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죄 사함을 넘어 병까지 고치시는 주님
2021-01-19

마태복음 9장 1-13절

80c2834370070fe9b6986f25eb63c755_1579150932_4817.png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죄 사함과 병 고침 (1-8절)


예수님은 육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문제도 해결해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본 동네(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다. 이 중풍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주시기보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신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절).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하였다고 생각한다(3절).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악한 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5절).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 우리는 말씀의 문맥 속에서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것과 병을 고치는 것 모두다 가능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질문 이후 곧 바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6절). 그러자 병자는 고침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7절). 그 당시 죄를 사하는 것은 제사장도 가능하였지만 병자를 고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 그러자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무리들은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8절).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보며 ‘자기가 뭔데 감히 죄 사함을 선포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말로는 얼마든지 죄를 사한다고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죄 사함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을 병 고침을 보여주심으로 자신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으심도 여실히 드러내신 것이다.


한편, 중풍병자와 그 지인들은 병 고침이 최우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중풍병자에게는 병 고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죄 사함임을 아셨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를 먼저 사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셨다.


우리도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소원보다도 나의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자하신다는 응답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신 그분을 신뢰하며 기다릴 수 있는가?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해 (9-13절)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마태를 보시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다(9절). 마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10절). 그런데 세리를 비롯하여 당시 죄인으로 여겨졌던 이들과 예수님께서 같이 식사하시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는 문제로 보였다(11절).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자가 아닌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함을 말씀하시며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12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3절).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예수님으로 인해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의 문턱이 높아졌다. 예전에 어떤 유명한 작가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남루해 보이는 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교회에 갔다가 그 교회 장로님으로 보이는 분에 의해 쫓겨났고, 그 뒤로 교회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고 소외받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을 품기 위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d7e7c8ed89567a95de4a07a83d3aaa31_1579264767_6109.png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최준영 목사(품는 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