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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잃어버린 양 한 마리
2021-02-21
마태복음 18장 12-20절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스스로 떠나 길을 잃음사람은 모두 제 갈 길로 떠나 길을 잃은 양과 같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는 눅 15:3-7에서도 등장하는데 ‘잃다’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각각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마태는 양 스스로가 양떼로부터 ‘벗어나다’의 의미인 ‘플라나오’를 사용하고 있다. 주인의 관점에서는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렸지만 한 마리 양의 관점에서는 제 갈 길을 가기 위해 양 떼를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이 비유를 통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복음의 진리를 ‘스스로 거부한 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팔레스타인의 목초지는 대부분 남북을 잇는 중앙고원 지대에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고지는 해발 평균이 5백 미터나 되기 때문에 일단 양이 목자를 떠나 길을 잃어버리면 사고를 당하기 쉽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목자들은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양떼를 보호한다. 이들은 저녁이 되어 양떼를 우리로 몰아넣으며 잃어버린 양은 없는지 확인한다. 만약 단 한 마리의 양이라도 없을 경우라면, 목자는 그 양을 찾아 온 지역을 찾아다닌다고 한다.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이와 같다. 제 갈 길을 가기 위해 스스로 거부하였지만, 혹시나 사고가 날까 염려하며 잃어버린 자를 애타게 찾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며 사랑이다(12절). 실생활에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나서는 일은 오히려 위험한 일처럼 보인다.험난한 세상의 가치와 계산법으로는 차라리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잘 유지하기 위해 잃어버린 양 한 마리쯤은 기회비용으로 여기는 합리적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잃은 한 마리 양에게 관심을 가진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한다(13절). 그리고 이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임을 밝히고 있다(14절).길 잃은 자를 인도하는 과정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간직하시기 위해 큰 수고를 하신다. 제멋대로인 양 한 마리를 데려오는 과정은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첫 번째는 죄를 범한 형제에게 관심을 갖고, 개인적으로 상대하여 권고하는 일이다(15절). 이 행동은 실족한 자를 잃지 않기 위한 1단계로, 형제를 질타하기 위함이 아니라 형제를 얻기 위한 것이 목표이다. 여기서 '권고하다'는 ‘꾸짖다’의 의미인 ‘에피티몬’이 아니라, ‘노출시키다’, ‘빛으로 가져오다’,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과 확신을 주다’란 뜻의 ‘엘렝코’를 사용한다. 따라서 권고의 의미는 죄에 대한 심판이나 책망이 아니다.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도록 무엇이 죄악인지 설명해 주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궁극적 목표는 형제를 얻는 것이다.두 번째는 두세 증인의 도움을 얻는 일이다(16절). 그래서 이 상황이 위중한 것임을 알리고, 회복이 올바르게 시행되고 있음을 교회에 증명하기 위해 증인과 동행한다. 세 번째는 교회에 말하는 일이다(17절). 그래서 교회 전체가 회복을 위한 노력에 관여하도록 한다.길 잃어버린 자를 찾는 부르심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있다. 두세 사람은 길 잃은 자를 찾는 일에 합심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라 할 수 있다. ‘합심’을 뜻하는 헬라어 ‘심포네오’는 ‘교향악’(Symphony)의 어원이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두세 사람은 길 잃은 자를 인도하는 일에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두세 사람의 일치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에서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길을 잃고 실족한 나의 형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은우 목사(대구평강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어린 아이와 같이
2021-02-20
마태복음 18장 1-10절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 - 겸손주님의 제자는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누가 최고 서열에 오릅니까?”(1절). 제자들은 예수님께 천국에 관한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은 사실 천국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언급 때문에 제기되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 땅에서 생각하는 방식과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만약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면 누가 지도자가 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물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처음으로 돌아가 어린 아이처럼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너희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천국을 보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3절). 제자들의 우문에 예수님께서는 현답을 주신 것이다.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천국에서의 계급을 논하기 전 천국에는 어떻게 들어가는지 더 중대한 문제를 직면한다.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시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라고 말씀하신다(4절).이 말씀은 어린 아이의 유치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무관심과 겸손한 마음에 대한 것이다. 어린 아이는 본질상 연약하여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다. 부모의 품 안에서만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겸손’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복하며 보호하심 아래서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말한다. 천국에 들어가고, 또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겸손’이다.천국에 들어간 자의 책임주님의 제자는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린 아이와 같다. 그리고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천국에 들어간 자)는 ‘돌이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돌이키지 않으면 결코 어린 아이와 같은 특징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트라페테’는 ‘스스로 돌이키다’는 뜻이며 순간적이고 결정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단순한 행동의 변화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 가능한 마음의 변화, 곧 참회와 중생을 이루는 전인적인 변화를 말한다.그러나 돌이키지 못하여, 믿음의 공동체에서 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6절). 