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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터치 & 큐티

와플 QT_오손도순 살어라이
2022-02-12

주말칼럼_오손도순 살어라이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 일생을 흙 속에서 산, //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 머리가 땅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 어머니는 한사코 /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 이대흠 <동그라미>

 

“입이 제일 어려워.” 스마트폰을 손에 든 딸아이가 식탁에 앉으며 하는 말입니다. 두어 해쯤 되었을까요. 틈만 나면 스케치북에 만화 캐릭터를 그리더니, 언제부터인가는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더군요. 재주가 없지는 않은지 다 된 그림이 제법 볼만합니다. 대강의 얼개뿐 아니라 세밀한 터치가 필요한 부분도 신경 써서 그려 넣었더군요. 아이 말에 따르면 그 중 신경 쓰이는 게 손 모양과 입 모양이랍니다. 그리던 캐릭터의 입 모양 터치를 다 못 끝낸 채 식탁에 앉으며 하는 말이 ‘입이 제일 어렵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입뿐만 아니라 다 어려워 보이는데 말입니다. 


식탁 위로 툭 던져둔 ‘아이의 말’일 뿐인데 그 말이 ‘아이 말’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그림 그려 넣는 일에만 ‘입’이 어려운 건 아니니까요. 생각 좀 하고 사는 ‘어른’이라면 너나없이 같은 고백을 할 겁니다. “입이 제일 어려워.” 그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이가 한 마디를 더 해요. “벌린 입이 제일 어려워.” 입 벌린 모양 그려 넣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건 사는 일도 마찬가지여서 ‘입 벌려’ 하는 ‘말’이 실은 제일 어렵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잠언 25장 11절)”라지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지만, 말 한마디 잘 못 해서 평생 ‘웬수’가 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 내려놓고 숟가락을 들면서 아이가 남은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다문 입도 어려워.” 

그래요, 어디 ‘벌린 입’만 어려울까요. 입 다물고 살기는 또 얼마나 어렵던가요. 어떤 이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어렵고 또 어떤 이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라서 어렵습니다. 말이라는 게 그래요. 참, 어렵습니다. 수도꼭지처럼 틀면 줄줄 흐르는 말도 어렵고, 꼭 잠가두어 꽉 막힌 말도 어렵습니다. 술술 흐르지만 모나지 않은 ‘어머니 둥근 말버릇’이라는 게 아무 입에서나 나는 건 아니지요. “머리가 땅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사는 입에서나 흐르는 말 일 겁니다.


한평생 ‘이응(ㅇ)’으로 사신 어머니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겠지요. ‘이응(ㅇ)’을 빼고 산 숱한 날들, ‘C자의 열린 구멍’ 대신 ‘A’자 뾰족한 창끝으로 산 세상, ‘살리는 것들이’ 쏟아지지 못한 까닭을 두고 먼 산만 바라볼 일이 아니겠습니다. 그저 ‘좋은 게 좋아’하는 건 아니더라도, ‘이응(ㅇ)’으로 ‘받치고’ 살아야 할 숱한 날들이 있습니다. 간 쓸개 다 빼내고 ‘이응 받침’ 하나로 세상을 건져 올리신 “어머니는 한사코” 한 마디 ‘당부’만 되풀이하십니다. “오손도순 살어라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던 하나님의 세상, 주님의 ‘당부’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샬롬^^.  




작성자 : 이창순 목사(서부침례교회)
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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