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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삶의 의미
2020-12-26
전도서 9장 1-10절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6.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죽음죽음은 삶을 포기하게 하지만 부활은 삶을 살아가게 한다. 전도서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다. 그래서 팀 켈러는 전도서가 실용적이고 세속적이라고 말한다. 실재로 이러한 전제를 두고 읽지 않으면 전도자의 권면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전도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 ‘태양 아래에’ 라는 말은 영원이나 천국을 배제한 세계관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허무’다. 유진 피터슨은 전도자의 ‘허무’를 ‘연기’라고 표현했다. 영원이 없다면 인생은 ‘한낱 연기’다.인생이 우연이고 각자가 태어난 이유가 없다면 삶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비롯된다면 어떤 솔루션도 궁극적인 허무함을 해결할 수 없다. 8장과 9장 1-2절에서 전도자는 의인과 악인의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주목한다. 잠깐 사는 인생, 너무 잘 살려고 애쓰지 말라고 권한다(3절). 만약 이 삶이 전부라면, 우리가 죽을 때 영원히 썩는다면, 조금 더 옳고 그름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영국의 철학자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선은 항상 목적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사물이 만들어진 목적과 관련해서만 ‘좋거나’ ‘나쁜 것’이지, 목적을 벗어나서 ‘좋거나’ ‘나쁠 수’ 없다는 것이다. 목적이 곧 기준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탄생이 목적없이 우연이라면, 선하다는 칭찬도, 악하다는 비평도 필요가 없다. 숨 붙어 있는 시간에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4-6절).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창조되었으며, 이는 창조주의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한다(창 1:28, 사 43:21). 목적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목적을 이루는 것이 선한 것이고, 이루지 않는 것이 악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버틀러는 “죽음은 구원받은 자에게는 축복이고,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우리 영혼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면에서 정말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을 두고 창조하셨다. 지금 돌아서서 천국을 준비하고,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부활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부활이 있기에 풍요롭다. 오늘 우리를 둘러싼 문화 속 메시지를 보자. 전도자의 권면과 매우 유사하다. “(한 번 죽는 것) 인생을 즐겨라.”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세계관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수많은 영화와 방송, 광고와 유명인사의 말은 이와 반대되는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한다.전도자는 아직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않았다. 전도서의 결론까지 가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따라서 전도자는 ‘해 아래 한 번 사는 인생’을 전제하고 인생을 즐기라고 말한다.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살라!(7절)”, “늘 파티복을 입고, 향수가 마르지 않게 하라!(8절)”,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라!(9)”, “할 수 있을 때 해봐라!(10절)”솔로몬의 지혜는 영적인 것이 아닌, 육적인 것을 위해 살도록 유도한다. 그는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아직까지는) 배제한다(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라_7절).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이 이 땅에서 평생 수고한 것의 의미라고 말한다(9절). 버틀러는 솔로몬의 조언이 우리의 방탕한 삶에 대해 하나님 앞에 보고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것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지적한다.이것은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가 도달한 결론과 같다. 이러한 관점은 이 땅에서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 생이 있다는 진실 앞에서는 허망하고 어리석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뒤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두 번의 생이 있음을 보이셨다.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지만,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번째 개척자가 되심으로서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생이 이번뿐이었던 허망한 인생에서, 다음 생을 준비하는 소망의 자리로 초대하신다.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생각해보라. 만약 이번 생뿐이라면 얼마나 허망할까? 이런 복된 소식을 오늘 누구와 나누면 좋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병완 목사(우리가꿈꾸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자리바꿈
2020-12-25
누가복음 2장 8-20절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자리지킴그리스도의 방문으로 당신은 안전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목자들이 자기의 양 떼를 지킨다(8절). 당시 목자들은 괄시를 받는 계층으로, 오늘날의 부랑자나 노숙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난한 자, 밤에도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노동자, 종교적 활동을 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 그들이 목자다.헤롯 대왕이 자기의 왕좌를 지킨다(마 2:13-16). 그는 원래 에돔 사람(이방인)인데 로마에 잘 보여 이스라엘을 감독하는 왕으로 임명 받았다. 유대인 지도자들의 잡음은 힘으로 눌렀다. 헤롯은 목자들과 반대로 부족한 것이 없었기에 종교적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왕이었다.천사가 나타났다. 목자들은 크게 무서워했다(9절). 헬라어 ‘포베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두려움’이다(마 10:28).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 전 바울에게 비추인 하나님의 빛이 이와 같다.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는지라(행 9:3; 26:13).” 목자들은 성실하게 자기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두렵게 했을까?오스왈드 챔버스는 죄의 본질이 ‘관계’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무엇인가를) 잘못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단호하게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독립한 상태” 자체다. 목자들은 하나님께서 빛으로 비추실 때 왜 무서워 떨었는가? 