실족하게 하는 일들로 우리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7절).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해를 끼치고 그들을 업신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를 준엄하게 다루지 못해 세상에 이끌리는 모습으로 살게 되어 결국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될지도 모른다(8-9절).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때 많은 부분에 대해 지금 이 땅에서 생각하는 방식 또는 그러한 구조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제자들도 이런 맥락과 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나님 나라’와 ‘서열’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오늘 본문에 따르면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거나 오해할 가능성이 참으로 크다. 이것은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절대 순복하며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라 할 수 없다.나는 이 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따지지 않고 어린 아이와 같이 꾸밈없는 순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은우 목사(대구평강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믿음이 능력이다
2021-02-19
마태복음 17장 14-27절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21.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귀신은 예수님 앞에서 힘을 잃어버린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한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벙어리 귀신이 들려 간질을 일으키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이 아이의 속에서 귀신이 역사하면 불에 가서 넘어지고 물에 가서도 넘어졌다(15절). 아버지는 이 아이를 고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점점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예수님께 가면 아들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는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변화산 밑에까지 왔다.변화산 밑에는 예수님은 없었고 아홉 명의 제자만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차선의 방법으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아이를 고쳐주기를 부탁했다. 남아 있는 제자들은 얼마 전에 귀신을 내어쫒아 본 경험이 있기에 아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패였다. 이때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다. 불신이 그 마음을 덮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한가지의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황급히 예수님께 달려가 꿇어 엎드려 아이를 치유해주기를 부탁하였고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셨다(18절).예수님 앞에서 귀신은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신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수많은 문제를 만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만나면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찾는 것이다. 예수님께 내 문제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시험이 어려운 것은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답을 알면 더 이상 시험은 어렵지 않다. 그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인생의 문제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찾고 있는가?믿음이 필요한 삶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셨다(17절).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난 이후 제자들은 왜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하시면서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저기로 옮겨지라고 하면 옮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0절). 겨자씨는 좁쌀보다도 작다. 좁쌀보다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이 옮겨지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제자들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었다는 것이다.같은 본문을 수록하고 있는 마가복음에 보면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 달라”고 했다(막 9:22).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막 9:23). 이 때 아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이 말에는 모순이 있다. 믿는데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이 말속에는 이런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예수님 제가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세상 사람들은 돈이 능력이라고 말한다.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권력이 능력이라고 말한다. 인맥이 능력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능력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님은 믿음이 능력이라고 말씀하신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도가 응답된다. 믿음이 있는 자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는가? 아이의 아버지처럼 하나님 앞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나의 믿음을 없음을 도와달라고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주님께 내놓을 믿음이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재영 목사(대구아름다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변화산 = 소망의 산
2021-02-18
마태복음 17장 1-13절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우리의 소망 예수그리스도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 마라!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 제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며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제자들의 마음도 베드로와 같은 마음이었다. 예수님이 죽으시면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간다. 제자들은 소망을 잃어버렸기에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이런 상황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을 보았다(2절).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보았다(3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다(5절). 이 모든 것을 경험한 제자들은 두렵기도 했지만 희망을 보았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결국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으로 끝날 것임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이 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다. 