해 이리는 언제나 기회와 틈을 노려보고 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심이, 마치 목자 없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셨다.17절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앞으로 제자들이 겪게 될 복음으로 인한 고난의 길을 그려내고 있다. ‘끌려가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크데세스테’는 미래 수동형으로 쓰여졌다. 이는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질 일들을 의미한다.제자들은 공회에 넘김을 받고 채찍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신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자들의 고난과 핍박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18절). 이로 보건대 우리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겪게 되는 모든 상황과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보이지 않게 전파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나는 고난과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어려움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복음을 전하다 급작스럽게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말들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모습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직면할 실제의 문제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도중 핍박을 받게 될 때 무엇을 말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여기서 염려는 헬라어로 ‘나누다’는 뜻을 가진 ‘메리조’에서부터 파생이 되었는데, 이 단어는 염려와 걱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적실하게 보여준다. 염려는 말 그대로 마음이 둘로 나뉘는 것을 말한다. 즉, 핍박과 박해의 한 가운데서 마음이 나뉘어 다른 생각을 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마음을 집중하여 하나님께 고정하라는 뜻과도 같다.그 이유는 때에 맞는 말들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에 주사 말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역시 풍랑이 거센 바다 위를 걸을 때 염려하였다. 그의 마음이 예수님에게 고정되어 있었을 때는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풍랑이 치는 바다로 돌려지게 되자 마음이 나뉘어 불안함을 느꼈고 즉시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믿음으로 인한 고난과 박해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마음이 분산될 것이 아니라 더욱 집중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믿음으로 인한 핍박과 박해를 곧 당면할 수 있다. 이때 주님은 동네와 동네를 건너 피하도록 권면하신다. 이 권면은 전도와 선교에 대한 무책임함이 아니다. 16절의 뱀 같은 지혜로움이다.사도행전 8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복음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지자 오히려 복음이 전 이스라엘과 이방 땅으로 확산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실패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온전히 붙들고만 있다면 장소와 거리에 관계없이 있는 그곳이 복음으로 물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나의 삶 가운데 복음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도록 마음을 분산케 하는 염려과 걱정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하면 더욱 집중하여 일상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교
2021-01-22
마태복음 10장 1-15절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사도, 그 보내심을 받은 자보냄을 받은 자의 사역은 보내신 이의 뜻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직접 선발이 되었다. 여기서 제자로 번역된 헬라어 ‘마테테스’는 배우다, 익히다는 뜻을 가진 ‘만다노’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따라서 제자는 ‘배우는 자’이며 ‘익히는 자’이다. 3년간의 공생애 기간을 통하여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배우게 하셨다.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2절 말씀에 제자들을 향한 호칭이 ‘사도’로 변경된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라는 의미를 가진 ‘아포스톨론’은 익히다는 의미를 가진 제자와는 다르게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르치시고, 권세를 주신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그들을 보내신다.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내신 이의 뜻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곳에서 다시 보내시는 일을 하셨다.코로나로 인하여 기존 형태의 선교와 전도의 양상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 나는 부르신 그분을 위해 어떤 형태의 전도와 선교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나아갈 것인가?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교예수님은 불러 모으신 열두 제자를 다시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전하도록 명령하신다. 특별히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의 고을로도 가지 말라 하신다. 이는 이방인에게 복음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복음의 긴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주님은 결국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의 문을 확장하여 구원의 은혜를 맛보게 하실 것이다.그런데 예수님이 보내시는 이 선교 여행은 특이한 점들이 있다. 여행을 위한 경비나 준비물 등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게 하시고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도록 만들어 보내신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부족함이 가득한 선교 여행을 통하여 채우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그들로 하여금 먼저 누리고 느끼게 하시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복음을 들고 산으로 들로 향하며 바다를 건너는 일은 제자들이 직접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고 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일은 실패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에 의해서 오늘도 진행된다.14절에 그들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말씀하신다. 이는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이 이방 땅을 건너 본국으로 돌아올 때 자신의 발을 터는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에크티낙세’라고 번역된 이 의미는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끝나 버릴 때 사용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거부하고, 거절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를 이방인처럼 대우하고 단호히 돌아서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위이기에 그 행위 자체를 매정하게 볼 것이 아니다.불확실한 현실 가운데 나는 하나님의 채우심과 공급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가르치고 고치고 전파하신 예수님
