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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 QT_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2020-04-06
고린도전서 16장 1-24절바울이 전하는 안부의 말 속에서 하나님은 실제적인 삶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전해지고 이루어집니다. 복음을 가두어 두지 마세요. 삶 속에서 복음을 드러내세요. 사람들에게 전하세요. 1.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기 위한 헌금에 대해서는 내가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에 지시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2. 여러분은 일요일마다 각자 자기 수입에 따라 얼마씩 따로 떼어 놓았다가 내가 갈 때 헌금을 거두지 않도록 하십시오. 3. 내가 그 곳에 가면 여러분이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내 소개 편지를 주고 그들을 보내서 여러분의 헌금을 예루살렘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좋다면 그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5. 내가 마케도니아를 지나가야 하므로 그 곳에 들른 후에 여러분에게로 가겠습니다. 6. 나는 얼마 동안 여러분과 함께 지내게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여러분과 함께 겨울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어디로 가든지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지금은 지나는 길에 여러분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여러분과 함께 얼마 동안 머물러 있고 싶습니다. 8.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내가 에베소에 머물려고 합니다. 9. 이것은 내가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큰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또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10. 디모데가 그리로 가거든 아무 걱정 없이 여러분과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도 나처럼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11.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업신여기지 말고 평안히 보내 내게 돌아오게 하십시오. 나는 형제들과 함께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2. 그리고 형제 아볼로에 대해서는 내가 그에게 다른 형제들과 함께 여러분에게 가라고 여러 번 권했으나 지금은 갈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있으면 가게 될 것입니다. 13. 여러분은 정신을 차리고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하십시오. 14.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15.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스데바나의 가정은 아가야 지방에서 제일 먼저 믿었으며 또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 바쳐 일해 왔습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과 또 그들과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십시오. 17.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와서 기쁩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못다한 것을 보충해 주었습니다. 18. 그들이 나와 여러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런 사람들에게 고맙게 생각하십시오. 19. 아시아의 여러 교회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가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주 안에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문안하고 20. 이 곳에 있는 모든 형제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여러분도 주님 안에서 따뜻한 인사를 서로 나누십시오. 21. 나 바울은 손수 이 문안의 글을 씁니다. 22.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마라나다 - 우리 주님이 오십니다!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편지의 말미에 나라면 무슨 말을 쓸까? 그건 앞서 말했던 모든 내용을 총정리하는, 상대방에게 내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엑기스의 내용이 아닐까? 마지막 부분은 대부분 자신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표현하기 마련이니까….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에서도 이러한 바울의 강조가 드러나는 것 같다. 고린도전서 전반에 걸쳐 바울이 말한 것은 은사나, 능력이나, 권위나 이 모든 게 사랑 없이는 헛된 것이라는 거다. 이것은 교회가 한 몸으로 세워지기 위함인데, 그 한 몸으로 세워지는 사랑은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위를 통해서 실천이 된다.연보 또한 이 사랑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바울은 왜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를 미리 떼어두게 했을까?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허둥지둥 모아서 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에서 늘 기억하고 실천하라는 뜻이 아닐까? 사랑은 추상적인 마음, 감정이 아닌 일상적인 삶에서의 실천이다.또한 이어지는 바울의 권면은(13-14절) 사랑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굳세게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결국 믿음을 지키는 삶은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문안 인사는 편지글에서 당연한 형식일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다른 성도들이 고린도 교회에 문안함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본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렇듯 하나님 나라의 삶은 이 땅 위에 사랑의 삶으로 나타난다. 그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작성자 : 한결(해오른누리)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묵시’로 꾸는 꿈
2020-04-04