그들이 가짜 행세를 해왔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5절은 그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함” 임을 폭로한다. 그러나 오늘 천사는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좋은 소식(복음)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으로 번역된 ‘유앙겔리온’은 원래 황제의 출생을 경축하는 표현이다. 이미 황제가 있는데 새 황제가 태어났다니. 누구인가.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 구주는 ‘구원자’, 그리스도는 ‘메시아’, 주는 종종 ‘하나님’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의역할 수 있다. “당신을 위하여 진짜 구원자가 이 땅에 오신다. 바로 메시아 하나님이다.”자리바꿈예수님은 우리를 아들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신학자 크레이그 키너는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구유에서 태어나심을 통해 참된 왕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셨다고 말한다. 예수님 당시 가옥은 2층으로 이뤄져 있다.1층은 가축이 머물고, 2층은 사람들이 거주했다.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들이 머무는 2층도 아닌 가축이 머무는 1층의 여물통에서 태어나셨다. 왜 그러셨는가? 그곳이 원래 우리의 자리였기 때문이다.황제는 군림으로 진심 없는 칭송을 듣지만, 왕은 섬김으로 영광과 찬송을 받는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마태는 그 앞 절을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스도께서는 나무 구유에서 태어나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으뜸이 되셨다.바울은 고린도후서 8:9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며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친히) 가난하게 되신” 목적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그분이 죄인된 우리의 자리에 앉으심으로 우리는 아들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아들의 “평화”가 있다(14절). 하나님의 집에서 누리는 안식이 있다. 헬라어 ‘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이다. 샬롬이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온전한 평화의 상태’를 말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평화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분이다. 그래서 오래 전 선지자 이사야는 언젠가 태어날 메시아를 가리켜 “평강의 왕이라(사 9:6)”고 했다.조엘 비키는 “하나님이 죄 많은 육신들의 닮은꼴로 아들을 보내시고 죄인들을 위해 얼마나 낮게 굽신거리셨는지를 (우리가)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 그러셨을까? 우리 때문이다. 얻으신 게 무엇인가? 우리의 생명이다.마리아는 이 모든 상황과 대화를 마음에 잊지 않기 위해서 새기어 생각하였다(19절).성탄절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자리에 대신 앉으신 날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기뻐하라! 찬양하라! 평강의 왕이 당신을 아들의 자리에 옮기셨다!나는 이런 좋은 소식을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병완 목사(우리가꿈꾸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2020-12-24
빌립보서 2장 1-11절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예수님예수님은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6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예수님은 실제로 이 땅 가운데서 사역을 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직접 말씀하셨고 증명해 보이셨다. 물 위를 걸으셨고 광풍이 부는 바다를 말씀 한마디로 잠잠하게 하셨다.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이 계셔야 하는 곳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꺼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다. 성육신하셨다.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종교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자가 피조물인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이다. 그것도 방이 없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하나님이 말구유에 태어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자식을 말구유에 낳는 사람은 없다. 이뿐이 아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8절).예수님은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입으로 이 땅 가운데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성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이 가져할 덕목이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 겸손이라고 했다. 성탄절 이브다. 이 땅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냥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지극히 낮은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그냥 두지 않으셨다.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그냥 두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9절).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로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10절).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11절).사람은 으뜸이 되기를 원한다.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 비결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하셨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사람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크게 해주신다. 사람의 종이 되면 하나님께서 으뜸이 되게 해준다.괴테는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 동안 강과 산이 나무와 풀잎들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점점 변해가면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 빛의 고통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빛의 고통이 없이는 아름다운 색채가 나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오시는 것은 고통이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은 고통이다. 하지만 이 고통을 통해 예수님은 구원의 빛을 이 땅 가운데 비추셨다.예수님처럼 빛의 고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재영 목사(대구아름다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2020-12-23