2021-01-21
마태복음 9장 27-38절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치유함을 받는 믿음온전한 믿음이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 두 맹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고백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로마서 말씀(롬10:17)대로 그들은 들음을 통하여 고침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두 맹인은 예수님께 고침을 구하지 아니하고 ‘불쌍히 여기실 것’을 구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두 맹인을 향하여 물으신다.“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이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믿느냐’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튜에테’의 위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어의 순서를 보면 믿느냐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테가 가장 서두에 자리를 잡는다. 따라서 이 구절에 대한 바른 순서는, “네가 믿느냐?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음을?”이 된다. 이를 통해 마태가 이 사건을 기록하며 독자에게 알리고자 했던 중심 내용이 단순히 치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유 받는 자들의 ‘믿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결국 그들의 믿음대로 두 맹인은 눈을 뜨게 되었다. 예수님은 엄중하게 그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할 것을 경고하셨다. 그러나 31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그들은 온 동네방네에 소문을 내며 사건을 알렸다.예수님께서 침묵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메시아관이 서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인간적인 욕구와 욕망을 채우는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그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오늘 나에게도 불가능함 가운데 치유를 일으키시는 주님을 향한 믿음이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가?긍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일꾼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 마태복음 9장 35절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살아가시며 이 땅에서 집중하셨던 3대 사역이 등장한다. 그 사역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는 삶을 사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역에 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다.36절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에는 긍휼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본문에서 ‘긍휼’로 번역이 된 헬라어 ‘에스플랑크니스테’는 내장, 창자를 뜻하는 ‘스플랜’이라는 단어에서 파생이 되었다. 따라서 긍휼의 뜻을 가진 에스플랑크니스테는 내장이 뒤틀리고,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동반한 감정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실 때 바로 이러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사역에 임하셨다는 뜻이다.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심은 단순히 감정에서 그치지 않은 데 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고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영육 간의 구원을 친히 행동으로 베풀어 주시고 채워 주셨다. 주님의 긍휼하심은 항상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의 긍휼히 여기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제1순위로 필요한 도움이다.이어 주님은 때가 가까움을 알리는 추수에 대해 말씀하신다. 추수할 때가 가까워 왔으니 일꾼을 보내어 추수에 동참하게 해달라는 간구를 하나님께 요청하도록 하셨다. 눈여겨 볼 점은 일꾼을 모집하는데 있어서 세상적 기준이나 자의적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능력이나 조건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일꾼의 최우선 순위가 된다. 우리 스스로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선택하심, 그리고 보내심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에 의해서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021-01-20
마태복음 9장 14-26절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다가와서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행보에 대해 질문한다. 그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가며 금식을 하는데 반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속죄일과 신년제(나팔절)에 의무적으로 금식을 했을 뿐만 아니라,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며 기도를 했다. 따라서 그들은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예수님은 혼인집 신랑에 대한 비유를 들어 그에 대한 답을 주신다.일주일간 지속되는 혼인 잔치에는 특별한 자유함이 있었다. 이 기간은 종교적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일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며 형식보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욱 집중해야 함을 은유적으로 들려주셨다.이어지는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가죽 부대를 통하여 예수님은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셨다. 이전에 그들이 전부라 여겼던 율법과 전통을 넘어서서,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본체이신 메시아가 임재하심을 전했다. 의사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 인하여 새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온전히 선포하신다.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새롭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형식과 습관, 전통에 매여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것들이 있지는 않은가?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믿음18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등장한다. 