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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하나님과의 화친을 통해 누리는 복
2020-12-20

전도서 6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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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5.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7.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8.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9.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10.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1.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12.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도자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한 가지 불행에 대해서 말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2절).”


여기서 말하는 ‘영혼(히, 네페쉬)’은 지, 정, 의를 갖춘 인간을 총체적으로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의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이 그것을 누리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


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소망하는 바를 ‘획득(gains)’함이 아니라 ‘누림(enjoy)’이다. 누림이란 무엇인가? 이 단어에 해당하는 ‘아칼’은 문자적으로 ‘먹다(NASB, eat)’라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서는 ‘누리다, 즐기다(NIV, enjoy)’ 또는 ‘합당하게 사용하다’라는 의미다.


진정한 행복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지 못하는 삶보다 작은 것이라도 누리며, 즐기며 더 나아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히, 나하트) 즉 ‘평온함’, ‘안전히 거함’을 누리며 살게 된다(5절).


모든 인생은 다 같은 곳으로 간다(6절). ‘같은 곳’에 해당하는 ‘마콤 에하드’는 문자적으로 ‘하나의 장소’ 또는 ‘동일한 장소’다. 이곳은 모든 사람이 죽어서 가는 ‘무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상황에 감사의 의미를 부여하며 누리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과의 화친을 통해 누리는 복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자신이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말한다.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10절).” 현존하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 이름이 불린 바 되었다. “그 이름이 불린 바 되었다”에 해당하는 ‘니크라 쉐모’는 “그 이름이 불려졌다”는 수동태로 번역된다.


그렇다면 누구에 의해 그 이름이 불렸는가? ‘강한 자’에 의해 불려졌다.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는 ‘쉐핫탁키프’인데 관계사 ‘쉐’에 정관사 ‘하’가 그리고 ‘강한’, ‘매우 힘센’이라는 의미인 ‘탁키프’가 붙어 하나님을 나타내는 완곡한 표현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 그 존재감이 부여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과 화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화친을 이룰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결단코 하나님과 화친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길을 여실 수 있다. 이 부분을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16절)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17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8절).”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죄의 문제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해결하셨다. 그 십자가를 통해 수평적인 화친(인간사이)과 수직적인 화친(하나님과의 사이)을 선물하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만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이 은혜다.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과의 화친을 할 때 진정한 복(누림의 복)이 주어진다. 생각해보라. 당신은 늘 십자가 아래 머물러 있는가? 그 아래서 복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복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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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하상훈 목사(하나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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