주말칼럼_‘묵시’로 꾸는 꿈 제국은 힘이 셉니다. 새지도 닳지도 않아 보이는 ‘처음’이며 ‘나중’ 같아 보이는 힘입니다. 사정없이 조여 오는 제국의 ‘헤드록(Head Rock)’을 제힘으로 풀고 일어설 장사가 없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저 백발백중의 헤드록에 걸려있습니다. 속수무책의 현실인데, 누구 하나 거들어 주는 이가 없습니다. 숨 막히는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탕탕탕’ 손바닥으로 바닥을 쳐 항복을 선언하면 숨통이 트일까요. 배교와 불신은 제국이 붙인 불에 기름을 붓는 것에 다름 아니었을 겁니다. 이제 제국은 헤드록을 건 근육에 힘을 더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자중지란의 교회,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럴진대,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설 수 있을까요(계 6:17).”사데교회는 어떻게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런 교회를 두고 주님께서는 왜 ‘죽음’을 선언하셨을까요(계 3:1)? 모진 환난의 바다를 탈 없이 건널 수 있는 배 한 척이 있다면, 그 배는 틀림없이 ‘타협’과 ‘순응’의 부력으로 떠 있을 터입니다. 말 잘 듣는 교회를 파선시키겠다고 대포를 쏘아 대는 제국은 없을 테니까요.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계 3:15)” 하셨던 라오디게아교회가 공연히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 3:17)”라고 떠벌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돈’이 군림하는 시대에 ‘명성’을 교회 이름으로 내걸 수 있을 만큼의 ‘명성’이 있는 교회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제국의 진노를 피해 멀쩡히 살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알고 있었던 거지요. 예수님의 ‘복음’을 그저 ‘듣기 좋은 소리’로 여기고 마는 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이 리본 달린 예쁜 선물 상자 하나로 다 전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는 말씀은 도무지 쓸모가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두셨다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눈물 한 바가지 쏟고 퉁 칠 수 있는 거라면, “그러므로 회개하라(계 2:15)”는 말씀은 또 무슨 소용일까요? 12월부터 시작하여 몇 날을 읽어 온 ‘요한계시록’의 숱한 말씀들을 의미 있게 묵상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러잖아도 알아먹지 못 할 문자만 가득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기 이 빼곡한 말씀들이 허투루 여겨지지 않고 ‘아멘’이 되는 이가 있다면, 그건 무슨 까닭일까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8).” 사람들의 눈에 들 것 없는 볼품없이 작은 어느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이 그랬다지요. ‘환난과 궁핍’이라는 ‘두 날개(?)’로 지지리 궁상을 떨던 다른 교회를 향해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계 2:9)” 하셨다던 가요. 스스로 지켜낼 힘도 지켜 줄 누구도 없어 맨 몸으로 모진 환난을 맞아야 했던 그들은, 12월부터 시작된 ‘요한계시록’을 저 멀리에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 절박한 현실보다 더 절박한 믿음으로 ‘말씀’을 펴 보았을 게 뻔합니다. 뜬 눈으로 살피는 것으로는 대답이 되지 않는 날들, ‘묵시’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대답을 찾을 길이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성전 안’과 ‘바깥마당’의 묵시(계 11:1-2)가 그렇습니다. ‘핍박’은 ‘심판’으로 ‘죽음’은 ‘부활’로 바뀌는 그림은 가슴을 뛰게 합니다. 핍박과 순교가 패배가 아니라 이김이 되는 역설의 묵시, 역전의 묵시를 전해 받고 가슴 뛰지 않을 믿음이 있을까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묵시가 더 나은 다음 날을 한 상 가득 차려 놓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묵시를 본 다음 날에도 교회는 보호받지 못합니다. 현실은 묵시와 다릅니다. ‘약속’ 보다 ‘현실’의 힘이 더 커 보여 ‘약속’의 하찮은 밥상을 물리고 ‘현실’의 거나한 밥상을 받아 드는 것, 그걸 배교라 한다지요.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오늘 내일을 살면서도 ‘세속’에 승선하지 않고 오롯이 묵시의 꿈을 꿀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복이 없습니다. 샬롬!작성자 : 이창순 목사(서부침례교회 담임)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seeding
2020-04-03
고린도전서 15장 35-58절바울은 자연에서 발견하는 ‘씨앗’의 현상을 통해 우리 몸의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순간의 존재가 아닌 영원의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이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때 우리 역시 영원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순간에 속한 사람이 되기보다 영원에 속한 사람의 삶을 누리세요. 35.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그들은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36.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37.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가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3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 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39. 모든 살이 똑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승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 40.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들의 영광이 다릅니다.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42.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44.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45.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신령한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자연적인 것이 먼저요, 그 다음이 신령한 것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되어 있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습니다. 48. 흙으로 빚은 그 사람과 같이, 흙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고,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이,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49.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과 같이, 우리는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50.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살과 피는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유산으로 받지 못합니다. 51.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터인데, 52.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53.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54.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땅에 씨앗을 뿌리는 일과 매일의 삶에 씨앗을 뿌리는 작업은 순리 속 진리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세월의 흔적을 딛고 그 가지 끝에 열매가 맺히듯, 내 삶에 뿌려진 씨앗도 또 다른 생명이 되어 생기가 있어야 한다. 내 의지로 땅에 씨앗을 뿌리고, 온 정성을 쏟는 과정 속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나의 노력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그분이 나를 위해 계획하신 타이밍이다. 나는 내가 뿌린 것들에 대한 경험치로 인생의 복잡한 일들을 고찰하며 정리해 보려 하지만, 언제나 쉽지 않다.하지만 그분께서는 나의 인생이라는 큰 틀 안에 오직 그분의 말씀 한 구절로만 채워 주신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이밍과 내 힘에 부치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일 수 있겠지만, 그때마다 피하고 도망가면 제자리걸음이다.내가 힘에 부치고, 내 능력에 넘치는 일이 계속 주어져도, 그분께서 내 삶 속에 지속해서 씨앗을 뿌리는 이유는 내가 업그레이드될 때라는 그분만의 사인이다.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작성자 : 이승주(사진작가)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함께