한 관리로 기록된 야이로의 딸(막5:22)이 죽은 사건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한 여인의 사건이다. 평행본문으로 등장한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야이로는 딸이 죽기 전, 긴급하게 예수님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바라는 그의 부탁에 흔쾌히 야이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셨다.이때 12년간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인이 갑자기 등장하여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 아마도 자궁 출혈로 인해 지속적으로 피가 흐르는 고통을 당했을 이 여인은 레위기에 기록된 율법상으로(레15:25-30) ‘부정한’ 여인이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 여인은 최후의 방법으로 지나가는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자 했다. 그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자신이 나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문제는 이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을 때의 일이다. 율법상 부정한 사람이 닿는 모든 것은 다 부정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율법대로 한다면 이 여인이 자신이 낫고자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예수님도 부정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부정함이 전가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결함이 여인에게 전가되었다.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의의 전가’라고 한다.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적실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정결하고 깨끗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악 가운데 거했기에 그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이 사실을 믿고 그에게 나아가는 자마다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신다. 여인은 육과 영의 구원을 동시에 맛보았다.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이동하는 도중 그의 딸이 죽게 된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야이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다.이는 “처음 나를 찾아와 딸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여전히 너에게 있느냐?”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질문이다. 두려움이 아닌 믿음을 택했던 야이로는 그의 딸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는 영광을 받았다.나 역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죄 사함을 넘어 병까지 고치시는 주님
2021-01-19
마태복음 9장 1-13절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죄 사함과 병 고침 (1-8절)예수님은 육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문제도 해결해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본 동네(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다. 이 중풍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주시기보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신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절).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하였다고 생각한다(3절).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악한 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5절).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 우리는 말씀의 문맥 속에서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것과 병을 고치는 것 모두다 가능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질문 이후 곧 바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6절). 그러자 병자는 고침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7절). 그 당시 죄를 사하는 것은 제사장도 가능하였지만 병자를 고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 그러자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무리들은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8절).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보며 ‘자기가 뭔데 감히 죄 사함을 선포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말로는 얼마든지 죄를 사한다고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죄 사함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을 병 고침을 보여주심으로 자신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으심도 여실히 드러내신 것이다.한편, 중풍병자와 그 지인들은 병 고침이 최우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중풍병자에게는 병 고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죄 사함임을 아셨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를 먼저 사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셨다.우리도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소원보다도 나의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자하신다는 응답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신 그분을 신뢰하며 기다릴 수 있는가?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해 (9-13절)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마태를 보시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다(9절). 마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10절). 그런데 세리를 비롯하여 당시 죄인으로 여겨졌던 이들과 예수님께서 같이 식사하시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는 문제로 보였다(11절).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자가 아닌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함을 말씀하시며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12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3절).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예수님으로 인해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의 문턱이 높아졌다. 예전에 어떤 유명한 작가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남루해 보이는 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교회에 갔다가 그 교회 장로님으로 보이는 분에 의해 쫓겨났고, 그 뒤로 교회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고 소외받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을 품기 위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최준영 목사(품는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수님 말씀의 권능