곧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십자가의 고난도 참아 낼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롬8:28).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자살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살 소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살아야 하는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은 예수그리스도다.나는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세상 속으로 내려가라는 명령!변화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과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말하는 것을 보고는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주님을 위해, 모세를 위해,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다(4절). 같은 본문이 수록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베드로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베드로는 지금 자기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광경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횡설수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변화산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변화산은 제자들이 머무를 곳이 아니다. 제자들이 있어야 할 곳은 변화산 밑이다. 변화산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면 이제 변화산을 내려가야 한다. 변화산에서 소망을 발견했다면 변화산을 내려가야 한다. 제자들이 살 곳은 변화산 위가 아니라 세상이다.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 곳은 변화산이 아니라 세상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한다. 안주하려고 한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어진다. 우리는 안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교회는 훈련소와 같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자대로 배치를 받는다. 마찬가지다. 성도들은 교회 안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교회에서 훈련을 받았다면 세상이라는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훈련받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곳은 교회 안이 아니라 세상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지, 교회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아니라 교회의 소금과 빛이 되고자 한다. 한국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재영 목사(대구아름다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하나님의 일 & 사람의 일
2021-02-17
마태복음 16장 21-28절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틈을 보인 베드로사단은 틈을 타고 들어와 역사한다. 지붕 공사를 하고 나면 방수 처리를 한다. 방수 처리를 하는 이유는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물은 적은 틈만 있어도 스며들어 간다. 사람들은 큰 것에는 민감하지만 작은 것에는 둔감할 때가 많다. 작은 것에 대해서는 ‘그 정도야 어때’라는 생각을 한다. 댐에 작은 틈이 생긴 것을 알고도 ‘그 정도는 어때’라는 생각을 하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 그 틈은 점점 벌어져서 결국 댐이 터지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렇듯 사단도 물처럼 우리의 틈을 타고 들어와서 역사한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21절). 베드로는 이 말씀을 듣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다(22절).여기서 ‘항변하다’는 헬라어로 ‘에피티마오’로 ‘비난하다’, ‘꾸짖다’, ‘견책하다’는 의미가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한 말씀도 하셨다. 하지만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이 죽는다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예수님을 붙잡고 꾸짖듯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조금 전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신 예수님이 그의 반응을 보고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시면서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23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베드로가 갑자기 사탄으로 변한 것일까?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자체가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 안에 역사하는 사탄에게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고 계신다. 곧 베드로는 지금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였기에 사탄에게 틈을 보였다. 누구든지 틈을 보이면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나는 요즘 사탄에게 틈을 보이고 있지는 않는가?주님을 따르는 삶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대가지불을 해야 하는 삶이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고 오라고 하셨다(24절). 여기서 ‘부인하다’는 헬라어로 ‘아파르네사스도’로 ‘거절한다’, ‘저버린다’는 의미가 있다. 곧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아를 죽여야 한다는 의미다. 내 자아가 살아 있으면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자기 십자가’란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과 그 사명 감당하기 위한 희생과 노력을 말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기에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에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 주님은 말로만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십자가를 지겠다고 찬양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기도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직접 행동으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는 정도가 아니라, 때로 목숨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25절).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으면 다시 찾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곧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날마다 순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말했다(고전15:31절).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해야 한다.오늘 나는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재영 목사(대구아름다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각자의 신앙 고백이 열쇠를 결정합니다
2021-02-16