2020-04-02
고린도전서 15장 12-34절물건을 살 때, 어떠한 장소에 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물건과 장소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나의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나의 시간을 들여서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순종한 죽음과 다시 사신 생명의 가치, 헤아릴 수 없는 큰 가치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15.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21.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24. 그 때가 마지막입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위와 모든 권력을 폐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두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에 굴복시키셨다”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굴복시켰다고 말할 때에는, 모든 것을 그에게 굴복시키신 분은 그 가운데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명백합니다. 28.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 굴복 당할 그 때에는, 아들까지도 모든 것을 자기에게 굴복시키신 분에게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유의 주님이 되실 것입니다. 29.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 하려고 그런 일을 합니까? 죽은 사람이 정말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습니까? 30. 그리고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까? 3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32.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33.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34.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내가 이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 가운데서 더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학창 시절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처럼 십자가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과 그로 인해 사랑이 넘치고, 마음이 자유하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못된 신앙이라 불리는 모태 신앙인 저에게는 십자가의 삶은 희생, 죽음으로 생각되고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만 느껴져 부담스러웠습니다.지금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면 ‘십자가 삶’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고 세상 코드에 세팅이 되어 버리곤 합니다. 그렇게 2019년, 몇 번이고 세상 코드에 세팅이 되어 선글라스를 쓰듯이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마음이 되어버릴 때가 있었습니다.말씀처럼 세상 코드에 맞춰 사는 것은 불쌍했습니다. 왠지 모를 불안과 죄책감, 공허와 허무감에 한숨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살고자 발버둥 치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음을, 세상 코드 에 맞춰져 있음을 깨닫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길 반복했습니다.불쌍했던 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포기해야 할 일들, 희생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무게를 재보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고린도전서 15장 31절 말씀처럼 날마다 죽는 일은 선입견, 편견, 생각을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 기준에 맞춰 삶을 비교하기보다 하나님 기준에 맞춰 삶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죽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이라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고전 15:19).”작성자 : 이도영 (커뮤니아티스트)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부활
2020-04-01
고린도전서 15장 1-11절“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 양키스의 명포수였던 요기 베라의 말입니다. 복음이 주는 좋은 소식은 우리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것처럼 죽음이 우리를 더 이상 붙잡고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신 분입니다.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일깨워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드린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7.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렇게 전파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한 사업가가 개업식에 주문한 화환을 받았는데 그 꽃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평안히 쉬시길.”장례식장이나 가야 할 꽃이 온 걸 보고 화가 난 사업가가 꽃집에 전화해서 화를 내며 따집니다. “아니 도대체 이런 내용의 화환을 보내면 어떡하자는 거요!?!?” 그러자 꽃집 사장님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황하신 건 알지만 너무 화를 내지는 마세요. 지금 저쪽 장례식장에는 더 상황이 안 좋습니다. 거기는 ‘입주를 축하합니다’라는 화환이 갔거든요.”이 세상에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게 진짜라면 그리고 그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진짜라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작성자 : 김선의(스탠드업코미디언)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교회의 덕
2020-03-31