전도서 8장 1-17절1.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2.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3.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4.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5.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6.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8.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9.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10.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권위에 대한 순종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전도자는 왕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2절). 왕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 통치자로 신적 권위를 가진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가 지혜자의 도리라고 말씀한다.전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권세를 지닌 자가 다른 사람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로 하여금 그 자리에 앉게 하신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물론 이 말씀은 부당한 권력을 향해서 맹목적으로 복종하라거나 불의에 항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부당함이나 그릇 행함을 알면서도 타협하고 아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불의의 명령이나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 행동이 아니라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죽이지 않았다. 사울을 죽이면 이제 더 이상 도망자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도 있다. 이런 좋은 기회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윗은 사울 왕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사울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삼상 24:6). 즉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였기에 그렇게 했다.권위주의는 나쁘다. 지나친 권위주의는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우려가 충분히 있다. 권위주의보다 나쁜 것이 있다. 권위를 무시하고 허무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무시하고 허물면 안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권위를 세워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위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가?공의로우신 하나님하나님의 공의에는 보응이 따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종종 경험할 때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악인이 형통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은 저런 사람에게 벌을 안주시고 뭐하시는가? ”예레미야 선지자도 악인이 형통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이런 질문을 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 12:1)?”악인이 형통한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의인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인의 형통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의인의 고난 역시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다. 전도자는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데 담대하다고 말한다(11절). 죄인이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한다고 말한다(12절).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행한대로 보응하신다(13절). 이 땅에서는 악인이 형통할 수도 있고 의인이 고난받을 수도 있다. 전도자의 말처럼 그 이유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다(17절).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전도자는 부조리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희락을 소유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15절). 전도자가 말하는 희락은 쾌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상적인 삶 가운데에서 주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즐거움을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을 누릴 수 있음이 희락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는 기적이다. 희락은 먼 곳에 있지 않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얼마나 일상에서 희락을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재영 목사(대구아름다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참된 지혜
2020-12-22
전도서 7장 15-29절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27.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논어에 보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라는 뜻이다. 나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가뭄을 해갈하는 물도 넘치면 홍수가 된다. 맛을 내는 소금도 과하면 맛을 잃는다. 몸을 건강하게 하는 운동도 지나치면 사망에 이르게 한다. 전도자는 지나치게 의인도 되지 말고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고 한다(16절). 그 이유가 자기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5절).이 말씀은 왠지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하는 전도서의 주제와는 모순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적당주의를 조장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적당주의를 조장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생의 헛됨을 대비하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전도자는 미덕과 악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인생의 미덕과 악덕이 나름대로 좋고 나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자체로는 만족한 결과를 제공하지 못한다.이러한 관점에서 전도자는 ‘자기 의’를 추구하는 인본주의적인 의인이 되지 말라고 권고한다. 반대로 인간적인 악인이나 우매자도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도록 권고한다(18절). 한계를 가진 인간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면 지나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중용을 견지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얼마나 자신의 삶을 조절하고 있는가?진정한 지혜에 대한 자각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전도자는 지혜의 능력(19절)과 인간의 부패(20-29절)를 비교함으로써 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도자는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지만(23, 24절), 자신이 완전한 지혜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고 겸허한 자세를 가지게 된다. 세상적인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평안을 누리며 살도록 해주지 못한다. 