마태복음 16장 13-20절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신앙 고백이 품고 있는 내용의 중요성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 고백은 화려함이 아닌 담고 있는 내용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수많은 지역교회가 존재한다. 각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양한 신앙 고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가 되려면 성도의 신앙 고백을 점검하고 수정해 주어야 한다.오늘 본문을 보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해 사람들의 신앙 고백을 점검하기 위한 질문을 하신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 이때 제자들이 대답한다. “이르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절).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그리고 선지자’로 이해한다. 이곳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원했던 메시야는 자신과 민족의 번영을 가져다줄 분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신앙 고백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원하셨던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제자들을 통해 사람들의 신앙 고백을 전해 들은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의 신앙 고백을 점검하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 이때 시몬 베드로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한다.이 부분을 원어는 정관사 주격 남성 단수인 ‘호’를 붙여 ‘호 크리스토스’로 표현을 쓴다. 이 말은 “당신은 그 그리스도이십니다(You are the Christ, RSV).”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야로 인정한다. 더 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이 구절 역시 원어로 보면 정관사 ’호‘를 붙여 ‘호 휘오스’를 사용 한다. 직역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 아들(the Son of the living God, RSV)’로 고백한다. 즉,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이다.교회를 세우는 신앙 고백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세 가지 선언을 하신다. 첫째, 복을 선언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17절). 여기서 말하는 ‘복’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인데 ‘하나님 나라에 참여함을 통해 오는 커다란 희락’을 의미한다(마 5:3).둘째, 교회를 세우신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8절).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이다(I will build my church(NIV). 교회의 주도권이 100% 예수님에게 있음을 보여 주는 선언이다. 이 사실 때문에 음부의 권세 즉 죽음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셋째, 하나님 나라의 여닫는 열쇠를 주신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 네가 … 매면 … 네가 … 풀면 …”(19절). 이 부분은 해석의 논란이 많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복음 선포’와 연관된 해석이다. 이 해석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천국 문을 열어주는 것이며,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 것은 천국 문이 닫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회는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그렇다면 신앙 고백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해 그 답을 준다. “…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 우리의 신앙 고백과 교회 됨의 출처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교회가 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에 두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나 자신의 신앙 고백은 무엇인가? 잠시 신앙 고백의 내용을 점검하고, 혹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수정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몸담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앙 고백은 어떤 상태일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하상훈 목사(하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수님 곁에 머물 때 영적 분별력이 주어집니다
2021-02-15
마태복음 16장 1-12절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영적 분별력 없는 자들의 요구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하나님에게 교만한 요구를 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청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히브리어로 ‘솨마임’이고 헬라어로는 ‘우라노스’다. 이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의 거처’(창 24:3; 시 113:24)와 ‘하나님’(요 3:27)을 뜻한다. 이 요구는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적’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모세를 통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출 16:4), 여호수아를 통해 해와 달의 진행을 멈춘 것(수 10:12-14)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그렇다면 그들이 표적을 구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숱한 표적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의도가 ‘청하다’에 담겨 있다. ‘청하다’는 헬라어로 ‘에페로타오’다. 이 말은 단순히 ‘묻다’, ‘요구하다’는 뜻이지만 자주 강압적인 질문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마 27:11; 막 15:2; 요 9:23).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등에 업고 죄인을 심문하듯 교만한 태도로 예수님을 대하고 있다.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이유와 결과이들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인가?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였다(4절). 이 부분을 KJV은 ‘시대의 표적들(the signs of the time)’ 즉 복수형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여러 표적을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분별력이 마비되어 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그렇다면 분별력이 마비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였다(4절). ’악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포네라‘는 ’윤리적으로 비열하고 무가치한 것‘을 나타낸다(마 5:39; 눅 6;23; 눅 11:34). ‘음란한’에 해당하는 ‘모이칼리스’는 ‘간음하는 것’을 의미한다(롬 7;3; 벧후 2;14). 이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불신하고 돌아서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한다(마 12:39; 막 8:38). 이런 이유로 영적 분별력이 마비되었다고 지적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 즉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다는 결정적인 표적을 말씀한다. 