고린도전서 14장 26-40절어떤 이들은 교회가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모습 속에서 교회를 멀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충실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만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이와 함께 하도록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해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덕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당신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덕을 세워가고 있나요?26. 그러면 형제자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는, 찬송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통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남에게 덕이 되게 하십시오. 27. 누가 방언으로 말할 때에는, 둘 또는 많아야 셋이서 말하되, 차례로 말하고, 한 사람은 통역을 하십시오. 28. 통역할 사람이 없거든, 교회에서는 침묵하고, 자기에게와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29. 예언하는 사람은 둘이나 셋이서 말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분별하십시오. 30. 그러나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내리거든,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잠하십시오. 31. 여러분은 모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두가 배우고, 권면을 받게 됩니다. 32. 예언하는 사람의 영은 예언하는 사람에게 통제를 받습니다.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34.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여자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35.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36.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났습니까? 또는 여러분에게만 내렸습니까? 37. 누구든지 자기가 예언자이거나 성령을 은사로 받은 사람이라 생각하거든,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글이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8. 누구든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39.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예언하기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막지 마십시오. 40. 모든 일을 적절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 유학생들로 구성되어 시작된 연극 단체 ‘토월회(土月會)’가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에 있는 토월극장이 ‘토월회’의 이름을 가져와 사용한 것입니다. ‘토월’은 “발은 땅(토;土)을 딛고 눈은 달(월;月)을 바라보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토대 위에서 우리의 이상을 추구해 가자는 말입니다.많은 예술가가 현실은 생각지 않고 이상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도 이상도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둘 다 소중히 여기고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토월’이라는 이름을 좋아합니다.모든 것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는데 이를 조화롭게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방언과 예언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이를 통해 교회의 덕이 세워져야지, 그렇지 못하다면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상태 인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교회의 덕이 세워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작성자 : 주진홍(연극인)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한 몸 오케스트라
2020-03-30
고린도전서 14장 1-25절바울은 방언을 삼가고 예언을 권면하면서 이것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유익이 되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믿는 이들만을 위한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2.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 4.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만 덕을 끼치고,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을 끼칩니다. 5. 여러분이 모두 방언으로 말할 수 있기를 내가 바랍니다마는, 그보다도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방언을 누가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끼치게 해주지 않으면,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보다, 예언하는 사람이 더 훌륭합니다. 6.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7.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이 없는 악기도, 각각 음색이 다른 소리를 내지 않으면, 피리를 부는 것인지, 수금을 타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8. 또 나팔이 분명하지 않은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겠습니까? 9. 이와 같이 여러분도 방언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명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남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결국 여러분은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10.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없는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11. 내가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나는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딴 세상 사람이 되고, 그도 나에게 딴 세상 사람이 될 것입니다. 12. 이와 같이 여러분도 성령의 은사를 갈구하는 사람들이니, 교회에 덕을 끼치도록, 그 은사를 더욱 넘치게 받기를 힘쓰십시오. 13.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14.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15.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영으로 기도하고, 또 깨친 마음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영으로 찬미하고, 또 깨친 마음으로도 찬미하겠습니다. 16. 그렇지 않고, 그대가 영으로만 감사를 드리면,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하므로, 어떻게 그 감사 기도에 “아멘”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17. 그대가 훌륭하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덕이 되지 않습니다. 18. 나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을 말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19. 그러나 나는, 방언으로 만 마디 말을 하기보다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하여 나의 깨친 마음으로 교회에서 다섯 마디 말을 하기를 원합니다. 20.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21. 율법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방언을 하는 사람의 혀와 딴 나라 사람의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은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22. 