전도자는 오직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말씀을 기초로 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촉구하고 있다(29절).전도자가 인간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이유는 인간의 부패함 때문이다(20절). 인간은 아무리 선을 추구하고 경건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죄인일 수밖에 없다. 신약 성경에서도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서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롬 3:10).전도자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해답을 찾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했다(25-26절).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부요하여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 전도자는 세속적인 지혜를 가지고는 삶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올바로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지혜’란 단순히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달리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도자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참된 지혜를 추구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재영 목사(대구아름다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영원한 본질을 추구하라
2020-12-21
전도서 7장 1-14절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경박한 유흥보다 영원한 본질하나님의 백성은 경박한 유흥보다 영원한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박한 유흥을 좋아한다. 경박한 유흥이란 무엇인가? 전도자는 “좋은 기름과 출생하는 날(1절), 잔칫집(2절), 웃음(3절), 혼인집(4절), 우매한 자들의 노래 듣는 것(5절), 뇌물(7절), 교만한 마음(8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함(9절), 돈의 그늘 아래 있음(12절)”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영원한 본질의 가치보다는 잠시 머무는 이 땅의 즐거움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편하게 여긴다. 심한 경우에는 무시하거나 박해를 가한다.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경박한 유흥보다 영원한 가치와 본질을 추구한다. 전도자는 이 부분을 ‘좋은 이름과 죽는 날(1절), 초상집(2절), 슬픔(3절), 지혜로운 사람들의 책망(5절), 지혜와 명철(7절), 참는 마음(8절), 지혜의 그늘(12절)’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아담적 자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들은 아니다. 또한 자신의 힘만으로 다가갈 수 없는 요구들이다.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이러한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곳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결국 그분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경박한 유흥과 영원한 가치와 본질의 부딪힘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생각함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영원한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말한다. “…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13절, 새번역).” ‘하나님이 굽게 하신’에 해당하는 ‘이우웨토’로서 그 의미는 ‘그가 구부러뜨린’이란 의미다. 하나님이 구부러뜨린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펼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의 그 거룩한 고집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이것을 인식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날 하루를 잘 살아낸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가치에 이르는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을 전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 (14절상).” 이 부분을 KJV은 이렇게 해석한다. “좋은 날에는 좋아하고, 악한 날에는 유의하라(In the day of prosperity be joyful, but in the day of adversity consider)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도자는 계속해서 말한다. “…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절하).” 우리는 장래 일을 알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존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당신이 계획한 일을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이뤄 가신다.이 부분을 마태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4).”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는 경박한 유흥보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본질과 가치를 선택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신 이유는 경박한 유흥보다 영원한 본질과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전도자가 말하고 있는 영원한 본질과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당신이 결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하상훈 목사(하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하나님과의 화친을 통해 누리는 복
2020-12-20
전도서 6장 1-12절1.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5.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7.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8.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9.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10.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1.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12.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도자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한 가지 불행에 대해서 말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2절).”여기서 말하는 ‘영혼(히, 네페쉬)’은 지, 정, 의를 갖춘 인간을 총체적으로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의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이 그것을 누리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소망하는 바를 ‘획득(gains)’함이 아니라 ‘누림(enjoy)’이다. 누림이란 무엇인가? 이 단어에 해당하는 ‘아칼’은 문자적으로 ‘먹다(NASB, eat)’라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서는 ‘누리다, 즐기다(NIV, enjoy)’ 또는 ‘합당하게 사용하다’라는 의미다.