하지만 영적으로 마비된 종교지도자들은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분별력 없는 사람들의 불행이다.영적 분별력은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짐이 논쟁을 지켜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로세케테’다. 이 단어는 현재 명령형으로 건성으로 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의 말을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분별력이 없던 제자들은 이 말을 칠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남은 떡을 놓고 온 것으로 이해한다(7-8절). 제자들도 분별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들에게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없는 은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 곁에서 설득하시고 이해시키시는 예수님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제자들 모두는 영적 분별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듣기 원하는 마음 자세가 있었고, 기꺼이 설득당하려는 태도가 있었다.이런 태도는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가?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 깨달으니라(12절).” 영적 분별력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부족할지라도 가르치시고 설득하시며 깨닫게 하시는 예수님 곁에 머물면 결국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게 된다.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교만하게 된다. 영적인 분별력은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가르침을 받고 설득당할 때 주어진다. 당신은 영적 분별력을 얻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예수님 곁에 머물 것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하상훈 목사(하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수님의 시선에 머물 때 고통과 불행이 사라진다
2021-02-14
마태복음 15장 29–39절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고통과 불행으로 일관된 인생살이우리의 삶은 고통과 불행의 연속이다.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을 떠나 다시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한 산으로 이동하신다. 마태는 이 부분을 간단하게 묘사했으나 마가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역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다”(막 7:31).적지 않게 피곤했을 그때, 큰 무리가 불행한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몰려온다. 불행한 사람들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 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30절) 이다. 이들 모두는 장애인과 병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이었다. 이곳은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사람들의 현주소를 바로 보여 주고 있다.우리의 인생은 자주 고통으로 일관된다. 어떤 이들은 태생적인 문제로 고통에 머물고, 어떤 이들은 불의의 사고를 통해 고통에 머문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 때문에 고통에 머물기도 한다. 육체적인 장애와 질병을 앓기도 하지만 영적인 장애와 질병을 앓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그들의 노력은 자주 헛수고가 되고 만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으로 일관된 인생살이를 살아간다.예수님의 시선에 머물기만 하면그렇다면 어디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의 발 앞(at his feet, 30절)’이다. 예수님의 발 앞은 그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곳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시선에 들어온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30절).”예수님은 발아래 있는 자들을 치유하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준다. 또한, 예수님의 시선에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 보인다”(37절). 그들 모두는 사흘째 먹을 것이 없는 상태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 그들을 보내지 못하겠노라”(32절).예수님은 시선에 들어온 자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불쌍히 여기신다(32절). ‘불쌍히 여기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를랑크니조마이’다. 문자적 해석은 ‘내장이 움직이다’인데, 그 의미는 ‘동정심으로 마음이 움직이다’로 발전한다. 예수님은 육체의 질병과 영적 회복을 얻기 위해 예수를 떠나지 못한 채 사흘이나 주린 사람들을 도우신다.마태복음 14장에서 이미 시도하신 방식대로 제자들에게 있는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 여자와 어린아이 외 4천 명을 먹이신다. 고통과 불행으로 일관된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발 즉, 시선 앞에 문제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가져와야 하고 타인의 문제를 그 발 앞에 놓아두어야 한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한 4천 명처럼 식음을 전폐하고서라도 예수님의 시선에 머물러야 한다. 이때 우리는 예수님의 긍휼한 마음을 타고 흐르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당신에게 있는 고통과 불안은 무엇인가? 그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가? 예수님의 발 즉, 시선 아래 머물 때 고통과 불행이 사라진다는 것이 믿어진다면 당신이 지금 취해야 할 결단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하상훈 목사(하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영적 치유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
2021-02-13
마태복음 15장 21-28절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영적 치유를 위한 첫 번째 단계: 인식영적 치유를 원한다면 우리의 삶이 영적 전투의 현장임을 인식해야 한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주 무대였던 갈릴리를 떠나 두로과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신다. 이곳에서 ‘가나안 여자 하나’를 만난다(22절). 그런데 원어 성경에는 개역 개정에 없는 ‘보라(헬, 이두)’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마태는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서 독자들의 시선을 ‘가나안 여자’에게 집중하도록 이끈다.이 여인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에 속한 여인이었다(막7:26). 이 여인은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온다(22절). ‘귀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딸이 가진 문제가 정신적 질병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로 발생한 정신적 질병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오늘날 과학과 의술의 발전은 영의 세계를 부인한다. 