2021-01-18
마태복음 8장 23-34절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바다의 풍랑과 예수님의 말씀믿음이란, 풍랑 속에도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육지를 떠나 바다로 향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난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야단치시고 말씀으로 풍랑을 잠잠케 하신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26절) 라는 표현을 통해 그들의 두려움의 근원을 믿음의 문제로 분석하신다.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의지하기보다 바다를 의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바다가 스스로 잠잠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했던 바다는 큰바람이 불자 오히려 위협했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다를 잠잠케 하셨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또다시 말씀으로 역사하셨다.우리의 믿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분명 우리의 육신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바다를 의지한다. 마치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매주 예배도 드리지만 우리 마음은 일상에서 세상을 의지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과 같다.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있다. 그런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에 예수님이 믿음의 문제로 분석하신다.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게 되면 세상 때문에 두려움에 떨게 된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한다. 오직 우리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요, 인도자가 되신다. 이 믿음이 간절할 때 풍랑이 일어도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다.지난 이틀간 묵상한 대로 병이 들어도 말씀으로 치유 받는다. 귀신이 들려도 쫓아낸다. 풍랑을 만나도 잠잠케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역사한 결과이다. 결국 믿음은 그 말씀을 내 현실에서 얼마나 신뢰하는가의 문제이다.귀신들린 사람과 예수님의 말씀믿음이란 어떤 현실에서도 오직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다. 바다의 풍랑을 잠잠케 하신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귀신을 쫓아내시는 사건으로 연결된다. 마태복음 8장에서 반복되는 이 연결구조는 나병과 중풍을 고친 후 귀신을 쫓아낸 사건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바다의 풍랑에서 다시 귀신을 쫓아 낸 사건으로 연결되며 반복된다. 이 모든 과정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영적인 맥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다.이번 사건은 이 연결구조를 마무리 짓듯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을 가장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병자와 귀신, 바다와 바람까지 일방적으로 야단을 치시며 해결하셨지만, 마지막 이 귀신과는 직접 대화를 나누신다.귀신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 앞에 엎드리고 스스로 죽기를 자처한다. 지나가던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을 구하고 결국 돼지 떼에게 들어가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서 바다에 몰살한다. 이 장면은 왜 돼지 떼인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 앞에 귀신이 얼마나 두려워하며 물러가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묵상해 왔다. 마태복음 초반에는 예수님의 생애가 공생애로 이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온다. 그 후에 5장부터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산상수훈 설교로 이어지며 말씀의 권능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8장에서는 그 말씀이 질병과 재해, 귀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온 세상을 다스리고 주관하시는 권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것이 마태복음 8장의 전체 주제이다.예수님의 말씀과 권능은 우리의 삶 가운데 말씀을 의지하는 근거가 된다. 이 내용을 정확하게 묵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왜 말씀이 중요한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말씀은 우리의 모든 현실을 주관한다. 질병도 재해도 귀신도 그 말씀 앞에 엎드릴 것이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무엇보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나는 이 말씀의 권능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
2021-01-17
마태복음 8장 14-22절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베드로 장모 열병예수님은 질병을 치료하심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신다. 본문은 2가지 핵심 요소를 묵상해야 한다. 첫째는 열병이라는 질병이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병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었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 또한 ‘심한 열병’으로 해석되는데 그 치료법이 마술적 처방이었다. 보통 일반 의료 행위의 범주를 벗어난 치료법이었다. 예수님은 이 열병도 손을 대어 만지시고 치료하신다.여기까지 보면 앞서 묵상한 나병환자와 중풍병자의 경우처럼 병자에 대한 치료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묵상해야 한다. 바로 이 환자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베드로의 장모라는 표현은 베드로와 여성의 관계보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이 더 강조하고 있다. 이 여성은 치료 직후에 예수님을 수종 들게 된다(15절).이는 예수님의 사역에 여성이 동참하게 되는 첫 행보가 된다. 즉 질병을 치료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씀과 순종을 강조하면서 제자들과 섬기는 이들을 불러 모으신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이거나 소외되거나 기피할 만한 사람이었다.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고 사용하신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돌보시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세워 그의 나라를 향한 일꾼이 되게 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에 중요한 요소이다.우리는 질병이 치료되는 것으로 만족해 버린다. 