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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2020-12-23

전도서 8장 1-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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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2.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3.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4.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5.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6.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8.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9.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10.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권위에 대한 순종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전도자는 왕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2절). 왕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 통치자로 신적 권위를 가진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가 지혜자의 도리라고 말씀한다.


전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권세를 지닌 자가 다른 사람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로 하여금 그 자리에 앉게 하신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물론 이 말씀은 부당한 권력을 향해서 맹목적으로 복종하라거나 불의에 항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부당함이나 그릇 행함을 알면서도 타협하고 아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불의의 명령이나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 행동이 아니라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죽이지 않았다. 사울을 죽이면 이제 더 이상 도망자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도 있다. 이런 좋은 기회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윗은 사울 왕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사울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삼상 24:6). 즉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였기에 그렇게 했다.


권위주의는 나쁘다. 지나친 권위주의는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우려가 충분히 있다. 권위주의보다 나쁜 것이 있다. 권위를 무시하고 허무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무시하고 허물면 안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권위를 세워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위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가?


공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공의에는 보응이 따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종종 경험할 때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악인이 형통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은 저런 사람에게 벌을 안주시고 뭐하시는가? ”예레미야 선지자도 악인이 형통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이런 질문을 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 12:1)?”


악인이 형통한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의인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인의 형통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의인의 고난 역시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다. 전도자는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데 담대하다고 말한다(11절). 죄인이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한다고 말한다(12절).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행한대로 보응하신다(13절). 이 땅에서는 악인이 형통할 수도 있고 의인이 고난받을 수도 있다. 전도자의 말처럼 그 이유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다(17절).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도자는 부조리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희락을 소유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15절). 전도자가 말하는 희락은 쾌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상적인 삶 가운데에서 주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즐거움을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을 누릴 수 있음이 희락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는 기적이다. 희락은 먼 곳에 있지 않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얼마나 일상에서 희락을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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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이재영 목사(대구아름다운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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