물론 정신적인 질병에 걸리면 의학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영적인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 안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문제의 원인 중에 사단과 귀신이 결부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베드로전서 5장 8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철저하게 경계하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영적 치유는 이 부분을 인정하는 것과 의학적 도움을 통해 시작한다.영적 치유를 위한 두 번째 단계: 믿음가나안 여자는 딸이 가진 문제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음을 인정한 후 예수님께 달려와 외친다. “…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22절). 이 여인에게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1-20절)에게는 없던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이 모든 영역의 ‘주인(헬, 퀴리오스)’되심과 구약에서 약속한 ‘다윗의 자손(헬, 휘오스 다위드)’ 즉 메시야 되심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 그 여인은 그 믿음을 근거로 자신을 불쌍히 여길 것을 요구한다. ‘불쌍히 여기소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레에손’은 일시적인 동작을 요구할 때 사용되는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단 한 번만 불쌍하게 여겨 달라’는 간절한 호소이다.많은 사람이 영적인 회복을 위해 자기 열심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금식과 단식기도와 연보와 헌신’을 내세우며 신을 감동하게 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 안에 믿음의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종교적 열심이 되고 만다. 예수님이 원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님이 ‘주와 다윗의 자손(메시야)’임을 믿는 성경적 믿음이다. 이 믿음을 근거로 하는 헌신일 때 영적 치유가 일어난다.영적 치유를 위한 세 번째 단계: 간절함이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거절’이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보냄 받음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있다’고 말씀하신다(24절). 그러나 이 이방 여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예수께 절하며 주여 나를 도우소서”(25절)라고 외친다. ‘도우소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보에데이’는 ‘위험에 빠진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다’라는 뜻을 지닌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에게 ‘황급히 달려가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한다.그러나 예수님께서 더 매몰차게 거절하신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26절). 가나안 여인은 이내 개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자존심 상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괜찮으니 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은 치유의 은혜를 갈구하는 믿음이 내포된 간절함이었다. 이 부분을 예수님이 인정하시고 귀신들린 딸을 치유하신다. “…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8절).영적 치유를 위한 세 단계는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믿음’, ‘장벽을 뚫고 나아가는 간절함’이다.당신은 영적인 치유를 위해 어떤 단계에 머물고 있는가? 또한, 이런 성숙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하상훈 목사(하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참된 정결은 마음에 있다
2021-02-12
마태복음 15장 10-20절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 중요!말씀을 들으면 깨달아야 한다. 깨닫지 못하면 삶이 변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다(11절). 예수님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장로들의 전통이 떡 먹을 때에 손을 씻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장로들의 전통은 더러운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생각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전통에 따른 정결예식을 지킨다고 정결하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에게 경고하셨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다”(13절).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장로들의 전통을 가르치는 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뽑히게 될 것이다. 잘못된 교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지럽히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 내려질 것이다.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14절). 결국, 자기들만 멸망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들의 육체에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말씀을 왜곡했기 때문이다.나의 신앙생활에서 말씀을 듣고도 바르게 깨닫지 못함으로 죄를 짓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것은 없는가?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중요몸보다 마음을 더 잘 지켜야 한다. 온갖 더러운 것들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입이 더러워서 악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악한 생각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18절).솔로몬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4:23)고 말씀한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생명의 근원이 악의 근원이 되고 만다. 마음속의 악한 생각이 결국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을 만들어 낸다(19절).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했다(렘 17:9). 겉은 멀쩡한데 그 마음의 뚜껑을 열어보면 온갖 더러운 것이 그 안에 우글거린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온갖 더러운 것이 나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마음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손만 씻으면 되는 줄로 알았다(21절).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몸에만 영향을 주지만 마음에서 나온 것들은 전인격에 영향을 준다. 아무리 손을 열심히 씻어도 정결한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위선자가 되고 만다.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하고 더러운 생각을 몰아내야 한다.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악한 행실을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심을 믿고 지은 죄를 주님께 자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지은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이다.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위해 내가 버려야 할 악한 생각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상규 목사(The은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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