그러므로 방언은 신자들에게 주는 표징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주는 표징이고, 예언은 불신자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23. 온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서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고 있으면,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와서 듣고, 여러분을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24. 그러나 모두가 예언을 말하고 있으면,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와서 듣고, 그 모두에게 질책을 받고 심판을 받아서, 25. 그 마음 속에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 하고 환히 말할 것입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단원 한명 한명의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악기에서 충분히 좋은 소리(tone)를 내야만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연주를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멋대로 혼자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합주가 아니고 독주이니까요. 오히려 합주의 소리를 방해하는 잡음이 되고 맙니다. 다양한 악기들이 편곡된 악보에 의해서 각자의 소리를 낼 때 비로소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거나 남의 소리를 잘 듣지 않으면 절대 좋은 합주가 나오지 않습니다. 각각 악기들의 연주가 조화와 앙상블을 이루어야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을 지휘자가 하게 되는 것입니다.교회도 이와 비슷합니다. 고린도교회에도 사회적 신분과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신앙의 깊이와 영적인 은사도 다양했습니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공동체를 향한 관점으로 돌리기를 충고합니다. 즉, 영적 방언을 절제하고 오히려 공동체에 유익한 예언을 더 강조한 것입니다. 예언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와 소통하는 데 더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렇습니다. 다양성 가운데 조화된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주님이 바라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는 내 소리만 내지 말고 남의 소리를 더 많이 듣는 하루가 되도록 다짐해 봅니다.작성자 : 이대철(문화기획 헤리티지)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고백록’에서 만난 자비와 안식
2020-03-28
주말칼럼_‘고백록’에서 만난 하나님의 자비와 내가 찾은 안식 중세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문학가, 신학자로 추대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한마디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영혼의 자서전’입니다. 1권에서 9권까지, 어린 시절부터 이어지는 죄에 대한 그의 고백은 ‘나는 병든 사람입니다. 나의 모든 소망은 당신의 넘치도록 크신 자비에만 있다’라는 절규입니다.유소년기를 지나고 청년기에 대한 고백에서 그는 정욕의 가시덤불이 머리 위에서 점점 자라나서 무성하게 우거져 가고 있었는데도 그 가시덤불을 제지해 줄 손길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는 그를 시궁창에 좀 더 단단히 잡아두기 위하여 그를 짓밟아서는 한복판으로 질질 끌고 갔습니다. 자신이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라 고백하며 인간의 연약함을 개탄하고 있습니다.로마제국 말기 퇴폐한 풍조 속에서 마니교에 빠져 정욕의 삶을 살아갈 때도 키케로의 책을 읽으며 글 속에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그를 완전히 사로잡지는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진리에 의탁하면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게 될 것이고, 그에게서 곰팡이가 나고 썩어버린 것들 이 다시 소생하여 꽃을 피우게 될 것을 서서히 깨닫습니다.제8권, 무화과나무 아래서의 회심이 있기 전부터, 그는 주님은 영원히 계시지만 우리에게 영원히 진노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티끌 같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그의 흉측한 모습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주님을 분명하게 보게 될 때까지 그의 심령을 계속해서 연단하셨습니다. 그의 찢기고 상한 마음은 주님의 위로와 치료의 손길로 날이 갈수록 좋아져 갔다고 고백합니다.드디어 그는 참된 행복에 대하여 고백을 합니다.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절대로 없게 해주십시오. 행복한 삶이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이고,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기쁨을 추구하겠지만 그것들은 참된 기쁨이 아닙니다’라고 강변합니다.‘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두고 밖으로만 떠돌았던 나의 지난 세월, 지극히 오래되었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주님, 너무나도 아름다우신 주님이여, 그런 주님을 너무 늦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절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를 부르시고 귀머거리가 된 그의 귀를 열어주셨습니다. 번쩍이는 광채로 맹인 된 눈을 열어주셨고, 그리스도의 향기와 사랑을 맛보게 하시어 주를 믿고 따르며, 그 사랑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셨습니다.그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묶인 죄악과 그의 비참한 모습을 깨달으며 놀라고 두려웠습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로 도망칠 생각도 해보았지만, 주님은 그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그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의 삶은 이렇게 분열되어 있지만(파편화된 자아), 주님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인자이신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타자”가 되어버린 우리를 다시 이어주시는 중보자이시기에 때문입니다.이 책을 통하여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지난날의 파편화 된 삶에서 벗어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 사라져버릴 것, 덧없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것, 오직 하늘의 부르심의 상을 좇아 달려가고 싶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존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기쁨이 가득한 곳에 영원히 살고자 합니다.내 영혼에 주님의 빛이 필요함을 절절하게 깨닫습니다. 내 영혼은 스스로 빛을 비출 수 없고, 세상의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황폐한 땅, 물 없는 땅과 같음을 깨닫습니다(시 63:1). 내 가 주의 빛 안에서만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방황하던 내 영혼이 다시금 안식을 만납니다.작성자 : 엄정희 교수(서울사이버대학교 가족코칭상담학과 교수, 연합가족 상담연구소 소장)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사랑이란 무엇일까?
