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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터치 & 큐티

와플 QT_나도 예수 믿어요
2021-12-19

주말칼럼_나도 예수 믿어요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고은 <순간의 꽃> 

 

학부 시절 교양 필수 과목에 ‘군사학’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신학생들도 운동장에 모여 제식 훈련을 하고 총검술도 배우고 그랬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전방으로 병역 체험을 떠나기도 했는데, 그 체험으로 군 복무기간을 크게 단축하는 혜택도 받았지요. 전방 병역 체험 중에 기억나는 일이 있어요. ‘기간병’ 한 명과 철책 근무를 나갔는데, 그 날 밤 별이 참 환했습니다. 처음 볼 때부터 호의적이던 ‘기간병’이 멀리 별 밝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말을 해요. “아침에 까치가 울더니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네요.”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묻더군요. “신학교에서 오셨다면서요?” 


자기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귀한 분들과 근무 설 수 있어서 참 좋다고 싱글벙글 이었습니다. “나도 예수 믿어요.” 강원도 철원 밤하늘 별빛만큼 맑게 전해진 ‘자기 고백’에 마음이 활짝 열리더랍니다. ‘나도 예수 믿는다’라는 말이 그렇게 반가운 말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군 복무 중에 병원에 입원을 했었지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 수도통합병원은 군기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병원에 입원한 게 아니라 또 다른 내무반으로 파견 나간 것 같았습니다. ‘군대’는 ‘병원도 군대’여서 환자들도 축구를 합니다. 하필 그 시간이 주일 오전 11시였습니다. 


예배시간과 축구 시간이 겹치면 곤란해집니다. 축구 빼 먹고 교회를 가면 자칫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있거든요. 그렇더라도 ‘예배’를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병실 고참이 ‘선택’을 요구했고 저는 주저 없이 ‘예배’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병실 분위기가 싸늘해졌어요. 그때 저쪽 어느 고참이 한마디 거들더군요. “야 임마, 너만 교회 다니냐? 나도 예수 믿고, 나도 교회 다녀!” 누구나 금방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험악한 어조였습니다. ‘나도 예수 믿는다’라는, ‘나도 교회 다닌다’라는 말이 그때만큼 부자연스럽고 듣기 싫은 적이 없었습니다. 어쩐지 그날 병실 창밖 쨍한 햇살이 환해 보이질 않았습니다. 


물론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평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살면서 예배에‘만’ 목숨 거는 건 ‘예배’와 ‘예수’를 욕 먹이는 일이지요. 또박또박 시간 맞춰 빠짐없이 예배 참석한다고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그것대로 반성하고 고쳐야 할 대목입니다. 그런데 ‘나도 예수 믿어’ 혹은 ‘나도 교회 다녀’ 하는 말을 자기 합리화의 어법으로 사용하는 것도 눈 뜨고 봐주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이 연약해 ‘예배’ 대신 ‘축구’를 선택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자기 모습이 떳떳한 믿음의 요건일 수는 없습니다. ‘나만’으로 모자라 ‘너도’ 같이 빠져 죽자는 심사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겠습니다. 


‘나도 예수 믿어’ 하며 그릇된 일에 당당한 우리 모습이 한 둘은 아닐 겁니다.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누구 이야기’는 지루하지도 않지요. 이렇다 저렇다 평을 하고, ‘그가’ 듣지도 못할 훈계를 내놓고, 그러다 하루해가 저뭅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어요. 온종일 ‘누구 이야기’로 떠든 내 부끄러움을 말없이 보고 있는 나무들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그릇된 일에 당당했던 하루,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앞에라도 그 하루가 부끄러운 줄 알면 다행인 거지요. 하물며 ‘하늘 아래’ 인생일까요. 아무려나 ‘나도 예수 믿어요’ 하는 말이 어둡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 : 이창순 목사(서부침례교회)
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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