진정한 행복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지 못하는 삶보다 작은 것이라도 누리며, 즐기며 더 나아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히, 나하트) 즉 ‘평온함’, ‘안전히 거함’을 누리며 살게 된다(5절).모든 인생은 다 같은 곳으로 간다(6절). ‘같은 곳’에 해당하는 ‘마콤 에하드’는 문자적으로 ‘하나의 장소’ 또는 ‘동일한 장소’다. 이곳은 모든 사람이 죽어서 가는 ‘무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상황에 감사의 의미를 부여하며 누리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하나님과의 화친을 통해 누리는 복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자신이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말한다.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10절).” 현존하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 이름이 불린 바 되었다. “그 이름이 불린 바 되었다”에 해당하는 ‘니크라 쉐모’는 “그 이름이 불려졌다”는 수동태로 번역된다.그렇다면 누구에 의해 그 이름이 불렸는가? ‘강한 자’에 의해 불려졌다.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는 ‘쉐핫탁키프’인데 관계사 ‘쉐’에 정관사 ‘하’가 그리고 ‘강한’, ‘매우 힘센’이라는 의미인 ‘탁키프’가 붙어 하나님을 나타내는 완곡한 표현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 그 존재감이 부여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과 화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된다.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화친을 이룰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결단코 하나님과 화친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길을 여실 수 있다. 이 부분을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16절)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17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8절).”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죄의 문제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해결하셨다. 그 십자가를 통해 수평적인 화친(인간사이)과 수직적인 화친(하나님과의 사이)을 선물하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만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이 은혜다.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과의 화친을 할 때 진정한 복(누림의 복)이 주어진다. 생각해보라. 당신은 늘 십자가 아래 머물러 있는가? 그 아래서 복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복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하상훈 목사(하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선택
2020-12-19
전도서 5장 8-20절8.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9.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나니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 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14.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15.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6.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17.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보기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창 1:22).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그들은 ‘복’이 상실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담적 자아 즉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후손들 역시 ‘복’이 결여된 상태로 태어난다.그렇다면 이 선천적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인간 스스로 복을 만드는 것이다. 이 부분을 8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8절상). 스스로 복을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빈민학대,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행위’를 일삼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일들이 곳곳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전도자는 이런 일을 볼 때 “이상히 여기지 말라(히, 알 티트마흐)”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당연히 여기라는 뜻이 아니라 너무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그렇다면 놀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세상을 하나님이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전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높은 자(히, 가보아흐)’는 ‘관원’을 의미하고, ‘더 높은 자(히, 메알 까보아흐)’는 ‘왕’을 의미한다. 또한 ‘더 높은 자들(히, 게보힘)’은 복수형인데 ‘하나님’을 가리킨다.전도자는 세상 곳곳에 불의가 만연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존할 것을 요구한다.선택삶은 선택이다. 전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 …”(15-16절상). 이 진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들인 내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진리를 무시한 채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며 살아간다. 만족과 풍요가 은과 소득에 있지 않음을 알지만 아담적 자아는 끊임없이 인간을 탐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 결과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이 부분을 디모데는 이렇게 말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이처럼 죄는 불행을 선택하게 한다.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인(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불공평(inequity)’을 기초로 한다. 이 부분을 전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함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니 이 모두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19절, 새번역).‘(그것은 곧) 하나님의 선물’에 해당하는 ‘조 맛타트 엘로힘 히’에서 ‘조’는 ‘그의 분복을 받고 그의 수고를 즐거워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들에게는 정해진 몫이 있다. 정해진 몫이 있다는 것은 그 분배가 일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될 때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선물이 된다.이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신다. ‘응답하심이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아네’는 ‘대답하다’, ‘점령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나’의 사역형 분사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머물 때 이러한 일을 계속해서 보여 주신다는 의미다. 이 진리를 선택하고 받아들일 때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는 일과 먹고 마시는 모든 일들이 감사와 함께 복이 된다.우리 모두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하상훈 목사(하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배자를 향한 당부