2020-03-27
고린도전서 13장 1-13절우리는 화려하고 멋있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잔잔한 바다와 같습니다. 참고 견디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에 어렵고 힘든 일을 참아 내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피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사랑의 길로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1.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8.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12.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저는 가치관에 대해서 정의 내리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여자는, 어른은, 아이는, 흑인은, 백인은, 한국인은, 행복은, 자존감은, 사랑은. ‘무엇은 ~어떠해야 한다’처럼, 가치관을 반드시 정해놓고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것에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 변수가 존재하고, 삶에 절대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생각이 제가 가진 가치관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성경에 사랑은 ~다’라고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키기 어려운 것을 시키신 것일까요? 과연 사랑은 무엇일까요? 믿음과 소망, 사랑 가운데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성경에 쓰여있는 사랑에 대한 의미를 읽으면서, 사랑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지,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관계에서 존재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이 좋을지, 자신이 느껴본 사랑은 무엇이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네 힘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하나님,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니까요.작성자 : 한지현(동화작가)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공동체
2020-03-26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의 각 부분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지만 모두 몸을 위해서 일합니다. 그리고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낍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지체보다 더 드러나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십시오. 그것이 몸된 교회를 위하는 것입니다.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14. 몸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온몸이 다 귀라면, 어떻게 냄새를 맡겠습니까? 18. 그런데 실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19. 전체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다고 하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20.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 없습니다. 22. 그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 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24.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모자라는 지체에게 더 풍성한 명예를 주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28.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몇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셋째는 교사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요,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요, 남을 도와 주는 사람이요, 관리하는 사람이요, 여러 가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29. 그러니, 모두가 사도이겠습니까? 모두가 예언자이겠습니까? 모두가 교사이겠습니까? 모두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겠습니까? 30. 모두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모두가 통역하는 사람이겠습니까? 31. 그러나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청년 때부터 가끔 하던 생각인데 “가장 영적인 사람이란 공동체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일거야”라는 것이다. 나에게 어려운 건 기도하는 것이나 성경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늘 원하는 일이고 달콤한 일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나와 결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그를 용납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 가장 어렵다. 여전히 공동체 속에서의 미숙한 나를 보게 될 때 이런 생각은 더욱더 확고해간다. 현대 교회와 많은 부분이 비슷한 고린도교회에 바울이 보낸 편지를 보면 은사가 넘쳐나는 교회에 부족한 점 또한 이런 지체됨과 주님의 몸을 공동체가 함께 이루어가는 것을 그들도 역시 힘들어했다는 것이니, 이런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해도 될는지…. 고린도교회는 다수의 그룹으로 성향에 따라 나뉘어있었고 이런 차이점들이 분파를 만들고 있었다. 지식과 성령의 은사가 풍족하나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공동체이다. 나 역시 교회가 성도들의 공동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이것을 머리로만 알뿐,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나의 교만을 나 스스로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다.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을 보면 정의로운 척 화를 내지만, 나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당을 지으며, 나와 성향이 다르면 무시하고 겉으로만 상대하며 그들에게 내 마음 곁을 내주지는 않는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은 고린도교회 이야기로 어린아이에게 하시듯 말을 건네 오신다. 왜 나와 다른 사람을 힘들어하는지는 더 성찰이 필요하겠으나 아마 어린아이와 같은 힘겨루기일 터이다. 내가 너보다 능력이 더 있는데, 힘이 더 센데, 날 몰라보다니, 반대로 나보다 능력 있는 자 앞에서 자격지심으로 아예 상대하지 않기도 한다. 나만 보일 뿐 주님의 몸 됨을 이루어가는 것에는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지 않는 이 신앙을 어찌해야 할까….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가장 좋은 것,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길 염치없지만 기도해본다.작성자 : 김택환(온맘닷컴 대표)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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