마찬가지로 구원 받는 것으로 만족해 버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가르치시고 기도하심으로 참된 성도의 삶으로 인도하신다. 그 크신 사랑 앞에 우리는 스스로의 잘못된 만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야 한다.말씀의 중요성말씀으로 치료하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찾아오는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를 다 고치신다. 성경은 계속된 치료의 행진 속에 그 치료 방법이 결국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물론 지금도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료하신다(16절).성경은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시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말씀 사역은 구약의 이사야서에 예언된 것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친히 담당하신다는 예언의 성취와 연결된다(17절).구약의 말씀이 신약의 말씀으로 연결되는 이 영적 연결고리는 다시 지금 우리에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의 사역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우리 믿음의 방향예수님이 내게 주신 말씀에 지금 순종해야 한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다고 고백한다(19절). 당시 서기관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모의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예수님은 아주 강력한 아군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다(20절). 이후, 부친의 장사를 지내고 싶다는 제자에게 지금 당장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다.이 모든 일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다른 어떤 환경이나 기대보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 앞에 지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자신이 대단히 큰 아군이 되는 사실도, 자신이 중요한 일을 끝내고 따르겠다는 약속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내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모두 내려놓고 지금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이처럼 믿음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데 그 순종을 미루지 않아야 한다. 내 공로와 자랑, 내 신분과 자격, 내 우선순위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이 지금 말씀하실 때 순종해야 한다. 결국 믿음은 순종이다.나는 말씀에 집중하고 있는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그 즉시 순종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2021-01-16
마태복음 8장 1-13절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나병환자와 예수님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길로 나아가면서도 우리의 아픔을 치료하셨다. 나병은 만성 전염병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나병과 같은 전염성 질병은 질병 자체로 분류되지 않았다. 그것은 부정한 것으로 생각되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모든 접촉을 끊어지게 하고 일정한 장소에서만 살도록 가두기까지 했다. 혹시라도 나병환자를 만나면 ‘부정하다’고 외치면서 저주했다.그런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2절) 라고 말했다. 치료를 위한 어떤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의 절박한 심정을 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고백을 받으시고 그를 만지고 기도하셨다. 그를 만졌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3절) 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그 크신 긍휼과 사랑을 대변해 주기에 충분하다.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세상이 포기하고 저주하는 아픔일지라도 친절히 그 손을 대어 기도하시고 치료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치료를 받은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다.이로 예수님은 제사장들에게 율법을 어긴 예수님을 고소할 명분을 스스로 주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이 치료를 기적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역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예수님은 결국 스스로 십자가 고난의 길로 걸어가고 계신다.이처럼 그분은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면서도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치료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다.중풍병자와 예수님이번에는 중풍병자를 치료하신다. 그러나 이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치료를 받았다. 이 병자는 백부장의 하인이었다. 당시 하인들은 병을 치료받기 위해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가기 힘들었다. 주인들은 병에 걸린 하인을 고치기보다 저주했고 쫓아내는 경우도 많았다.그러나 주인인 이 백부장은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가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성경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자세히 증명하고 있다. 그 백부장은 예수님께 2가지 믿음의 고백을 했다.첫째는 하인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말씀으로 치료하실 수 있다고 고백한다(8절). 이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며 그 권능이 말씀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고백한다(9절). 이는 기존에 예수님을 찾아오는 환자들과 구별되는 태도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한편으로 는 기적 자체보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원하셨다.지금 우리의 신앙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 물질과 건강, 상황과 사건, 성공과 번영에 대한 기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따르기를 원하신다. 모든 기적이 오히려 말씀과 순종으로 연결된다면 그 신앙이 곧 백부장과 같이 칭찬을 듣는 신앙이 될 것이다.예수님은 백부장을 천국에 들어갈 믿음이라 칭찬하셨다. 반대로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12절) 지옥으로 갈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영어로 ‘the subjects’라고 되어 있다. 즉 그들이 자칭 천국의 백성이라 말하고 이스라엘의 주인 노릇을 하던 자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천국의 믿음이 아니다.우리는 연약하다. 아프고 상처받고 시험에 든다. 그래서 치료와 회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말씀으로 병을 치료하고 풍랑을 잠잠케 하신 사건을 통해 기적 자체보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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