2020-12-18
전도서 5장 1-7절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7.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순종하는 예배자예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이다. 본문 1절 상반절에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고 기록한다. ‘하나님의 집’은 성전을 가리킨다. 또한 ‘삼가다( 샤마르)’라는 말은 ‘지키다, 조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도자는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마주하는 예배자를 향해 당부한다.1절 하반절에서 악을 행하는 우매한 자들이 드리는 제사에 대해 경고한다. 제사를 드리는 겉모습을 통해 예배자로서 역할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사람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받는 것을 더 좋아하실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물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드리는지가 더 중요하다.내가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만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에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서 들으라고 권면한다. 내 생각으로 드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가 먼저이다. 내 생각이 먼저인 사람은 자신의 악함을 깨닫지 못한다. 예배자는 내 생각보다 하나님을 우선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는 사무엘상 15장 22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예배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함부로 말하지 않는 예배자예배자는 불필요한 말을 삼가야 한다. 2절에서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고 말씀한다.하늘에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땅에서 부패한 죄성을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과 다르시다. 불완전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급한 마음에 말하는 것은 실수와 잘못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좋다. 이는 1절에서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좋다는 말씀과도 맥을 같이 한다. 예배자는 자신의 말을 내뱉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서원을 지키는 예배자예배자는 서원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급한 마음에 말하는 자는 기도하는 중에도 즉흥적으로 서원을 드리기 쉽다. 이러한 서원일지라도 실수로 돌리고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다(6절).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은 진심으로 원하고, 오랫동안 고민하며 결정한 것이어야 한다. 서원을 지킬 수 있음에도 미루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4). 서원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지 못한 결과이다. 예배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예배자의 모습은예배자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전도자는 예배자를 향한 당부를 통해 어떠한 모습이 예배자로서 필요한지를 7절에서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자, 함부로 말하지 않는 예배자, 서원을 지키는 예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예배자이다.오늘, 삶의 예배자로서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성준 전도사(상주서문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변화무쌍한 세상과 불변의 가치
2020-12-17
전도서 4장 7-16절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해 아래의 모든 수고하나님을 떠나서 하는 모든 일은 헛되다. 전도자는 해 아래 헛된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모든 수고에 끝이 없었다. 또한 그의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남을 위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 행복을 누리지 않았으나 이도 헛된 수고였다.8절의 ‘수고’의 원어인 히브리어 동사 ‘아말’은 ‘일하다, 노동하다, 수고하다, 고생하다’의 의미다. 이 단어는 노동의 고귀함보다는 노동의 어두운 측면, 즉 성취되지 않는 고된 수고라는 뉘앙스를 지닌 채 사용된다. 즉, 수고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고 단순히 ‘해 아래서’ 수고하는 일을 뜻한다.이는 그것이 좋은 일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서 하는 모든 일에는 유익이 없다는 전도서 1장 3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지금도 하나님 안에 거하며 모든 일을 하고 있는가?연합의 가치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연합을 통해 이룰 수 있다. 두 사람이 한사람보다 나은 것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기 때문이다(9절). 그들은 한 사람이 넘어지더라도 다른 한 사람이 그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줄 수 있다(10절).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11절). 또 한사람이면 패하지만,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으며,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12절).지금 내가 연합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늙은 왕 vs 지혜로운 젊은이권세를 잡고 교만함보다, 가난해도 지혜로운 것이 낫다. 전도자는 아무리 가난해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낫다고 하였다. 또한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자는 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13-14절).나에게 경고를 받을 줄 모르는 자의 모습이 있지는 않는가? 그러면 지금 처한 환경에서 늙은 왕이 아닌 지혜로운 젊은이가 되려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인기의 허무함대세가 아닌 변하지 않는 가치를 잡아야 한다. 전도자는 왕의 다음 자리에 있던 자가 왕을 대신하여 통치자가 된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그 통치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이런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 같다고 한다. 한때 환영을 받던 자도 얼마 후에는 다시 그 인기를 잃어버리게 된다(15-16절).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오늘도 붙잡고 있는가? 그 가치를 붙잡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전하리 사모(품는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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